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액정이 펼치는 빛의 마술
LCD(liquid crystal display)라고 불리는 액정표시장치는 오늘날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디스플레이의 하나다. 1970년대 시계나 전자계산기의 표시창 등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LCD는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컴퓨터와 모니터 화면으로 그 용도가 급속히 확대되더니 이제는 가정용 TV의 한 종류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LCD TV의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들리는 것으로 보아, LCD TV를 비롯한 평판형 디스플레이가 기존의 브라운관 방식 TV를 밀어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액정은 가늘고 기다란 막대 모양의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물질이 특정 온도에서 만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액정 ‘막대기 분자들’은 온도가 높을 때에는 막대기의 방향이 제멋대로 임의의 방향을 가리키지만 온도가 낮아져서 실온 근처가 되면 모두 한쪽 방향으로 정렬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액정 분자들을 서로 직교하는 편광판이 붙어 있는 두 장의 얇은 유리판 사이에 가두어 놓으면 액정 셀이 만들어진다.
빛은 횡파이므로 진행 방향에 대해 수직인 방향으로 전기장 성분이 진동하는데, 이 진동 방향이 바로 그 빛의 편광 방향이다. 편광판이란 일정한 방향의 편광 성분을 갖는 빛만을 통과시키는 광학 부품이다.
서로 수직으로 직교하는 편광판 두 장을 겹쳐 놓으면, 첫 번째 편광판을 통과한 빛의 편광 방향은 두 번째 편광판과 수직이므로 최종적으로 통과되는 빛은 거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두 장의 직교하는 편광판 사이에 갇힌 액정 분자는 어떤 원리로 액정 셀을 통과하는 빛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일까?
▲ [그림 1] 액정표시장치의 작동 원리 |
액정 분자를 가두는 두 장의 유리판의 안쪽에 특수한 처리를 하면 액정분자들은 [그림 1]의 왼쪽 그림처럼 90도로 나선형으로 꼬이면서 누워 있는 상태로 된다. 이렇게 꼬여 있는 액정 분자들은 첫 번째 편광판을 통과한 빛의 편광 상태를 꼬여 있는 액정분자를 따라 돌게 하면서 두 번째 편광판을 빠져 나오게 한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액정 셀에 전압을 인가해서 액정분자들을 [그림 1]의 오른쪽 그림처럼 유리판에 대해 모두 서 있게 하면 빛의 편광 상태는 액정분자에 의해 회전되지 못하고 빛이 거의 통과되지 못한다.
많은 액정 분자들은 기다란 방향의 한 쪽에 양의 전하를, 다른 한쪽에는 음의 전하를 띠고 있는데, 이런 분자들에 전압을 인가해서 분자들을 쉽게 돌릴 수 있다. 인가되는 전압의 세기에 따라 액정 분자의 틀어지는 정도가 결정되고, 이것은 다시 액정 셀을 빠져 나오는 빛의 양을 조정한다.
이러한 구동 원리를 생각해 보면 LCD는 단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빛을 통과시키는 셔터(shutter)의 역할만을 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흡사 파이프를 통과해 흘러가는 물의 양을 조절하는 수도꼭지처럼 말이다. LCD에 백색광을 공급해 주는 장치가 소위 LCD 패널의 후면에 위치해 있는 백라이트 유닛(backlight unit)인데, 이것은 LCD가 만드는 영상의 화질을 상당 부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부품이다.
이제 액정 셀을 통과하는 백색광이 어떻게 우리가 감상하는 총천연색 영상으로 바뀌는지 보도록 하자.
LCD를 구성하는 화소(pixel)는 기본적으로 빨강, 녹색, 파랑 등 빛의 삼원색을 선별적으로 통과시키는 세 개의 부화소(subpixel)로 구성된다. 각 부화소에는 해당되는 색상의 빛만을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흡수하도록 특정 염료가 포함되어 있는 컬러 필터가 붙어 있다.
즉 액정 셀을 통과해서 빠져 나오는 백색광은 컬러 필터를 통과하면서 빛의 삼원색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세 개의 부화소에 인가되는 전압을 조정해서 각 컬러 필터를 빠져 나오는 삼원색 빛 사이의 상대적인 양를 조정하면 일정 범위 내의 어떤 색깔도 만들 수 있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LCD는 그 화면을 바라보는 우리 눈의 각도를 바꾸면 영상 정보의 밝기나 색상이 달라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S-PVA나 S-IPS 등으로 불리는 광시야각 기술이 적용되어 위와 같은 문제는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기존 TV 시장의 판도를 깨고 제1의 TV로 도약하려고 하는 LCD 업계의 치열한 기술 개발 노력이 향후에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2) 백라이트가 없으면 LCD도 없다 !
▲ 최근 백라이트 광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직사각형 형광램프인 면광원의 몇 가지 예1 |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디스플레이의 하나인 LCD(liquid crystal display, 액정표시장치)에 빛을 공급해 주는 부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LCD는 후면으로부터 공급되는 백색광을 이용해서 영상정보를 만들어내는 수광(受光) 디스플레이 소자이다.
따라서 항상 후면으로부터 빛을 비춰주는 장치가 따로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백라이트 유닛'(backlight unit)이다.
백라이트(back+light)란 말 그대로 뒤(back)에서 밝혀지는 빛(light)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여러분이 휴대폰을 열거나 LCD 모니터를 켜면 일차적으로 휴대폰과 모니터의 LCD 창의 후면에 자리잡고 있는 백라이트에서 백색광이 만들어진다. LCD는 백라이트에서 공급받은 빛을 이용해서만 총천연색 영상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백라이트가 없는 LCD는 실탄이 없는 총, 혹은 물통이 비어 있는 가습기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백라이트는 빛을 만들어 내는 광원(光原)과 광원에서 발산되는 빛을 조절해 주는 여러 가지 광학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빛을 만들어 내는 광원은 LCD의 사이즈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들이 사용된다. 가령 LCD 모니터나 노트북 컴퓨터의 백라이트에는 가정에서 조명으로 사용하는 형광등을 축소해 놓은 '냉음극형광램프'가 주로 쓰이고 있고, 휴대폰용 백라이트에는 백색 발광다이오드(LED)라고 불리는 반도체 발광소자가 들어 있다.
모니터나 휴대폰의 경우 광원은 LCD의 측면에 위치해 있다. 모니터의 상부나 하부를 손으로 만져 보았을 때 따듯함이 느껴지는 부위에 형광램프가 숨어 있다. 측면에서 생성된 백색광은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도광판 내로 퍼지면서 LCD 창으로 올라오게 되는데, 도광판의 위에는 빛을 균일하게 확산시키는 확산시트, LCD 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빛을 모아주는 프리즘시트 등 몇 장의 기능성 광학시트 등이 놓여진다. 노트북 컴퓨터로 작업할 때 LCD 창을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면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측면으로 나오는 빛을 기능성 광학필름들이 정면으로 모아주기 때문이다.
▲ 최근 백라이트 광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직사각형 형광램프인 면광원의 몇 가지 예 2 |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LCD TV의 경우는 어떨까? 당연히 백라이트 유닛이 LCD 화면 뒤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TV는 화면이 크고 필요로 하는 빛의 양이 많기 때문에 LCD의 측면에 몇 개의 램프를 놓아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보통은 수십 개의 형광램프를 LCD 화면의 후면에 나란히 배치하여 사용한다. 수십 개의 램프를 사용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최근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형광등이라 할 수 있는 '면광원'이 LCD TV의 백라이트 광원으로 등장하였다.
최근 백라이트는 단순히 빛을 공급해 주는 기능을 뛰어 넘어서 LCD의 화질을 더욱 향상시키는 핵심 부품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가령 LCD로 표현되는 영상을 보다 자연색에 가깝게 구현하기 위해 색상 구현 능력이 매우 뛰어난 형광램프가 개발되거나 발광 다이오드를 광원으로 이용한 백라이트가 연이어 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게다가 빨강, 녹색, 파랑을 내는 발광 다이오드를 순차적으로 점등시켜서 컬러 필터가 사라진 신개념의 LCD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디스플레이 전쟁'이라 불리는 산업 환경 속에서 LCD에 단순히 빛을 공급해 주던 백라이트 유닛이 LCD의 시장 확대를 이끌어 나가는 기술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 매우 흥미롭다.
(3) 빛의 연금술, 형광체
▲ 형광등의 발광 원리(Yahoo 백과사전) |
까마득히 먼 옛날, 햇빛이 사라지는 밤은 인류의 조상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어둠 속에 출몰하는 맹수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처음에는 번개나 산불 등으로 발생하는 자연의 불을 이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불을 길들이면서 등(燈)을 만들어 사용하여 왔다.
오늘날 스위치만 켜면 전깃불을 얻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수십만 년 인류 역사 속에서 최초의 전깃불이라 할 수 있는 아크등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50여 년 전이었다. 보다 밝고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다양한 인공 광원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한 물질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형광체’(螢光體)(혹은 형광물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형광체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서 그 에너지를 빛(가시광선)으로 바꾸는 물질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형광체에 가해주는 에너지는 자외선, 전자빔, 전기에너지, 열에너지 등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최초의 형광체는 1603년 이탈리아의 연금술사인 Vincenzio Cascariolo에 의해 합성된 “태양석”이라 불리던 것으로서 햇빛 아래 두었다가 어두운 곳으로 옮겨 놓으면 빛을 발해 이와 같은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이 태양석은 황산바륨(BaSO4)에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던 물질로 추정된다.
오늘날 형광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특히 일반 조명 분야에서 너무나 자주 쓰이는 물질이 되었다.
일반 조명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형광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깨진 형광등을 보게 되면 형광등의 몸체를 이루는 유리의 내벽에 하얀 분말가루가 묻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형광체이다.
형광등 내부에는 보통 아르곤(Ar)과 같은 기체와 수은이 함께 봉입되어 있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면 형광등 내부 양쪽에 있는 전극에 전압이 인가되면서 수은과 아르곤 가스가 전리되어 방전 플라즈마가 만들어진다. 플라즈마를 이루는 전자가 수은원자에 충돌하면 자외선이 방출된다. 자외선 자체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이 자외선이 형광체를 만나면 가시광선으로 바뀌어 어둠을 밝혀 주게 된다.
▲ 브라운관 TV의 내부 구조 |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발광다이오드(LED)를 광원으로 쓰는 손전등의 경우에도 빛을 만드는 과정에 형광체가 사용된다. 이런 종류의 발광다이오드에는 반도체 칩에서 발산하는 청색빛을 백색광으로 바꾸어주는 황색형광체가 사용되고 있다.
시각 정보를 빛의 형태로 전달하는 디스플레이의 경우는 어떨까?
디스플레이에서 빛을 만들어내는 발광부에도 형광체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액정표시장치(LCD)의 발광원인 백라이트에는 주로 가느다란 형광등이 쓰인다. 평판 디스플레이의 또 다른 주자인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은 빨강, 녹색, 파랑색 빛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하나의 화소를 구성하는 세 개의 작은 방에 세 가지 종류의 형광체를 각각 집어 넣는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브라운관 방식의 텔레비전은 형광체를 디스플레이에 이용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브라운관 화면을 구성하는 각 화소들은 빨강, 녹색, 파랑 빛을 발산할 수 있는 형광체들이 규칙적인 형태로 발라져 있다. 브라운관의 뒤쪽에 있는 전자총이 화면의 각 화소에 전자빔을 쏘아대면서 우리가 매일 보는 텔레비전의 아름다운 총천연색 화면이 만들어진다.
CRT(cathode ray tube)라고도 하는 이 기술이 브라운관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1897년에 브라운(Braun)이라는 사람에 의해 제안된 기술이기 때문이다.
더 아름답고 밝은 빛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오늘날 매우 다양한 종류의 형광체 기술 및 관련 산업분야를 탄생시켜 왔다. 날로 발전해 가는 조명과 디스플레이 기술의 이면에는 이러한 빛의 연금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4) 빛을 담는 필름, CCD
▲ 필름과 CCD의 차이 |
각 가정마다 컴퓨터가 한두 대씩 있고 거리마다 PC방이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 사진을 ‘파일’로 만들어 ‘폴더’에 넣어 저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디지털 카메라에서 일반 카메라의 필름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 ‘전하결합소자’로 불리는 CCD(charge coupled device) 광검출기가 바로 그것이다. CCD는 보통 동전 크기 정도의 반도체 소자인데, 빛이 닿으면 전자를 내놓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는 전기적인 신호로 바뀌고 다시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플래시메모리 같은 저장 장치 내에 저장되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살 때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되어 버린 화소(畵素) 수는 CCD를 이루는 반도체 소자의 수를 말한다. 500만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게 되면 500만 개의 미세한 반도체 소자가 모여 있는 CCD가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각각의 화소에는 매우 작은 마이크로 렌즈들이 달려 있어 입사되는 빛을 반도체 소자 위에 모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화소 수가 커질수록 동일한 피사체에 대해 더 세밀한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CCD가 필름의 역할을 대신하려면 우리가 찍고자 하는 대상의 명암과 색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명암은 피사체로부터 입사되는 빛의 양에 의해 결정되므로 각 화소별로 CCD가 바꾼 전자의 양을 재면 피사체의 명암을 쉽게 기록할 수 있다. 즉, 디지털 카메라에 입사되는 빛을 하늘에서 내리는 비라고 한다면 CCD의 화소들은 빗물의 양을 재기 위해 놓아 둔 양동이들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원칙적으로 CCD는 명암만을 표시할 수 있고 색상은 구분하지 못한다.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통 CCD 화소 앞에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녹색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색 필터를 달아서 입사되는 빛을 색깔별로 나누고 이 정보들을 합성함으로써 최종적인 영상 정보를 얻는 방식이 사용된다. 우리가 시청하는 TV의 스크린을 구성하는 화소들의 색깔이 빨강, 파랑, 녹색 빛을 낼 수 있는 더 작은 단위들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종류의 필터들을 CCD에 적용하면 이를 이용해 사람이 보지 못하는 적외선 영상도 촬영할 수 있다. 가령 가시광선을 차단하는 필터를 끼게 되면 야간에 돌아다니는 동물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적외선을 찍을 수 있게 된다. 투시카메라는 이런 원리로 작동된다.
오늘날 CCD는 일반 카메라뿐 아니라 각종 감시카메라, 팩스와 스캐너, 각종 분광기와 천문관측용 초고감도카메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빛을 담는 필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광검출기를 다루자면 반드시 얘기하고 넘어가야 할 과학자가 있다.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올해는 아인슈타인이 1905년 상대성이론, 광전 효과, 브라운운동 등 20세기 물리학의 혁명을 가져온 이론들을 발표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이론들 중, 1921년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광전효과’가 바로 CCD와 같은 광검출기의 물리적 원리가 된다.
빛을 비추면 금속과 같은 물질의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광전효과)은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지만, 20세기 초에는 이 현상의 여러 특징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파동이라는 당시의 고정관념을 깨고 빛이 일정한 에너지를 가진 알갱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여 광전효과의 모든 특징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빛이 파동으로서의 속성뿐만 아니라 입자로서의 성질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 이론은 오늘날 우리의 일생생활을 지탱하는 정보전자기술의 바탕이 되는 양자역학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5) 빛을 내는 반도체
▲ LED 칩의 발광 상태 및 패키지로 조립된 LED |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시대에는 인공적인 빛을 얻기 위해 ‘화염’을 이용하였다. 모닥불, 기름 램프, 가스등, 양초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모두 높은 온도에서 화석연료나 다른 뭔가를 태워서 빛을 얻는 도구들이다.
반면에,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는 전기를 이용해 빛을 낸다. 백열전구의 내부에는 텅스텐을 돌돌 말아 만든 금속선인 필라멘트가 들어 있다. 필라멘트에 전류를 흘려 보내서 매우 뜨겁게 달구면 그로부터 빛이 나온다.
뜨거운 용광로에서 붉은 빛이 발생하는 것도 백열전구와 동일한 원리인데, 이처럼 뜨겁게 달구어진 물체로부터 빛이 나오는 것을 ‘열복사(熱輻射)’라고 한다.
그렇지만 백열전구는 소비전력의 대부분을 열로 바꾸어 버리고, 우리 눈이 느낄 수 있는 가시광선으로 바뀌는 양은 수 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백열전구는 극히 비효율적인 조명이라 할 수 있다. 조명의 효율을 따지자면 형광등(본보 2006년 2월 2일자 참조)의 경우가 훨씬 낫다.
형광등은 자신이 쓰는 소비전력의 사분의 일 정도를 빛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 빛을 만드는 또 다른 방식으로는 반도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흔히 반도체를 컴퓨터 등에 사용되는 전기부품을 만드는 소재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 우리 생활에 급속도로 파고들고 있는 차세대 조명인 발광다이오드(light-emitting diode=LED)가 바로 반도체에 기반해 만들어지는 ‘고체 램프’이다.
▲ LED가 광원으로 사용된 교통신호등 |
거리의 교통신호등을 예로 들어 보자.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커다란 할로겐 전구에다 색유리를 끼운 신호등이 주로 사용되었지만 요즘은 어디를 가나 매우 밝고 작은 램프들이 촘촘히 동심원으로 배열된 신호등을 볼 수가 있다.
이 작은 점광원(點光源) 하나하나가 바로 LED이다.
LED를 쓰게 되면 구형 신호등보다 더 선명하고 밝은 빛을 낼 수 있고 소비전력이 줄어들 뿐 아니라 수명도 길어진다.
LED는 신호등뿐만 아니라 전광판과 같은 대형 디스플레이나 다리나 빌딩, 관광명소의 장식용 조명으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반도체는 전기를 통하지 않는 절연체와 금속처럼 전기가 매우 잘 통하는 도체의 중간 상태의 성질을 가진 물질을 말한다.
LED란 전자(electron)를 공급하는 n형 반도체와 전자를 받아들이는 p형 반도체를 붙여 놓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p형 반도체 내에서 전자를 받아들이는 구멍들을 정공(hole)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LED에 전압을 인가하면 전자와 정공이 이동하다가 n형과 p형 반도체가 붙어 있는 접합면에서 만나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빛으로 바꾸어 방출하게 된다.
▲ LED가 사용되는 다양한 분야들 |
어떤 종류의 반도체를 접합시키느냐에 따라 빨강, 녹색, 파랑과 같은 다양한 색깔의 빛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방출하기도 한다. 특히 1990년대 들어서 파랑색 빛을 낼 수 있는 실용적인 청색LED가 개발되면서 LED 상용화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청색LED를 이용해 흰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청색LED에 황색 형광체를 덮어서 청색과 황색을 섞어 백색광을 조합한다. 휴대폰의 LCD 창이나 손전등에 사용되는 광원이 바로 이런 방식의 LED이다. 또는, 빨강, 녹색, 파랑빛을 내는 세 가지 LED를 직접 조합해서 흰색을 얻거나 형광등과 비슷하게 자외선을 내는 LED에 적녹청 삼색 형광체를 덮어서 자외선을 흰색으로 바꾸는 방식이 이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기존의 무기 물질을 이용한 반도체 대신에 유기 물질을 사용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개발되어 디스플레이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아직은 휴대폰의 보조 표시창 정도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으나, 멀지 않은 장래에 중대형 풀(full) 컬러 디스플레이나 구부러지는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부터 유럽을 시작으로 해서 수은이나 납과 같은 유해물질을 포함한 제품들에 대한 규제가 시행된다고 한다. 조명 분야에서도 수은을 포함하는 형광등을 대체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심에 바로 LED가 서있다.
아직은 형광등보다는 발광 효율이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현재의 기술 개발 속도를 고려하면 LED가 일반 조명의 자리를 차지할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
반세기 전에 진공관을 트랜지스터가 대체했듯이 말이다.
(6) Ms 빛의 고속도로, 광케이블
1870년 영국의 과학자 존 틴들(John Tyndall, 1820-1893)은 실험을 하는 도중 물탱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안으로 빛을 비추자 아주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쪼여준 빛이 곡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줄기 안에 갇혀서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즉 물줄기는 빛을 가두는 관처럼 행동하는 것 같았다.
이 현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전반사(全反辭)’로 알려져 있는데, 빛이 물처럼 조밀한 매질에서 공기처럼 덜 조밀한 매질로 진행하다가 경계면을 만날 때 어떤 각도 범위 내에서 100% 반사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 때 물과 공기의 경계면은 흡사 거울처럼 행동하게 된다. 그렇지만 빛이 공기에서 물로 진행할 경우에는 전반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경계면에서 빛이 꺾이는 굴절 현상만 나타날 뿐이다.
물의 수심이 실제보다 얕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굴절 현상 때문이다.
▲ 광섬유의 구조 및 광섬유를 따라 빛이 전파되는 모습 |
전반사 현상이 적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바로 광통신(光通信)이다. 빛에 정보를 담아서 전달한다는 의미를 뜻하는 광통신은 광섬유(optical fiber) 케이블을 통해 빛을 전송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광섬유는 중앙에 빛이 전달되는 통로인 ‘코어(core)’라는 유리관 주위를 ‘클래딩(cladding)’이라 불리는 또 다른 재질이 감싸고 있는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틴들의 실험과 비유해보면 코어가 물줄기에 해당하고 클래딩이 공기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레이저를 이용해서 코어에 빛을 집어 넣으면 이 빛은 코어와 클래딩의 경계면에서 연속적으로 전반사를 하면서 코어에 갇혀 앞으로 진행하게 된다.
▲ 옆과 끝단에서 빛을 내고 있는 광섬유 |
빛이 물질을 통과해 지나가면 일반적으로 얼마 가지 못해 물질에 흡수되어 버린다. 바닷속 깊이 들어갈수록 어두워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의 유리로 광섬유의 코어를 만들면 빛은 얼마 가지 못해 금방 흡수되어 버릴 것이다.
1970년대 초 개발된 광섬유의 경우는 빛이 약 500 미터를 지나가는 동안 90% 정도가 흡수되어 버렸다.
오늘날에는 불순물이 거의 없고 매우 투명한 고순도 석영 유리로 코어를 제작하기 때문에 빛이 광섬유 속을 별 다른 증폭장치 없이 수백 킬로미터 정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광섬유를 가히 빛의 고속도로라고 부를 만하다.
광섬유를 통해 정보를 보낼 때에는 전송할 정보를 매우 짧은 펄스 형태의 빛으로 변환하여 전송하게 된다. 가령 미국으로 국제전화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여러분의 아날로그 음성은 우선 디지털신호로 변환된 후 다시 빛의 펄스 형태로 바뀐다.
▲ 물 속에서 공기로 쏘아 준 빛이 일정 각도 이상에서 100% 반사되는 전반사 현상 |
이 신호가 태평양에 깔려 있는 광섬유 케이블을 타고 빛의 속도로 미국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광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한 가닥의 광섬유를 통해서 1초 동안 보낼 수 있는 정보량이 수 테라비트 정도의 기술수준에 도달하였다. 1테라비트(terabit)란 천 억 비트를 표현하는 말이다. 한 바이트(byte)는 8비트(bit)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1초에 1테라비트’라는 전송속도는 700메가바이트 CD 약 180장, 혹은 고화질 영화가 담겨 있는 4기가바이트 DVD 30여 장을 1초 만에 전송할 수 있는 정도로 빠른 속도이다.
이제 광케이블을 이용한 광통신은 장거리 통신뿐 아니라 각 가정의 통신망에까지 파고들면서 새로운 형태의 방송 통신 융합형 광네트워크 구축에 활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이제 병원에서는 사람의 몸 속 어느 곳이든지 내시경 속의 광섬유를 통해 빛을 보내서 관찰하고 진단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레이저를 쏘아서 치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광섬유를 이용한 조명이나 예술작품도 심심치 않게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요즘이야말로 바야흐로 20세기 ‘전기의 시대’에서 21세기 ‘빛의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7) 콤팩트디스크와 풍뎅이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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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에 흰색 빛을 비추면 보이게 되는 무지개 빛깔 |
오늘날 대용량 저장장치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콤팩트디스크(CD, compact disk). 이 CD의 뒷면을 햇빛이나 전등 밑에서 바라보게 되면 무지개 색깔이 보인다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형광등에서 나오는 빛은 분명히 흰색인데, 프리즘도 아닌 CD가 어떻게 흰색 빛을 무지개 색깔로 나누는 것일까?
CD는 약 1.2 밀리미터 두께의 플라스틱 기판 위에 중심에서 바깥 원주 쪽으로 나선형으로 홈이 파여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선형 홈들을 따라 서로 높이가 다른 두 영역들이 번갈아 가면서 새겨져 있는데, 이 두 영역은 각각 디지털 신호의 0과 1에 대응되기 때문에 CD는 디지털 신호를 저장할 수 있는 훌륭한 저장장치로 각광받아 왔다.
노래를 CD에 녹음할 경우 음성 신호가 우선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를 통해 0과 1만으로 구성된 디지털 신호로 바뀌고 이 신호는 CD의 홈을 따라 높이가 다른 영역들로 바뀌어 배치되고 저장된다.
우리가 CD 플레이어로 노래를 재생하는 경우에는 플레이어 내에 들어 있는 소형 레이저가 사용되는데, 레이저 빔이 맞는 곳의 홈의 높이가 달라질 때 레이저의 반사 각도가 달라지도록 디자인해서 0과 1을 구분해낼 수 있다. 이렇게 재생된 디지털 신호는 이번에는 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를 거쳐서 원래의 음성신호로 바뀐 후에 증폭기를 거쳐서 스피커로 전달된다.
▲ CD의 단면구조 (Laber=라벨, Acrylic=아크릴, Aluminum=알루미늄, Polycarbonate Plastic=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 |
CD에 파여 있는 홈의 넓이는 머리카락 굵기의 수백 분의 일에 불과한 0.5 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백만 분의 일 미터) 정도이고 홈과 홈 사이의 간격은 약 1.6 마이크로미터이다.
이 홈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무려 5.4 킬로미터 정도나 된다.
CD에 형성된 규칙적인 홈이 무지개 빛을 만들어 내는 현상은 빛이 바다의 파도와 같은 ‘파동(wave)’이라는 사실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바다 위에서 두 파도의 산과 산이 만나게 되면 더 높은 산이 되고 산과 골이 만나게 되면 상쇄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하나의 색깔(가령 빨간색)로 이루어진 단색광이 CD에 들어가면 각 홈에서 반사된 빨간색 빛의 파도들이 우리 눈에 들어올 때 흡사 파도가 만나서 중첩되듯이 서로 간에 중첩되어 간섭을 일으킨다. 이 때 우리가 CD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어떤 각도에서는 빛의 파도의 산들이 만나서 강한 빛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다른 각도에서는 빛의 파도의 산과 골이 중첩되어 어두워지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각도를 달리해서 CD를 쳐다보면 빨강색 빛의 강약이 반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CD 위에 형성되어 있는 홈의 구조 (www.howstuffworks.com에서 인용) |
재미있는 것은 각 색깔별로 파장(파도로 비유하면 산과 골이 한 번 들어 있는 파도의 길이이다)이 틀리기 때문에 빛이 강해지는 각도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CD 표면에 무지개 색깔이 모두 섞여 있는 흰색 빛을 쪼여주게 되면 색깔 별로 조금씩 다른 각도로 분리되어 보강간섭을 일으키게 되므로 우리 눈에는 무지개 빛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CD처럼 유리나 플라스틱 위에 다이아몬드 바늘 등으로 일정한 간격의 홈을 새겨 놓은 광학 부품을 ‘회절격자’라고 부르는데, 이 부품은 보통 빛을 색깔별로, 혹은 파장별로 나누는 데 사용된다. 보통 1밀리미터에 2천 개 정도의 홈이 새겨진다. 이 회절격자는 프리즘보다도 훨씬 정교하게 색깔별로 빛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빛을 분해해서 분석하는 분광학(分光學)의 표준 장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 CD 표면의 사진(좌) 및 풍뎅이 껍질의 현미경 사진(우) |
조개 껍질이나 곤충의 날개, 풍뎅이 껍질들 중 많은 경우는 무지개 빛깔을 띠고 있다.
이 껍질들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미세한 홈들이 규칙적으로 새겨져 있는 구조를 볼 수가 있다.
이들 껍질 위에 새겨진 홈들이 바로 CD의 홈처럼 햇빛을 무지개 빛깔로 나누는 것이다. 풍뎅이 껍질과 CD가 만들어 내는 무지개 빛이 동일한 물리적 원리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8) LCD의 ‘세대 교체’란 ?
며칠 전 LG필립스 LCD의 경기도 파주 7세대 LCD 생산공장이 준공식을 가졌다.
이는 현재 삼성전자가 아산 탕정에서 운영하고 있는 7세대 LCD 생산 라인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로써 전 세계 LCD(액정표시장치) 산업을 이끌고 있는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 사이의 경쟁이 더욱 불붙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LCD 생산 공장 앞에 붙는 ‘세대’는 어떻게 정의되는 것일까?
이번에 준공된 ‘7세대’ 라인은 이전의 1~6세대 라인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단지 공장을 세우는 시기에 맞추어 연대기적으로 숫자를 늘린 것이 ‘세대’ 구분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그림 1] LCD의 세대 교체의 의미 |
LCD 생산공장을 구분하는 ‘세대’는 LCD를 구성하는 유리기판과 관련되어 있다.
LCD는 두 장의 기판유리 사이에 막대기 모양의 액정분자들이 갇혀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본보 2006년1월 5일자 참조). 후면의 기판유리에는 액정분자들을 조정할 수 있는 박막트랜지스터가 형성되고 전면 유리에는 백라이트로부터 공급되는 백색광을 빛의 삼원색(빨강, 녹색, 파랑)으로 분리하는 컬러 필터가 달리게 된다. 이뿐 아니라 빛의 편광을 조절하는 두 장의 편광판이 앞뒤의 유리 기판에 붙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LCD의 유리기판은 영상정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LCD의 핵심부품들이 집적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부품이라 할 수 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을 지탱해 주는 뼈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LCD의 화면 크기도 점점 더 커져 왔다. 이에 따라 LCD 생산공정에 투입되는 기판유리의 크기도 함께 증가해 왔다. 초기에는 노트북이나 휴대폰의 LCD창에 초점을 맞춘 작은 사이즈의 기판유리를 사용해 왔지만 LCD TV 제품이 주력이 될 LG필립스LCD의 7세대 공장에 투입될 유리기판의 크기는 무려 가로가 2.25미터에 세로는 1.95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7세대 라인에 사용되는 유리기판의 크기도 대동소이한데, 가로 2.2미터에 세로는 1.87미터이다.
▲ LCD의 단면 구조 |
그렇다면 이전 세대의 공장보다 큰 사이즈의 기판유리를 사용하기만 하면 ‘세대’를 하나 늘릴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차세대의 유리기판의 단변 길이가 이전 세대 공장에서 사용해 왔던 유리기판의 장변 길이보다 큰 경우에만 ‘세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아래 [그림 1]을 보게 되면 4세대 라인(G4)의 장변길이 920밀리미터보다 5세대 라인(G5)의 단변 길이인 1100밀리미터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LCD 6세대 공장에서 사용해 왔던 유리기판의 크기는 가로 1.8미터에 세로가 1.5미터였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운영하는 7세대 라인에 투입되는 기판유리의 단변 길이는 모두 6세대 라인에서 쓰이는 유리기판의 장변 길이인 1.8미터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에 따라 당당하게 ‘7세대’ 라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치열한 기술개발 경쟁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LC필립스LCD와 삼성전자 모두 ‘8세대’ 생산 공장의 건설을 진행 중이다. 8세대 라인에서 사용될 유리 기판의 크기는 무려 가로 2.5미터, 세로 2.2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한 장의 유리 기판에서 47인치와 55인치 LCD TV를 각각 8장 및 6장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번 상상해 보시라. 가로 세로 길이는 모두 어른 키보다 훨씬 크기만 두께는 고작 0.7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 기판 유리가 축구 경기장 열 개 정도의 면적을 가진 공장 안에서 엄청난 크기의 로봇들에 의해 운반되고 잘리고 가공되어 TV용 LCD 패널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이다.
‘디스플레이 강국’을 세우기 위한 산학연의 치열한 기술 개발 노력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써 큰 힘을 발휘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본다.
(9) 브라운관 TV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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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운관의 단면도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브라운관 TV” 입니다. 여러분의 거실이나 안방 한쪽 벽의 중심을 떡 차지하고 앉아서 지난 반 세기 동안 사랑을 독차지해 왔던 TV의 주역이지요. 한동안은 TV뿐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로도 각광을 받아서 책상 위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요즘 들어 LCD나 PDP처럼 더 얇고 화면이 더 큰 벽걸이형 TV들이 많이 선호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텔레비전은 바로 저랍니다.
텔레비전이 보급되던 초기에는 제가 있던 집이 바로 그 마을의 사랑방 구실을 했었고, 1960~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분들은 화면 위에 펼쳐지던 흑백의 만화영화에 푹 빠져들었던 추억들을 모두 가지고 계시겠지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변신을 거듭해서 1980년대에는 컬러 브라운관 TV로 탈바꿈했고 이제는 평판형 TV들과 경쟁하기 위해 몸무게를 줄여 슬림형 브라운관 TV로 거듭 태어났답니다.
제 내부가 궁금하시다고요? 여러분들께 각종 드라마나 뉴스를 펼쳐 보여드리는 앞면 유리(panel glass)가 바로 제 얼굴에 해당됩니다. 이 앞면 유리에는 그림과 같이 유리잔 모양을 한 후면 유리(funnel glass)가 연결되어 붙어 있고 그 끝에는 전자총이 달려 있답니다. 전자총은 매우 뜨겁게 달구어진 전극에서 이름 그대로 전자 빔을 발사하는 게 자신의 임무이지요. 컬러 TV라면 빛의 삼원색인 빨강색, 녹색, 파랑색 각각에 대응되는 세 개의 전자총이 달려있답니다.
▲ 화면을 구성하는 주사선의 개략도 |
전자총에서 튀어나오는 전자 빔 다발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앞면 유리에 점점이 붙어 있는 형광체 화소(畵素, pixel)들입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서 제 얼굴인 TV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세요. 커다란 화면이 직사각형 형태의 매우 작은 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답니다. 수만 킬로 볼트의 강한 전압에 의해 힘을 받아 날라온 전자 빔이 화소의 형광체를 때리면 빛(가시광선)이 튀어 나옵니다. 형광체의 종류에 따라 만들어지는 빛의 색깔도 달라지지요. 하나의 화소에는 적녹청 세 가지 종류의 형광체가 이웃해 있으니 우리는 빨강, 파랑, 녹색 빛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 세 색깔을 섞으면 각 화소별로 어떤 색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결국 어떤 아름다운 영상도 모두 만들어 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전자총은 서부영화의 총잡이들이 총을 쏘아 대듯이 화면에다가 아무렇게나 전자 빔을 발사하지는 않는답니다. 전자 빔은 흔히 말하는 TV의 ‘주사선’ 순서에 따라서 화면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훑고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브라운관 몸체에 붙어 있는 ‘편향 코일’이 전기 자기적인 힘을 이용해서 전자 빔의 방향을 매우 정교하게 조정하지요. 주사선의 숫자가 보통 수직으로 525개 정도이고 1초에 60장의 영상이 순차적으로 화면에 만들어지니까 전자 빔은 1초를 통틀어 모두 약 3만 번 정도의 수평선을 그리며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한 수평선을 구성하는 화소가 700개만 있다고 해도 전자 빔이 1초에 스크린에 만들어 내는 점은 무려 2천만 개 이상이 된답니다.
▲ 브라운관의 전자총 부분 |
이제 여러분들이 보는 드라마나 영화의 화면이 제 몸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감이 잡히시나요?
눈 깜짝할 사이 정도인 1초 동안에 여러분들이 눈으로 느끼는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전자총이 100만 여개의 화소 단위별로 붙어 있는 형광체 점들을 수 천만 번 분주하고 정교하게 훑고 지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언젠가 TV 퀴즈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던, 저의 출생과 관련된 문제 하나 풀어보았으면 합니다. 제 이름이 왜 ‘브라운관’ TV일까요?
정답 : 브라운은 1세기 전에 오늘날 TV의 기본이 되는 브라운관을 발명한 독일 과학자의 이름입니다.
당시 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이 발명한 브라운관의 기본 구조는 지금도 그대로 브라운관 TV 내에 쓰이고 있답니다.
▲ TV의 변천사 |
(10)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지구상의 물질은 대부분 기체, 액체, 혹은 고체 등 세 가지 상태 중 하나로 존재한다.
고체인 얼음을 녹이면 액체(물)가 되고, 물에 온도를 가하면 기체 상태인 수증기로 바뀐다.
만약 수증기 상태의 물분자에 더 높은 열을 가하면 어떻게 될까?
물분자를 이루는 수소와 산소 사이 결합이 끊어지고 일부의 수소와 산소 원자가 전리(電離)되면서 (+) 전하를 띠는 양이온과 (-) 전하를 띠는 전자로 나뉘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전리된 입자('하전입자'라 불린다)들과 중성 원자 가스들이 공존하는 물질의 상태를 기체 상태와 구분해서 플라스마(Plasma)라고 부른다.
▲ PDP의 구조 |
지구상의 자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플라스마로는 번개나 오로라 현상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우주를 향해 눈을 돌려 보면 태양을 비롯해 밝은 빛을 내며 밤하늘을 장식하는 대부분의 별들이 플라스마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주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물질은 플라스마 상태에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플라스마는 보통 내부 입자들 사이의 활발한 작용에 의해 전자기파를 방출하는데 플라스마를 구성하는 원소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한 색깔의 빛을 내게 된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나 자외선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밤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 네온사인 조명이다. 네온사인은 유리관 내부에 네온(Ne), 알곤(Ar), 수은과 같은 가스들을 집어 넣고 전압을 인가할 수 있는 전극을 부착해서 만든다. 전극을 통해 전압을 인가하면 내부의 가스들이 전리되면서 방전 플라스마가 만들어지는데, 집어 넣은 가스의 종류에 따라 네온사인의 다채로운 빛깔들이 연출된다.
네온사인처럼 플라스마에서 나오는 가시광선을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장치도 있지만, 플라스마에서 방출되는 자외선을 이용하는 조명장치도 있는데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던 '형광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형광등 내부의 방전 플라스마에서 나오는 자외선이 등의 내벽에 묻어 있는 형광체를 때리면 가시광선이 만들어진다. 이런 원리는 이제 조명 분야를 뛰어 넘어서 디스플레이 기술에까지 응용되고 있으니,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이 그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겠다.
▲ 세계 최대의 102인치 PDP TV |
디스플레이의 칼라 영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빛의 삼원색이 필요하다. 액정표시장치(LCD)의 경우는 백라이트에서 올라오는 흰색 빛을 칼라필터를 이용해서 빨강, 파랑, 녹색으로 분리한다.
PDP의 경우는 세 가지 종류의 초소형 형광등을 이용해서 빛의 삼원색을 만들어 낸다. [그림 1]은 PDP의 단면 구조를 나타내고 있는데, 불과 높이 0.1 ~ 0.2 mm, 폭 0.3mm 정도의 작은 방 세 개가 PDP 화면을 구성하는 하나의 화소(픽셀)를 이룬다.
이 작은 방 안에 제논(Xe)과 헬륨(He), 네온 등의 가스를 집어 넣고 전압을 인가하게 되면 형광등과 마찬가지로 방전 플라스마가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자외선이 각 방의 벽에 붙어 있는 세 종류의 형광체를 때리면 빨강, 녹색, 파랑의 삼원색 빛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각 화소를 구성하는 세 개의 초소형 형광등의 발광량을 조정하게 되면 화소별 색상이 결정되고 우리가 원하는 칼라 영상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PDP의 영상은 수백만 개의 초소형 형광등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빛의 교향곡이라 비유할 수 있다.
PDP의 장점으로는 무엇보다도 100인치를 초과하는 대형 디스플레이를 벽걸이가 가능한 박형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과 매우 자연스러운 색상을 넓은 시야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구동기술과 발광효율도 계속 향상되어 제품 초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발열 및 소비전력 문제도 크게 개선된 상태이다. 게다가 LCD TV와 PDP TV 사이의 가격 경쟁이 놀랄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면서 몇 년 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고가였던 PDP TV, LCD TV를 이제는 큰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평판 디스플레이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고 있는 셈이다.
(11) 디스플레이의 신세계, 평판형 디스플레이
현재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효자 산업 중 하나인 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얘기하자면 디스플레이는 인간이 향유하고자 하는 정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주는 휴먼 인터페이스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각적인 정보 공유란 바로 빛을 매개로 정보가 전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화소를 나타내는 개략도. 빨강, 녹색, 파랑 빛을 내는 세 개의 단위가 모여 하나의 화소를 구성한다. |
30여 년 전만 해도 흰색 빛의 밝기만을 조절해서 영상을 보여주던 흑백 TV가 디스플레이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오늘날의 디스플레이는 빛의 삼원색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총천연색 영상을 기본으로 해서 보다 더 자연색에 가까운 선명한 영상정보를 전달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은 디스플레이는 무엇보다도 대화면의 평판형 디스플레이(flat panel display)였다. 평판형 디스플레이란 말 그대로 매우 얇고 넓고 평평한 면적을 가진 소자 상에 우리가 원하는 영상정보를 구현하는 디스플레이를 말한다.
전자제품 판매점을 가면 이제 흔히 볼 수 있게 된 LCD TV, PDP TV 등이 평판형 디스플레이의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부각되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라 할 수 있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기술까지 고려하면 평판형 디스플레이의 영역은 훨씬 넓어지게 된다.
▲ IMID 2005 전시회에 전시되었던 82인치 LCD TV |
평판형 디스플레이가 가지는 장점은 우선 두께가 얇고 커다란 사이즈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브라운관 TV라고 부르는 CRT TV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두께에 40인치를 훌쩍 뛰어 넘는 사이즈는 벽걸이형 TV로써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여기에다가 5.1채널을 활용하는 디지털 음향 시스템을 연결하게 되면 거실에 나만의 작은 영화관을 꾸밀 수도 있다.
하지만, 평판형 디스플레이 기술이 우리에게 안겨준 선물은 무엇보다도 대면적으로 뛰어난 화질의 영상을 향유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디스플레이는 수십만 개에서 수백만 개의 매우 많은 화소(畵素, pixel)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의 단위 화소는 다시 빛의 삼원색인 빨강, 녹색, 파랑 빛을 낼 수 있는 더 작은 화소(subpixel) 세 개를 붙여서 구성한다.
한 화소 내에서 나오는 빨강, 녹색, 파랑 빛의 상대적인 양을 조절하게 되면 그 화소의 색상이 결정되는 것이다. 보통 하나의 화소로 구현할 수 있는 색상의 수는 대략 1천700만 개 정도에서 십억 개 정도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의 화소가 구현할 수 있는 색상의 숫자가 크다고 해서 더 선명한 화질이 나온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 IMID2005 전시회에 전시되었던 102인치 PDP TV |
화소에서 합성되어 나오는 색상을 만들어 내는 기본 재료인 빛의 삼원색-빨강, 녹색, 파랑-자체가 보다 순수하고 탁하지 않은 색감을 가지고 있어야만 해당 디스플레이의 화질도 더 선명해지고 자연색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야만 맛있는 음식이 탄생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자연색에 가까운 색감과 풍부한 색상 영역을 재현하기 위한 업계의 기술적인 노력이 날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 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MID2005 전시회에 전시되었던 디스플레이 제품들 중 사이즈가 가장 큰 것은 102인치 PDP TV와 82인치 LCD TV였다. 이러한 크기의 디스플레이들은 Full HD(high-definition)급 이라 불리는 가장 큰 해상도를 가지고 있는데, 보통 가로방향으로 1920 개, 세로방향으로 1080개의 화소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전체 화소의 수는 1920x1080이므로 약 2백만 개가 된다.
80~100 인치 화면 위에 배열된 2백만 개의 화소에서 나오는 십억 개의 색상이 펼치는 영상의 하모니는 과연 자연을 화면 위에 그대로 재연하려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12) 월드컵 열기의 숨은 공로자, 대형 디스플레이
▲ 한국의 첫 경기가 열리던 2006년 6월13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LED 전광판을 통해 전달되는 경기를 관람하던 붉은 악마들 |
‘세계의 월드컵’은 아직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의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아쉽긴 하나 선수들도 열심히 싸웠고 국민들도 정말 열성적으로 응원하였다. 붉은 악마를 비롯한 한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밤을 새워가며 정열적으로 응원했던 붉은 악마들의 순수한 열정은 세계인들에게 한국 축구를 떠받치는 당당한 기둥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한국팀이 참가하는 경기가 열리던 밤이면 붉은 악마들과 더불어 밤새워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를 받쳐 주던 친구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우리 팀의 축구경기를 생생히 전달해 주던 전광판과 대형 디스플레이이다. 때로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의 마음이 담긴 채로, 때로는 벅찬 함성과 환희의 감정이 담긴 채로 수만, 수십만의 눈길이 향했던 그 커다란 화면의 뒤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어떤 원리로 그토록 커다란 화면 위에 생동감 넘치는 영상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일까?
▲ 대형 전광판에 사용되는 LED 모듈의 예 |
대형 디스플레이란 보통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용 전광판이나 경기장, 경마 등 스포츠나 레저 시설에서 사용되는 정보 전달용 전광판, 공항이나 역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정보 디스플레이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용도도 다양한 만큼 대형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원리도 가지각색이다.
1950년대 만들어져 아직도 역이나 공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디스플레이로는 스플릿플랩(split flap) 디스플레이가 있다.
돌아갈 수 있는 회전 축에 40에서 60 장 정도의 인쇄된 플랩을 달아서 이를 회전시켜 원하는 플랩의 배열이 스크린에 나타나도록 한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매우 간단하고 수명도 길다. 그렇지만 대형 스크린 위에 총천연색 영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빨강, 파랑, 녹색 등 빛의 삼원색을 낼 수 있는 화소(pixel)가 있어야 한다. TV나 모니터의 화소는 보통 밀리미터보다 훨씬 작은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매우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구별이 가능하지만, 대형 디스플레이의 경우는 보통 수십 미터나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시청하기 때문에 화소 하나의 길이가 수십 밀리미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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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보성군 회천면의 붓재다원 녹차밭 일대에 높이 120m, 폭 130m 크기로 세워졌던 대형 LED 트리 |
대형 디스플레이의 커다란 화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음극관(CRT) 방식, 형광 방전관 방식, LCD 방식 등이 사용되어 왔다.
음극관 방식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가 가정에서 보는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축소해서 화면 크기를 명함 정도로 줄여 보자. 그리고 이 미니 브라운관 화면에서 빨강, 녹색, 파랑 중 하나의 색깔만 튀어 나오도록 세 가지 종류를 준비하자. 이렇게 준비된 세 종류의 소형 브라운관을 수 만개에서 수십 만개에 이르기까지 모자이크 식으로 주기적으로 배열하여 우리가 원하는 크기로 확대하면 음극관 방식의 대형 디스플레이가 완성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형 디스플레이의 대표주자는 발광다이오드(LED)형 디스플레이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잠실 올림픽 경기장, 서울 시청 앞의 전광판은 모두 LED형이다.
LED란 이전에 소개한 적이 있듯이(본보 3월 1일자)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반도체이다.
반도체의 종류에 따라 빨강, 파랑, 녹색을 비롯해 다양한 색깔이 튀어 나온다. 평면 상에 LED를 밀집시켜 배열한 모듈을 주기적으로 배열해 스크린의 화소로 활용한다.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큰 대형 스크린이 있다. 바로 7층 높이의 나스닥(NASDAQ) 광고게시판이다. 화면을 구성하기 위해 무려 1천900만개 정도의 LED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 공항이나 역 등에서 아직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스플릿플랩 디스플레이 |
LED는 다양한 발광색으로 인해 보다 선명한 자연색을 연출할 수 있고 수명이 길어 오늘날 대형 디스플레이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다. 전광판뿐 아니라 남산타워나 청계천 등 서울의 명소들을 비추어 주는 아름다운 조명 빛들도 대부분 LED가 만들어 낸다.
뜨겁게 달아 올랐던 6월 밤 우리들과 함께 밤을 지새면서 월드컵의 열기를 받쳐 주었던 LED 전광판들을 기억해 두자.
4 년 후 붉은 악마들이 다시 모일 열린 광장의 가운데에서 어김없이 우리를 맞이할 친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 고재현 한림대학교 전자물리학과 교수
- 한국일보 / ⓒScience Times [빛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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