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꽃이 피었습니다 |
물으면 대부분 “고구마도 꽃이 피나?” 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만큼 고구마꽃이 피는지 조차도 모른다.
시골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도우면서 살았던 필자는 지난 일요일
실제로 고구마꽃을 보았다.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시골의 부모님도
아직 못 보신 고구마꽃을….
몇 해 전부터 장모님은 서울 도봉산 밑에 조그마한 텃밭을 일궈오셨다.
이번에 몇 줄 심은 고구마를 캐신다기에
따라나섰다. 고구마를 캐려면
먼저 고구마 줄기부터 걷어내야 한다.
어머님은 반찬으로 쓸 줄기를 자르시고
필자는 낫으로 줄기를 걷기 시작했다.
얼마 후 어머님은 흥분하신 목소리로
“이보게 여기 좀 보게. 이게 고구마꽃인가봐.” “고구마꽃이라고요?” “고구마도 꽃이 피네. 나팔꽃하고 똑같이 생겼어.”
“아! 정말 고구마꽃이네요.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고구마꽃이에요.”
순간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어머니, 고구마 오늘 꼭 캐야 하나요? 다음 주 토요일에 캐면 안 될까요?”
“봤으면 됐지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이러다 해 떨어지겠네.” “네. 휴!” 필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꽃이 피어 있는 줄기를 넉넉히 잘라 물에 담가 놓았다.
집에 갈 때까지 생생하게 버텨주길 기대하며.
하지만 고구마꽃은 필자의 기대와는 달리 힘없어 말라버리고 말았다.
“어머니! 내년에도 고구마 꼭 심어요.” 고구마는 메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나팔꽃과 같은 과에 속하기 때문에 꽃도 나팔꽃과 똑같다.
고구마는 씨를 뿌려 심지 않는다. 고구마 자체를 땅에 묻어놓으면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는데
그 줄기를 뚝뚝 잘라 심으면 줄기 마디에서 뿌리가 돋는다.
그 뿌리가 덩어리 모양으로 굵어진 것이 바로 우리가 먹는 고구마인 것이다.
감자는 줄기가 덩어리 모양으로 굵어진 것이므로 고구마와는 다르다.
고구마는 1760년대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엄이 쓰시마에 들여왔고, 감자는 1820년대 중국에서 들여왔다.
쓰시마에서 고구마를 고코마(孝子麻 ; 효자마) 또는 고코이모(孝子藷 ; 효자저)로 부른 것이
우리나라로 오면서 고구마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고구마는 ‘달다’는 뜻에서 한자로 감저(甘藷)라 하고,
감자는 ‘북방에서 온 고구마’라는 뜻에서 북방감저(北方甘藷)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고구마와 감자를 굳이 구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시골 부모님은 고구마를 쌀감자, 감자를 보리감자로 부르신다.
달고 큰 고구마에 쌀을 붙이고, 그렇지 않은 감자에 보리를 붙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고구마꽃은 보기 힘든 걸까? 오죽하면 고구마꽃이 피었다고 신문에 날까?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말도 안 되는 속설까지 전해지고 있다.
고구마는 뿌리와 줄기로 번식하는 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꽃을 피워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고구마가 원래 남아메리카 북부 그러니까 열대지방이 원산지다.
우리나라 같은 온대지방에서는 꽃을 피우기에는 온도가 맞지 않는다.
그런데 고구마꽃이 핀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이 올라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사과의 주산지가 남부지방에서 중부지방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한 고구마꽃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인가? - 2008년 10월 22일, 동아사이언스 [이억주의 식물에게 배운다]
- 이억주 동아사이언스 기자 yeokj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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