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박수근 - 나무와 두 여인

Gijuzzang Dream 2008. 10. 15. 14:58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의 여인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캔버스에 유채, 130×89㎝, 1962).

 

   

 

박수근(1914~1965)은 이 땅의 서민들의 일상을,

이 땅의 질감으로 그려낸 가장 한국적인 화가다.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로

우리 산천의 이목구비를 실감나게 그렸듯이

박수근은 자신이 보고 느낀 서민들의 숨결을

토속적인 스타일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세련된 도회풍과는 거리가 멀다.

1950~1960년대 이 땅의 평범한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질박한 색채와 기법으로 승화시켰다.

특히 화강암 재질을 살린 투박한 마티에르 기법은

박수근이 일궈낸 가장 한국적인 조형언어로 평가받는다.

 

 

박수근 그림의 주요소재는 '나목'과 '여인'이다.

재산이라고는 '붓과 팔레트밖에' 없었던 그는

과연 누구를 모델로 한국적인 여인상을 창조했을까?



가장 서민적인 토종 화가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이 정규교육의 전부다.

당시 유명한 화가들은 대부분이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해외유학을 다녀온 '유학파'들이다.

반면에 가난하게 성장한 박수근은 순수 국내파다.

그것도 독학으로 미술에 입문한 토종이었다. 열악한 조건은 오히려 '약'이 되었다.

대신 자신이 살던 시대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흔한 풍경과 사물과 주변 사람들을 그렸다.
그의 풍경과 정물과 인물은 당시 흔하게 만나는 정겨운 것들이다.

이런 점은
화실 안에서 여인의 누드나 인물좌상 등을 그리던 다른 화가와 뚜렷이 구별된다.
특히 인물들은 아이를 업은 여인과 소녀, 머리에 짐을 이거나 빨래를 하는 아낙네,
놀고 있는 남자와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 한결같았다. 평생 소재의 진폭이 없었다.
피카소처럼 청색시대, 분홍색시대 운운하며 작품을 시기별로 나누는 방식이
그에게는 무의미했다. 끊임없이 일상의 풍경을 그렸을 뿐이다.


일하는 여인들과 아주 특별한 모델

인물들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노는 남자와 일하는 여자로 뚜렷이 구분된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백수' 같은 포즈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과 무관해 보인다.
쪼그리고 앉아서 시간을 죽인다.
반면에 여자들은 아이를 업거나 손을 잡고 머리에는 무엇인가를 이고 있다.
또 아이를 업고 절구질을 하거나 빨래를 한다.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2중 3중으로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여인들은 누구를 모델로 삼은 것일까?
거리에서 만난 이 땅의 여인들이었을까? 맞다. 하지만 절반만 맞다.
특별한 모델이 있었다. 그에게 빛을 준 사랑하는 아내(김복순)였다.
박수근이 처녀 김복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이제까지 꿈꾸어 오던 내 아내에 대한 여성상은
당신과 같이 소박하고 순진하고 고전미를 지닌 여성이었는데,
당신을 꼭 나의 배필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아내에게서 발견한 한국의 여인상을 박수근은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맷돌질하는 여인'(1940년대)과 '절구질하는 여인'(1954)이
직접 아내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라면,
'나무와 두 여인'(1962)은 아내의 모습을 전형화시킨 여인들이다.
이 그림에는
나목을 사이에 두고 아이를 업은 여인과 머리에 짐을 인 여인이 등장한다.
아이와 일은 당시 여인들의 숙명이었다.

가난이 일상이던 시절,
아내는 낮부터 밤 12시까지 고된 일을 하거나 뜨개질로 푼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을 털어서 화구도 사고 정물화에 필요한 꽃도 사왔다.
때로는 사정이 급하면 시집올 때 가져온 옷감까지 팔았다.
"우리 모두의 유일한 소망은 그이가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로 대성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되도록 전력을 기울여 내조하는 일이 나의 임무였다."
'화가 박수근'의 뒤에는 이런 아내가 있었다.
그는 아내의 내조 덕분에 화가로서 꿈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아내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주한 것이지만
그것은 궁핍한 시대를 살다간 여인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들은 날씬한 몸매의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다.
시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펑퍼짐한 아줌마들이다.
그것도 노는 여인이 아니라 '일'하는 여인이다.
그들은 가난으로 고통스러워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가난과 맞서며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키웠다. 그의 아내가 그랬듯이.


아내에게 바치는 헌화가

박수근은 가장 서민적인 화가로 꼽힌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독학으로 예술세계를 완성했다.
단색조의 투박한 마티에르에는 항상 따스한 시선으로 발효시킨
서민의 생활이 펼쳐진다. 그 중심에 여인들이 있다.
그 여인은 이 땅의 보통 여인들처럼 '뼈빠지게' 일했던 아내의 모습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박수근의 그림은
'헌화가(獻畵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박하고 순진하고 고전미를 지닌' 아내에게 바치는 헌화가 말이다.
그림은 박수근이 그렸지만, 그를 화가로 키운 것은 아내였다.
- 정영민 (주)아트북스 대표이사
- 2008.02.27 ⓒ 국제신문(www.kookje.co.kr), 정민영의 그림 속 작은 탐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