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강좌] 장회익 서울대명예교수

Gijuzzang Dream 2009. 1. 30. 22:27

 

 

 

 

한국학술진흥재단 제2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

 

 

 

 

 (1) 칸트를 흔들자 현대물리학이...

 철학과 과학은 동반 관계다

 

 

22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칸트철학과 현대물리학’이란 제하의 첫 번째 강의를 통해 “잠자고 있던 칸트를 흔들어 깨웠더니 새 이론이 하나씩 튀어나오고, 마침내 현대물리학이 되어 나왔다”며 칸트철학과 과학이 밀접한 동반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인간 정신활동 중에서 가장 필수적인 ‘앎’의 과정에 대해 최근 알려진 학습이론을 인용, 쉽게 설명했다. 인간이 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아서 알고, 남에게 들어서 알고, 책을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우리 머릿속에는 설혹 불완전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완전한 것으로 여기는 (이 세계에 대해 알고 있다고 여기는) 내용들, 즉 ‘앎의 틀’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형성된 이러한 틀은 실제로 인간이 생각하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인간 지적과정을 생각할 때 기존의 ‘앎의 틀’과 ‘앎의 체계’ 즉 오감을 통해 새로 공급되는 내용(정보)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물리학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앎의 틀’을 바탕으로 해 물질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담아내는 ‘앎의 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토마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이러한 ‘앎의 틀’의 변화, 즉 ‘패러다임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출현 계기

고전물리학, 고전역학이 물질세계에 대해 일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것을 모두 다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앎의 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며, ‘앎의 틀’, 즉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명확한 설명은 불가능하며, 결과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출현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 같은 오늘날의 과학 상황에서 독일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1724~1804)의 철학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혜안들이 번쩍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나타난 그의 인식론은 전통적 의미의 형이상학이라기보다는 과학에 대한 메타이론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며, 실제로 칸트는 뛰어난 과학자였다고 주장했다.

칸트철학의 중요한 특징은 지성(understanding)과 감성(sensibility)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과학으로 설명하면 지성은 ‘앎의 틀’, 감성은 ‘앎의 체계’에 해당한다.

즉 감성이란 외부 정보를 감지해 인식 주체와 외부 상황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지성(오성)은 받아들인 정보를 활용, 의미 있는 사고를 수행하는 기능을 말하는데, 칸트가 약 200년 전에 이미 ‘앎의 틀’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또 지성과 감성의 구분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주목해온 학자들이 거의 없다며 아쉬움을 표명했다.

칸트는 감성을 직관으로, 지성을 개념으로 발전시켜나가고, 또한 ‘개념들을 감성화하는 일', ’직관들을 지성화하는 일‘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양자역학에 있어서도 똑같이 ‘직관의 지성화 과정’과 ‘개념의 감성화 과정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

장 교수는 양자역학에 있어 ‘대상의 초기 물량’을 측정하는 과정을 감성의 영역으로, 대상의 초기물량을 측정한 후 동역학적인 개념, 즉 ‘대상의 초기 상태’로 환원하는 과정이 칸트가 언급하고 있는 ‘직관의 지성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상의 초기 상태’가 상태변화(운동)를 거쳐 ‘대상의 말기 상태’로 전환된 후 개념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감성의 영역, 즉 ‘대상의 말기 물리량’으로 되돌리는 과정이 칸트가 언급하고 있는 ‘개념의 감성화’ 과정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장회익 명예교수 

한편 시공간 이론과 관련, 장 교수는 칸트의 이론이 오늘날 명백한 오류임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이해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은 칸트와 달리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시간 개념 역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크게 수정돼 칸트의 형이상학적 논변은 그 타당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칸트 입장에서 보면 18세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으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오류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공간이론 중에서 번뜩이는 그의 혜안을 찾아 활용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칸트는 시공간에 대해 인간이 현실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현상일 뿐인데, 이 현상은 질료와 형식을 통해 인간에게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아인슈타인도 순수이성비판 읽어

장 교수는 이 같은 칸트의 언급은 질료와 형식이라는 현상이 시공간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이 이해하는 세계가 공간과 시간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공간에 대해 ‘초월적 관념성’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경험적 실재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

장 교수는 아인슈타인이 젊은 나이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었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칸트가 비록 시공간을 고정된 것으로 보았지만, 누가 이것을 수정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면 상대성이론과 같은 커다란 지적 성과를 더 일찍이 이루어내지 않았겠냐며 과학자들이 칸트철학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져줄 것을 주문했다.

장 교수는 칸트와 현대물리학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은 칸트가 선험적이라고 보았던 내용들이 결국은 가변적이었다는 점으로 나타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물리학에서 가장 큰 진전은 바로 이러한 ‘의미 기반’의 수정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며 이는 역설적으로 칸트 이론의 생산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2) 과학난제, 생명이란 무엇인가?

 물질현상과 생명현상 강연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또 생명을 알고 있다는 데 대해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지구상에 있는 여러 물리적 대상들 가운데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살아 있음’을 특징짓는 성격을 지칭해 ‘생명’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대상들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살아 있지 않은 상태’로 전이되는 것을 ‘죽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뜻 보아 별 탈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생명 개념이 실제로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2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물질현상과 생명현상‘이란 제하의 강연을 통해 “흥미롭게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할아버지였던 에라스므스 다윈(Erasmus Darwin)이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끼는 새로운 개체라고 할 수 없어

1794년 에라스므스 다윈은 새끼(offspring)를 새로운 동물이라고 부르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새끼는 새 동물이 아니라 어미의 한 가지(branch)이거나 돌출 부분(elongation)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태 안에 들어 있는 동물은 어미의 기질을 일부 가지고 있는, 어미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 출생한 새끼는 새로운 개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날 강연에서 장 교수는 “어미와 새끼를 언제부터 분리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생명 단위와 관련해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끼 안에 생명은 하나가 있는가?”
“아니면 세포의 수로 따져 약 천억 개의 세포가 있는가?”
“꺾어진 나뭇가지는 살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 있는 것인가?”

장 교수는 이 문제를 규명하는 일이 간단치 않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토끼를 구성하는 세포들을 전혀 다치지 않고 두 조각으로 나누었다고 할 경우 그 세포들은 살아 있으나 토끼 자체는 이미 죽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토끼로부터 분리된 세포들을 죽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세포들은 비록 토끼로부터 분리됐다 하더라도 스스로 살아 있으며, 이를 통해 또 다른 복제가 가능하다. 살아있는지의 여부를 통해 우리가 판단하고 있는 ‘생명’의 존재 여부는 불확실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은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중에서도 물리학자이면서 후에 생명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우크라이나의 니콜라스 라세프스키(Nicholas Rashevsky)는 1950년대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공식을 소개한 중요한 인물이라고 장 교수는 말했다.

그는 “생명현상에 수학적 모형이 사용되는 물리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별로 유용하지 않으며, 유기체(organism)와 유기적 세계 전체(organic world as a whole)의 생물학적 일체성 (biological unity)을 나타내는 원리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이 발언은 생명현상에 대한 강한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장 교수는 평가했다.

반면 로젠(Rosen), 마투라나(Maturana), 바렐라(Barela) 등 라세프스키 이후의 많은 생명 연구는 거의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실패의 주된 원인은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유기체’에 관련된 부분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 ‘유기적 세계 전체’에 대한 연구를 간과해온 결과라는 것.

장 교수는 “생명의 진정한 모습은 서로 간에 긴밀한 연결망을 이루면서 그 안에서 ‘생명현상’이 진행되는 체계 전체를 하나의 실체로 파악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며, 자신은 이 체계를 이전까지의 생명 개념과 구분, ‘온생명(global life)'이라고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생명현상, 온생명적인 접근이 필요해

장 교수는 ‘온생명’에 대해 “더 이상 분할하면 생명현상으로의 존립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생명이 갖추어야 할 최소의 단위임과 동시에 더 이상 외부로부터의 결정적인 지원이 없이도 생존을 해나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명이 지니게 되는 자족적 단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만일 하나하나의 세포들은 ‘온생명’ 안에서 ‘온생명’의 나머지 부분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때에 한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생명의 조건부적인 단위가 되며, 이를 ‘온생명’과 구분, ‘낱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장회익 교수 강연을 경청하고 있는 청중들 

많은 생명 연구가 실패를 거두고 있는 것은 온생명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생명을 낱생명적인 관점으로 파악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카프라(Capra) 역시 마투라나와 바렐라의 ‘자체생명성’을 생명의 정의로 채택하고 있는데, 많은 연구자들의 눈에 ‘낱생명’이 결코 자체생성적일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 간과돼 왔다는 점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자연계에 적용되는 열역학 제2법칙(물리학적으로 모든 열역학과정이 일어나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에 조금만 관심을 돌려보더라도 자체생성성 개념은 원천적으로 ‘낱생명’에 대해서도 성립될 수 없는 이론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낱생명적인 접근이 아닌 온생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만일 생명이 출현하지 않은 우주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존재 양상을 충분히 익힌 ‘우주인’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 우주인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현상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물리학자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1886년에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원소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엔트로피를 얻기 위해서이며, 이것은 뜨거운 태양에서 차가운 지구로의 에너지 흐름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볼츠만(Boltzmann)이 생명현상에 대한 놀라운 해답을 던져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볼츠만의 이론을 채용하고 있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슈뢰딩거(Schrödinger), 그리고 같은 제목의 책을 저술한 마굴리스(Margulis)와 세이건(Sagan)의 예를 들면서 이들을 통해 생명의 온생명적인 성격이 놀랍도록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3)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문제가 많아
 ‘물질과 의식의 양면성’ 강연

 
 

프랑스의 수학자, 철학자이면서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 데카르트는 모든 형태의 지식을 방법적으로 의심하고 난 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직관이야말로 확실한 지식임을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또 사유를 본질로 하는 정신과 연장(延長)을 본질로 하는 물질을 구분함으로써 이원론적 체계를 펼쳐 나갔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체계는 이성에 의해 도출된다는 점에서 ‘직관주의적’이지만, 데카르트의 물리학, 생리학 체계는 감각적 지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경험주의적’이다.

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물질과 의식의 양면성‘이란 제하의 강연을 통해 "데카르트의 이 같은 이원론이 (물질과 의식을 설명하는 데 있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가 대단히 많은 이론"이라고 지적하고, 일원론의 입각한 자신의 이론을 펴 나갔다.

의식과 신경조직은 매우 밀접한 관계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사람은 다른 동물하고 같이 생겨서 지금까지 발전해왔다고 보는데, 언제부터 사람이고 언제부터 동물이었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사람 중에서도 내가 태어날 때는 세포 하나에서부터 출발해서 두 개 되고 넷 되고 했는데 언제 나한테 영혼이 들어왔는가? 세포 하나일 때 들어왔나? 열 개 됐을 때 들어왔나? 아니면 모태에서 밖으로 나올 때 들어왔는가? 이런 문제들이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두 개의 실체, 곧 ‘생각하는 실체’와 ‘공간을 점유하는 실체’가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신체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의 조직망이 어느 정도 이상의 복잡성과 정교성에 도달할 때, 이러한 물질적 구성 안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주체의식’이 발현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 주체의식에 대해 “신경조직망 자체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성황의 내적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주체의식이란 “신경조직망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물질구조가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는 정체성의 내적 양상”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원자들을 움직이고 있다

장 교수는 내 몸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순수한 역학적 기구로 기능하고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직접 경험에 의해 내가 내 몸의 움직임을 지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가정에 의해 “내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원자들의 운동을 조정하고 있는 존재”라는 놀라운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리적으로 볼 때 ‘나’는 틀림없이 물질이지만, 내가 원자들의 운동을 조정했다고 할 때의 ‘나’는 물질의 한 양상으로서의 ‘나’, 곧 ‘물질의 또 다른 측면’으로의 ‘나’를 말하며, 이 측면이 그 어떤 ‘수행 의지’라는 것을 구성할 때 이 ‘수행 의지’가 그 후 발생할 물질적 상황과 인과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

장 교수는 인간이 물질세계를 의지적으로 움직이는 아주 묘한 존재라고 말했다. 스스로 내 의지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나갈 수 있는 상황을 인간이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이 누려지는데, 어떻게 이 물질이 이렇게 구성돼서 자유의지대로 살 수 있게 뒷받침까지 해주는지…, 인간은 ‘굉장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식은 온생명 그릇에 담긴 내용물

여기서 장 교수는 “생명의 진정한 모습은 온생명과 낱생명 간의 긴밀한 연결망을 하나의 실체로 파악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연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의식은 각각 세포나 조직 같은 낱생명적인 의식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전체가 서로 엮어지고, 유통이 되면서 마치 온생명이라는 하나의 큰 그릇이 담긴 내용물처럼 생각할 수 도 있다는 것.

“온생명 전체로 보면 하나의 큰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하겠지만, 각각의 낱생명 입장에서 보면 하나로 연결된 전체 의식의 한 복사본에 다시 자체 특성을 가미한 변이본을 지니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전체로서는 온생명 의식을 이루는 가운데, 그 안에 다시 서로 간에 많은 유사성을 지니면서도, 또 독자적인 양상을 유지해가는 낱생명 의식이 나타나며, 이러한 여러 층위의 의식들이 서로 간에 관계를 맺으면서 ‘의식세계’라고 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4) “20세기 학자, 학문을 조각조각 내...” 
 ‘나와 너 그리고 우리’ 통합지식론 강연

 
 

13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란 제하의 강연을 통해 “20세기 학자들이 저질러 놓은 가장 큰 잘못은 학문을 조각조각 내 어느 누구도 전체 그림을 읽어낼 수 없는 상태에 빠트린 일”이라고 말했다.

학문의 주된 목표는 오직 단편적인 사실 규명과 이를 실리적인 상황에 활용하는 일일 뿐, 하느님이 그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 놓았는지 혹은 아닌지에 대해서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때문에 전체 그림을 읽어내지 못하는 인류는 미래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전 학문의 모습을 지구 평면 세계지도에 비유했다. 평면 지도는 세계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지만 남극과 북극으로 갈수록 이상하게 확대될 뿐 아니라 지구 반대쪽의 서로 인접해 있는 두 지점이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가장 멀리 분리돼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21세기 진리를 표방하고 있는 각각의 학문들도 나름대로 대상을 유효하게 서술하고는 있지만 다른 학문과 연계했을 때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 하나의 학문 틀 안에 다른 학문들을 밀어 넣거나, 학문 간의 경계를 기계적으로 봉합한다고 해서 전체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도 마찬가지 입장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많은 학자들이 과학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과학이론을 활용, 사물에 대한 이해, 예측 및 조정을 해나갈 인식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며 분명히 이런 과학이론은 허공에 떠 있는 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과학이 (전체 그림 속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이론에 대한 철저한 인식론적 고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식론적인 고찰을 통해 고전역학에서 미비하기만 했던 불철저한 개념들을 새롭게 정의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과학에서의 인식주체 개념 새롭게 정립해야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특히 21세기 들어 가장 큰 논란이 돼온 ‘과학에서의 인식주체’ 개념과 관련 “인식주체를 어떤 자연인으로 설정할 것이 아니라 ‘인식대상을 제외한 여타의 모든 것’, 좀 더 구체적으로 인식대상을 둘러싼 ‘자연인들과 관측 장치들을 포함한 정보적으로 연결 가능한 그 모든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인식주체 개념 문제를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통 우리는 ‘나’의 관심사를 ▲ 나의 나와의 관계(對生 지식), ▲ 나의 너와의 관계(對人 지식), ▲ 나의 그것과의 관계(對物 지식)에 대한 관심사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생각하는 주체, 곧 ‘나’라는 존재는 작은 의미의 ‘나’에 머물지 않고, 가족, 국가, 민족 등과 같은 공동체, 즉 ‘우리’로 확대되고, 다시 모든 공동체가 포함된 ‘온우리’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즉 객체, 서술대상으로서의 ‘나’와 ‘너’, ‘그것’을 모두 ‘온우리’ 개념에 포함시켰을 때 비로소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합당성을 지닌 새로운 ‘논리’에 바탕을 둔” 설명(과학이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인문학, 사회과학 등의 영역과 밀접한 관계

“예를 들어 새로운 생물 종을 발견했을 때, 일단 ‘그것/나’ 형태의 대물 지식, 즉 내게 알려진 새 생물종에 관한 앎이 된다. 그러나 나는 곧 학회에 이를 발표할 것이고, 이것이 해당 학회에서 인정받는 지식이 되면, 이는 다시 ‘그것/우리’ 형태의 지식, 즉 학회에 알려진 지식이 된다. 그리고 다시 국내외에 공개돼 가능한 모든 이들이 공개적으로 이를 검토하고, 확인할 단계에 이르면, 이것은 최종적으로 ‘그것/온우리’ 형태의 지식이 될 것이다.”

장 교수는 또 ‘온우리’의 입장에서 살피는 내용들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의 영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우리/우리’ 형태의 지식이나, ‘우리/온우리’ 형태의 지식, 그리고 ‘너희/우리’ 형태의 지식이나 ‘너희/온우리’ 형태의 지식 등은 공동체의 이익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정치, 사회문제 등 여러 가지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과연 이러한 모형을 놓고 지식을 담아낼 지구의(地球儀)와 같은 모형을 얻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지식을 주체, 객체 성격에 따라 배치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맞는 방식에 따라 획득 및 검증방식을 채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지식들의 상호 전환 및 결합을 활용, 지식의 다양한 기능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5) 물질, 생명, 인간... 통합적 이해 가능하다
 '온생명'은 물질적 측면서 생명현상 설명해보자는 것

 

 
존재론적으로 보면 물질이 가장 먼저 존재하고, 거기서 생명이 출현하고, 그 가운데 다시 인간이 태어난다. 그러나 인식론적으로 보면 인식의 주체인 ‘나’가 먼저 있고 나의 의식을 통해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나’와 물질은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을 놓고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11월 28일부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를 통해 그의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4회에 걸쳐 물질, 생명, 인간, 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을 풀어나갔다.

그리고 지난 2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종합토론에서 그의 ‘온생명’ 사상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이날 종합토론에는 고인석 인하대 교수(철학), 황수영 한림대 연구교수(철학),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철학)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2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논평과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특히 한자경 교수는 장 교수가 설명하고 있는 온생명과 낱생명의 관계, 자체 생성성과 자족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생명이나 의식에 관한 현대과학의 설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온생명과 낱생명의 관계와 관련해 장 교수는 답변을 통해 한 교수가 이해하고 있는 온생명과 낱생명의 관계가 “만물은 기(氣) 안에 있고, 만물 안에는 기가 있다. 그러니 만물이 기이다란 논리와 흡사하다”며, “만일 온생명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가 말하는 온생명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답변했다.

의식에 대한 현대과학적 입장과 관련해서는 “(한 교수의 논평에) 적어도 의식에 관한 한 물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극단적 이원론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 같다”며 “현대과학의 입장, 그리고 나 자신의 입장은 의식에 관해 물질적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와 철학, 그리고 과학은 서로 보완 관계

청중들로부터도 ‘온생명’에 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청중들의 관심은 온생명의 의미와 범위, 온생명과 여타 생명관과의 관계에 집중됐다.

특히 온생명의 의미와 관련해 장 교수는 “온생명 개념은 더 이상 외부의 결정적 지원 없이 생명현상을 일으킬 최소 단위를 찾자는 데서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우리가 알기로는 태양과 지구 체계만으로 생명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만일 이것만이 아닌 외부의 그 무엇이 더 필요하다면 온생명의 범위도 불가피하게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온생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혜를 찾아볼 수 있고, 반대로 온생명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통해 불교사상에 기여할 바가 있으리라고 본다”며 “앞으로 많은 분들이 더 깊은 연구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독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성장했고, 지금도 깊은 의미에서 그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며 “초기에는 학문과 신앙 사이에 갈등을 겪었지만, 지금은 이 둘이 상호보완적이라는 관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생명에 관한 과학적 사실들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신의 창조로 보는 관점과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이 참 오묘한 방식으로 창조를 하고 계시구나하고 감탄할 따름이며, 이러한 점에서 온생명은 내 생명이지 신이 아니라”라고 말했다.

학문 발전 위해 대화의 장 더 넓혀야

물리학 법칙들로부터 생명현상에 대한 설명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생물학에 주로 적용되는 현상법칙들을 우선 찾아나가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보지만, 그러한 법칙들도 원칙적으로 물리학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논평과 답변이 이어진 종합토론 

한편 사이언스타임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장 교수는 “과학적 관점에서 생명을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반적으로 학계에 과학적 이해가 깊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분야에 계신 분들이 과학적인 기본 가정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넘나드는 대화를 꾸준히 지속해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적인 학문 발전을 위해 학자들 역시 다른 학문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기 분야 학문만 할 것이 아니라 과학, 철학, 예술, 사회학, 언어학 등 다른 학문들과 서로 넘나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최근 학계 분위기와 관련해서는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내려는 성과주의 성향이 팽배한 것 같다”며 “기초과학의 발전을 위해 학자들이 서두르지 않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강봉 편집위원

- 2008.11.24/ 12.01/ 12.08/ 12.15/ 12.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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