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신윤복 - 단오풍정

Gijuzzang Dream 2008. 11. 1. 22:38

 

  

 

 

 

 신윤복 '단오풍정'의 사미승

 

 


기막히게 숨겨진 에로티시즘… 익살스러운 조연으로 극적 반전
은밀한 부위를 계곡·나무둥치에 배치
단오절 설정은 관능을 가리는 전략
사미승 등장, 착한그림이 남성용으로


   

  신윤복의 '단오풍정'

종이에 채색, 28.2×35.2㎝,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에는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다.
 
중심 역할을 하면서 그림을 이끄는 인물이 주연이라면,
조연은 그림의 도우미로서 '재미'라는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한다.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는 조연인 엿장수 소년의 출연으로 비범한 그림이 된다.
혜원 신윤복(1758~?)의 '단오풍정'도 마찬가지. 익살스러운 조연 때문에 놀라운 '반전 드라마'가 된다.


건전한 그림 속의 은밀한 불량기

                                        

 

 

계곡의 물가에서 속살을 드러낸 채 목욕 중인 여인들과 그네를 타거나 머리를 매만지는 여인들,
그리고 이를 훔쳐보는 사미승들.
10명의 남녀가 어우러진 '단오풍정'은 단오절을 그린 풍속화로 유명하다.
해마다 단오절만 되면 언론매체에 단골 화보로 캐스팅되면서,
사람들은 음력 5월 5일 단오절 날 창포에 머리 감는 그림쯤으로 여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단오풍정'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사람들은 건전한 교육에 세뇌되어, 기녀들이 발산하는 에로티시즘을 못보고 있다.
단오절은 에로틱함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가림막'일 수 있다.
가림막을 걷고 보면, 이 그림은 생각 이상으로 관능성이 넘친다.
단지 노골적일 수 있는 관능성이 조형 전략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이 그림에서 혜원은 외설의 검열을 피하면서 에로틱함을 강조하기 위해 두 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먼저 여성의 신체를 겉과 속으로 나누어서 분산 배치한다.
여성의 겉모습이란 보다시피 옷을 걷고 목욕을 하는 그대로다.
저고리를 벗고 머리를 감거나 얼굴과 팔을 씻는 따위의 행동은
물가에서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는 풍경이다.

혜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그림 곳곳에 배치한다.
'계곡'과 '물'의 상징성, 바위틈과 여성의 가랑이, 나무둥치 속에 새긴 여성의 생식기 등이 그렇다.
이들은 물가에서 목욕을 하는 여성들의 은밀한 부위이다.
만약 이들 생식기를 여인들을 통해 표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18금'의 외설적인 춘화(春畵)로 전락했을 것이다.
혜원은 고민 끝에 묘책을 짜낸다. 신체의 분산 배치 전략으로, 외설성을 기막히게 피해간다.
그러면서 춘화처럼 그림에 표현할 것은 다했다.
외설과 예술의 차이는 은밀한 부위를 한꺼번에 보여주느냐, 분산해서 보여주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혜원의 뛰어난 점은 이런 연출의 묘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미승이 펼치는 '반전 드라마'

다음으로 에로틱함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사실 이 그림에서 물가의 여인들은 단지 물가에서 목욕을 하는 여인일 수 있다.
에로틱함과는 거리가 있는. 보다시피 그들이 남성을 유혹하는 포즈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물가에서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세수를 하고 있다.

이런 그림이 짜릿하게 에로틱해진다. 무엇 때문일까?
바위 틈에 숨은 사미승들 때문이다.
훔쳐보기에 바쁜 그들의 존재에 의해 비로소 여인들의 동작에 관능미가 도금된다.
게다가 그들은 일반인이 아니다.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스님들이다.
사미승들은 두 가지 면에서 눈길을 끈다.
먼저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은 젊은 사미승들이란 점이다. 풋풋한 성적 호기심이 그림을 생기 있게 한다.
또 '투맨쇼(Twomanshow)'여서 한 명일 때보다 극적인 재미가 강화된다.
서로 킬킬거리며 여인을 탐했을 모습이 생각만으로도 익살스럽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사미승의 시각을 통해 '단오풍정'의 에로티시즘을 즐긴다.
이들의 더 큰 역할은 따로 있다. 그림을 '반전'시키는 주역이다.
사미승이 없다면 이 그림은 단오절의 풍속을 그린 '착한 그림'일 뿐이다.
                 

그런데 사미승의 투입은 이런 그림을 '남성 성인용'으로 바꿔버린다.
놀랍다. 단지 사미승 둘만 더했는데, 그림이 남성이 그린, 남성을 위한 에로틱한 세계가 되는 것이다.
혜원은 천생 남성 화가일 수밖에 없다.


감상자의 대역인 주연급 조연

비록 사미승은 조연이지만 역할은 가히 주연급다. 이들은 두 무리의 여인을 하나로 묶어준다.
멱을 감는 여인들과 옷을 입을 여인들은 아래위로 양분되어 있지만
사미승에 의해 관음 대상으로서 공존의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단오풍정'에서 혜원의 위치는 어디일까? 사미승의 자리가 아닐까?
그 역시 훔쳐보기의 명당자리인 바위틈에서 여성들의 은밀한 세계를 탐닉하고 있다.
사미승들은 남성 감상자의 대역이기도 하다.
-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
- 2008.10.29 ⓒ 국제신문(www.kookje.co.kr), 그림 속 작은 탐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