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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 테마전] 고려 왕실의 도자기

Gijuzzang Dream 2008. 12. 8. 02:27

 

 

 

 

 


미술관 ∥ 테마전
[고려 왕실의 도자기]

 

- 고려 왕릉 출토 도자기 최초로 한 자리에 모아 공개 -

 

 

 

 

 ㅇ전 시  : “고려 왕실의 도자기” 


                  The Royal Ceramics of Goryeo Dynasty


 ㅇ전시유물 : 국보94호 <청자 참외 모양 병> 등 290여 점

 

                   (국보 4점, 보물 2점)


 ㅇ전시기간 : 2008. 12. 2~2009. 2. 15(76일간)


 ㅇ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Ⅱ 청자실

 

 


“고려 왕실의 도자기”라는 주제로 고려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조형적 우수성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이다.

“우리 청자는 흔히 ‘비색(翡色)’이라 일컬어지는 중국 청자의 영향을 받아 고려 초기부터 만들어졌지만

12, 13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자태나 빛깔에 있어 중국 것을 능가하는 청자를 빚어냈다.”

특히 12세기 전반기는 고려의 청자가 유약의 발색(發色)과 태토(胎土)의 정선(精選) 및 번조(燔造) 등

기술에서 고도로 세련되어 이른바 비색순청자(翡色純靑磁)의 전성기였다.

따라서 이 시대의 청자는 천하제일이라는 비색유(翡色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 17대 임금인 인종(仁宗, 1122~1146년)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문화재

모두가 최초로 공개되는 것을 포함해 국보 4점, 보물 2점 등 290여 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이번에 전시되는 인종 장릉 출토품은

1916년 도굴꾼과 결탁한 일본 골동품상이 조선총독부박물관에 팔아 넘긴 것으로

도굴 경력 때문에 진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장릉의 위치는 개성 주변으로만 추측될 뿐 아직까지 정확한 위치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출토품 중에는 국보 94호인 청자참외모양병과 함께

'황통(皇統) 6년'(1146)이라는 제작 연대가 적힌 인종의 시책(諡冊)도 들어있다.

인종 시책이란 죽은 인종에게 시호(존호)를 올리고 그 내력을 기록한 문서를 말하는 것으로

함께 출토된 유물이 장릉 부장품이라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여기에 강화군 고려왕릉 출토 도자기까지 포함하여,

12세기부터 13세기 전반의 시기에 해당되는 고려 왕실 도자기를 전시한다.

17대 인종 장릉(長陵), 19대 명종(재위 1170~1197년) 지릉(智陵),

21대 희종(재위 1204~1211년) 석릉(碩陵) 등 왕의 무덤과,

22대 강종(재위 1211~1213년)의 비인 원덕태후(元德太后)의 곤릉(坤陵),

24대 원종(재위 1259~1274년)의 비인 순경태후(順敬太后)의 가릉(嘉陵),

강화 능내리 고분 등은 편년 자료의 가치와 더불어 고려 왕실에서 선호했던 도자기의 실체를 보여준다.

 

몽고침입에 항거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한 후 이곳에 능을 조성하였던 희종과 순경태후, 원덕태후,

그리고 능내리고분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2001년부터 발굴 조사되어

강화 천도 시기 왕릉의 면모가 밝혀졌다.

그러나 모두 이미 도굴된 후 조사되어 전체적인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

확인된 도자기는 대접과 접시가 많은 수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잔탁, 향로, 매병 뚜껑, 병 뚜껑, 항아리 편, 매병 편 등 특수한 용도의 그릇들도 확인되었다.

비록 12세기 전성기 청자에는 못 미치지만

당시 고급도자기 생산의 중심지였던 전남 강진 사당리와 전북 부안 유천리에서 만들어진 도자기가

강화도에 임시 정부를 세운 고려왕실에 공급되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전란중임에도 고급도자기를 향유하고자 했던 고려왕실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개성 고려 궁궐터와 왕의 행궁(行宮)이 있었던 파주혜음원(惠陰院) 터에서 출토된

다양한 도자기들은 고려 왕실에서 실제 사용했던 도자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파주에 위치한 혜음원 터는 1120년에 착공하여 1122년에 완공했다는 기록이 있는 유적지이다.

고려 12세기 최고의 문신이자 문인이었던 김부식이 지은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졌었는데, 2000년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그 규모가 드러났다.

혜음원은 1122년에 완공된 후 인종이 ‘혜음사(惠陰寺)’라는 명칭을 하사하였으며,

이후 인종과 그의 왕비인 공예태후의 후원을 받았다.

또한 이곳에는 왕을 위한 행궁(行宮)이 있었다고 한다.

출토된 도자기 역시 강진과 부안에서 만들어진 고급품으로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국립 숙박기관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고려 왕실용 도자기를 제작했던 강진 사당리와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자편을

최초로 복원하여 일반에게 소개한다.

강진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시대의 자기소(磁器所)로 기록된 곳으로,

당시 왕실 및 중앙 관청에 도자기를 만들어 올렸던 가마터가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인종 장릉에서 출토된 국보 94호 <청자 참외 모양 병>과 동일한 청자 조각이 확인되어,

고려 왕실 도자기의 대표적인 생산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부안 유천리의 도자기는

명종 지릉(智陵), 희종 석릉(碩陵), 파주 혜음원(惠陰院) 터의 출토품과 유사하여,

이곳에서도 왕실 도자기가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

  청자두꺼비장식 조각

고려 수도인 개경과 남경(南京, 지금의 서울) 사이에 위치한

봉성현(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4리)에 세운 국립숙박기관인 혜음원 터에서 발굴되었다.

 

 

한편 왕릉 및 왕실 유적, 그리고 왕실 도자의 생산지에서 출토된 각종 도자기와

여러 문화재는 고려 당대 최고의 기량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 『고려사』에 따르면 ‘의종 11년(1157)에 궁궐 정원에 ‘양이정’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그 지붕을 청자로 이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청자로 만든 기와는 1927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이처럼 당시에도 비싸고 귀했던 비색청자로 기와를 만들어 지붕을 얹는 일은 왕실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청자기와는 고급 청자를 생산했던 강진 사당리 가마터에서 출토되어

고려왕실의 화려한 도자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고려 왕실은 화려하지만 위엄과 격식을 갖추고 절제미가 돋보이는 도자기를 선호하였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고려 왕실 문화의 높은 수준과 품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자 사자 모양 향로
(국보 60호)

 

 

 

 

청자 어룡 모양 주자(국보 61호)

용머리에 비늘 있는 물고기 몸통을 하고 있다.

 

 

 

 

청자 용 무늬 매병
강진 사당리 출토

위엄 있는 용의 모습이 음각된 청자 매병으로, 물결 위를 넘나드는 용의 역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왕실 도자기를 제작했던 강진 사당리에서 출토되었는데, 용은 주로 왕을 상징한다. 맑고 투명한 비취색 유약에 용의 얼굴과 비늘 표현이 섬세하게 음각되어 있는 수작이다.

 

 

 

 

 청자연꽃모늬 향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향로는 고려시대에 유행한 청자향로의 아랫부분으로 보이며

원래 뚜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원숭이 무늬 항아리

1933년 개성 고려궁궐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상감청자의 표면에 금으로 무늬를 장식한 화금청자이다.

 

 

 

전(傳) 고려 인종(仁宗)의 장릉(長陵) 출토품 일괄.

 

이번에 공개되는 ‘전(傳) 인종 장릉 출토품 일괄’은

특히 ‘황통(皇統) 6년’(1146)이라는 명문이 뚜렷한 인종 시책(諡冊)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한번도 일반에 소개된 적이 없는 청동 내함과 석제 외함이 공개된다.

시책(諡冊)이란 왕과 왕비가 죽은 뒤 시호(諡號)를 올릴 때

여러 편의 옥(玉)에 시호와 생전의 덕행을 새겨 책으로 엮어 만든 것인데,

이번에 전시되는 인종 시책(諡冊)은 신장상(神將像)이 새겨진 넓은 판 2점과,

해서체 글귀가 새겨진 길쭉한 막대모양의 판 41점, 이밖에 짝이 맞지 않은 부서진 조각 7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를 앞두고 보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 신장상의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났으며

일제강점기 때 탁본을 하면서 시책에 묻은 먹물 등의 흔적도 제거되었다. 

‘인종장릉 출토품’ 중 그동안 청동제로 알려졌던 젓가락도 조사결과 은(銀)으로 밝혀졌으며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능화형(菱花形) 모양의 ‘청동 내함’은

바깥면이 주석으로 도금되어 있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전(傳) 고려 인종(仁宗)의 장릉(長陵) 출토 인종 시책(諡策) 호국신장상 / 호국신장상 실측도

 신장상(神將像)이 새겨진 넓은 판(33×8.5×2.5㎝) 2점이다.

 신장상의 머리 부분에서 금분(金粉)이 검출되어 글씨와 무늬를 새긴 뒤 금칠을 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또 신장상 일부에서 진사 등 안료를 채색한 흔적이 확인되어

 원래 모습은 상당히 화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신장상의 경우, 중국과 일본의 불교처럼 사천왕(四天王) 중 이천왕(二天王)을 뽑아

 시책을 수호하는 신으로 삼았으나 두 상이 모두 같은 지물(持物)인 도끼를 들고 있는 등, 

 전형적인 불교도상과는 다른 고려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황통(皇統) 6년'(1146)이라는 제작 연대가 적힌 인종의 시책(諡冊)

해서체 글귀가 새겨진 길쭉한 막대 모양의 판(33×3×2.5㎝) 41점, 서진 조각 7점으로 구성돼 있다.

인종 시책의 ‘부(夫)’와 ‘통(慟 : 서럽게 울, 통)’자에서 금분(金粉)이 검출되어

글씨와 무늬를 새긴 뒤 금칠을 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인종 시책의 재질은 당초 옥으로 알려졌으나

분석 조사 결과 대리석의 일종인 방해석(方解石)으로 드러났다.

 

 

 

전(傳) 고려 인종(仁宗)의 장릉(長陵) 출토 '청자참외모양병'(국보 94호)

목이 짧고 굽이 낮은 당시 중국의 병과 달리 부드러운 곡선의 긴 목, 여인의 치맛자락을 닮은 높은 굽,

유려한 몸체, 절제미가 돋보이는 문양이 중국 도자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발달한

고려 특유의 미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청자는 중국 청자와 뚜렷이 구분되는 개성을 지니는데,

청색을 띤다 하여 '청자'라 부르지만 고려의 청자는 '녹색'에 가깝다.

황 · 적 · 청색을 섞어 만들어낸 혼합 색임에도 색이 맑고 투명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이사오 사사키 / 'A Letter Of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