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오딧세이] 백두산정계비는 '역사적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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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국에서 한창 문제가 됐을 때다. 국회에서 열린 간도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한 기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껄끄러운 문제였기 때문이다. 백두산 정계비는 천지의 남동쪽에 있는 장군봉(일명 백두봉)에서 남동쪽으로 10리 즉 4㎞를 더 가야 있다. 여기에서 두 강을 경계선으로 조선과 청의 경계를 나누면 천지는 자연스럽게 청의 땅이 되고 만다.
아니면 압록강과 두만강이냐로 양국간에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논란과 관계없이 백두산 정계비를 인정하면 백두산 천지는 청의 땅임이 분명해진다. 이런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쉽게 말하지 않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1712년 세운 백두산 정계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토문강이 두만강이라는 청의 주장대로 1909년 일본과 청이 간도협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중국의 국경은 현재까지 두만강과 압록강이 돼 버렸다. 백두산 정계비는 국가간 영토협상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하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무지의 역사가 빚어낸 빅 해프닝 또는 역사적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중국 학계조차 백두산 정계비를 조선에서 옮겨다 놓았느니, 울타리를 조선에서 마음대로 설치했느니 하면서 백두산 정계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계 일부에서도 백두산 정계비가 가진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계비가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역사가 그대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계비가 있던 자리에는 주춧돌이 남아 있고 이곳의 오른쪽에는 압록강이, 왼쪽에는 송화강의 상류인 토문강이 흐른다. 중국 측에서 봤을 때 이 물줄기를 몇십 리 밖의 두만강으로 연결하고 싶겠지만 첨단 현대문명 사회에서도 그런 ‘백두산 운하’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선의 대표 관리는 청의 만류로 백두산에 오르지 못했다. 상대가 없는 정계를 한 셈이다. 지리도 밝지 못한 마당에 억지로 정계를 하다 보니 말도 되지 않는 강을 연결해 경계라고 우기게 됐다. 백두산 천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선인이 우리 땅이라고 떳떳이 주장할 수 없었던 현실과, 전혀 지리적 정보가 없으면서 백두산 천지만 차지하려 했던 청 조정의 과욕이 빚어낸 우스꽝스러운 역사가 바로 백두산 정계비다. - 윤호우 기자 - 2008 12/09 위클리경향 8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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