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고려청자에 담긴 고려인의 마음

Gijuzzang Dream 2008. 10. 9. 18:48

 

 

 

 

 

 청자에 담긴 고려인의 마음

 

 

 

 

우리가 현재 박물관 등에서 접하는 도자기들은 과거에는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이 대부분이다.

도자기는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공예품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따스한 온기가 배어나오는 듯하다. 흙으로 정성스럽게 빚어 무늬를 아로새기고

뜨거운 불을 다스려 영롱한 옥과 같은 청자를 탄생시키는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도자기를 만들었던 가마터의 폐기층에 쌓여 있는 수많은 도편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에 너무 익어 형태가 무너지거나 의도했던 아름다운 색감이 나오지 않으면

지난날의 수고는 뒤로 한 채, 과감하게 깨뜨려 폐기해야 했던 고려 장인의 마음이

폐기장 파편에 실려 그대로 전하는 듯하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청자들은 많은 인력에 의해 수많은 공정을 거치고

가마 안에서 뜨거운 불을 견뎌 만들어진 후, 장인의 눈과 손으로 검증을 받아 완성하였다.

 

이에 고려의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다음과 같이 청자의 아름다움을 찬사하고 있다.

 

“푸른 자기를 구워내어 열에 하나를 고르니, 빛나도다.

푸른 옥의 광채며, 몇 번이나 푸른 연기에 파묻혔던고.

이제야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 하늘의 조화를 빌려온 것을.

점점이 작은 꽃무늬, 오묘하기가 그림그린 듯하네.”

 

위 시는 고려인들이 청자를 어떠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열에 하나를 완성하여 사용할 만큼 제작공정이 어렵지만

그 아름다움은 하늘의 조화를 빌려 온 만큼 오묘하다는 표현으로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있다.

 

 

 

1. 청자 상감 물가풍경무늬 주자(靑磁象嵌蒲柳水禽梅竹文弧形注子)

: 높이 36.1㎝ 

   

  

 

고려청자 특유의 유선미(流線美)를 보여주는 조롱박 모양 주자의 한 예이다.

몸체의 아랫부분 양면에만 흑백상감무늬를 넣었는데,

한 면에는 물가의 수양버들 한 그루와 물에서 노는 오리 한 쌍, 물로 날아 내려오는 새 한 마리가 있고

다른 면에는 매화나무와 대나무를 배경으로 백학 한 쌍이 노니는 모습이 있다.

주구와 손잡이 밑에는 백상감으로 마름모꼴 무늬 띠를 돌렸다.

주구의 곡선이나 조롱박모양 허리의 맵시가 매우 대범하다.

주자에 그려진 그림과 무늬는 회화적이며 운치가 있다.

투명하고 연한 회청색계의 비색 유약이 입혀졌는데 전면에 나타나 있고,

가마 안에서 구워낼 때 산화된 부분이 눈에 띈다.

이와 같은 파편이 강진 사당리 가마터에서도 출토되었다.

 

 

 

2. 청자 상감 물가풍경무늬 완(靑瓷象嵌蒲柳水禽文盌)

: 높이 4.8㎝, 입지름 13.9㎝

 

 

그릇의 온아한 자태와 장식 문양, 연두빛 표면색이 곱게 어울린 대접이다.

바깥 면에는 아무 문양이 없고 안쪽 면 바로 아래에 좁다란 뇌문(雷文)띠를 두르고

안쪽 바닥에 파도문을 넣었으며 그 사이 면에 버들과 갈대, 오리를 3군데에 배치했다.

무늬는 모두 흑상감되었으나 오리의 몸체만 백상감이다.

유약은 연두색이 비낀 비색유(翡色釉)이고 그물모양의 빙렬(氷裂)이 있으며,

좁게 패인 안쪽 바닥과 굽 둘레에 유약이 고여서 맑은 옥색을 띠었다.

굽 안바닥에는 ‘돈진(敦眞)’이라는 명문이 있으며

이와 유사한 파편이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출토되었다.

 

 

 

3. 청자 상감 동채 모란무늬 매병(靑瓷象嵌銅彩牧丹文梅甁)

: 높이 34.5㎝(보물 346호)

 

 

작은 입과 둥글고 부드러운 어깨, 유연한 선을 그으며 흘러내린 허리와 다시 조금 넓어져

안정감을 주는 다리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고려 매병의 곡선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입둘레로부터 어깨까지 국당초문(菊唐草文)을 넣은 커다란 모란 네 송이가 흑백상감되었다.

몸체 양편에는 모란 꽃가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꽃잎과 봉오리 끝에 구리 안료를 칠하여 화사하게 표현하였는데,

이처럼 매병의 장식의장으로 구리 안료를 사용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아래쪽에는 백상감으로 연판문(蓮瓣文) 띠를 두르고 연판 안에 양식화한 당초문을 흑상감하였다.

굽다리 둘레에는 뇌문(雷文)띠를 흑상감으로 둘렀다.

 

광택이 은은하고 투명한 회청색 유에 그물꼴의 빙렬이 몸체 전면에 퍼져 있으며

굽 밑에 규석이 7군데 남아 있다.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청자가마터에서

이 매병과 같은 유약과 태토, 상감기법을 보이는 파편들이 발견되어있다.

- 강경남,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청자실

- 2008년 9월24일,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제 107회)

 

 

 

 

 

 

 

고려청자의 美

 

(1) 색의 아름다움 - 비색(翡色) 청자

고려청자의 아름다움 가운데 손꼽는 것으로 '비색(色)'이라 일컫는 청자 빛깔을 들 수 있다.

청자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는 옥빛을 청자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경지로 여겼으나,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분위기의 청자색이 등장하였고,

고려에서는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 무렵 중국인들도 칭송했던 비색 청자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송나라 사신인 서긍(徐兢, 1091-1153)이 인종 원년(1123) 개경을 방문한 후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도기의 색이 푸른 것을 고려인들은 비색(翡色)이라 부른다.

근년에 들어 제작이 섬세해지고 광택이 더욱 아름다워졌다"고 하였는데

당시 향유되었던 비색 청자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비색(翡色)은 청명한 가을하늘빛 가운데 은은한 녹색의 비취빛이 감도는 둣 하고,

그 색이 차분히 가라앉아 부드러운 깊이감을 더하다가 어느새 맑고 산뜻한 광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실 언어로 표현되기에 앞서 눈으로 음미하고 느낌으로 익혀야 할 빛깔일 것이다.

이러한 비색의 아름다움은 청자의 자태와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한다.

 

(2) 형태의 아름다움 - 상형(象形) 청자 

고려청자에는 동, 식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본떠 만든 청자가 있다.

이를 가리켜 '상형청자'라 하는데 대개 향로, 주자, 연적, 필가 등의 문방구류, 인장 등으로 제작되어

12세기 고려청자의 특징을 이룬다. 중국에서도 예로부터 상형도자기가 만들어졌지만

고려에서 상형청자의 아름다움은 극치에 다다른다.

참외, 죽순, 표주박, 복숭아, 석류, 연꽃 등의 식물형

사자, 오리, 원앙, 원숭이, 용, 기린, 거북 등의 동물형

동자, 나한, 도사 등의 인물형 등 다양한 소재의 특징을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한 솜씨는

영롱한 비색과 어우러져 고려인만의 정서와 미감을 잘 나타낸다.

 

(3) 무늬의 아름다움 - 상감(象嵌) 청자

고려청자의 표면을 꾸미는 방법으로 음각, 양각, 투각, 철화, 퇴화, 동화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었지만,

상감(象嵌)이야말로 고려청자의 독창성을 잘 드러내는 장식기법이다.

본래 상감은 나전칠기나 은입사 공예에서 보듯이 바탕에 질이 다른 물질을 넣어 장식하는 방법으로,

고려장인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는 청자에도 발휘되어 고려청자 장식의 정수를 이룬다.

상감청자는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긴 디 파인 부분에 흰 흙(백토)이나 붉은 흙(자토)을 메우고

유약을 입혀 구우면 희색이나 검은색 무늬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미 9세기말 10세기 초부터 이 기법이 시도되었고, 12세기 중엽에 이르러 크게 성행하여

다채로우면서도 정겨운 무늬가 펼쳐진다.

소담스러운 국화나 모란, 화려한 당초무늬, 구름 속을 가르는 학, 물새가 노니는 한가로운 물가를 담은

상감청자는 고려인들이 추구했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연의 노래, 유천리 고려청자>

 

고려시대 문헌 가운데 지배층의 청자인식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사료인 <고려사(高麗史)>에는

청자로 만들어진 기와나 원의 황제에게 진상한 화금자기(畫金磁器) 등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청자에 대한 고려인의 인식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기란 어렵다.

 

특히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 몇 수가 눈길을 끈다.

이규보는 관료이자 문인으로 무인집권기를 보낸 인물이다.

자를 춘경(春卿), 호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 했으며

정중부의 난이 일어나기 두 해 전인 1168년에 황려현(黃驪縣, 지금의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1191년(명종 21)에 진사시에 합격한ㄷ뒤 관료의 길을 걸었다.

 

최우의 신임을 받아 정2품 관직인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까지 올랐으며

<동명왕편(東明王篇)>, <개원천보영사시(開元天寶詠史詩)>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쳤고,

문집으로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가운데 청자잔이나 청자연적, 청자베개를 노래한 것이 있어

당시 문인이 바라봤던 청자에 대한 인상을 알 수 있다.

- 청자동자연적,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높이 11.4㎝

- 강경남, 조각ㆍ공예관 청자실

- 제242회 큐레이터와의 대화, 2011년 5월4일,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