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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는(문화)

귀신, 살아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그림자

Gijuzzang Dream 2008. 10. 23. 19:35

 

 



 

 귀신, 살아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그림자

 

김풍기(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귀신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시대가 있다.

어느 시대든 사람들은 귀신과 같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 관심과 재미를 느끼지만,

사회적으로 그 정도가 강한 시대가 있는 듯하다. 조선초기가 그런 시대였다.

조선이 건국되자 많은 지식인들은 귀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해명하려고 애를 썼다.

정도전(鄭道傳)이나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이 철학적 차원에서 귀신을 설명하려 하였다.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귀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채수(蔡壽)는 『설공찬전(薛公讚傳)』에서 저승 이야기를 썼다가 필화에 걸려 관직에서 물러났고,

성현(成俔)은 자신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당시 떠돌던 귀신 이야기를 정리해 두었다.  

 

 

 

- <용재총화(慵齋叢話)> / 성현(成俔) / 민족문화추천회 편, 솔 출판, 1997

    

  ……

나의 장모 정씨(鄭氏)는 양주(楊州)에서 생장하였는데,

귀신이 그 집에 내려 한 어린 계집종에게 붙어 몇 년 동안을 떠나지 않아

화복과 길흉을 알아맞히지 못한 적이 없었다. 말을 하면 서슴지 않고 대답하니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여 숨길 뜻이 있어도 못하고 모두 두려워하였으나

집안에는 아무 탈이 없었다. 그 목소리가 굉장히 맑아서 늙은 꾀꼬리 혀와 같은데

낮이면 공중에 떠 있고 밤이면 대들보 위에 깃들였다.

 

이웃에 대대로 명문가 한 집이 있었는데 주부가 보물 비녀를 잃고 항상 계집종을 때렸다.

종이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귀신에게 와서 물으니,

귀신은 “있는 곳을 알고는 있으나 네게 말하기는 거북하니 네 주인이 오면 말하겠다.” 하였다.

종이 가서 주부에게 알리니 주부가 친히 좁쌀을 가지고 와서 점을 쳤다.

귀신이 “있는 곳을 알고는 있으나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내가 한번 말하면 그대는 매우 무안하리라”하였다.

주부가 여러 번 물었으나 끝내 응하지 아니하자 주부가 노하여 꾸짖었다.

귀신이 “그렇다면 할 수 없다. 아무 날 저녁에 그대가 이웃 아무개와 같이

닥나무밭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 비녀는 그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하므로

종이 가서 찾아오니 주부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또 집 종이 물건을 훔쳤는데 귀신이 “아무개가 이를 훔쳐 아무 방에 감추었다”하니,

종이 “어디에 있던 요물이 남의 집에 와서 의지하느냐”고 꾸짖자

땅에 엎드려 한참 있다가 소생하였다.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자색 수염이 난 장부가 내 머리털을 끌어당기니 황홀하여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한편 신통하게 맞추는 귀신도 천적이 있었다.

당시 재상을 지내고 있던 정구(鄭矩)와 정부(鄭符)  형제가 집에 오기만 하면

귀신이 두려워하여 달아나고 그들이 돌아 간 뒤에 귀신이 다시 계집종에게 돌아오곤 하였다. 

정구는 그 일을 알고 하루는 귀신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숲으로 가라. 인가에 오래 머무는 것이 부당하다”하였다.

 “내가 여기 온 뒤로 집안 복을 더하도록 힘썼으며 한 번도 재앙을 일으킨 일이 없었고

이곳에 머물면서 집을 잘 받들고자 하였는데 왜 가라고 하느냐며 귀신이 항의했다.

 

그러나 역시 사람과 귀신의 터전이 다르니 숲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더니,

"대인의 가르침이 있으니 감히 순응치 않겠사오리까.”하고

마침내 통곡하며 사라졌는데 끝내 영향이 없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성현) 대부인에게서 들은 것이다.

……  (제 3권 pp86-87)

 

 

  

우리는 알 수 없는 사물에 대해 미묘한 매력과 섬뜩한 공포를 동시에 경험한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는 매력 때문에 다시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쩌면 우리 마음 속에는 새로운 것을 탐험하려는 마음과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귀신 이야기는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전승되어 왔다.

그러는 가운데 사람들은 귀신이라는 존재에 우리 자신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귀신이 일으키는 짓을 볼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도 인간의 욕망을 닮아있는가 감탄하게 된다.

후손을 도와주는 조상 귀신, 원한 때문에 사람을 마구 해코지하는 귀신,

자신의 원한을 풀어준 사람에 대한 보답, 질투하는 귀신 등

그들의 모습은 인간군상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짐승이 인간이라는 말을 어른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 넓은 세상을 거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 때문에 세상은 점점 황폐해져 가는 듯하다.

먹을 것을 과도하게 구하고, 조금 더 편안하기 위해 몇 평의 집을 넓히는 동안,

본의 아니게 많은 생명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나날이 세상은 황폐해지고 사람들은 각박해진다.

가슴 두근거리며 귀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쩌면 내가 그 귀신을 형상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 경기문화재단, 경기도이야기 제49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