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조르조네(잠자는 비너스)/ 티치아노(우르비노의 비너스)/ 마네(올랭피아)

Gijuzzang Dream 2007. 11. 22. 11:30

 

 

 

 

 

 마네-'올랭피아(Olympia)'

 


누드화 현실속 여성이 여신의 자리를 대신하자 야유와 비난
신화의 포장 벗겨내니 관음의 대상임이 밝혀져
오른쪽 끝 검은고양이 밤의 음탕한 욕망 드러내


 
 

마네의 '올랭피아'

캔버스에 유채, 130.5×190㎝, 1863,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에두아르 마네(1831~1883).

그는 생전에 두 차례나 큰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

1863년에 '풀밭 위의 점심'으로, 또 1865년에는 '올랭피아'로 물의를 일으켰다.

두 그림 모두 '야한 여자'가 문제였다.

'풀밭 위의 점심'은 야외에서 알몸의 여자가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와 함께 있는 그림이다.

'올랭피아' 역시 알몸인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림이다.

지금은 평범한 포즈지만 당시에는 대단히 도발적이었다.

비평가와 대중은 비도덕적이라며 발끈했다.

마네는 이 두 편의 스캔들로 서양미술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비웃음과 욕을 더 많이 먹은 그림이 있다.

어느 쪽일까? 역시 침대 위의 여자다.

 


내 안에 너 있다!

알몸의 여자가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정면을 바라본다.

'덜 생긴' 큰 얼굴에 다리도 짧다. 배도 살짝 나왔다. 팔등신과는 거리가 멀다.

단조로운 명암처리 탓에 그림이 평면적이다.

이 '올랭피아'는 '풀밭 위의 점심'처럼 고전적인 주제를 현대화한 것이다.

팔등신의 여자가 알몸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정면을 응시하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가 모델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Vecellio Tiziano(베첼리오 티치아노) /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캔버스에 유채, 119×165,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여신을 '매춘부'로 바꿔치기 한 셈이다.

그런데 '우르비노의 비너스'도 모델이 있다.

선배인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1510)를 따라 그렸다. 

 

 조르조네(Giorgione 1477-1510)  / 잠자는 비너스(Sleeping Venus)

oil on canvas, 108 x175, Gemaldegalerie, Dresden

 

 

이런 맥락에 따르면 '올랭피아'는 외설적인 그림이 아니라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은 '뼈대 있는 누드화'다.

그런데도 비평가와 대중은 단지 매춘부만 보고, 그 도발성과 천박함을 비난했다.

그림은 대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높은 곳에 걸어둔 채 전시했다.

이들 세 그림에는 차이점이 있다.

두 점의 비너스가 신화 속의 누드라면, '올랭피아'는 현실의 누드다.

또 '잠자는 비너스'가 눈을 감고 있다면,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올랭피아'처럼 눈을 뜬 채 정면을 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신화 속의 비너스여서,

누구도 도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올랭피아'는 현실의 여자다.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해빠진 여자가 알몸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다.

관객은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당혹감에 빠진다.

그 전까지 누드화의 주인공은 완벽한 균형미를 갖춘 신화 속의 여자였다.

사람들은 신성한 누드화에서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마네가 신화의 포장을 벗겨버리자

누드화의 여자가 실은 남성들의 관음의 대상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또 아름다움보다는 천박함이, 세련됨보다는 촌스러움이 눈앞에 펼쳐졌다.

관객은, 특히 남성 관객은 거친 야유를 퍼부었다.

마네는 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등장하는 소년처럼 용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는 임금님이 실은 알몸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소년처럼 마네도 신화로 포장된 누드의 허상을 까발렸다.

신화의 포장을 걷어내자 그곳에 살내음 가득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바로 남성들이 즐기는 누드화의 실체였다.

 


못생긴 매춘부의 은밀한 욕망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여자의 발치에 검은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그것도 어두운 배경 속에 있어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관객의 시선은 여인의 몸과 얼굴에 머물지, 발치 쪽은 소홀히 하게 된다.

왜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잠든 개 대신 '올랭피아'에 고양이를 그렸을까?

서양에서 고양이는 사탄 육욕 타락 암흑 등을 상징한다.

그래서 고양이가 마녀와 결합되면 부하로서 어둠의 존재가 되고,

관능적인 여자와 결합되면 밤의 음탕한 욕망과 성적 방종이 된다.

여기서 검은 고양이는 에로틱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프랑스어로 고양이는 '여자의 음부'를 의미한다.

비록 왼쪽 손으로 치부를 가렸지만 고양이를 통해 성을 노골화한 셈이다.

게다가 고양이는 잔뜩 꼬리를 치켜들고 있다.

마치 "왕의 발 아래서 발기한 고양이"(보들레르) 같다.

한때 마네의 지지자였던 고티에조차 고양이 때문에 그림이 추잡해졌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시 대중이 왜 분노했는지 확실해진다.

'올랭피아'를 볼 때 '베드신'의 여자만 봤다면, 이 그림은 반만 본 것이 된다.

검은 고양이까지 봐야 감상이 온전해진다.

'별주부전'의 토끼 간처럼, 마네는 여자의 성적 욕망을 고양이로 바꿔치기해서

배 밖으로 꺼내었다.

고양이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특별하다.

- 정민영 (주)아트북스 대표

 2008.04.09 ⓒ 국제신문(www.kookje.co.kr

 

 

 

 

 

◆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Sleeping Venus)

 

조르조네가 죽을 때 미완성으로 남겼는데

미키엘은 이 풍경화의 배경을 티치아노가 덧붙였다고 전하고 있다.

오른쪽 원경에 건물들이 있는 풍경은 티치아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으므로

그림 자체가 그 사실을 입증해준다.

잠자는 비너스를 시작으로 베네치아의 미술에서는 사랑의 여신을 주제로 한 일련의 그림들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특히 티치아노의 그림들이 유명하다.

 

조르조네의 비너스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불타는 욕망의 눈길을 애써 모른 척 한다면 

조르조네의 영향을 받은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진다.

케네스 클라크는 '조르조네의 비너스'가 막 피어나기 직전의 꽃봉오리라면,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꽃이 핀 농염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조르조네가 여체의 감각에 눈끄게 했다면 티치아노는 그 감각을 완결한 셈이다.

 

 

◆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 delphis, Tiziano)

 

미술사에서 누드화의 원형이라고 일컬어지는 티치아노의 유명한 대표작이다.

티치아노의 여성 누드화는 대부분 이 그림과 같이 비스듬히 누운 자세를 취했다.

이 그림은 《다나에와 유모(Danae with Nursemaid)》와 같은 그림으로,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였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그림 속의 여인은

'매우 아름답고 휼륭하게 완성된 꽃과 정묘한 포단에 싸인, 누워 있는 젊은 비너스'라고 했다.

이 그림은 종종 조르조네(Giorgione)의 《잠자는 비너스 Sleeping Venus》와 비교된다.

티치아노는 이 작품을 위해 르네상스 시대 처음 기대어 누운 누드를 주제로 한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의 모티브를 그대로 사용했다.

조르조네의 목가적인 작품을 티치아노는 가정적인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는 여신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의 이상미를 추구한 것은 조르조네의 것과 같으나,

티치아노는 신화의 여성이 아닌 보통의 여성을 그린 점이 차이이다.

 

곤차가 가문의 귀도발도 델라 로베레와 줄리아 다 바라노의 신혼 방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됐다.

이 작품 속의 비너스는 침대에 누워 화려한 보석 팔찌를 두르고 장미꽃다발을 손에 쥐고 있다.

커튼 뒤로 보이는 독특한 모양의 기둥이 있는 창문은 우르비노의 궁전을 묘사한 것으로

이 작품이 어디에 걸리게 될 지 암시한다.

창문 난간에 있는 둥근 은매화나무는 비너스가 들고 있는 장미꽃과 함께

결혼의 영원한 애정과 헌신을 상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 발 빝에 개를 그려넣은 것은

부부가 서로 결혼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서로에게 정절을 지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창가의 두 명의 하녀가 옷을 꺼내고 있는데 결혼식에서 입을 신부의 옷이 들어있는

옷궤에는 그 당시 보통 남녀의 누드가 그려져 있었다.

 

이 작품처럼 실내를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누드는

그리스 로마 시대 고전문학의 영향을 받아 16세기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누드화는 남성을 대상으로 표현됐다.

티치아노 베첼리오(1487년께~1576)의 이 작품이 말하는 메시지는

사랑의 여러 가지 측면과 순결과 관능의 결합이다.

 

우르비노 공의 부인을 실제모델로 한 이그림은

선을 보이기가 무섭게 에로틱한 비너스의 그림 여왕자리를 단숨에 차지했다.

이 매혹적인 그림에 탄복한 각국의 황제와 왕족들은 부러움과 시기를 참지 못하고

티치아노의 비너스 그림들을 앞다투어 수집했다.

덩달아 자극을 받은 영주와 귀족들이 저마다 누드 초상화를 주문하는 바람에

이를 흉내낸 아류누드화가 전 유럽에 유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르네상스 시대 누드화의 유행을 주도한 일등공신이었다.

 

 

◆ 마네 '올랭피아(Olympia)'

 

마네는 '올랭피아'를 통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매춘부를 그렸는데

당시 유행했던 유곽의 매춘부를 우회적인 방법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방금 옷을 벗은 듯한 여인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마네가 표현한 벌거벗은 여인은 사회가 감추고 싶은 치부였다. 그것을 사람들은 용서하지 못했다.

 

'올랭피아'라는 이름은 로마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정부 '올랭피아 말다치니 팜필리'가 근원이다.

그녀는 교황 이노센트 10세 동생의 미망인으로 교황의 정부가 된다.

올랭피아는 교황의 정부로서 권력을 행사했으며

그 이후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소설에서 올랭피아는 춘희의 연적으로 부끄러움을 모른 채 아름다운 육체를 팔아서 살아가는

매춘부의 이름이다. 이 소설의 성공으로 연극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마네가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올랭피아는 파리에서 매춘부의 대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또한 전통적으로 비너스를 상징하는 꽃은 장미였는데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올랭피아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난초는

사치와 여성의 성욕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누워있는 벌거벗은 여인은 목걸이와 슬리퍼만 신고 있는데,

목걸이는 창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이었다.

 

'올랭피아'는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있는 흑인하녀와 대조를 이루면서

남성의 사랑을 원하는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검은 고양이는 발기된 남성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 고양이는 1865년 살롱전에 출품하기 전에 덧그려진 것으로

이 고양이는 마네의 추문의 상징이 된다.

마네는 공식화단에서 성공하고 싶어했지만,

'올랭피아' 때문에 20년간 추문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