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훼손 심각… | ||
서울대학교 규장각은 고문헌의 보고이다. 이곳은 수집된 고서 · 고문서 · 고지도 등 26만여점을 소장, 전통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가운데 국보가 6종, 보물이 8종이다. 특히 최근 규장각 소장 <조선왕조실록>(정족산본·국보 제151호)의 상당수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실록의 보존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규장각은 2003년 조선왕조실록 보존대책소위원회를 구성, 효율적인 관리 · 보존 방안을 강구해 왔다.
규장각 소장 실록이 훼손됐다는 사실은 1967년 간행된 ‘조선왕조실록 조사표’를 통해 처음 확인된다. 52쪽으로 된 이 보고서는 실록의 현황과 함께 보존상태를 전하며 40여책이 훼손됐다고 밝혔다. 훼손된 실록의 보존·복원 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규장각이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독립된 이후인 1996년. 당시 규장각은 실록 중 훼손이 심한 47책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존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보존처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규장각의 의뢰로 전수(全數) 조사를 실시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조선왕조실록 1,229책 중 약 10%인 131권의 훼손상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특히 세종실록은 154책 중 절반이 넘는 86책이 불량본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손상 정도가 심한 131권의 대부분이 밀랍본(蜜臘本)이라는 사실. 밀랍본은 태조실록~명종실록에서만 나타나는데, 밀랍본 실록 614책을 기준으로 할 때 훼손율은 21%로 높아진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중 ‘태종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614책 중 415책이 한지에 밀랍이 도포된 밀랍본인데, 이중 131책이 밀랍 경화로 얼룩이 지고 한지가 떨어져나가거나 들러붙는 등 훼손이 심각하다. ‘세종실록’은 154책중 86책이 밀랍으로 심하게 손상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서 밀랍제거 실험을 하고 있지만 유물에 미칠 영향 등을감안할 때 당장 섣부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연구소의 보고서를 토대로 지난해 실록의 훼손상태를 다시 조사한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밀랍본은 일반 한지로 만든 생지본(生紙本)에 비해 손상 정도가 심하고, 일부는 책장끼리 붙어 있어 내용을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면서 “종이를 보존하기 위해 사용한 밀랍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훼손을 가속화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밀랍본이 명종실록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훼손이 나타나 이후에는 밀랍본 제작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서 조선왕조실록을 영구보존하고 훼손된 책을 복원하는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장각은 2003년 6월 전·현직 규장각관장, 문화재보존처리 전문가 등 8명으로 조선왕조실록 보존대책 소위원회(위원장 송기중 규장각관장)를 구성, 훼손본의 보존처리 및 복원 방법을 강구해 왔다. 이와 별도로 국립문화재연구소도 보존과학연구실을 중심으로 실록 보존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나 양쪽 모두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밀랍본은 벌집에서 추출한 밀랍성분을 종이에 입힌 책으로 책의 수명을 높이기 위해 고려말~조선 초기에 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규장각 소장 정족산본 실록 이외에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30년 가까이 고서를 취급해온 문우서림 김영복 대표는 “밀랍본 고서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책위가 밝혀낸 사실은 ‘밀랍본은 밀랍용액에 담근 방식이 아닌, 종이에 밀랍을 덧칠해 만들었다’는 정도. 박지선 교수는 “내년부터는 실제 밀랍본 모조품을 만들어 실록의 훼손상태를 분석할 예정”이라며 “보존처리 및 복원에까지는 시일을 예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백년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손상의 원인을 단시일에 규명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질소 밀폐처리방안, 냉동처리 방안 등 실록 보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으나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학제간 작업을 통해 실록 복원의 해법을 찾고자 마련됐다”면서 “실록뿐 아니라 고서 전반에 대한 보존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왕조실록>은 ? 민생, 치안, 국방, 외교 등 국정의 모든 분야를 망라해 조선시대 연구의 귀중한 사료이다. 일상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도 적지 않다. ‘태종실록’에는 대마도주가 조선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쳤다는 코끼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 코끼리는 엄청난 음식을 먹어치우고 사람을 밟아 죽이면서 전라도 장도로 ‘유배’돼 그곳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조선시대 1,500여회에 걸쳐 일어난 지진에 관한 기록도 상세하다. 그러나 실록 속의 장금은 약재에 밝았던 의녀이지, 수라간 궁녀는 아니다. 이밖에 실록에는 영조대에 실시된 청계천 준설공사의 내용도 상세하다. 신병주 학예사는 이러한 실록을 ‘조선시대의 타임캡슐’이라고 말한다. 국가기록원(태백산본), 북한(적상산본) 등에 모두 3부가 전해오고 있다. 이중 정족산본은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지 않은 조선 최고의 실록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크다. 실록은 1973년 국보 151호로 지정됐으며, 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 경향, 2005년 04월 19일,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위기의 국보급 문화재들 국내 문화유산 중에는 기술부족 등의 이유로 제대로 보존처리를 못해 원형 회복(복원)이 어려운 국보급 유물이 적지 않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 중 한지에 밀랍이 도포된 책들이 대표적으로 복원이 쉽지 않은 사례다. ‘태종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614책 중 415책이 밀랍본인데, 이중 131책이 밀랍 경화로 얼룩이 지고 한지가 떨어져나가거나 들러붙는 등 훼손이 심각하다. ‘세종실록’은 154책중 86책이 밀랍으로 심하게 손상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서 밀랍제거 실험을 하고 있지만 유물에 미칠 영향 등을감안할 때 당장 섣부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1973~1975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옥충안교(말 안장 가리개)’는 보존처리 방법을 못찾아 발굴후 현재까지 글리세린용액에 넣어 보관중이다. 목재와 비단, 금동, 옥충(비단벌레)의 날개를 혼합해 만들어진 이 유물은 목재와 금동, 옥충 날개 모두 썩거나 부식되는 등 약화돼 있어 종합적인 보존처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보물 제1040호 ‘구례화엄사 화엄석경’은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화재로 훼손돼 현재 1만4242점의 조각으로 전한다. 화재로 회갈색으로 변색 파손돼 있으며 심한 풍화로 서체판독이 어려운 것이 전체의 5분의 1 정도. 풍화로부터의 보존방안과 경화처리, 오염물 제거 등이 필요하다.
전남 순천 송광사 소장의 보물 제134호 ‘경질’은 가느다란 대나무 조각을 색실로 엮어 두루마리로 나온 경전을 보관하기 위해만든 불교공예품이다. 오랜기간 보존한 탓에 재질 약화와 오염물 증가, 균열 발생, 연결부 약화 등이 진행돼 현재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장인 박지선 용인대 교수가 보존처리중이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신종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 하사한 8종, 15점의 물건이 있는데 이 보물 제440호 ‘통영충렬사팔사품’ 중 홍소령기와 남소령기(모두 군대의 명령을 전할 때 쓰는 깃발)도 비단의 재질약화로 보존방안을 강구해야 될 형편이다.
조선시대 삼존불벽화 등 29점이 일괄로 지정된 보물 제1315호 ‘무위사 극락전 벽화’는 지난 1982년 균열부 접착, 표면 이물질제거 및 경화처리 등 약식보존처리를 실시했으나 최근 다시 표면오염물질 증가와 균열발생, 안료 박락 등으로 정밀 보존처리가필요한 지경이다.
- 문화일보 2005-04-19 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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