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간찰(簡札)

Gijuzzang Dream 2008. 10. 16. 12:29

 

 

 

 

 

 

  간찰(簡札)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다  


 

 

'간찰(簡札)' 은 말 그대로 길고 납작하게 다듬은 ‘대나무쪽’과 얇고 작은 ‘나무패’를 가리키지만,

지인(知人)들간에 오고 갔던 편지를 상징하고 있다.

종이를 사용하기 전 행해졌던 방법이 오늘날 편지를 대신하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이다.

 

간찰은 지금도 상당수가 남아 있으나,

단정하게 쓰여진 일부의 자료를 제외하고는 그 내용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초서체의 흘림글과

때로 어디로부터 작성되어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훼손되어버린

몇 장의 종이조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여전히 어느 구석 한귀퉁이에 자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규장각과 장서각 그리고 대학박물관 등에서 꾸준하게 자료집을 간행하고 있어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하나 하나 독립적으로 존재했을 법한 편지글, 그 간찰이 갖는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누구는 그 안에 개인과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은 물론

나아가 국가 정책과 학문의 토론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내용들도 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옳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른 통신 수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세상의 모든 대소사를 담아내고,

작은 온정까지도 표현하였던 수단이 간찰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간찰을 읽다 보면 자연 저도 모르게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의 칠정(七情)가운데 빠지기도 하는 것이리라.


국민대학교박물관에서 출간한 『설촌가수집고문서-가장간찰첩편(雪村家蒐集古文書-家藏簡札帖篇)』은

모두 9종 10책의 간찰첩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아 엮은 첩의 제목이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시선을 끈다는 것이다.

더욱 각각의 모아 놓은 글을 보면 이같은 명칭의 사용에 엄밀한 인식이 반영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편지를 주고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서 제각기 다른 첩에 속해있는 것이다.

첩의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시간(時簡)』과 『간독(簡牘)』- 정요(精要)를 비롯하여

『경람(敬覽)』『가장첩(家藏帖)』『빙옥첩(氷玉帖)』『갱장첩(羹墻帖)』『면운첩(眠雲帖)』

『훈지첩(壎篪帖)』『행위첩(行葦帖)』등이다.

<시간>
<간독-정요>


 

첩을 지칭하는 용어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시간’과 ‘간독’이다.

‘시간(時間) 이 문자 그대로 ‘때에 오고 간 편지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면

‘간독(簡牘)’ 은 현존하는 같은 제목의 서책류에서 알 수 있듯이

‘엄밀하게 뽑아놓은 글’ 정도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같은 성격을 반영하듯이 이 두 개의 첩에는

가문과의 관련성이 비교적 적은 이들이 쓴 글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에 보이는 것은 ‘경람’과 ‘가장첩’이다.

‘가장(家藏)’ 은 문자 그대로 ‘집안에 보존된 보배’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공경의 대상이 되는 선조의 필적이 들어있는 글이라면 「가장유묵(家藏遺墨)」이라 일컫고,

그 선조들로부터 전해진 서책이라면 「가장서책(家藏書冊)」이라 부른다.

곧 ‘가장’은 선조의 필적이 들어 있는 편지를 집안의 보배로서 인식한 것이다.

 

한편 ‘경람(敬覽)’ 에는

맨 뒷장에 ‘외오고유묵(外五考遺墨)’이라 하여 그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편지들이 공경스럽게 보아야 할

집안의 귀한 보배들이나, 외가의 글이라는 사실을 밝혀놓은 것이다.

모아 놓은 글을 대하는 당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같이 다른 명칭들에도 그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져있다.

‘갱장(羹墻)’ 은 정조 때에 간행된『열조갱장록(列朝羹墻錄)』또는『어정갱장록(御定羹墻錄)』의 내용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선왕을 추모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요(堯) 임금이 돌아가신 후에 순(舜) 임금이 그를 생각하며,

‘국[羹]을 보아도 생각나고 담[墻]을 보아도 생각난다’고 하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면운(眠雲)’ 은 ‘구름속에 숨어 지낸다’는 의미이니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옆으로 비켜나 세상을 관조(觀照)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별히 이 첩 가운데에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느끼는 감회를 적어놓은 편지들이 있는 것은

그 이유때문이다.

 

‘훈지(壎篪)’ 는 ‘나팔과 피리’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우애(友愛)가 돈독한 형제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같은 용어가 상징하듯이 이 첩에는 형제들이 서로 주고 받았던 편지글이 모여져 있다.

 

‘행위(行葦)’ 는 『시경』의 「대아(大雅)」 「생민(生民)」에 나오는 말로

길가에 무성한 갈대를 의미한다. ‘생민’은 선조를 높이는 시라 이해되고 있는데,

이로 보아 자손들의 번성과 우애를 강조하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갱장첩>
<면운첩>
<훈지첩>
<행위첩>


마지막 ‘빙옥(氷玉)’ 은 ‘맑고 깨끗하여 아무 티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첩에는 사돈 간에 주고받은 글과 장인과 사위 간에 주고 받은 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내용들이 후손들로 하여금 ‘맑고 깨끗하여 아무티가 없는’ 느낌을 갖도록 하였던 것일까.

그 중 한 편을 인용하여 본다.


東床 封上
사위 받게나.

 


 

卽見京書則

서울에서 온 편지를 보니

君有小愼 旋卽得愈

자네가 병이 있다가 곧 나았다고 하니  

遠慮之餘 還爲欣幸

멀리서 걱정하던 나머지 도리어 기쁘고 다행스럽네.  

日來侍?更何似 懸念不置

요사이 부모님 모시고 지내는 정황은 어떤지 그리는 마음 그만 둘 수가 없다네.

 

吾依 過而將以來初上洛 可得對悉

나는 여전히 지내는데 다음 달 초에 서울에 가면 대면하여 하고픈 말을 다할 수 있을걸세.

 適有忙遞 姑此不具

마침 바쁜 우체가 있어 우선 이 정도로 하고 갖추지 못하네.



 
辛巳九月卄三日 聃拙


生淸二升 房燭四柄

생청 두 되와 방촉 네 자루를 보내네”

 
이 편지는 1761년(영조 37)에

사담(士聃) 김상구(金尙구)가 사위인 송익효(宋翼孝)에게 보낸 편지이다.

글 가운데에는 사위를 걱정하는 마음과 정이 듬뿍 담겨져 있어 마음이 따뜻하기만 하다.

더욱 편지와 함께 보낸 생꿀과 초라는 선물에는 ‘사위사랑’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르게 한다.

이런 글들이 후손들에게 맑고 깨끗하여 아무 티가 없는 그런 느낌을 갖도록 한 것이 아닐까.


옛 글을 읽으며 항상 느끼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 시대인들이 지녔던 섬세하고 진지한 마음을 조금 닮아간다면

더 풍족한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짧더라도 편지를 하나 띄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답이 오게 되면 하나 하나 첩을 만들어 그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세상을 사는 지혜같다.

- 정제규, 문화재청 청주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2008-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