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빛으로 보는 세상 (2)

Gijuzzang Dream 2009. 1. 8. 23:05

  

 

 

  

 

 (1) 푸른 하늘과 붉은 노을 – 광산란(光散亂)의 두 얼굴  

 

 

▲ 아폴로 11호가 달표면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의 일부분이다. 맑은 가을날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보며 그 속에 빠져들고 싶다는 느낌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데, 고대로부터 푸른 하늘은 인류에게 정서적인 공감뿐만 아니라 왜 맑은 하늘은 파란색을 띨까라고 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왔다.

많은 사람들이 맑은 하늘이 보여주는 푸른색의 기원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는데, 가령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하늘에 떠 있는 작고 혼탁한 물체들이 파란색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하였고 아이작 뉴턴은 빛의 반사와 굴절을 이용해 푸른 하늘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푸른 하늘의 원인이 빛의 산란(散亂)때문이라는 것은 19세기 말에 와서야 명확히 밝혀졌다.

어두운 방에서 손전등을 킨 후에 몇 미터 떨어져 있는 벽을 향해 빛을 쏘아보자.

빛이 지나가는 궤적이 우리 눈에 쉽게 확인된다. 벽을 향해 나아가는 빛이 방 안에서 떠돌아 다니는 먼지들에 의해 산란되면서 사방팔방으로 퍼지고 그 중 일부가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먼지가 없는 진공 상태인 우주 공간에서 손전등이나 레이저를 쏘게 되면 우리는 빛의 궤적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하늘을 가로 질러 가는 태양광도 대기를 통과하면서 산란되어 온갖 방향으로 퍼진다.

태양광을 산란시키는 것은 대기를 구성하는 질소, 산소 등의 기체분자들과 미세한 먼지 등이다.

▲ 하늘이 푸른색으로

보이는 원인을 이론적으로 밝힌 레일레이 경

백색인 태양광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성분들이 골고루 섞여 있다.

이 백색광이 대기의 기체분자들에 의해 골고루 산란된다면 하늘은 그저 이들의 혼합색인 하얀색으로만 보일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과학자인 레일레이(Rayleigh)는 빛의 산란 과정을 연구하면서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이 파장이 긴 붉은색 빛에 비해 더 많이 산란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였다.

파장이 450 나노미터(1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 미터로써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이다)인 파란색이 600 나노미터의 파장을 가진 붉은색에 비해 약 3.2배 정도 더 많이 산란된다. 따라서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게 되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태양광 중 더 많이 산란되는 파란색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우주인이 되어 달나라를 방문했다고 가정하자. 공기가 없는 달에서 하늘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달에는 공기가 없으므로 달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태양광은 산란되지 않는다. 산란되어 우리 눈에 들어 오는 빛이 없으므로 하늘은 검은색으로 보일 것이다. 1969년 달표면을 최초로 밟은 아폴로 11호의 대원들이 달에서 촬영했던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지구의 배경이 검은색 하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푸른색 하늘은 대기가 우리에게 주는 지구만의 전유물일까. 그렇지는않은 것 같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카시니 탐사선이 토성의 북반구 대기에서 푸른 하늘을 촬영하였다.

지구에서 파란색 빛을 더 많이 산란시켜 푸른 하늘을 만드는 산소나 질소 같은 기체분자 대신에 토성에서는 수소 분자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 탐사선이 찍은 토성의 북반구의 모습 (왼쪽 사진)  


빛이 산란되는 현상이 만들어 내는 ‘푸른 하늘’의 쌍둥이는 바로 ‘붉은 노을’이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는 일출이나 석양 무렵의 태양광은 상대적으로 두꺼운 대기층을 비스듬하게 통과하면서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된다. 두꺼운 대기층을 통과하는 동안 산란이 잘 되는 파란색 빛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빛의 세기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산란이 잘 되지 않는 붉은색 계통의 빛이 살아남아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석양의 아름다운 노을색을 감상할 수가 있다.

붉은색이 잘 산란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동차 후면 브레이크등의 색깔에도 응용되어 있다.

브레이크등의 붉은 조명광은 궂은 날씨에도 잘 산란되지 않기 때문에 뒤따라오는 차의 운전자에게 정지신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파란 하늘과 브레이크등의 붉은색이 빛의 산란 현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2) 병 주고 약 주는 자외선

 

▲ 자외선 방출 램프가 달려 있는

인공 썬텐 장치

1985년 지구 궤도를 돌던 인공위성이 남극 대기권의 오존층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산소 원자(O)가 세 개 붙어 만들어지는 오존층(O3)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을 흡수해서 지표면에 도달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자외선 가리개’ 역할을 한다.

오존층이 점점 줄어든다면 지상까지 도달하는 자외선의 증가로 피부암, 백내장 발병률 등이 더 높아질 것이다. 이는 호주와 뉴질랜드 등의 남반구 국가들에서는 이미 현실화된 사실이다.

오존층이 더 심하게 파괴될 경우, 어쩌면 우리는 자외선을 피해 건물 내에서만 생활해야 할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 되는 화학 물질들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어 금세기 후반 이후에는 파괴된 오존층의 회복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자외선이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가리킨다.

자외선은 파장에 따라 장파장 자외선(UV-A: 320nm - 400nm), 중파장 자외선(UV-B: 290nm - 320nm), 그리고 단파장 자외선(UV-C: 200nm - 290nm)으로 구분된다. 태양에서 발생되는 자외선은 대부분 지구의 오존층에 의해 차단 당하지만 장파장 자외선과 중파장 자외선의 일부가 대기권을 뚫고 지표면에 도달한다.

고생물학자들은 자외선으로부터 안전한 바닷속에서 살던 생물들이 지상으로 진출한 것은 광합성 작용에 의해 산소(O2)가 지구 대기권의 주성분이 된 이후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산소로부터 오존층이라는 ‘자외선 가리개’가 형성되고 나서야 생물들의 지상생활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오존층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상으로 올라온 생명체들은 자외선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대기 중의 산소로부터 오존층을 만들어 낸 것도 태양에서 온 강력한 자외선이었다.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강해 각종 화학작용이나 살균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식당에서 컵을 살균하는 데 사용되는 자외선 살균기이다. 살균기의 문을 닫게 되면 위쪽에 달려 있는 살균용 수은등에서 254 nm 파장을 가진 자외선이 나오기 시작한다. 컵에 내리 쬔 자외선은 각종 미생물, 곰팡이, 박테리아의 DNA나 RNA를 파괴시켜 버린다.

살균기 내에 자외선을 방출하는 수은등이 달려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어? 그러면 사무실이나 거실의 천장에 달려 있는 수은등에서도 자외선이 나오는 것 아냐?”라고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일반 조명용 형광등에서 나오는 자외선은 유리 내부 표면에 붙어 있는 형광체라는 물질에 의해 가시광선으로 바뀐다. 게다가 가시광선으로 바뀌지 않는 여분의 자외선은 형광등의 유리가 흡수해 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면서 자외선에 의해 살균작용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자외선이 인체에 유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존층을 뚫고 살아남아 지표면에 도달하는 중파장 자외선은 우리 체내에 비타민D의 합성을 유도한다. 또한, 우리 피부가 자외선을 인식하게 되면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 차단막을 형성하면서 구리 빛 피부를 만들어 낸다.

▲ 프라하에서 공연하는

블랙라이트 마임의 한 장면

이러한 과정을 응용한 것이 자외선 램프를 달아서 피부를 태우는 인공선탠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외선을 과도하게 쬐면 피부에 축적된 멜라닌 색소가 피부암의 원인이 되는 악성종양인 흑색종으로 발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외선 덕분에 새로운 예술문화가 창조되기도 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인 체코 프라하의 볼거리 중 하나로 ‘블랙시어터’라고 하는 마임극이 있다. 배우들이 특수한 형광 안료로 화장을 하거나 이 안료가 발라진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면 ‘블랙라이트’라고 하는 특수조명이 켜진다.

블랙라이트는 이름 그대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빛인 자외선을 방출한다. 이 자외선은 얼굴이나 의상에 묻어 있는 형광 안료에 입사해서 온갖 현란한 색깔을 연출해 내게 된다.

블랙라이트에서 나오는 자외선 때문에 블랙시어터 공연 관람이 꺼려진다면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블랙라이트에서 나오는 자외선 양이란 인체에 영향이 없는 정도의 매우 작은 양이기 때문이다.

 

 

 

 

 (3) 눈과 시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오감(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視覺)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볼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감각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보통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획득하는 정보의 80% 이상이 시각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시각은 예로부터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심과 사색의 대상이 되어 왔다. 


▲ 눈의 구조


그렇다면 과연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물을 보고 인지하는 과정을 신체의 생리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추적해 보자.

시각의 출발점은 사물들의 표면에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가시광선이다. 보통은 태양광이나 조명등에 의해 사물에 쪼여지는 빛 중 일부분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빛이 없다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눈에 들어온 빛이 우선 만나게 되는 것은 각막이다. 각막은 흔히 우리 눈을 보호하는 가장 바깥쪽의 조직이면서 동시에 빛을 모아서 망막 상에 맺히도록 굴절시키는 렌즈의 역할도 수행한다.

각막을 지난 빛은 홍채에 의해 둘러싸인 눈동자(동공)를 통과하고 수정체를 지나간다. 홍채는 매우 유연하게 수축되거나 확장될 수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눈동자의 크기가 바뀌면서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이 조절된다.

밝은 환경 하에서 눈동자의 지름은 약 3.5 밀리미터로 줄어들지만, 컴컴한 방안에서는 그 크기가 8밀리미터까지 확장되어 최대한 많은 빛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인종에 따라 바뀌는 눈의 색깔은 바로 홍채의 색에 의해서 결정된다.

수정체는 모양체라는 강한 근육에 의해 형태가 바뀌면서 각막에 의해서 굴절된 빛의 초점을 미세하게 조정하여 우리가 보는 대상을 망막 위에 정확히 맺히도록 한다. 이 수정체의 유연성에 의해 우리는 먼 곳의 사물과 가까운 곳의 사물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나이가 들거나 다른 환경적 요인에 의해 수정체의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근력이 떨어진다면 눈이 바라보는 대상의 초점을 망막 상에 정확히 형성시키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원시나 근시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상이 맺히는 망막은 굳이 비유하자면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써, 빛을 감지하는 시세포가 분포해 있어서 입사되는 빛을 전기적인 신호로 바꾸어 준다. 시세포에는 원추세포(cone cell)와 막대세포(rod cell) 두 종류가 있는데 밝은 곳에서는 원추세포가 활동하고 어두운 환경에서는 훨씬 더 민감한 막대세포가 원추세포를 대신해서 빛을 감지한다.

이 시세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빛의 세기의 범위는 매우 넓어서, 밤하늘의 매우 희미한 별빛에서부터 –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 대낮의 태양빛과 같이 매우 밝은 빛도 감지할 수 있다.

▲ 뇌의 구조


시세포에서 생성되는 전기적인 펄스 신호들은 시신경 섬유 다발들에 의해 모아진 후 뇌로 전달된다.

뉴런으로 불리는 신경세포들은 끊임없이 점멸하는 전기적 신호를 뇌로 운반한다. 뇌에 전달된 전기적인 시각정보는 뇌의 뒤쪽 영역인 “후두엽”이라는 곳에서 처리되고 영상으로 전환된다.

후두엽의 대뇌피질인 “시각피질”에서 처리되고 형성된 영상에 대한 정보는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인 “해마”에서 과거의 정보들과 비교되어 판단된 후 전체 대뇌 피질로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리적 과정이 인간의 시각능력을 다 설명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인간은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마음 속에 시각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꿈을 꿀 때 사람의 눈은 매우 활발히 움직인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50대 남자가 수술을 통해서 시력을 회복한 경우가 있었다.

그는 볼 수 있는 능력은 회복했지만 자신이 본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즉 그는 거리를 가늠할 수도 없었고 자신이 본 사물들 사이의 공간적 관계도 판단할 수 없었다. 오직 손으로 사물들을 만져보고 느낀 후에 그 사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눈에서 뇌로 시각정보가 전달되는 생리적 과정과 인간의 마음과 기억에 의해 가공, 판단되는 과정은 서로 상보적인 과정으로써 우리의 시각능력을 형성하는 두 기둥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과정이 아닐까?

 

 

 

 

 

 (4) 신이 내린 축복, “시각”

 

 

▲ 망막의 단면 구조 및 원추세포와

간상세포(막대세포)의 개략도 

사람의 눈은 오랜 시간에 걸친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눈이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기능들을 살펴보면 흡사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대의 축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눈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기능들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매일 컴퓨터나 TV에 혹사당하는 우리의 눈에게 조금이나마 고마움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우선 우리 인간은 색깔을 매우 자세히 구별할 수 있다.

이는 망막 상에 존재하는 시세포 중 원추세포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사람의 망막에는 대략 7백만개의 원추세포와 1억2천만개 정도의 막대세포(간상세포)가 존재한다.

원추세포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빛의 자극에 의해 각각 적색, 녹색, 청색 빛에 대한 감도가 높은 색소를 포함하고 있는 적추체, 녹추체, 청추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감지하는 정보를 근거로 해서 뇌에서 매우 복잡한 정보처리가 이루어지게 되고, 그 결과로 색깔이 인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빛의 삼원색(빨강, 녹색, 파랑)을 혼합해서 다양한 색깔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세 종류 원추세포가 색깔의 인식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달리 다른 포유동물들은 일부 영장류를 제외하면 색깔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흔히 투우 경기에서 사용되는 붉은 천은 황소를 흥분시키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황소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흰색 천을 사용해서도 황소를 자극시킬 수 있다. 천의 색깔을 빨강으로 선택한 것은 황소보다는 투우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동물들이 느낄 수 있는 빛의 파장 영역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가령 바퀴벌레를 포함하는 대부분의 곤충들은 붉은 색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붉은 등을 켜 놓게 되면 바퀴벌레는 빛이 전혀 없는 암흑상태라고 느끼고 스멀스멀 기어 나와서 방안을 돌아다니게 된다.

꿀벌을 비롯한 몇몇 곤충들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자외선을 볼 수 있다.

화려한 색깔로 치장된 꽃들의 상당수는 꽃잎 위에 꿀이 들어 있는 중심부를 향해서 자외선 띠가 형성되어 있다. 자외선을 볼 수 있는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한 일종의 표시등인 것이다.

망막 상의 원추세포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빨강, 녹색, 파랑 중 하나 이상의 색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흔히 ‘색각이상’(‘색맹’이라고도 불린다)이라 불리는 증상이다. 가장 흔한 색각이상은 빨강을 인식하지 못하는 적색각이상과 녹색을 인식하지 못하는 녹색각이상으로서, 전자의 경우에는 빨강과 녹색을 구분할 수 없고 후자의 경우에는 녹색을 인식할 수가 없다.

▲ 색각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데 사용되는 테스트 숫자들


색각 이상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X 염색체에 존재하는데 열성유전자이다. 따라서 남성의 경우는 XY 염색체 중 하나 뿐인 X에 문제가 생기면 색각이상을 일으키지만, 여성의 경우는 XX 염색체 중 하나만 정상이어도 색각이상을 느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중의 색각이상을 가지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남성의 약 6%, 여성의 약 0.4% 정도가 적록색각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세 가지 원추세포에 모두 문제가 생겨서 색깔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전(全)색각이상의 경우도 전체 인구의 약 0.003% 정도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세상이 흑백 TV의 화면처럼 밝음과 어두움의 구분만이 존재하는 회색톤의 세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세상일지 궁금한 독자들은 빛이 매우 희미한 밤에 우리들이 인식하는 세상을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원추세포는 매우 희미한 빛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감도가 훨씬 좋은 막대세포가 작동하면서 보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막대세포는 원추세포와는 달리 오직 빛의 밝기만을 느끼는 한 종류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야간에는 색깔의 구분이 매우 희미해지거나 아니면 오직 흑백의 세상으로만 보이게 되는 것이다.

 

 

 

 

 

 (5) 황반과 맹점(盲點)

 

 

우리가 무엇을 볼 때에는 보는 대상에 대해 눈의 초점을 맞춘다. 이 경우 눈은 초점이 맞추어진 작은 영역에 대해서는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구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초점을 맞춘 작은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는 우리의 눈은 상당히 둔감한 편이다.

▲ 황반과 맹점의 망막 상의 위치 및 시세포의 분포.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이 신문의 특정 부분을 읽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여러분의 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작은 면적의 경우에는 아무리 작고 복잡한 글자나 기호가 있더라도 읽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눈의 초점을 맞춘 영역의 바깥쪽에 대해서는 글자들이 있다는 것은 인지할 수 있으나 개개의 글자들이 무엇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망막 상에 퍼져 있는 시세포의 분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다.

밝은 환경에서 작동하는 원추세포는 우리 눈이 가지는 시야의 중심에 대응되는 망막 위의 장소인 소위 황반(fovea)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지름이 1mm 정도인 황반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위로 멀어질수록 원추세포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든다. 눈의 초점이 맞추어진 영역의 이미지는 이 황반 위에 맺혀진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오직 시야의 중심에 들어오는, 그래서 황반 위에 맺히는 이미지만을 자세히 분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환경에서 희미한 빛을 인식하는 막대세포(간상세포)의 분포는 원추세포와는 많이 다르다. 막대세포는 황반 상에는 존재하지 않고 황반 주위에 퍼져 있다. 따라서 밤에 매우 희미한 물체를 볼 때, 그 물체를 직접적으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오래 전부터 천문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밤하늘의 어두운 별을 관찰할 때 별을 직접 쳐다보게 되면 막대세포가 거의 없는 황반에 별의 이미지가 맺혀 이를 인식할 수가 없다(원추세포는 희미한 빛은 인식하지 못한다). 밤에 어두운 별을 잘 보려면 그것을 직접 겨냥해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황반 주위에 퍼져 있는 막대세포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의 맹점을 이용하다'는 식으로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맹점(盲點)'이라는 단어가 있다.

흔히 '주의가 미치지 못하여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잘못된 점'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실제 망막 상에 존재하는 특정 부위로부터 비롯된 말이다.

시신경들이 눈으로부터 나와서 뇌로 연결되는 부위가 바로 그것으로서, 여기에는 어떠한 시세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곳에 사물의 이미지가 맺히면 우리는 그것을 인식할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 지점을 맹점(blind spot)이라 부르는 것이다.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서 맹점의 존재를 쉽게 느낄 수가 있다. 검정색 원과 X자가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자. 왼쪽 눈을 손으로 가리고 왼쪽의 X자에 오른쪽 눈의 초점을 맞춘 후, 지면과 눈과의 거리를 조절해 보면 오른쪽의 검은 원이 사라지는 때가 있다. 이 때가 바로 오른쪽 검은색 원의 이미지가 맹점에 맺히는 때이다. 그곳에는 시세포가 없으므로 우리는 검은색 원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카메라의 필름 상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 필름으로 인화한 사진의 동일한 위치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망막 상에 맹점이 있다면 우리가 보는 이미지 위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점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느끼는 이미지에는 그러한 결점이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뇌의 인지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는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 특히 맹점 주위의 정보를 이용해서 맹점의 영역에 있어야 할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서 채우는 것으로 생각된다.

위에서 했던 테스트를 떠올려 보자. 검정색 점이 보이지 않을 때, 점 주위의 흰색 여백이 검정 원의 위치로까지 확장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6) 수술복이 청록색인 이유는?

 

▲ [그림 A] 

▲ [그림 B] 

▲ [그림 C] 

 

우리는 보통 말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시각으로 받아들인 정보는 확실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서 눈은 우리에게 왜곡된 정보를 주기도 한다. 아래 두 그림을 예로 들어 보자.

 

그림 A는 동일한 길이를 가진 선분에 화살표의 방향만 다르게 표시한 것이다. 길이는 똑같지만 화살표의 방향으로 인해 아래 선분의 길이가 더 길어 보인다.

그림 B는 동일한 농도를 가진 회색 네모를 하얀색 배경과 검정색 배경에 놓아둔 것이다. 정확히 동일한 농도의 회색 네모이지만 검정색으로 둘러 싸이게 되면 상대적으로 더 밝아 보인다. 이처럼 주위 배경이나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착시’ 현상은 시각이 전달하는 정보가 100% 정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착시 현상과 비슷하게 눈이 혼란을 느끼는 현상으로 ‘색채 입체시’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하나의 색깔로 이루어진 물체를 바라보게 되면 그 물체는 눈의 망막 위에 정확히 맺히게 된다. 그렇지만 파장이 매우 틀린 두 색상, 가령 파랑과 빨강색을 띠는 두 물체를 동시에 쳐다보게 되면 눈은 이들을 동시에 망막 상에 맺히게 하는 데 큰 혼란을 느낀다.

색깔이 틀린 두 빛이 눈을 통과하면서 굴절되는 정도가 달라지는 ‘색수차’라는 특성 때문이다. 프리즘이 햇빛을 무지개 색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햇빛을 구성하는 각 색깔들이 프리즘을 거치면서 굴절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파란 배경 위에 빨강색 하트가 놓여져 있는 [그림 C]를 보자.

파랑보다 빨강이 더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듯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색채 입체시’라는 현상으로서, 두 색상이 망막 상에 동시에 맺히지 못하고 파랑의 상이 빨강색 상의 뒤쪽에 맺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그림을 오래 보게 되면 눈과 뇌는 시야에 들어오는 전체 이미지의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수행하게 되어 시각체계에 상당한 스트레스가 주어지게 된다.

눈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착시의 예로 잔상(殘像)현상을 들 수 있다.

가령 빨강색을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하얀 벽을 쳐다보면 엷은 청록색이 시야에 남아 있는 잔상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사람 눈의 망막에 존재하는 세 종류의 시세포, 즉 각각 적, 녹, 청색 빛의 자극에 가장 민감히 반응하는 적추체, 녹추체, 청추체의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빨강을 계속 쳐다보게 되면 세 종류의 시세포 중에서 빨강에 반응하는 적추체가 가장 많이 일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적추체는 쉽게 피로해진 상태에서 빨강에 대해 둔해지게 되지만 녹추체와 청추체는 계속 민감하게 반응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상태에서 흰색 벽을 보게 되면 세 시세포들의 상태 사이의 균형이 깨져 있기 때문에 청록색 잔상이 인지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흰색 가운을 입고 진료를 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할 때만큼은 청록색 수술복으로 바꿔 입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시간의 수술 동안 계속 빨강색 피를 보아야 하는 상태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수술에 임한다면 가운을 볼 때마다 빨강의 보색인 청록색 잔상이 보이게 되고 수술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반면 청록색 수술복을 입게 되면 청록색 잔상이 생길 여지가 아예 없어져 버리므로 장기간의 수술에도 집중력을 방해할 잔상효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7) 파란 바다와 전자레인지

 

 

▲ 물이 빨강색을 흡수함으로써 우리 눈에 파랗게 보이는

바다의 모습

여름이 다가온다. 넓게 트인 푸른 바다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각박하고 바쁜 살림살이지만 에메랄드 빛깔의 여름 바다로 달려갈 휴가를 꿈꾸며 버티는 직장인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바다는 왜 파란색일까?

수돗물을 유리컵에 받아 놓고 보면 투명하게 보이는 듯한데, 왜 항상 “파란”, “푸른”, 혹은 “에메랄드 빛” 바다만 있는 것일까?

오늘은 우리에게 가슴이 탁 트이는 신선함을 안겨 주는 바다의 푸른 빛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바다의 색깔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색”이 무엇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햇빛이나 형광등의 빛은 흰색이지만 이 속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빛깔이 골고루 섞여 있다. 초등학교 시절 햇빛에 프리즘을 대어 무지개 색을 만들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 흰색 빛은 물체의 표면에 부딪혀 반사하면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 낸다.

 

▲ 종교건축물의 한 쪽 벽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형광등 밑에서 잘 익은 사과 하나를 바라 보자. 형광등에서 나온 흰색 빛은 사과에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 온다. 사과 표면에 입사되는 빛은 분명히 흰색이지만 사과는 우리 눈에 빨간색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사과 표면이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 주로 빨간색을 반사하고 나머지 빛깔들은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노란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햇빛이 병아리의 깃털에 부딪히면 주로 파란색 계열의 빛이 흡수되어 버린다. 흡수되지 않고 반사되는 빨간빛과 초록빛이 섞여서 눈에 들어 오면 우리는 노란색을 느낀다.

거대한 고딕 성당에 가면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운 색깔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모래와 탄산석회, 탄산소다 등을 녹여 투명한 유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금속 산화물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색유리의 색상이 결정된다. 집어 넣는 금속 산화물의 종류에 따라 햇빛을 구성하는 성분 중 색유리를 통과하면서 흡수되는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투명 유리에 코발트를 첨가하면 파란 색유리가 만들어지는데, 그 이유는 햇빛이 이 유리를 통과하면서 주로 빨강과 녹색 계열의 성분이 흡수되기 때문이다.

 

▲ 물분자가 마이크로파를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해

음식을 데우는 전자레인지

이 정도에서 왜 바다가 파란 빛깔을 띠는지 눈치챈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물은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 빨간색 계열의 빛을 약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햇빛이 바다 표면에 입사되면 비교적 덜 흡수되는 파란색 계열의 빛이 물 표면 근처에서 더 많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온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이다.

바닷속에서 수면을 바라보면 물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햇빛 중 빨간색 성분이 조금 흡수되면서 바닷물이 조금 푸르스름해지게 된다. 깊이 들어갈수록 이 색깔은 더 진해질 것이다.

이제 물분자(H2O)들이 모여 있는 바다가 왜 빨간색 성분의 빛을 흡수하는지 알아볼 차례이다. 물분자는 산소 원자 하나를 놓고 수소 원자 두 개가 약 104도의 각도로 결합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는 물분자 내에서 서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면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 분자들의 진동 운동은 보통 빛의 특정 성분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바닷물을 이루는 물분자들의 경우는 주로 빨간색 성분의 빛을 흡수한다.

 

▲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가 결합된 물분자의 개략도

비슷한 일이 음식을 데우는 전자레인지 속에서도 일어난다.

전자레인지는 1 초에 24억5천만 번 정도 극성이 바뀌는 마이크로파를 음식에 쬐어 준다. 그러면 음식 내 포함되어 있는 물분자들이 마이크로파의 장단에 맞추어 끊임없이 회전을 하면서 음식을 구성하는 다른 분자들과 부딪힌다.

북적대는 파티장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며 열을 내듯이, 물분자의 회전 운동은 마이크로파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음식을 데우는 열에너지로 바꾸어 놓는다.

물기가 전혀 없는 유리컵이나 플라스틱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려 해도 뜨거워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 밤의 장막을 걷어낸 백열전구

 

 

▲ 토머스 에디슨

노력하는 발명가로 잘 알려진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을 생각하면 우리는 흔히 축음기, 전구, 영사기 등을 떠올린다.

이 중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발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인류의 밤을 밝히는 인공조명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백열전구(白熱電球)를 꼽고 싶다.

백열전구가 발명된 지 벌써 1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 조명등은 오늘날에도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집안 천장 어딘가에 달려 있는 백열전구를 가만히 들여다 보자.

둥그런 유리구 내에 꾸불꾸불한 필라멘트가 지지대와 도입선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원 스위치를 켜게 되면 필라멘트의 온도가 자체 저항으로 발생하는 열에 의해 무려 섭씨 2천600도 정도로 달구어진다. 고온으로 달구어진 물체는 항상 빛을 방출하는데 이를 열복사(熱輻射)라 한다.

▲ 백열전구. 지지대와 도입선에

의해 고정된 텅스텐 필라멘트가

노란색 빛을 내는 것이 보인다.

고온의 물체가 내는 빛의 색깔은 물체의 온도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뜨겁게 달구어진 용광로 내부 쇳물이 내는 빛의 색깔은 쇳물의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붉은 색에서 점차적으로 흰색으로 바뀌게 된다. 수천 도의 온도를 정확히 잴 수 있는 온도계가 없던 옛날에는 쇳물에서 나오는 빛의 색깔로 온도를 추정하곤 했다.

백열전구도 마찬가지다. 필라멘트가 충분히 달구어지지 않아 필라멘트의 온도가 낮은 경우에는 주로 빨간색 성분의 빛이 방출되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이 전부 섞여 있는 노란색 계통의 빛으로 바뀐다.

▲ 에디슨의 백열전구를 소개하는 광고문구

필라멘트가 끊어지면 백열전구의 수명은 끝이 난다. 수명이 다한 백열전구를 가만히 흔들어 보면 끊어진 필라멘트가 흔들리면서 가벼운 소리가 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백열전구는 필라멘트의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빛을 내놓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높은 온도에 견딜 수 있는 텅스텐 필라멘트를 사용한다.

텅스텐의 녹는점은 무려 섭씨 3천410도나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높은 녹는점을 가지고 있는 텅스텐 필라멘트도 백열전구 내에서 고온으로 달구어지면 끊임없이 증발하면서 전구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텅스텐의 증발을 막기 위해 오늘날에는 보통 질소나 아르곤과 같은 가스를 전구 내에 함께 봉입한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초기부터 텅스텐 필라멘트가 쓰였던 것은 아니다. 에디슨은 자신의 연구팀과 더불어 종이나 대나무 등 각종 섬유를 태워 얻어지는 수백 가지 종류의 탄소 필라멘트를 끊임없이 테스트하였다. 1879년 10월 22일 에디슨의 멘로파크 실험실에서는 무명실을 탄화(炭化)하여 얻어진 탄소필라멘트가 진공 유리구 내에서 빛을 발하면서 무려 14시간30분을 버티었다.
 


▲ 에디슨이 발명한 초기의 백열전구

본격적인 인공조명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것이다. 각종 탄소 필라멘트는 1910년 미국의 쿨리지(Coolidge)가 텅스텐을 가늘게 뽑아 내는 데 성공하면서 텅스텐 필라멘트로 교체되게 되었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최초로 생각해 낸 사람은 아니다.

백열전구의 개념은 이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1860년에 영국의 조지프 스완이 탄소 필라멘트를 시도한 바도 있다. 에디슨이 진정으로 발명한 것은 장시간을 버틸 수 있는 필라멘트의 재질과 더불어 전기를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조명등을 밝힐 수 있도록 한 ‘전기 조명 시스템’이었다.

그는 기업자본의 재정 지원을 끌어들이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대규모 연구실을 운영하였고 이를 통해 전구뿐 아니라 발전기, 도선 및 절연체 등 조명 네트워크의 각 요소에 대해 끊임 없는 실험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렇듯 한 세기를 넘게 세계의 밤을 풍미해 온 백열전구지만 오늘날에는 퇴조기에 접어든 듯하다.

백열전구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사용하는 총 전기에너지의 불과 5% 정도만을 빛으로 바꾼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 백열전구의 작동원리를 나타내는

개략도


오늘날에는 백열전구보다 다섯 배 정도 발광 효율이 더 뛰어난 형광등이 조명의 안방 주인을 차지해 버렸고 최근에는 효율과 수명 면에서 백열전구를 능가하는 발광다이오드 방식의 조명도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 앞마당의 한 켠에서 노란색 따뜻함으로 어둠을 밝혀 주던 백열전구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9) 스타워즈의 광선검

 

 

20여 년 전 영화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크 사이의 결투에 사용된 광선검(light saber) 소품이 베버리 힐즈 영화기념품 경매에서 6만달러(약 6천만원) 이상의 가격에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뉴스가 최근 방송을 탔다.

광선검은 제다이 기사들의 포스와 결합되어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스타워즈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무기다.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이용해 빛의 막대를 튀어나오게 하거나 길이를 조정하기도 하는데 고대 제다이의 거점으로 알려진 오수스 행성에서 가져온 수정의 색에 따라 광선검의 색이 바뀐다고 한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광선검을 만들 수 있을까.

광선검의 외관은 매우 밝은 형광등, 혹은 형형색색의 빛을 만들어 내는 밤거리의 네온사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전 램프들은 유리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에서 빛이 방출되기 때문에 제다이 기사들이 한 번만 휘둘러 부딪치면 그 몸체가 산산조각나 버릴 것이 분명하다.

광선검 손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의 또 다른 강력한 후보로는 ‘레이저’를 들 수 있다.

레이저는 퍼지지 않고 똑바로 진행하는 성질인 직진성이 강하고 단위 면적당 에너지의 강도가 매우 높은 빛이다. 이런 특성으로 금속을 절단하거나 용접을 하는 산업용 레이저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레이저로 광선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그 어떤 빛으로도 광선검을 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빛의 성질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수 있다.

요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레이저 포인터로 레이저빔을 발사하면 이 빛은 초속 30만㎞라는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날아간다. 직진성에 의해 끝없이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레이저빔은, 강도가 충분하고 경로 중간에 장애물이 없다면 달의 표면까지도 갈 것이다. 때문에 스타워즈의 광선검처럼 일정한 거리까지만 날아가는 빛을 만드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

설사 일정한 공간에 국한된 강력한 빛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스타워즈에서 볼 수 있었던 현란한 결투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광선검 길이 정도로 레이저빔을 가두기 위해 검의 끝에 반사경 역할을 하는 거울을 놓는다고 하자(공중에 거울을 어떻게 고정시킬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레이저 광선검으로 다스 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크로 하여금 결투를 벌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 개의 광선검이 부딪치는 순간 두 사람은 검의 충돌로 인한 반발력을 예상해 몸 상태를 준비하겠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충돌도 일어나지 않으면서 검을 내리친 방향으로 넘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빛을 구성하고 있는 광자(光子 · photon)는 상호작용이 전혀 없어 서로 부딪치더라도 그냥 지나쳐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한 레이저를 손에 쥐고 휘두르더라도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광선검과 관련된 또 하나의 옥의 티는 광선검이 우리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직진하는 빛을 측면에서 보려면 빛이 떠도는 먼지 등에 의해 산란되어야 한다. 그런데 광선검이 사방팔방으로 내뿜는 빛의 세기는 산란으로 인한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 강하다.

먼지나 공기 분자가 전혀 없는 우주 공간의 전투장면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레이저빔, 그리고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인 공기가 전혀 없는데도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우주선의 모습 등은 우주 SF 영화들이 저지르는 실수들 중 단골 메뉴이다.

그렇다면 스타워즈에 나오는 광선검은 어떻게 연출한 것일까?

오직 컴퓨터 그래픽 기술만 이용해서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장면을 만들어 내는 오늘날에는 광선검 정도 처리해 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디지털 기술일 것이다.

그렇지만 1970년대에는 쉽지 않았다. 결국은 배우들로 하여금 막대기를 들고 싸우게 한 후에 광선검 애니메이션을 그려 넣는 ‘로토스토핑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10) 터널 내 조명등이 황색 빛깔을 띠는 이유는 ?

 

▲ 동일한 양의 빛이

색깔별로 어느 정도로 사람 눈에 인지되는가를 나타내는 비시감도 곡선 및 나트륨 등이 내는

황색 빛의 위치(589 nm)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고속도로는 산과 바다로 향하는 가족 단위의 차량들로 북적일 것이다. 장거리 운전에 몸은 피곤하겠지만 오랜만에 떠나는 가족 여행에 마음만큼은 설렘으로 가득 찰 것이고, 창밖의 풍경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강원도처럼 산이 많은 지역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수많은 터널들을 지나가게 된다. 갑자기 어두운 터널 내에 들어가게 되면 눈이 적응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 터널 입구와 출구에서는 램프의 숫자를 늘려서 조명의 밝기가 터널의 중간 부분보다 더 밝게 되도록 조정해 준다.

그런데, 터널을 지날 때 우리를 비춰주는 조명의 빛깔을 떠올려 보자. 우리가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등의 빛깔이 주로 흰색인데 반해서 터널 내 조명 빛깔은 100%는 아니지만 황색 빛깔을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동차의 뒷좌석에 않아 있는 아이들이 “왜 터널에서는 항상 황색 빛이 나는 전구를 사용하나요?”라고 물어볼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 저압 나트륨등의 구조

터널 내에 쓰이는 황색 빛깔의 전등은 “나트륨등” 혹은 “나트륨 램프”라고 불리는 전등이다. 나트륨(Na, Sodium)은 원자번호가 11번인 가벼운 원소로서 소금(NaCl)을 구성하는 주성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보통 네온과 나트륨을 램프 내부에 같이 봉입하는데, 램프를 점등시키게 되면 처음에는 네온 가스가 붉은 빛을 내지만 등의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나트륨이 증발되면서 나트륨의 방전색깔인 황색 빛이 발생한다. 이 황색 빛은 보통 나트륨의 D선이라 불리는, 파장이 589 나노미터(nm)인 빛으로서 다른 색깔의 빛이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단색광(單色光)이다.

나트륨등은 한 가지 색깔의 빛만을 내기 때문에 가정이나 사무실용 조명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

황색 빛만 방출하는 전등 밑에서는 물체의 색깔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색깔의 구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장소, 특히 야간의 옥외용 조명으로서 나트륨등은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 나트륨 증기의 압력에

의존하는 나트륨등의 스펙트럼

우선 나트륨등은 단일 색깔을 내는 광원이기 때문에 물체의 형태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는 특히 야간에 도로 위에 존재하는 요철들을 잘 식별할 수 있게 해 준다.

두 번째로, 나트륨등이 내는 황색빛은 안개나 매연이 있는 조건에서 보다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이것은 보통 빛의 파장이 길어질수록 산란이 덜 되고 멀리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기인한다.

브레이크등으로서 가시광선 중 파장이 가장 긴 빨간색 램프를 이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나트륨등은 안개가 끼여 있는 상황에서 운전자의 투시성을 좋게 해서 교통사고를 방지하는 데 일조한다.

마지막으로, 나트륨등은 발광효율이 매우 높아 야간에 밝은 빛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람의 눈이 가지는 감도 곡선 때문이다.

▲ 1931년 최초로 나트륨등이

가로등으로 설치된 네덜란드

남부의 에인트호벤 거리

사람의 시각체계는 동일한 양의 빛이 들어오더라도 그 빛의 색깔에 따라 차별대우를 해 받아들인다. 인간의 시각은 파장이 555 나노미터인 녹색빛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반면에 파랑과 빨강색으로 갈수록 인지하는 양이 줄어들게 된다. 이들의 바깥 쪽에 존재하는 자외선과 적외선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나트륨등이 내는 589 나노미터 파장의 황색빛은 녹색빛의 근처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눈이 가장 잘 인지할 수 있는 빛깔들에 속한다. 동일한 전기에너지를 쓰더라도 나트륨등이 만드는 빛의 양, 즉 사람의 눈이 인지하는 빛의 양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형광등의 두 배이다.

높은 밝기를 유지해야 하는 터널 내 조명등으로 나트륨등은 매우 이상적인 광원이라 할 수 있다.

 

- 고재현 한림대 전자물리학과 교수

- 한국일보 / ⓒScience Times [빛으로 보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