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심전 안중식 - 성재수간도(聲在樹間圖)/ 단원 김홍도 - 추성부도(秋聲賦圖)

Gijuzzang Dream 2008. 10. 15. 14:30

 

 

 

 

 

 

 안중식 '성재수간도(聲在樹間)'실루엣

 

 

 


 

방문에 비친 구양수의 그림자를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
젊은 동자의 뒷모습에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아쉬움이 배가

 

 
 

안중식의 '성재수간도'. 종이에 담채, 24×36㎝, 조선시대, 개인소장.


"저 그림 나에게 팔 수 없습니까?"

1980년대 초, 한 방송국에서였다.
녹음기사의 방에서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는 그만 한 폭의 동양화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냥 가져가세요. 대신 대체할 화보를 하나 주시면 됩니다."

그 그림은 값비싼 원화가 아니라 복사본이었다.
황병기는 얼른 집에 있던 바닷가 풍경사진과 그림을 맞바꾼다.
그리고 그림을 감상하다가 홀린 듯이 '밤의 소리'라는 곡을 쓴다.


음악의 씨앗이 된 그림 한 점

가야금 명인에게 영감을 준 문제의 그림은
심전 안중식(1860~1924)의 '성재수간도'였다.
1918년 '서화협회'를 조직하여 후진 양성에 힘쓴 심전은
오원 장승업의 화풍을 이어받아 산수 · 인물 · 화조를 잘 그린 조선 후기의 화가다.

이슥한 밤. 숲 속의 집 뜰에 한 남자가 서 있다.
한복차림의 남자는 둥근 옆 얼굴선이 앳돼 보인다.
그는 지금 두 그루의 나무 너머 사립문 쪽을 살피고 있다.
바람이 세차다. 나뭇잎이 한쪽으로 쏠린다.
남자의 머리카락이며 옷자락도 바람에 나부낀다.
벽에는 '성재수간'이라는 글귀와 심전의 낙관이 열매처럼 붉다.
'성재수간도'는 대강 이런 그림이다.
 
황병기는 그림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림 속의 남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연이 아니면 그렇게 유심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리워하는 이가 언제 오려나 하고 기다리다 사립문 밖 발자국 소리를 듣고
놀라 뛰어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고 바람결에 나뭇잎만 운다."


얼굴 없는 그림자 실루엣의 힘

그림 속의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러브스토리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성재수간(聲在樹間)'이란 '소리는 나무 사이에 있다'는 뜻으로,
구양수의 '추성부'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추성부'의 한 장면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송나라 때 학자이자 문장가인 구양수가 밤에 독서를 하다가
서남쪽에서 나는 소리에 놀란다.
깊은 밤에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음을 괴롭힌다.
그래서 동자에게 바깥을 살펴보라고 한다.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에 은하수가 걸려 있는데,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상황을 전달받은 구양수는 가을의 쓸쓸함을 탄식한다.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구나. 어찌하여 온 것인가?"

그는 지금 방 안쪽에 그림자로 앉아 있다.
그림의 표면적인 중심인물은 동자이지만,
실질적인 중심인물은 방문에 비친 그림자의 주인공이다.
따라서 구양수가 느끼는 인생의 덧없음이 그림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심전은 구양수를 감추고 동자를 앞세웠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구양수의 심정을 부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지는 세월의 덧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조형적인 전략에서 동자를 캐스팅하지 않았을까?
마치 구름을 그려서 달을 보여주듯이
동자를 통해 자기 심정을 토로한 것이라고 말이다.
실루엣만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구양수는 그림을 '수렴청정'하는, 얼굴 없는 주연이다.
이 실루엣의 기운이 화면을 압도한다.


동자의 뒷모습에 담긴 뜻

사실 이 그림에서 동자는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다.
구양수의 지시를 받고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선 수동적인 존재다.
그런 동자의 뒷모습에 주목해보자. 왜 동자의 뒷모습으로 그렸을까?
화가들은 웬만해서 뒷모습을 그리지 않는데. 인물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뒷모습을 통해 전달되는 내면적인 깊이 때문이 아닐까?
잘 잡은 뒷모습 한 컷이면, 복잡한 심사를 시시콜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긴다.
 
연꽃 위에 앉아 있는 스님의 뒷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염불서승'이
감동적인 이유도 회색 가사를 입은 스님의 강파른 뒷모습 때문이다.
 
그런데 동자의 뒷모습은 '추성부'를 알고 보면, 맥이 빠진다.
그림의 능동적인 주인공이 아닌 탓이다.

황병기의 '창조적 오독'처럼 매력적인 그림이 되려면,
뒷모습의 동자가 능동적인 주체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스토리여야 한다.
하지만 심전은 구양수가 느낀 세월의 덧없음을 젊은 동자의 뒷모습을 통해 밀도를 더한다.
지는 세월과 앞날이 창창한 젊음이 동거하면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안타까움이 배가된다.

지금 심전은 '복화술사'처럼 구양수를 통해 자기 심정을 토로하는 중이다.
- 정민영 (주)아트북스 대표
- 2008.07.23 ⓒ 국제신문(www.kookje.co.kr), 정민영의 그림 속 작은 탐닉

 

 

 



 

 

 

 김홍도 마지막 작품 '추성부도(秋聲賦圖)' 

 

 

  

<추성부도> 종이에 담채, 56.0×214.0㎝, 1805년(61세), 삼성리움미술관 소장.

구양수의 명문 '추성부(가을을 노래함)'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그 문장의 쓸쓸함 못지않게 스산한 늦가을의 시정이 화면 전체를 휩싸고 돈다.

 

 

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에 관한 각종 인명사전에는

그의 생몰년을 '1745- ?'로 표기하고 있으며, 좀 더 자세한 경우에는 '1745-1806?'로 적기도 한다.

의문부호(?)야 말할 것도 없이 그가 죽은 해를 모르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다.

 

김홍도 연구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를 토대로 한 단행본을 내기도 한 진준현 서울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앞으로 김홍도가 사망한 시점을 밝혀줄 만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나

현재까지는 그 대략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1806년 무렵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를 의미하는 '1806?'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진 연구관은 크게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1806년 이후 김홍도가 살아서 활동했다는 행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둘째, 현재까지 파악된 그의 작품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늦은 리움미술관 소장 추성부도(秋聲賦圖)가

을축년(1805) 동지 후 3일(음력 12월25일 무렵)에 완성됐다.

셋째, 이 해 겨울 12월에 아들 김연록(金延祿)에게 보낸 편지에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언급이 발견된다.

이로 볼 때 진 연구관은 1806년 무렵에 김홍도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추성부도> 이후 그의 그림으로 생각되는 그림도 없고 그가 살아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분명한 것은 1809년 순조가 <해산첩>을 홍현주에게 하사했을 때 형 홍석주는 단원이 죽은 뒤에야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고 했으니, 그때는 이미 고인이었다는 말이다.

 

김홍도 작품이라는 점 외에 현재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늦은 시기에 그려진 점에서도

'추성부도'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종이에 수묵담채이며, 56.0 × 214.0cm인 이 그림은 보물 1393호로 지정돼 있다.

 

군데군데 지두화법(指頭畵法)을 겸용한 꼿꼿한 필치와 회갈색의 설채가

스산한 가을밤의 풍경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게 채색되어 있으며

갈필을 사용하여 가을밤의 스산한 분위기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좌우에 산이나 언덕을 배치하여 초옥과 마당을 감싸듯 하는 구도,

불규칙하게 꺾여 올라가다가 끝이 갈라지는 나무 형태 등 단원의 전형적인 화법이다.

화가의 문인 취향과 필묵법(筆墨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추성부도는 중국 북송시대 저명한 문필가 구양수(歐陽脩.1007-1072)의 문학작품 <추성부>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가을밤에 책을 읽다가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며

자연의 영속성과 인간 삶의 덧없음을 노래한 걸작으로 꼽힌다.

 

 

 

김홍도의 '추성부도'는 집안에 구양수가 있고 동자가 하늘을 가리키는 몸짓을 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화면에는 메마른 가을 산이 그려져 있고, 산 능선 위로는 수평방향의 갈필로 음양을 주어

밤중임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식 초옥(草屋) 둥근 창 안에는 구양수가 보인다.

구양수가 책을 읽다가 소리가 나자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서 살피라 했고,

이에 밖으로 나간 동자는

'별과 달이 환히 빛날 뿐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

(성월교결 명하재천 사무인성 성재수간 : 星月皎潔, 明下在天, 四無人聲, 聲在樹間)

라고 답했다는 바로 그 유명한 장면을 그려낸 시의도(詩意圖)이다. 

 

동자는 손을 들어 바람소리 나는 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집에서 기르는 학 두 마리는 목을 빼고 입을 벌려 그 바람소리에 화답하듯 묘사되어 있다.  

  

또 마당의 낙엽들은 왼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흩날리고 있다.

화면 왼쪽 위에는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있고,

언덕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고 그 옆쪽에는 대나무에 둘러싸인 초옥이다.

좌우에 산이나 언덕을 배치하여 초옥과 마당을 감싸듯 부감하듯 그려냄으로써

주제를 강조하는 포치방식은 역시 구도에 대한 단원의 뛰어난 감각을 단적으로 말해주며,

호리호리하면서도 불규칙하게 꺾여 올라가 끝이 갈라지는 나무형태 또한 단원의 전형적인 화법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비비듯이 처리된 메마른 붓질은

차가운 달빛 속에서 거칠고 황량한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내고 있다.

그것은 곧 구양수가 전하고자 했던 노년의 비애이자

또한 동시에 죽음을 앞둔 단원의 심회에 대한 형상화이기도 할 것이다.

  

이 그림에는

유인(遊印)으로 부정형백문인(不定形白文印) ‘일집초경반부서’라는 도서가 있고

그 아래 또 백문장방인(白文長方印) ‘쟁산□□ □□□□’라는 도서를 찍었다.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으로 '기우유자(驥牛游子)'라 찍혔고,

작가인은 백문방인(白文方印) ‘김홍도인’ 과 주문방인(朱文方印)이나 흐려서 판독이 불가능하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의 <추성부(秋聲賦)> 전문을 단아한 행서체(行書體)로 화제를 써 놓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을축년 동지후 삼일 단구가 그리다"(乙丑冬至後三日 丹邱寫)라 적어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밝히고 있다.

단구(丹邱)는 만년의 김홍도가 사용한 호(號). 그렇다면 단구(丹邱)란 무슨 뜻일까?

진준현 박사에 의하면 신선들이 사는 공간이 곧 단구다.

만년에 접어들면서 건강 악화 등으로 죽음을 예감한

단원의 심정을 대변하는 호가 아닐까 추정되기도 한다.

그의 짙은 도교적 인생관은 단구 외에도

서호(西湖), 고면거사(高眠居士), 첩취옹(輒醉翁)과 같은 별호(別號)에서도 간접적으로 뒷받침된다.

 

 

밤에 글을 읽다가 서남쪽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섬짓 놀랐다.

귀기울여 들으며 말했다. 이상하다. 무슨 소리일까.

바람소리인가. 낙엽이 구르는 소리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고 파도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동자를 불러 무슨 소리인지 네가 좀 나가보아라 하였다.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는 인적이 없는데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그것이 가을의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 슬프다. 이것은 가으르이 소리로구나, 어찌하여 온 것인가?

아아! 산천초목은 감정이 없건만 때가 되니 바람에 날리어 떨어지는구나.

사람은 동물 중에서도 영혼이 있는 존재이다.

온갖 걱정거리를 마음에 담고, 그 번거로운 일들이 몸을 괴롭히니,

마음이 흔들리면 반드시 정신 또한 흔들리게 마련이다.

하물며 감당할 수 없는 일들까지 마음이 미치고,

자신의 슬기로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을 근심하게 되어서는,

혈색 좋은 얼굴은 어느새 마른 나무같이 시들어버리고,

그 검게 빛나던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쇠붙이나 돌같이 단단한 바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찌하여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고자 하는가?

생각건대 누가 저들을 해하는가.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탄한단 말인가?

동자는 곁에서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었다.

단지 여기저기 풀벌레 울음소리가 가득하니, 마치 나의 탄식을 돕기나 하는 듯하다. 

을축년 동지가 지난 후 3일 되는 날 단구가 그리다(乙丑冬至後三日 丹邱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