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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서울견문록 ⑤] 빌딩 숲으로 흐르는 역사와 전통의 맛
종로구 - 변함 없는 대한민국 1번지 |
나는 고등어가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비린내가 좋다. 고등어의 참맛을 처음 느낀 때는 5년 전 가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산 뒤 나오던 참이었다. 와퍼 버거를 사먹으려고 ‘버거킹’ 쪽으로 걸어가는데 옆 골목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 골목의 이름은 피맛골. 이 명칭은 ‘피해 가는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피맛골의 첫 가게인 ‘열차집’은 6·25전쟁 직후 문을 열었다. 녹두를 갈아 만든 반죽을 돼지기름으로 부쳐낸 빈대떡이 일품. 낙지볶음과 ‘불판’으로 유명한 ‘서린낙지’로 이어지는 골목엔 버석버석한 생선구이를 내놓는 식당들이 늘어섰다. 그중 한 곳인 ‘함흥집’에선 최영민(67), 김용조(66) 씨가 고갈비를 씹으며 반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투가 귀에 익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억양이었다. “고향이 서울이시죠”라고 내가 물었다. 지긋한 서울내기가 쓰는 말엔 표준어와는 다른 ‘서울 사투리’가 있다. ‘~했구요’ ‘~읍습니다’ ‘~하시어요’ ‘삼춘’ ‘이예쁜’ 같은 말이 그렇다.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유의 억양도 있다. 최씨는 종로구 청진동, 김씨는 종로구 운니동이 고향이라고 했다. “매일 점심은 여기 와서 먹어. 우리처럼 고향이 눈에 밟히는 사람들도 없을 거여요.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은 비웃겠지만서두. 교보문고 터엔 맑은 샘물이 있었거든. 물맛이 지금도 입에 아른거리네그려.”(최영민 씨)
고등어구이 정식을 뜨던 나는 두 어른과 합석했다. “종로가 고향이다. 가회동에서 태어났다”고 했더니 한 어른이 팔을 낚아챘다. 함흥집의 바깥주인이었다. 김용조 씨는 40년 넘게 이 골목에서 고등어를 구웠다. 작고한 어머니 대신 고향에 남아 숯 냄새를 맡는다. 그가 1960년대부터 스크랩한 신문을 꺼내왔다. 피맛골을 다룬 신문기사를 꼼꼼히 모았다고 했다.
‘함흥집’이 내놓는 고등어구이는 달았다. 그날부터 나는 고등어가 좋아졌다. 내가 주6일 야근(취재를 빙자한 술자리가 더 많다!)하는 탓에 저녁을 늘 혼자 먹는 아내에게 일요일이면 고등어를 구워달라고 졸랐다.
‘종로구’라는 자치구 명칭은 조선왕조 때 육의전(六矣廛 · 국가 수요품을 납품한 여섯 종류의 큰 상점)이 섰던 길의 일제강점기 이름에서 나왔다. 1914년 일제는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이 지역의 방(坊) 계(契) 동(洞)을 합쳐 6개 구역으로 나눴다. 경성부(京城府) 종로1정목~종로6정목(지금의 종로1가~ 6가)이 그것이다.
세종로 네거리 한쪽 모퉁이엔 비각(碑閣)이 서 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보위에 오른 지 40년을 기념해 세워진 것이다. 이 비각으로 들어가는 돌문에 쓰인 ‘만세문’이라는 글씨는 영친왕 이은(李垠)이 여섯 살 때 쓴 것이라고 한다. 이 비각부터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에 이르는 길이 종로다. 그 대로의 뒷골목이 피맛골.
피맛골, 청진동 등 추억의 거리 재개발로 곧 사라져
조선왕조 때 고관대작이 교자에 올라 거드름을 피우며 종로통에 행차하면 민초는 머리를 조아리고 벼슬아치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양반네들의 거드름이 아니꼬운 이들은 말 한 필 겨우 지나는 피맛길을 선택했다. 민초의 애환을 품고 수백 년을 이어져온 그 길이 지금 사라지고 있다. 고층건물은 고등어 굽는 냄새, 젓국 비린내를 좋아하지 않게 마련이다.
11월21일 오전 11시 ‘함흥집’에선 아주머니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상엔 콩나물국, 어묵볶음, 파김치, 생선구이가 올라왔다. 고등어 굽는 냄새 덕분인지 군침이 돌았다. 김용조 씨가 “내년 1월 가게 문을 닫는다. 이 골목이 다 헐린다”며 웃었다. 그는 “시원하다”고 했지만 아쉬움을 숨기지는 못했다. 보상금은 3.3㎡당 1억원씩 10억원을 받았다고 했다. 최영민 씨는 고령자 취업 정책 덕분에 일자리를 얻었다.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는 옛 건물이 헐린 자리에 고층빌딩이 올라서는 게 마뜩잖다. “청계천을 되살리면서 청진동을 죽인다는 게 말이 되나. 화려한 곳이 있으면 옛 냄새가 가득한 곳도 있어야지.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남아 옛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청진동, 공평동은 재개발을 통
이곳은 상전벽해 빌딩 숲으로 바뀐다. 선지해장국의 원조를 자처해온 ‘청진옥’은 종로1가 르메이에르빌딩 1층으로 옮겨갔다. 냉면과 갈비탕 잘 내기로 소문난 고깃집 ‘한일관’은 강남구 신사동으로 떠났고, 44년 전통의 중국 음식점 ‘신승관’은 중구 북창동으로 옮겨갔다. 조리법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얘깃거리, 느낌이 담긴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옛 골목이 스러진 자리엔 키 100m가 넘는 빌딩 6개가 들어선다. 1호선 종각역과 5호선 광화문역은 지하 아케이드로 연결된다. 새로 올라서는 건물의 지하 공간을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처럼 꾸미는 것이다. 이 아케이드는 2009년 6월 완공되는 740m(광화문~청계광장) 길이의 광화문광장과 더불어 도심의 새 명물이 될 것 같다.
공평동에서 동쪽으로 길을 건너면 인사동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골동품상가가 모여들었으며 외국인에겐 ‘Mary’s alley(메리의 골목)’라고 불린다. ‘스타벅스’ 간판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알파벳이 아닌 한글로 적혔을 만큼 한국적인 곳. 인사동의 북쪽으로는 관훈동, 남쪽으로는 적선동, 동쪽으로는 낙원동이 섰다.
낙원동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종잡을 수 없는 한국식 뒤죽박죽 문화의 축소판. 낙원동엔 아귀찜집, 족발집이 아귀다툼하듯, 그러면서도 조화롭게 들어섰다. 낙원상가는 40년 역사를 품은 세계 최대의 악기백화점. 그 주변에 수줍게 들어선 게이바는 동성애자들의 쉼터다. ‘낙원빌딩’(낙원아파트의 공식 명칭이다!) 꼭대기엔 설치미술가 최정화(46) 씨의 ‘가슴시각개발연구소’가 있다. 그는 싸구려 샹들리에, 과속차량 단속용 마네킹 경찰 등을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에 옮겨다 놓았다. 화가와 문인이 모여들어 창작활동을 벌이는 낙원빌딩을 하나의 공동체 사회로 간주하는 그는 키치적으로 ‘우리가 사는 곳’을 드러낸다.
낙원빌딩에서 내려다본 ‘낙원동, 돈의동의 종로’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닮았다. 낙원동의 예술가들은 낙원상가를 종합문화공간으로 가꾸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악기전문가 김동철(49) 씨는 “낙원동은 예술가들의 놀이터다. 낙원이다”라고 했다. 낙원빌딩 4층의 허리우드클래식-서울아트시네마(옛 허리우드 극장)에선 오래된 영화-영웅본색-를 상영하고 있었다.
창덕궁의 보석 비원 숲은 도심의 숨통이자 휴식처
돈의동의 골목은 좁고 지저분하다. 주택이 아등바등 들어선 골목엔 연탄가게가 남았고, 큰길에 접한 골목엔 밥집이 복닥복닥하다. 1965년 200원부터 시작한 ‘찬양집’의 해물칼국수는 초등학교 다닐 적 내가 가장 좋아한 음식이다. 그런데 맛이 예전만 못하다. 오십 걸음 떨어진 할머니칼국수가 장사가 훨씬 잘되는 것도 맛 때문이다.
11월24일 오전 11시40분. 또 10분 늦었다. 줄 맨 뒤에 섰다. 11시30분엔 도착해야 줄 안 서고 할머니칼국수의 국수맛을 볼 수 있다. 멸치로 우려낸 맛국물 냄새 덕분에 코가 즐겁다. 잡지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20대 여성이 “사리(면 추가)를 달라”고 외친다. “시골집에서 해 먹듯이 그렇게 내놓는 게 비결”(강전석 할머니)이란다.
할머니칼국수에서 나와 돈화문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면 돈화문(敦化門)이 나온다. 1412년(태종 12)에 세워진 창덕궁(昌德宮)의 정문. 궁궐의 위엄을 살리는 문루의 양식이 돋보인다. 행정구역으로 창덕궁은 종로구 와룡동에 속한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창덕궁의 보석은 ‘비원’으로 알려진 ‘금원(禁苑)’이다. 창덕궁 금원은 후원(後苑) · 북원(北苑)이라고도 불린다. 동산과 숲을 조경으로 삼으면서 정자와 집칸을 배치한 원림(園林)의 풍취는 인공의 정원과는 격이 다르다. 금원의 숲은 도심의 숨통이다. 휴식처다. 서울대병원 본관(종로구 연건동)에서 내려다본 금원의 아름다움은 아찔하다. 올해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이 원림에서 놀았다. 여름 금원은 맨발로 걸어야 참맛이다. 비가 오면 금상첨화. 바짓가랑이는 성가시고 발부리부터 올라오는 촉감은 짜릿하다. 발샅을 타고 오르는 대지의 느낌이 황홀하다. 비릿한 숲 향기는 숲이 깊어질수록 흙냄새를 만나 가라앉는다. 숲 비린내를 따라 오르면 금원의 으뜸 비경이라는 옥류천을 만난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경쾌하다. “금원 숲은 예사로운 숲이 아니다. 보고 싶다 해서 어느 때나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가고 싶다고 해서 어느 곳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과 짜인 노정에 따라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함께 거닐어야 조선 숲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비록 이런 부자연스러움과 불편함이 숲을 찾는 걸음에 뒤따를지라도, 금원 숲은 이런 속박을 상쇄할 만큼 매혹적이고 가치가 있다. 회색빛 거대 도시의 한가운데, 전형적인 우리 숲의 극치를 보여주는 금원 숲은 가장 한국적인 풍토성을 지녔다. 구릉이나 얕은 계곡과 같은 자연 지세를 최대한 이용해 나무와 물을 어우러지게 만들고, 이러한 자연 풍광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물을 앉혔던 선조들의 여유가 엿보이는 곳이다.”(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
북촌 한옥은 외국인 위한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명성
녹음이 깊어진 넓은잎나무가 만드는 ‘바다’는 무표정한 것 같으면서도 하루하루가 달랐다. 초가을 엽맥(葉脈)의 몸부림은 잠시였다. 초록 바다는 넓은잎나무가 만든 별천지로 바뀌었다. 숲 빛깔을 가슴에 담는 즐거움은 경이롭다. 신나무·복자기·당단풍·단풍이 꾸며낸 금원의 가을은 정욕을 일으킬 만큼 탐난다.
겨울의 금원은 숲소리가 매력이다. 솔숲이 만드는 소리는 격이 다르다. 영혼을 깨우듯 숲 전체가 울린다. ‘쏴아~’ 하는 소리가 장엄하다. 취한정[翠寒亭, 임금이 옥류천의 어정(御井)에서 약수를 마시고 궁으로 돌아가다 쉬던 곳]의 숲소리는 조상들이 왜 솔숲에서 태교를 했는지 가르쳐준다. 함박눈 온 날 금원은 ‘낙원구 행복동’이다.
돈화문에서 율곡로를 거슬러 오르면 계동이다. 계동엔 할아버지의 친척이 살았다.
‘계동 할머니’는 박하사탕, 바니사탕을 끼고 살았다. 할머니가 준 사탕은 달았다. 계동 현대그룹 사옥은 옛 휘문중학 교정이다. 계동은 조선왕조 때 상류층이 살던 북촌(北村)에 속한다. 북촌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계동 재동 가회동 원서동 안국동 사간동 소격동 삼청동이다.
북촌의 한옥은 ‘feeling Korea’의 매혹적인 첨병이다.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활용되는 계동의 락고재(樂古齋). 이곳에서 외국인들은 한국의 선비문화, 그 속에 담긴 풍류에 흠뻑 빠진다. 한옥을 새로 지어 일본의 료칸처럼 한국을 상징하는 숙박시설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문화는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안국역에서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가회로엔 헌법재판소가 섰다. 언덕길을 오르면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저택이 이어진다. 그리고 한옥마을. 돌담 너머로 보이는 창덕궁의 풍광이 눈부시다. 가회동 31번지는 연인들에게 사랑받는 골목길. 영화 ‘비몽’(김기덕 감독, 2008년)에서 란(이나영 분)이 옛 연인의 집을 찾아 걸은 곳이다.
옛 정취 풍기던 삼청동 젊은이의 거리로 변신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면 삼청동이다. 옛 정취가 고즈넉하던 이곳은 젊은이의 거리로 변모했다. ‘크라제버거’ ‘던킨도너츠’ 같은 프랜차이즈 업체도 들어섰다. 한옥 스타일의 격자무늬로 외부를 꾸미고 한글로 쓴 간판(더 커피빈 앤 티리프)을 내건 ‘커피빈’은 삼청동의 오늘―한국문화, 서구문화가 조화롭게, 그러면서도 안타깝게 어우러졌다―을 상징한다.
오랫동안 삼청동을 지킨 ‘진선북카페’를 끼고 북쪽으로 돌면 청와대 앞길이 나온다. 세종로 1번지에 터를 잡은 청와대는 한국에서 가장 너른 마당을 가진 집. 청와대를 지나 조선의 정궐(正闕)인 경복궁(景福宮) 돌담을 따라 걸으면 통의동이 나온다.
통의동의 랜드마크는 열린책들 사옥 ‘더 소설’. 통이동과 잇닿은 부암동은 종로구의 보석이다. 문화 밸리다. 삼청동이 ‘옛것’을 배신했다면, ‘서울 속 산촌’ 부암동은 ‘옛것’을 보듬으면서 진화한다. ‘대성이용원’ ‘고은미용실’이라는 간판이 붙은 오래된 이발소와 뷰티숍, 1960년대식 간판을 내건 낡은 가게와 문화공간이 잇대어 서 있다. 생커피콩을 직접 볶고, 묵힌 뒤 갈아서 내놓는 ‘클럽 에스프레소’(북악산길 삼거리)의 커피가 향기롭다.
- 글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 주간동아, 2008.12.09 664호(p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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