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오역(誤譯)

Gijuzzang Dream 2009. 2. 13. 00:37

 

 

 

 

 

 

 오역(誤譯)

 

 

 

 

글은 뜻이 통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정확하게 오래 전하기 위하여 다듬고 꾸며서 된 것이다.

하물며 책으로 발간되어 나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그런데 이 글들이 다른 말로 번역이 되면서 본래의 뜻과는 달리 되는 경우가 있다.

노산 이은상님이 <난중일기> 초간본에서는

일자 뒤의 날씨에 ‘雨雨’ 라 적힌 것을 ‘비, 비’라고 번역하였다가

방은 성낙훈 선생께서 명사와 동사도 모르는 번역이라 질타한 것도

앞의 '雨'는 동사이고 뒤의 '雨'는 명사로 '비가 내리다' 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헌학이란 학문을 개척한 탕민 류탁일 교수께서도

젊은 시절 ‘성품이 질박하고 진실 되어 거짓이 없다’ ‘性質實無僞’ 란 쉬운 글을

‘성질이 실로 거짓이 없고’라 번역한 적이 있다며 훗날 자신의 학문적 오류와 실수에 언급하셨다.

이러한 실수는 애교에 가깝다.

하지만 정말로 사료를 가볍게 해석하여 문리도 맞지 않고 내용도 틀려버리는 경우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위지동이전>의 예전(濊傳)에는 효후성숙 예지년세풍약(曉候星宿 豫知年歲豊約)’ 이란 글이 있다.
이 글은 교과서를 비롯하여 모모한 여러 서적에

‘새벽에 별자리를 보아 미리 그 해의 풍년이나 흉년을 안다’로 풀이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候'를 동사로 보아 '후망(候望)하다, 살피다'는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새벽은 '성산(星散)'이라 하여 별자리가 뿔뿔이 흩어지는 시간인데

무슨 별자리를 살핀다는 뜻인가?

하 많은 별자리를 깊은 밤에 살피는 것이지 별이 사라지는 새벽에 살피기는 어려운 편이다.

'候'가 명사인 경우에는 '절후, 기후'를 가리키며 뒤의 '성수(星宿)'와 등격이 되고

'曉'가 동사로서 '알다, 이해하다, 정통하다'는 뜻이 된다.

이러면 ‘절후와 별자리를 이해하여 미리 그 해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알았다’ 는 뜻이다.


위지의 문틀이 제귀신(祭鬼神), 지잠상(知蠶桑), 벌조선(伐朝鮮), 부지승우마(不知乘牛馬) 등속인 것으로

볼 때 '曉(효)'를 동사로 보아야 문리가 매끄럽다.

도1) 조선초기 고구려 천문도를 저본으로 성도의 오차를 수정하여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후기본(부산시유형문화재 제78호, 부산박물관소장)


또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고조선의 단군왕검에 관한 기사 가운데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의 해석은 대체적으로

‘(쑥과 마늘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 모습으로 될 것이다.

곰과 범이 이것을 얻어서 먹고 경계하기를 3·7일 만에 곰은 여자로 되었고

범은 꺼리지 못하여 사람이 될 수 없었다.’로 풀이되고 있다.

여기에서 '百'은 '온(One Hundred)'이란 뜻이 아니고 '온갖, 모두, 많은, 여러' 등으로 보아야 합당하다.

'神雄'이 백일 동안 꺼리라 했는데 21일 만에 사람이 된 것과도 맞지 않다.

'百巧'가 '백 가지 기교'가 아니라 '온갖 기교'를,

'百姓'이 '백 사람의 성'이란 뜻이 아니고 '모든 성씨들',

'百官'이 '백 명의 관리'가 아니라 '많은 관리'를 나타내듯이

'百日'은 '여러 날'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의 바른 번역은 ‘(쑥과 마늘을 먹고) 여러 날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이 맞다.

 

도 2) 『삼국유사』中宗壬申刊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소장

 

단군신화에 나오는 '성수(聖數 - Holy Numbers)'는 단군의 재위기간, 수명 등등이 모두 3의 배수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이가 합리적이다.

신화이기에 사소한 단어라도 손쉬운 해석으로는 엉터리 이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도 3)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의 탄생전설을 지닌 알영정

 

이밖에 번역이 글자에만 매달려 사실 자체를 놓쳐버린 해석도 가끔 있다.

<삼국사기> 혁거세조에 실린 “五年 春正月 龍見於閼英井 右脇誕生女兒… 始祖聞之 納以爲妃…”

대체로 '5년 봄 정월에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오른편 옆구리에서 계집아이를 낳았다.

한 노파가 보고 이를 이상히 여겨 데려다 길렀다. 그리고 그 우물의 이름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자라나 용모가 덕스러우니 시조가 듣고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다.'로 풀이된다.
이 문장대로 해석한다면

시조의 5년 정월에 알영이 태어나고 자라서 시조께서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다는 내용이니

문장의 앞뒤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대목의 번역에 있어서는

조선 말기의 문장가인 金澤榮의 ≪교정삼국사기≫에 따라

五年 春正月 다음에 '納閼英爲妃 先是"란 일곱 글자를 보완하여

"5년 봄 정월에 알영을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다. 이보다 앞서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오른편 갈빗대에서 여자 아이를 낳으니...' 라고 번역하여야 완전한 문장이 된다.

 

창주 이재호선생께서 지적한 바이지만 정포은의 '단심가'에 ‘死了死了更死了 一百番更死了’

‘이 몸이 죽고 죽어 다시 죽어도, 일백 번을 다시 죽어도’ 가 맞는 번역인데

‘이 몸이 죽고 죽어 고쳐 죽어서, 일백 번 고쳐 죽어’로 통용되는 것은

갱생(更生)과 경장(更張)을 구분 못한 오역인 것이다.


이밖에 개인 문집이나 귀글의 번역에서의 오역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망우당문집>에 있는 ‘安石一身陶冶望’

‘왕안석(송나라 재상)의 한 몸은 질그릇 구임[陶冶]이 희망이었고’로 번역된 것이 있다.

역시 창주선생께서 지적한 바 이지만 이는

‘동진의 사안석(謝安石-안석은 謝安의 자)은 재상(陶冶)의 인망이 있다’ 는 번역이 옳다.

동진의 사안은 나이 40세가 되도록 벼슬을 하지 않고 있다가 늦게 나가 벼슬하여 재상이 되어,

전진(前秦) 부견(符堅)의 침입을 막고 동진을 중흥시킨 큰 공을 세운 일이 있었는데,

망우당도 나이 40세가 넘도록 초야에 있다가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중흥시킨 큰 공을 세운 것이 동진의 사안과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등속으로 ‘累捷鄕解(누첩향해)’ 는 '여러 번 향시에 합격했다'는 뜻인데

'고향의 풍수지리를 이해하였다'고 오역된 것이나,

‘巡遠之恨(순원지한)’'당나라 안록산의 난 때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이 죽음으로서도 나라를

구하지 못한 억울함' 을 가리키는데 '멀리까지 순찰나간 잘못'이라고 오역한 것 등등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지경이다.


누구의 어느 책을 거명하여 티만 주워 낼 것이 아니라 대체(大體)가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며,

남의 뜻을 자의로 뜯고 기워 누더기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말이 되지 않는 글은 없다’와 ‘뜻이 적확하지 않은 명문은 없다’고 자경(自警)해본다.
- 양맹준, 문화재청 부산국제여객부두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2009-02-09, 문화재청, 문화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