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조선 숙종 때의 병적기록부

Gijuzzang Dream 2007. 11. 17. 09:56
 

 

 

 

 

 

 

조선 숙종 때 3,878명 병적기록부 … 나이부터 얼굴 흉터까지

 

 

 

 

 

               임유청(林有靑)=나이(年) 43살

               소속부대(係)=석성 지역부대

               주소(住)=병촌

               얼굴(面)=곰보(麻)

               수염(髥)=약간 있음

               키(長)=4척3촌

               흉터=왼쪽 뺨(左腮)

               부친(父)=임맛생

               주특기(藝)=포병

               신원보증인(族)=임표선

 

1697년 3월 현재, 공주진영(연대) 우사(대대) 좌초(중대) 1기총(1소대장)에 소속된 임유청의 병적기록부이다.

 

이는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관장 조유전)이 한 문중으로부터 입수,

지난달 21일 공개한 조선 숙종 때 충청도 관찰사 휘하 병사 3878명의 신상명세가 기록된

군적(軍籍 · 병적기록부) 자료 3책의 내용 중 한 구절이다.

 

토지박물관이 최근 입수한 군적 자료 가운데 2책은 숙종 5년(1679)과 숙종 23년(1697)의 것이며,

나머지 1책은 앞장 일부가 떨어져 나가 연대를 알 수 없다.

 

충청도 2개의 영(營 · 연대급)과 49개 충청지방 군현의 병적 사항을 빼곡히 기록한 이 군적은

총 230쪽에 달한다.

자료를 검토한 이현수 육사 교수 부장은

“이 군적은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군적인 유성룡 가문의 ‘진관관병용모책(鎭管官兵容貌冊 · 1596년)’

다음으로 이른 시기의 것”이라면서 “이번처럼 병사 개개인의 신상명세가 담긴 군적이 이렇게 일괄로

많은 분량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유성룡 가문의 군적은 평안도 안주 지역 병사 550여명의 기록을 담은 것이다.

 

군적이란 평시엔 군포(軍布)를 징수하고 전쟁시엔 병력을 소집·징발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자료였다.

공개된 군적은 영(營·연대)-사(司·대대)-초(哨·중대)-기(旗·소대)-대(隊·분대)의 순으로 정리됐다.

김성갑 토지박물관 학예사는
 

“군적에 기재된 병사들의 신상명세는 기본적으로 요즘의 병적기록부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현수 교수는

“지금으로 치면 동사무소의 병역자원관리부, 병무청의 병적기록부를 합친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군적에는 부대와 계급, 신분·직역, 성명, 나이, 소속, 주소지는 물론

얼굴 특징과 신장, 수염, 아버지 이름, 주특기와 얼굴 흉터, 신원보증인, 편입 연대가 생생하게 작성돼 있다.

예컨대 1679년의 군적자료에는 말미에 1개 진영 총 1905명의 신상명세와 편제 상황이 기록돼 있다.


기록을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얼굴(面)’란에는 병사들의 얼굴 모습을 상세히 그렸는데, 까무잡잡한 얼굴은 철(鐵)로 기록했다.

 

김호 경인교대 교수는

“천연두로 인해 곰보가 깊게 팬 얼굴은 박(縛), 홍역으로 곰보가 된 이는 마(麻)라고 기재했고,

곰보자국이 좀 옅은 사람들은 잠박(暫縛), 혹은 잠마(暫麻)로 표시한 것 같다”고 보았다.

 

수염(髥)의 형태도 자세히 그렸는데 시생(始生), 즉 ‘수염이 나고 있음’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있다.

흉터의 경우 ‘왼쪽 빰(左腮)’ ‘왼쪽 눈 위(左目上)’ ‘오른쪽 팔뚝(右臂)’ 등이라고 구체적으로 놓았다.

병사가 사고를 쳤을 때 대신 보증을 서야 했던 신원보증인의 이름(주로 친척)이 기재됐고,

신원보증인이 없을 경우엔 아버지가 직접 수결한 것도 있었다.

심광주 학예실장은 “군제사 연구에도 중요하지만

3878명의 키와 얼굴 특징, 병력(病歷) 및 흉터 여부, 수염 등 군적에 기록된 자료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면

조선시대 생활사 연구에 획기적인 인류학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경향, 2007년 11월 4일, 이기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