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김만덕 은
객주집을 차려 숙박업을 시작했고 그와 함께 물건을 싸게 사두었다가 이문을 남기는 장사를 했다.
배도 여러 척 부리고 숙박업과 도매상을 하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는데
1785년 심한 흉년으로 제주도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이때 김만덕은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 육지에서 쌀을 사왔다.
그리고는 관덕정과 삼성혈 앞에 가마솥을 열 개씩 걸어 놓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죽을 쑤어 먹였다.
그렇게 하여 한겨울을 나고 다음해 오월까지 그녀의 이러한 선행은 계속됐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서 김만덕은 두 가지 소원을 이야기한다.
임금님을 직접 알현하는 것과 금강산을 유람하는 것. 이 두 소원을 김만덕은 모두 이뤘다.
조정의 선비들은 김만덕을 칭송하며 그녀를 기리는 글도 써주었다.
영의정이었던 채제공은 김만덕의 일대기를 듣고 글로 적어 <김만덕전>까지 지어줬을 정도이다.
그러한 김만덕이기에 오늘날 제주도에서는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려고
새로 만드는 오만원 권 새 지폐에 그녀의 얼굴을 여성 대표로 넣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유명한 부자로는 경주 최씨 가 있다.
삼백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만석군의 부를 가진 경주 최씨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유훈은 재산을 만석 이상 지니지 말라는 것이다.
즉 이익을 늘리려고 애쓰고 무모하게 행동함으로써 가난한 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지 말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가뭄이 왔을 때 논, 밭을 사지 않도록 했다.
불황 시 부동산을 사 모으면 손쉽게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최부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오히려 가뭄일수록 쌀을 꿔주고 돈을 꿔주어
가난한 사람들이 연명하려고 재산을 팔아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게 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은
바로 부자가 지닌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올바르게 설파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경주의 최부자 가문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재물은 똥거름과 같아서 한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지만 골고루 사방에 뿌리면 거름이 된다.”
그리하여 삼백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재산을 아낌없이 내던져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교를 설립하는데 바쳤다.
따뜻한 사회로 가는 길은
우리의 부자들은 이렇게 근검절약을 실천했고,
투철한 사회봉사 정신으로 나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라에 어려움이 닥치면 의병활동을 하기도 하고, 독립운동을 위해 재산을 바치기도 했으며,
굶어 죽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덕을 쌓아 집안의 평화를 유지했다.
오늘날 우리 이 땅의 부자들은 과연 어떠한 자신의 도덕적인 의무감을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남을 돕고 주위 사람들을 곤경에 내몰지 않는 것은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안전하고 따뜻한 곳으로 만드는 길임을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