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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자웅을 겨루던 사국시대, 글씨를 쓰는 종이를 대신했던 목간이 일반인들에게 선보인다. 써서 한 장 한 장 끈으로 꿰어 종이처럼 사용했던 대나무 조각)과 더불어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했던 목편(木片)이다. '목독'(木牘) 또는 '목첩'(木牒)이라고도 불리는 목간은 나무를 폭 약 3 cm, 길이 약 20∼50 cm, 두께 3 mm 정도의 긴 판자모양으로 잘라 묵서(墨書)했던 나무조각이다. 떠오르고 있는 경남 함안 성산산성(城山山城)에서 발견된 목간을 3천800만 화소급 고화질 디지털카메라에 담아 적외선 목간 사진과 비교할 수 있는 성산산성 유적 홈페이지(www.haman-sungsan.go.kr)를 28일(금)부터 연다고 밝혔다. 독특한 정부기관 홈페이지"라며, "이곳에는 유적 소개, 관련 보도자료, 연구성과, 자료실 등의 다양한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우리나라 고대 목간학 연구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이 홈피의 자료실에는 성산산성 출토 명문(銘文) 목간의 원색 및 디지털 사진을 비교하는 사진자료와 학술자료를 제공한다. 이에 따라 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동안 창원문화재연구소가 펴낸 성산산성 목간 도록과 같은 책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웹상에서 곧바로 성산산성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조남산(鳥南山, 139m)에 세워진 삼국시대 돌로 만든 산성으로 둘레는 약 1.4㎞이다. 이 산성은 함안을 중심으로 한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옛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까이 함안 도항리(道項里)ㆍ말산리(末 山里) 고분군 등 가야의 수장급 대형고분이 있어 아라가야의 정치 및 군사적 주요거점으로 추정되고 있다. 옛 아라가야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가야산성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발굴조사 결과 함안 성산산성은 성벽의 축조기법과 출토유물 특히 명문목간으로 보아 신라산성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6세기 중엽 아라가야의 멸망으로 대백제 접경지역에 축조된 중요한 관방유적이다. 나와 있는 것이 유일하다. 그리고 <일본서기(日本書紀)>19권 '킨메이천황(欽明天皇) 22년(561)조에 따르면 '신라에서 아라의 파사산에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성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위해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동안 조사결과로는 남문지와 동문지의 위치 및 형태가 확인되었으며, 내벽의 축조 분기점과 외벽보강구조물, 동문지 부근의 배수로 등 성벽구조를 살펴볼 때 신라의 전형적인 축성기법과 관련이 있는 산성으로 밝혀졌다.
창원문화재연구소 홈피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동문지 안쪽의 저수지 및 저습지 확인조사에서 122점의 목간 및 다량의 목제유물 등이 나와 당시 성벽을 축조하고 활용했던 생활모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이어 지금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성벽의 축조공법, 산성내부의 공간 활용양상 등 한국의 고대 산성연구에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들도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총 122점의 목간(木簡)이 출토되어 문자자료의 양이 매우 부족한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며, "2006년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목간은 함안 성산산성과 경주 안압지, 부여 능산리사지, 익산 미륵사지, 하남 이성산성 등에서 355점이 확인되었으며, 이중 글자가 있는 목간은 252점"이라고 덧붙였다.
성산산선에서 목간과 함께 출토된 톱니형 목기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고써래를 확인했다. 고써래는 '골+써래'라는 말로, 경북 안동 등지에서는 70년대까지도 사용했던 농기구(農具)다. 목간과 함께 출토된 고써레는 옥수수, 콩 따위를 파종할 때 씨를 넣을 골을 타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 조선시대까지 주로 산간지역에서 사용됐다. 지금도 제주도 산간지역 일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나무는 활엽수 가운데서도 비교적 단단한 재질에 속한다. 날은 모두 4개가 끼워졌던 것으로 추정되나 수습 당시에는 2개만 장착돼 있었다. 자루 부분은 없어졌고 날 부분과 판대 부분은 나무못으로 고정했다. 이 유물을 통해 1500여 년 전인 6세기 중 · 후반 신라가 쌓은 성산산성 안에서 당시 옥수수 또는 콩 농사가 이뤄진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가야문화재연구소는 "주로 산간지역에서 사용하는 이 유물은 나무 종류를 분석한 결과 밤나무와 느릅나무로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를 통해 함안산성 일대에서 행해진 고대 농사 형태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제작 흔적을 통해 주로 자귀(나무를 깎아 다듬는 연장)와 손도자(손칼)를 제작도구로 사용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저습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증가하면서 목기 유물 또한 막대한 양이 출토됨으로써 토기나 철기 등과 마찬가지로 목기 또한 고대 문화에서 주요한 연구 분야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정리 과정에서 간단한 자루 형태 목기는 가지 부분과 곁가지 부분을 주로 사용한 반면, 대형 목기는 줄기 부분을 이용했으며, 종류에 따라 1-4단계까지의 공정을 거쳤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나아가 같은 성산산성 출토 목기류 중에서는 소나무로 제작한 실감개인 얼레(실감개)편이나 섬틀의 고드렛돌로 추정되는 목기도 확인함으로써 성산산성이 축조된 진흥왕 무렵 신라시대 고대 문화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 <한국목간기초연구> 이용현 저/ 신서원/ 2007년
- <한국의 고대목기>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문화재청/ 2009년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와 국립부여박물관(관장 권상열)은 6월 4일(목)부터 5일(금)까지 함안 가야읍 함안문화원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개소 40주년 및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여, ‘고대의 목간, 그리고 산성’이란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제1부 고대의 목간’에서는 주보돈(경북대 교수)과 히라카와 미나미(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장)이 한국 목간연구 40년과 동아시아 목간에서 한국 목간의 위상을 회고하며, 김성범(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나주 복암리 목간을 자세히 소개한다. 박종익(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과 임경희(국립 해양문화재연구소)는 함안 성산산성과 태안 앞바다에서 출토된 목간의 발굴조사와 그 성격에 대해 조명한다. 이 밖에 손환일(경기대 교수) 등 국어학ㆍ서예학ㆍ금석학 전문가들과 이성시(일본 와세다대학 교수) 등 일본 및 중국사 관련 해외 연구자들이 한국 목간연구의 다양한 방법론을 소개한다. ‘제2부 고대의 산성’에서는 이주헌(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이 성산산성 발굴조사 14년의 성과를 소개하며, 서영일(한백문화재연구원)은 고대 산성의 축조공법에 대하여, 오승연(한국문물연구원)은 산성의 수자원관리에 대해 그리고 이판섭(가경문화재연구원)이 고대 산성과 네트워크 등 그간 한국고고학계에서 쉽게 다루지 못했던 고대 산성 연구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특히, 6월 5일(금) 15시부터 함안 성산산성 발굴조사현장을 일반에 공개하여 목간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동성벽 지점에 대한 현장설명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학술 심포지엄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국내 최초의 목간 기획전인 「나무 속 암호, 목간」(05.19.~06.28. 국립부여박물관)과 더불어 한ㆍ중ㆍ일 목간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와 최신 연구경향 및 정보를 공유하고, 향후 고대산성의 조사와 정비,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의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술 심포지엄】 ㅇ 주 제 : <고대의 목간, 그리고 산성> ㅇ 일 시 : 2009. 6. 4~5 / 2일간 ㅇ 장 소 : 함안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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