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라 금관과 국가 통치 | ||||||||||||
신라 금관은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북분에서 발견된다. 이들 금관은 모두 3단 직각 맞가지식 입식 3개와 녹각형 입식 2개가 대륜 위에 장식된 같은 모습이다.
직각 맞가지식 신라관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황남대총 남분이다. 황남대총 남분 피장자에서 주목되는 것은 신라식관, 허리띠, 목걸이 등 장신구와 환두대도가 일정한 세트를 이루고 착장되고 있는 점이다(그림 1).
바로 이 황남대총의 남분과 금관에서 신라 금관의 형성과정을 살필 수 있다. 이들 4점의 금동관은 3개의 7단 맞가지식의 입식이 대륜에 장식된 점은 동일하나 대륜의 문양, 맞가지의 각도 등에서 변화를 보인다(그림 2).
맞가지식의 각도는 둔각에서부터 묘주가 착장한 금동관 같이 직각인 것이 있다. 4개의 금동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맞가지식 입식이 직각이고 몸체 너비가 일정하며 곡옥과 보요 장식이 첨가된 묘주 착장의 금동관이 제일 마지막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분의 관이 금제인 것을 신분의 차이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부장품들에서는 북분과 남분의 위계적 차이를 볼 수 없어 황남대총 북분 금관은 신라관의 완성 단계로 파악된다(그림 3).
금관총, 천마총, 금령총, 황오동 16호분 1, 2, 4곽, 황오동 32-1호분, 황오동 34호분, 인왕동 A군 1호 등 다수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경주 이외의 부산 복천동, 대구, 경산, 창녕, 양산 등 지역 고분에서도 신라식 관이 확인되었다. (그림 4).
17대 내물왕, 18대 실성왕, 19대 눌지왕, 20대 자비왕, 21대 소지왕, 22대 지증왕 6명인 것을 감안하면, 신라관은 왕인 마립간뿐 만이 아니라 지배자 계층에서도 착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경주뿐 아니라 신라에 새로 편입된 지역에서도 신라관이 착장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금관의 착용 방식이나 그 용도와 관련하여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나무나 산을 형상화한 수지형 입식 의미에는 우주를 수직으로 위치하는 세계로 이해했던 고대인들의 사고가 반영되고 있는 것을 참고하면, 피장자가 이를 착장한 채 안치되는 것은 장송의례의 목적에 합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황남대총 남분과 같이 제작 시점이 다른 관들이 여러 개 부장되는 것은 이 관이 장송 목적 이외에 특별한 목적 생시에 착용하였던 용도와 관련이 있다. 천마총에서도 금관과 금동관이 그리고 금관총에서 금관 1점과 금동관 2점이 동시에 출토된 바 있다.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맞가지식 입식과 사슴뿔 모양의 입식은 모두 천상으로 상승하는 잇는 우주의 축인 우주수와 우주록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입식의 끝이 모두 빛, 광명을 상징하는 보주 형태로 마무리 되는 것은 우주수와 우주록의 개념과 상통되는 요소이다. 즉 우주의 축을 통해 상승하는 하늘은 광명의 천신이 주재하는 곳이라는 인식과 결부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림 5).
지배자를 초자연적인 존재와 연결시키고 그 권력을 정당화시키려는 사회통합적 기능을 수행한 특수 의례인 시조묘 의례와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여성묘와 지방의 수장묘에서 출토되는 점이다. 맞가지식의 금관이나 금동관이 출토된 바가 있다(그림 6).
알 수 있듯이, 여성왕족은 왕에 의해 나누어 받은 제사를 주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왕의 통치자로서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그의 종교적 기능의 일부가 친족, 특히 왕실 여성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결국 국가 제사를 책임지는 최고 사제직을 왕실 내에서 독점되는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2008-11-17.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 ||||||||||||
|
'나아가는(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동아 - 한국, 몽골 고대사 심포지엄 참관기 (0) | 2008.11.19 |
---|---|
신라의 금관 (0) | 2008.11.19 |
신라 - 경주의 금령총(金鈴塚) (0) | 2008.11.17 |
백제의 장신구 (0) | 2008.11.13 |
시인 김현구 (0) | 2008.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