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39. 백두산 가는 길, 청나라는 몰랐다

Gijuzzang Dream 2008. 12. 20. 20:38

 

 

 

 

 

 

[간도오딧세이] 백두산 가는 길, 청나라는 몰랐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

1712년 백두산에 정계를 하기 위해 북경을 떠난 청의 일행이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조선의 길 안내자였다.

<북정록>에는 북경에 갔던 동지사(冬至使)가 올린 장계를 접반사 박권이 읽은 부분이 소개돼 있다.

 

동지사가 청의 정계 책임자인 목극등을 만난 부분이다.

목(목극등)은 ‘조선에서는 인삼을 채취하는 자들이 길을 잘 알 것이니, 그들로 하여금 대령하였다가 길을 가르쳐 주게 하도록 하라’고 하여 저희들은 답하기를 ‘이들은 저희가 귀국한 후에 저희 나라의 지방관에서 찾아서 대령하도록 하겠지만 다만 저희 나라가 삼 채취의 금지가 매우 엄해 왕래하며 길을 아는 사람들이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인이 청나라 관리 길 안내


<조선시대 선비들의 백두산 답사기>(혜안)에 실린

<북정록> 국역을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인들은 삼을 채취하기 위해 백두산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때로는 백두산 너머 북쪽으로 무인지대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무인지대란 조선·청 어느 사람도 들어갈 수 없도록 청이 정한 봉금 지역이었다.

조선에서는 청이 꺼린다는 이유로 이곳에 가지 못하게 했으며 적발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한 발걸음은 막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청인들은 기껏해야 지금의 심양, 훈춘 정도에 발길이 닿을 뿐이었다.

수백 리나 떨어진 곳에 사는 청인들이 백두산 지리를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이 조선인 길 안내자였다.

목극등이 조선의 접반사 일행을 만나기 직전 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문제로 대두됐다.

청에서 ‘그대 나라의 예에 비추어 준행하라’고 조선에 글을 보냈지만,

조선 관리들이 이 뜻을 단순한 문장으로 이해한 것이다.

청의 관리는 이 말이 청의 관리들이 타고 갈 말과 짐꾼임을 뒤늦게 밝혔다.

 

청의 관리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러면 장백산의 길을 안내하는 사람도 미리 대기하지 않았소.”
“김 당상관이 전한 사신의 보고서에는 두 가지 사항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급 통역관 몇 명을 파견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장백산을 조사할 때 길 안내인을 미리 대기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에서는 허겁지겁 청의 일행이 탈 말을 현장에서 구했다.

길 안내인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청의 대표인 목극등은 조선 역관을 만나자마자 다음과 같이 물었다.
“장백산으로 가는 길을 잘 아는 사람을 대령해 놓았는가?”
“길 안내인은 혜산 땅에 이르면 당연히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청의 관리가 정계를 위해 백두산에 오를 때 길 안내인 3명과

나무를 베며 길을 만들 인부 10명이 따라붙었다. 그들은 목극등을 백두산 정상으로 안내했다.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역사적 사실, 주민의 거주, 관청의 관할, 지리적 정보 등이 상대국보다 우월해야 한다.

1712년 조선과 청의 정계 때 조선은 백두산 지역에서 훨씬 더 우월한 상황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계에 필요했던 길 안내자다.

청은 자기들도 잘 모르는 땅을 단지 힘이 세다는 이유로 자기 땅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 땅이 하루 아침에 청나라 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 2008 12/30   위클리경향 806호

- 윤호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