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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덕비의 시초가 된 청백리 최석(崔碩)의 일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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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에 가면 ‘팔마비(八馬碑)’가 있다. 고려 충렬왕 7년(1281) 승평부사 최석(崔碩)이 선정을 베풀다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전임되자, 관례대로 부민들이 말 7마리를 바쳤다. 최석은 이같은 관례는 폐습이라 여겨 개경에 도착하자, 곧 도중에 낳은 새끼 말 한 마리까지 합하여 말 8마리를 돌려보냈다.
이 때문에 폐단이 끊어졌고 고을사람들은 그의 선정을 높이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웠다. 그것이 팔마비이며, 송덕비(頌德碑)의 첫 사례가 된다.
고려시대에는 어진 관리를 ‘양리(良吏)’라 하여 남들의 모범이 되게 하였다. 청렴에 역점을 두고 권력과 부귀에 아부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과 관후한 성격을 높이 쳤다.
양리를 선정하는 기준은 첫째 지방관을 지낸 사람일 것, 둘째 청신(淸愼)하고 인후(仁厚)로써 주민을 잘 다스린 사람일 것, 셋째 옛날의 양리와 비교하여 부끄럽지 않은 사람일 것 등이었다.
청백리(淸白吏)를 으뜸으로 치켜세운 조선시대에는 『전고대방(典故大方)』에 219명, 『청선고(淸選考)』에 186명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청백리는 유교적 지도이념과 주자학적 실천수행의 도에 철저했던 인물들이었다. 청백리 제도는 조선조에 관리들 중에서 청렴결백한 사람만을 선발하여 후세에 길이 거울삼게 했던 ‘관기숙정(官紀肅正)’을 위한 제도였다. 여기에 선발되기까지는 엄격한 자격 심사의 심의를 거쳐 임금의 재가를 얻어야 했다. 또 뽑히면 그 자손들도 선대의의 음덕을 입어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특전도 주어졌다.
그러다 숙종 이후에는 이들 청백리의 자손이 너무 불어나 삼상(三相)과 고관이 추천하여 대개 5명 정도가 특채 등용되었다. 때문에 청백리가 되거나, 청백리가 많이 난 가문들은 그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1695년(숙종 21)에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이 청백리를 선발하면서 살아 있는 경우에는 ‘염근리(廉謹吏)’, 죽은 후에는 ‘청백리(淸白吏)’라고 호칭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백리들이 지켰던 공직윤리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며, 청렴(淸廉), 근검(勤儉), 도덕(道德), 경효(敬孝), 인의(仁義) 등을 매우 중요시했다. 더욱이 이것들은 국가에 대한 사명감, 왕조에 대한 충성심, 백성을 위한 봉사정신 등 개인적인 생활철학으로 정립되었고, 나아가 공직자의 윤리관으로 확립되었다.
요즘처럼 나라가 어렵고 국민이 힘들어하는 때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여길 때 공무원만이라도 올곧고 청렴하다면, 그래도 의지하고 지탱할 지게 작대기 마냥 일어설 때 보태주는 힘이라도 된다.
다산이 일러준 청백리(淸白吏)의 길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율기(律己) 청심(淸心)조에서 “청렴(淸廉)은 수령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지적한 다음, 『상산록』을 인용하여 청백리를 3단계로 구분하였다. “청렴에 세 등급이 있으니, 나라에서 주는 봉급 이외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만일 먹고 남은 것이 있더라도 가지고 돌아가지 않고, 돌아가는 날에는 한 필의 말만 남는 것이 상고시대의 진짜 청렴한 관리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봉급 이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되 명분이 바른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도 남는 것이 있다면 집으로 보내는 것이 중고시대의 소위 청렴한 관리라는 것이다.
가장 아래로는 이미 전례가 있는 것은 비록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되 아직 전례가 되지 않은 것을 제가 먼저 전례를 만들지 말고, 벼슬을 팔지 않고, 재앙을 핑계로 곡식을 농간하지 않고, 송사나 옥사를 돈으로 처리하지 않고, 세금을 더 받아서 남는 것을 착복하지도 않는 것이 오늘의 소위 청렴한 관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현실에서 보면 공무원은 대부분 청백리에 속한다. 더구나 평생직장과 높은 녹봉(?)이 보장된 신분이기에 청백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는 공무원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요즈음 사람들은 뇌물(돈)만 주면 무엇이든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사람의 마음, 양심까지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노력의 대가로 받을 수 있는 정당한 보상은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에게 떳떳한 것이지만, 노력 없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에게서 받는 것은 얼마나 비양심적인가? 결국 양심을 버리고 받으면 ‘도적’이 되고, 양심을 지켜 받지 않으면 ‘청백리’가 될 수 있는 차이는 물욕에 빠져 크게 먹느냐 적게 먹느냐가 아니라 국민을 얼마나 위하느냐에 달려있다.
『여씨춘추』에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여닫는 문지도리는 좀이 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조직이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안산시의 옛 속담에는 아낙네들이 썼던 “창구멍으로 엿보면 눈이 시리다”는 말이 있다. 부정을 남몰래 엿보는 뜻으로 쓰인 이 말이 아니더라도, 눈이 시리도록 청렴한 공무원을 제대로 대접해주는 일 또한 필요하다. - 경기문화재단, 경기도이야기 제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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