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戶里 통나무관 - 발굴 20년만의 만남
"갈대밭 속의 나라, 다호리 - 그 발굴과 기록"
ㅇ 전시 기간 : 2008년 11월 29일 - 2009년 2월 1일
ㅇ 전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특별전시실
고고학 : 다호리 발굴조사와 통나무관
다호리 유적은 1988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1990년까지 모두 8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다호리 유적은 특이한 형태의 목관과 장제의 확인으로
그동안 막연히 토광묘, 또는 목관묘라고 부른 원삼국 묘제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한 유적이다.
올해 2008년은 다호리 유적을 발굴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1호묘 출토 통나무관은 2천여 년이 지난 지금 가장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관이며,
1988년에 발굴조사된 이래 20년만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1호묘에서 출토된 통나무관은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목관은 길이 2.4m, 너비 0.85m, 높이 0.65m의 크기로,
당시 350년된 통나무(참나무로 판명됨)를 쐐기를 박아 반으로 자른 후내부를 철제 도끼와 자귀 등 도구로 파내고 다듬어 관의 몸체와 뚜껑으로 사용한 것이다.
몸체와 뚜껑의 한쪽 옆면(발쪽 부분)에는
각각 ‘ㄴ'자형 구멍을 파서 굵은 끈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목관의 또 다른 측면(머리쪽 부분)에는 위아래로 각 2개씩의 홈이 파져 있어
X자형으로 줄을 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관을 내릴 때 사용한 동앗줄까지 함께 전시되었다.
무덤 안의 통나무관의 위치와 관련된 다양한 부장유물의 출토위치를 보아 장례절차를 추론해 볼 수 있다.
보존과학 : 통나무관을 살리기 위한 긴 여정
다호리 통나무관의 보존처리는 1988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의 故 이상수 보존과학실장이 시작하였다.
다호리 통나무관이 2천여년 동안 온전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저습지의 토양 속에 매몰된 후
수침밀봉(水浸密封)되어 미생물에 의한 부패가 더디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침발굴목재[Waterlogged Wood]는 적절한 보존처리를 하지 않으면
목재 내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곧 바로 큰 폭의 변형과 수축을 일으켜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다호리 목관은 건조로 인한 수축변형을 최소화하는 치수안정화처리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20여 년전, 국내·외의 대형 발굴목제품의 보존처리에는
고분자 PEG(Poly -Ethylene Glycols)를 이용한 함침처리법이 가장 보편적이었는데
이는 목재 내부의 수분을 수용성의 PEG로 치환하여 수분 증발로 인한 목재의 수축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호리 통나무관과 같이 참나무로 만든 목제유물은
나무의 조직구조상 고분자의 PEG가 잘 침투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고,
더욱이 속이 빈 형태의 통나무는 PEG처리 중 변형이 발생되기 쉬운 구조여서
보존처리 착수 이전부터 상당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은 목재 내부에
저분자의 PEG#200과 고분자의 PEG#4000을 단계적으로 침투시키는
2단계 PEG함침법을 적용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보존처리에 착수하였다.
다호리 목관의 변형방지를 위한 PEG함침처리는
1988년 8월 저분자 PEG#200 5%로부터 시작하여
1997년 8월 PEG#4000 80% 농도까지 9년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이후 2000년 중순까지 약 2년간의 건조과정을 거쳐 1단계 보존처리가 종료되었다.
2000년도에 변형방지처리가 완료된 다호리 통나무관의 전시와 장기보관에 대하여 검토한 결과,
PEG함침처리 과정에서 발생된 부분적인 변형을 바로잡았고
2003년까지 통나무관 표면에 남아있는 PEG와 고착된 이물질을 제거하는 세척작업을 실행하였다.
2004년-2005년에는
용산 새 박물관으로의 이전 개관과 함께 1단계 처리 완료된 관부재들의 상태변화를 관찰하고
도굴로 인해 파손된 부분에 대한 복원방법, 토압으로 발생된 균열의 확장방지 대책,
PEG의 재 용출을 방지하기 위한 표면피복처리 방법 등을 검토하였다.
2006년-2008년까지
관표면의 미세한 균열을 충전 보강하고 습기에 취약한 관의 보호를 위해
고분자 합성수지[HPC(Hydroxy Propyl Cellulose)]를 관표면에 피복하였으며,
도굴시 절단 파손된 부분과 매장당시 토압으로 벌어진 균열 부를
탄소섬유와 에폭시 수지로 보강하는 등의 2단계 복원작업을 완료하였다.
이상과 같이 20년간의 보존처리와 복원과정을 거친 다호리 통나무관은
2008년 11월 드디어 “특별전 다호리”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1. 활과 화살
활과 방패와 창을 잘 다룰 줄 안다. 비록 남과 다투거나 전쟁을 할 때에도 굴복한 상대를 서로 귀히 여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단궁만 사용되어왔다고 알려져 왔으나 다호리 유적에서 장궁과 함께 원통형의 긴 화살통이 출토됨으로써 단궁이 사용되기 이전에 장궁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우리민족을 일컫는 동이(東夷)의 ‘夷’자가 대궁의 의미임을 고려할 때 주목되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옻칠된 활의 흔적은 몇몇 유적에서 확인된 바는 있으나 실물이 출토된 예는 다호리 유적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다호리 유적에서는 장궁과 함께 단궁도 출토되어 주목을 끈다. 그리고 활 표면에는 끈으로 감은 후 옻칠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중기까지 장궁이 사용되다가 한대에 이르러 단궁, 노 등이 주로 사용되었고, 일본에서는 죠몬시대(繩文時代) 이래 나뭇가지를 다듬은 장궁이 계속 사용되었으며, 야요이시대(彌生時代)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활채 및 활고자가 출토된 바 있다. 활과 화살
기원 전후의 목관묘 72기와 옹관묘 2기가 발굴된 다호리 유적은 특이한 형태의 목관과 장례 절차의 확인으로 그동안 막연히 토광묘 또는 목관묘라고 부른 원삼국 묘제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한 유적이다. 또 철기, 칠기 등 많은 부장품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돼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다호리 유적 발굴단 일원이었던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이 유적에서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철기, 칠기, 목기 등 새로운 고고자료가 출토돼 당시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특히 원삼국문화가 토기, 철기, 묘제의 형식에서 한국식 동검 문화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 점도 큰 의의”라고 밝혔다. 1988년 발굴조사한 기원전 1세기 무렵 창원 다호리 유적 목관묘에서 장궁과 단궁, 그리고 화살대와 화살촉이 한꺼번에 출토된 것으로 20년만에 밝혀졌다. 재조사 결과 출토 유물의 질이나 양에서 최대를 자랑하는 1호 목관묘 출토품 중 총길이 170㎝에 폭 3㎝인 장궁(長弓) 1점과 그보다 작은 단궁(短弓) 3점, 그리고 화살대 뭉치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궁 3점 중 보존 상태가 양호한 2점은 현재 남아있는 상태를 기준으로 길이 80㎝와 53㎝( 각각 폭 4.5㎝)였다. 장궁과 단궁 모두 나무껍질 같은 것으로 겉을 감싼 다음에 그 위에 옻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함께 목관묘 34호분에서는 원통형 화살통에 담긴 쇠로 만든 화살촉 뭉치가 발견됐다.
칠기란 옻[漆]나무 수액을 채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침전시켜 얻은 정제된 용액을 나무와 바구니, 토기 등에 바른 기물을 가리킨다. 원하는 광택과 색상을 얻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말리고 바르는 작업이 반복된다.
칠기는 제작 기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건조시킨 나무로 기물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칠 작업을 한 목심(木芯)칠기, 모시(紵)로 형태를 만든 후 옻칠을 반복하여 고급 칠기를 만드는 협저(夾紵)칠기, 그리고 대나무와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해 기물을 짜고 칠을 한 남태(籃胎), 토기 위에 칠을 한 도태(陶胎)칠기 등이 그것이다.
다호리 유적에서는 목심칠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골분을 섞은 낙랑계 칠기와는 달리 목기 표면에 직접 옻칠을 바른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다호리 유적보다 늦은 시기이지만 김해 가야의 숲 조성부지내에서 조사된 3호 목관묘에서는 부채, 칠초철검 등과 함께 원통형의 협저칠기가 출토된 바가 있다.
옻칠은 표면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과 방부(防腐), 방수(防銹), 방습(防濕), 내열(耐熱), 방수(防水), 접착성 등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원료인 옻나무 재배지가 한정되고, 까다롭고 복잡한 제작과정 때문에 전문집단만이 칠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칠제품은 일반인보다는 일부 계층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다호리 유적에서는 합, 통과 같은 용기류를 중심으로 무기류, 공구류를 비롯해 붓, 부채 자루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옻칠이 사용되었다.
변진은 토지가 비미하여 오곡과 벼를 심기에 좋으며, 다호리 유적에서는 원형두, 방형두, 원통형칠기, 뚜껑달린 원통형칠기, 사각합, 컵형 칠기 등이 출토되어 칠기가 당시 최고 상층 집단의 식기 또는 제기로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제사 지낼 때 상위에 올리는 삼색과실(三色果實)인 밤과 감도 출토되어 한경(중국거울)에 등장하는 명문상의 대추와 함께 이 때 이미 제사의 기본 상차림이 마련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 64호에서 출토된 부엌칼과 63호에서 출토된 칠기 국자가 담긴 토기 등도 당시에 다양한 먹거리를 조리하던 다호리의 음식문화를 반증해 준다.
율무 출토
1988년 경남 창원 통나무 널과 부장 바구니 안에서 쏟아진 다양한 철기와 칠기 유물들로 잘 알려진 다호리 유적의 1호 무덤(기원전 1세기)에서는 나뭇잎과 불명종자, 밤 등의 자연유물들도 출토되었다. 특히 가장 오래된 고대 목관으로 큰 관심을 모은 통나무 목관 주위에서 출토된 제기(祭器)들에 담기거나, 그 주변에서 발견된 과일 혹은 곡물류는 그 종류가 밝혀지지 않고 불명종자로 언급되어 왔다. 최근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한 결과 국내에서 가장 오래 묵은 감과 율무 등으로 밝혀졌다. 기원전 유적에서 식용했던 감과 율무 유물이 확인된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례가 없다. 한·중·일이 원산지인 감의 경우 옻칠된 제의용 접시(두형 칠기)에 올려진 채 출토됐다. 그동안 밤으로 생각해 왔으나 경북농업진흥청 조두현 박사의 최근 분석 결과 형태, 표피 색도 등에서 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박물관 쪽은 밝혔다. 율무의 경우도 중국사서 <후한지>에 기원후 후한 시대부터 건강식으로 음용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번에 확인된 것은 그보다 1세기 이상 앞선다. 박물관의 윤태영 학예사는 “율무 원산지가 베트남, 중국 남방 지역이란 점에서 다호리의 율무는 기원전부터 한반도가 중국 남방 지역과 활발한 문물 교류를 벌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함께 나온 밤도 크기가 작은 충청 밤과 큰 평안도 밤이 섞여 있어 당시 한반도 내 물자 교류도 빈번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율무는 벼과에 속하는 식물로 의이(薏苡) 혹은 의이인(薏苡仁)이라고 하며, 베트남이 원산지로 일반적으로 약재 혹은 식용으로 쓰인다. 『후한서(後漢書)』「마원열전(馬援列傳)」에는 율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마원은 남쪽 지방 교지(交趾 : 베트남)에 있으면서 몸을 가벼이 하고 욕망을 줄임으로써 장기(瘴氣 : 풍토성의 나쁜 기운)를 이겨내려고 율무를 상식(常食)하였다고 한다. 당시 남쪽에서 나는 율무의 종자가 굵었는데, 마원이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율무를 수레에 싣고 오자 사람들은 그것을 남쪽 땅의 금은보배라 하였고 권세가들은 모두 그것을 얻으려고 하였다. 마원이 이 말을 들어 주지 않자 미움을 받았고, 마원이 죽자 그가 가지고 온 것이 율무가 아니라 남쪽의 금은보화라고 모함해 광무제가 몹시 화를 내면서 마침내 마원을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터무니없는 모함을 받는 것을 ‘의이방하빈(薏苡謗何頻) : 율무의 비방은 어찌 그리 잦은가’라고 한다.
다호리유적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부채는 이미 발견 당시부터 시신의 가슴이나 얼굴을 가리는 장법으로 보아 도교와 관련된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새로이 운모가 출토되어 이를 더 확신시켜 준다.
부채는 다호리유적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후 김해 가야의 숲 조성부지에서도 출토되었으며, 성주 예산리유적에서도 출토되는 등 발견예가 증가되는 추세이다.
1호분 부채 복원품
한편 운모는 최근 백제 왕흥사지 출토 관장식, 경주 쪽샘지구 목곽묘에서도 출토된 바 있지만 다호리 유적의 것이 현재 가장 이른시기의 것이다. 운모는 갈아서 마시면 불로장생한다는 도교의 신약재료로 알려져 있다. 이 유물의 출토는 다호리 유적의 사람들도 일찍부터 도교적인 관념세계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호리 4호분 출토 운모
기원전 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 목관묘에서 영원불멸의 생명을 준다는 선약, 운모가 다량으로 발견돼 화제다. 운모는 표면이 생선의 비늘처럼 생겨 '돌비늘'이라고도 불리는 화광암 계통의 광물질로 영지버섯 등과 함께 영생불사의 약물로 불린다고 한다. 알고 보면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상당히 친숙한 물질이다. 흰 빛을 띠는 백운모는 사찰을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벽화제작 때 안료로 쓰이기도 하며, 불에 잘 견디는 속성 때문에 난로의 창 등에도 사용되고 있다. 반면 흑운모는 철분이 많아 이용 가치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운모는 한약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타박상을 입었을 때나 종기가 곪았을 때 붙여 통증을 멎게 하는 '운모고'가 바로 운모를 이용해 만든 약재다. 이 외에도 소독, 만성장염 등에 약제로 쓰이기도 한다. 사실을 알 수 있는 징표라고 한다. 운모에 영생불사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 바로 도교라는 것. 도교신학에서는 운모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신선이 되게 하는 선약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한다. 죽은 자의 영원불멸, 즉 환생을 기원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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