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고싸움 - 비장미로 승화되는 화합의 민족예술

Gijuzzang Dream 2009. 2. 15. 03:18

 

 남성 중심의 역동적인 대동놀이, '고싸움'의 한 장면으로 두 개의 '고'가 용솟음하고 있다.

 

 

광주 칠석고싸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는

주로 전라남도 일대(현재의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동 칠석마을)에서 정월 대보름 전후에 행해지는

격렬한 남성집단놀이이다.

고싸움의 '고'란 옷고름, 고맺음, 고풀이 등의 예에서 보듯이

노끈의 한 가닥을 길게 늘여 둥그런 모양으로 맺은 것을 말하며,

2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 해서 '고싸움'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측된다.

고싸움은 줄다리기와 마찬가지로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식의 한 형태이며,

놀이를 통하여 마을사람들의 협동심과 단결력을 다지는 집단놀이로서 의의를 지닌다.

 


세계를 향해 선보였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재

 

오래 된 이야기지만, 88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때다.

필자는 특히 올림픽의 처음과 끝이 인상적이었다.

식전행사와 폐막식에서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가 선보이자

세계인이 환호로 답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올림픽의 식전행사는 고싸움이 핵을 이뤘고, 폐막식에서는 강강술래가 한 몫을 했다.

 

고싸움은 우리나라 민속 중에서도 가장 투지 넘치는 집단놀이다.

두 개의 고가 상대를 향하여 앞으로 질주하다 머리를 부딪쳐 하늘로 치솟는 모습은

지상을 박차 오르며 승천하는 용을 닮았다. 비상하듯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에서 강렬한 힘을 느낀다.

고와 고가 부딪히는 순간 양쪽에서 내달려온 수백 명의 힘이 일순 한 접점에 모아지면서

감당치 못할 힘에 고의 머리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것이다.

이것으로 올림픽의 개막을 선언적으로 표현했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고싸움의 대결 국면은 이기고 지는 승부의 세계를,

하늘로 치솟는 모습은 기록의 향상을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주술적인 놀이인 줄다리기에서 고싸움의 발견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으로 으레 볏짚으로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했다.

줄다리기에 쓰이는 줄은 마을의 크기에 비례한다.

동아시아에 전승되어 오는 줄다리기는 벼농사에 없어서는 안될 물과 관련이 있다.

줄은 곧 물을 관장하는 용으로 믿어졌던 것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한, 즐거움의 한 원천은 성교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경험이 신의 세계에도 적용된다.

신도 역시 성교를 즐거워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용신을 위해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줄은 용이며, 줄다리기는 용을 교미시키는 것이다.

신을 즐겁게 해주면 그 반대급부로 원하는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원초적인 믿음이었으며,

이러한 믿음은 주술이나 종교의 근간이 된다.

 

얼핏 보면 줄다리기와 고싸움은 전혀 다른 놀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보면 고싸움이 줄다리기에서 발전된 놀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줄다리기에서 쓰는 줄은 외줄이거나 쌍줄이었다.

쌍줄의 경우는 암줄과 숫줄을 만들어 쓰며, 이것은 암룡과 숫룡을 상징한다.

두 줄을 결합시키기 위해 앞쪽을 둥근 고리 모양으로 만드는데,

숫줄의 머리를 암줄의 머리 속에 끼워 연결을 시키기 위해서 암줄의 머리를 더 크게 만든다.

 

고싸움에서 사용하는 고의 경우도 암놈을 의미하는 서부의 고 머리를 더 크게 만든다.

만약 고싸움이 줄다리기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러한 크기의 차이는 애초에 있어서는 안될 불평등 게임이 된다.

 

또한 대보름 줄다리기를 할 때,

마을 사람들을 남녀로 편을 가르거나 또는 동서나 상하로 편을 나누어 하는데,

여자나 서부 또는 아래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전하고 있다.

모두 음양의 원리에 근거를 둔 믿음이다.

남·녀, 동·서, 상·하가 각기 음양으로 짝을 이루고 있으며,

여자쪽, 서쪽, 아래쪽은 음성의 원리를 공유한다.

 

칠석동 고싸움에서도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믿어지고 있으며,

이 역시 줄다리기에 그 연원을 두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사례이다.

 


승부 방식의 변화를 통한 창조적 집단놀이의 탄생

 

줄다리기는 줄을 자기쪽으로 잡아당겨서 승부를 내지만,

고싸움은 고를 반대쪽과 부딪쳐서 승부를 낸다.

줄다리기가 수평적인 이동을 통해서 승부는 내는 것에 반해서

고싸움은 싸움이라는 말처럼 격렬하게 부딪치며, 위에서 아래로 상대의 고를 눌러버려야 승부가 난다.

                                                                                    고샅 고싸움놀이용

 

수평의 승부를 수직의 승부로 바꾸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함께 동반되었다.

우선 고를 만들면서 대나무를 쪼개어 둥글게 휜 다음 새끼줄로 칭칭 감아서 머리 부분을 만든다.

머릿고의 중간에는 굉갯대라는 통나무를 받치고,

고의 몸통에는 지랫대라는 통나무를 속에 넣어서 부딪치는 힘에 고가 상하지 않게끔 견고하게 한다.

또 고의 몸통 아랫쪽에는 사람들이 양쪽에서 짊어지고

또 승부를 낼 때 머리 위로 치켜들고 내달리기 위해 가랫장을 받친다.

고의 뒷쪽에는 양 갈래로 꼬리를 만드는데

이 역시 고싸움을 하면서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줄다리기에 쓰이는 줄은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여 한나절 정도에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서

고를 만드는 것은 최소 일주일 이상 소요된다.

그만큼 기술과 힘이 필요한 제작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고는 원래 매년 만들어 썼으며,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각기 따로 만든다.

아랫마을인 서부가 이겨야 그해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기는 하지만,

한번 싸움이 붙었다 하면 속신 따위는 잊혀지고 만다.

마을에 전해오는 말로는 고싸움에서 이기면 논 서마지기를 사는 것보다 기쁘다고 한다.

 


지능적인 지휘와 일사분란한 협동심 필요


 

고싸움은 힘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줄다리기와는 다르다.

물론 힘은 기본이 되지만, 주도면밀한 작전과 민첩한 임기응변, 그리고 일사분란한 협동심 등이

승패를 좌우한다. 고 위에는 줄패장이라고 부르는 지휘자가 2~3명 탄다.

그리고 장정 7~80명이 어깨에 가랫장을 메며, 양쪽으로 갈라진 꼬리는 부녀자 수십명이 잡고 따른다.

또 영기와 농기 등 갖가지 깃대며 횃불을 든 사람,

그리고 흥과 전투력을 돋우는 풍물패가 함께 어우러진다.

 

대보름날 아침녘부터 윗마을과 아랫마을은 풍물패를 앞세우고 각각 고를 어깨에 메고

위세를 떨치면서 마을 주위를 돈다. 힘을 과시하면서 상대를 위압하려는 기싸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는 줄과 마찬가지로 용의 형상물이기 때문에 신령스러운 용의 힘을 빌어

마을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사악한 기운이며 잡귀를 몰아내는 주술-종교적 의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을 오방돌기 또는 오방치기라고 하며, 이 역시 줄다리기의 유습으로 보인다.

 

현재는 전수관이 지어지고, 그 앞에 놀이마당이 마련되어 있어서

소위 '오방돌기'를 하는 과정이 생략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관하고 있는 것을 다시 사용한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두 개의 고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보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고와 고 사이에서는 풍물패가 자지러지게 농악을 논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는 사이, 일순 가운데서 놀던 풍물패가 한쪽으로 빠져나가면

양쪽에서 상대의 고를 향해 함성을 지르면서 질주를 한다.

고의 뒤쪽에서 꼬리를 잡고 따르는 여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남성으로 이루어진 고꾼들은 더욱 사기가 솟는다.

고와 고가 정면으로 부딪치면 그 힘에 못이겨 두 개의 고는 하늘로 치솟는다.

용솟음이란 이런 것이다.

 

줄 위에 줄패장은 싸움을 주도하면서 작전을 지시한다.

위에서 아래로 눌러버려야 이기는 고싸움은 서로 상대의 고를 제압하기 위해 온힘을 다한다.

정면에서는 절대 상대의 고를 누를 수 없이 때문에 측면을 공격하고

또 지키기 위해 줄패장은 고꾼들에게 방향을 지시하며,

꼬리를 잡은 여성들은 고가 방향을 트는데 용이하게끔 조력을 다한다.

낮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밤까지 계속되며, 하루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다음날, 또 그 다음날,

이렇게 연일 고싸움은 계속된다.

 

처음 고싸움을 발굴해서 오늘이 있게 한 지춘상 교수는 이런 고싸움을 두고 ‘징한 놀이’라고 했다.

 

 

 

남자를 상징하는 동부(양, 陽)와 여자를 상징하는 서부(음, 陰)가

서로 마주본 채 한바탕 싸움을 준비하는 모습

 

 


민속문화콘텐츠로 거듭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고싸움은 일제강점기에 자취를 감추었다가 1969년 발굴 · 재현되어

그해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1970년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과거 다른 마을에서도 고싸움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복원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었다.

지금은 칠석동의 고싸움을 몹시 부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즈음 어찌 보면 고싸움은 민속문화콘텐츠로 각광을 받으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있다. 매년 대보름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사진기자며, 전문가들이며,

또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고싸움을 보기 위해 운집하고, 또한 일본 등 외국에서 단체로 관광을 온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마을 주위를 테마파크로 조성하고 있으며,

금년만 해도 수십억원을 들여 공원화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영상체험관을 지어 곧 개관할 예정이다.

 

세계적이든 전국적이든 큰 행사가 있을 때,

고싸움놀이가 자주 출전하여 지역문화를 뽐내는 것을 보면 부러움을 살만도 하다.

고싸움보존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 주민은

앞으로 우리 마을이 고싸움으로 먹고 살 것이라며 기대에 차있었다.

-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9-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