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초상화] 서직수 초상 - 김홍도 筆, 이명기 筆

Gijuzzang Dream 2008. 10. 31. 03:30

 

 

 

 

 

 

 

 

 

  서직수 초상(徐直修 肖像) - 보물 제1487호

 

 

화산관 이명기(얼굴 부분) / 단원 김홍도(몸 부분)

조선, 1796년(정조 20), 비단에 색, 148.8×72.4㎝

 

 

 

 

1916년에 池內虎吉로부터 1엔에 구입하였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인 서직수(1735-?)는

본관이 달성(達成)이며 자는 경지(敬之), 호는 십우헌(十友軒)이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명균(徐命均)의 9촌 조카로

1765년(영조 41) 진사시에 합격한 후 오직 서화를 즐기며 일생을 마친 선비이다.

관리로 대성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1796년(정조 20) 서직수의 나이 62세 되던 해에

당시 최고의 궁중화원들인 이명기(李命基, 1756-?)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가 몸체를 그린 합작품이다.

정조 어진을 그릴 때 참여했던 두 화가가 함께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초상화의 수준을 짐작케 한다.

    

 

오른쪽 윗부분에는 서직수가 이 초상화를 보고 스스로 평한 글이 있는데

네 군데를 먹으로 칠하여 고쳤다.

이러한 점은 이 초상화가 공식적인 제작 동기에서 그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근래 장황을 다시 하였으나, 원 족자의 일부 비단과 유소(流蘇)는 유지되고 있다.

 

머리에 동파관(東坡冠)을 쓰고 풍성한 백색의 포(袍)를 입은 서직수가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전신입상(全身立像)이다. 포에는 동정이 없고 직령의 깃을 하고 있다.

두 손을 편안히 앞에서 모았는데 포의 소매통이 매우 넓고 손을 완전히 덮을 정도로 소매길이가 길다.

한복의 옷맵시가 넉넉하면서도 점잖게 잘 살아있다.

 

동파관은 마치 입체도형을 그린 듯, 빛의 방향에 따른 음영효과를 실감나게 적용하였다.

얼굴에 배채한 후에 짧고 부드러운 필선을 넣어 굴곡과 주름, 얼굴빛을 그려냈다.

필선의 개별적인 느낌이 도드라지기 보다는 각각의 붓질이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 녹아 있다.

붓질의 시종이 명확하지 않은 채 부들부들하여 묘사적인 성격을 보인다.

점, 검버섯, 주름 등 세부적인 피부의 특징도 잔잔하게 묘사되었다.

 

 

무엇보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이 인상적이다.

눈의 윤곽에 고동색 선을 덧그려 그윽한 깊이감을 주었으며

눈동자 주위에는 주황색을 넣어 형형한 눈빛을 구사하였다.

또한 누의 어두와 어미에 넣은 붉은 색은 흰자위와 대조되어 눈빛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두툼한 입술선 주위는 밝게 하여 특히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하였다.

 

의복 부분은 기본적으로 배채한 후에 앞에서 가볍게 선염하여 주름을 묘사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그래서 채색이 없는 화면 바탕과 달리 인물 부분은 배채를 전제한 깊이 있는 색감을 보인다.

담묵선으로 옷주름을 잡은 후, 어두운 미색으로 주름의 그늘을 묘사하였다.

이때 주름골의 바깥에는 다시 밝은 띠가 형성되도록 하여 자연스럽게 옷주름의 흐름을 표현하였다.

 

 

 

 

입고 있는 포의 자락 아래로 하얀 버선을 드러낸 채 서직수는 고운 돗자리 위에 올라 서 있다.

버선발은 각각 정면과 측면을 보이고 있는데,

버선의 주름 부분만을 남기고 앞에서 붓질을 드러내며 흰색을 칠하였기 때문에 유독 눈길을 끈다.

돗자리 위에 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도록 하고

눈에 잘 띄지는 않으나 돗자리를 엮은 구멍까지 좌측의 세로로 열을 지어 그려 넣었다.

 

 

폭이 넓은 목의 깃, 얌전하게 가슴에 묶은 검정 띠(黑布帶),

부드러우면서도 형체감을 잘 드러내는 백색 포의 주름,

발목까지 내려오는 전체 옷걸이, 이 모든 것들이 선비의 풍모와 잘 어울린다.

인물이 내뿜는 기운이 화면의 중심을 이루며 동파관과 가슴의 흑포대가 이루는 검정의 조응,

하얀 버선발의 파격이 단조로움을 깨뜨리는 걸작이다.

   

 

 

 

李命基畵面金弘道畵體兩人名於畵者

而不能畵一片臺靈

惜乎何不修道於林下浪費心力於名山

雜記槪論其平生不俗也貴

丙辰夏日十友軒六十二歲翁自評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렸다.

두 사람은 화가로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한 조각 영대(靈臺, 마음 또는 정신)를 그리지는 못하였다.

애석하다. 나는 조용한 곳에서 도를 닦지 못하고,

명산(名山)을 돌아다니고 잡된 글을 짓느라고 마음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았는가?

한 평생을 개괄해서 논평한다면 속되지 않았음이 고귀하다고 하겠다.

1796년 여름날에 십우헌(十友軒) 62세 늙은이가 자평(自評)하다.

 

 

<徐直修印>

 

   

<한국초상화>, 국립중앙박물관, 1979

유복렬 편저, <한국회화대관>, 문교원, 1979

맹인재 책임편수, <인물화>, 한국의 미 20, 중앙일보사, 1980, 도판해설 233-234쪽

문화재청 편, <한국의 초상화>, 눌와, 2007, 도판해설 236쪽

<조선시대 초상화 1>, 국립중앙박물관, 2007, 도판해설 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