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봄날 오후, 노부부가 마루에 앉아서
틀을 놓고 돗자리를 짜는 중이다.
마당에는 암탉이 병아리와 함께 모이를 쪼고 있다. 평화롭다.
그런데 뜻밖의 소동이 벌어진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란 영감님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다.
손에는 담뱃대가 들려 있다.
머리에 쓴 탕건이 날아간다.
짜고 있던 틀이 마당으로 넘어진다.
마루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다.
아낙도 놀라서 벌떡 일어선다.
마당에서는 겁에 질린 병아리들이 달아나기에 바쁘다.
암탉도 표독스레 날개를 펼치며 고양이를 쫓아간다.
급박한 상황에서 핀 부부애
긍재 김득신(1754~1822)의 '파적도'는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가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용이 투명하다.
긍재에게 그림은 삶 그 자체였다.
그림을 그리는 집안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다가 생을 마쳤다.
아버지도, 아들도, 심지어 사위까지도 도화서의 화원이었다.
그는 신선이나 부처, 고승 등을 그린 도석인물화를 비롯하여
새와 동물을 그린 영모화 산수화 등도 잘 그렸다. 하지만 '주특기'는 역시 풍속화였다.
생활 속에서 찾아낸 소재에 지기와 해학을 가미하여,
스승인 단원 김홍도 못지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파적도'는 극적인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대표작이다.
생활 속에서 이런 광경을 접하고, 그것을 토대로 그린 것 같다.
일상에서 포착한 급박한 상황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기겁한 아낙의 표정이 재미있다. 지금 그녀의 관심사는 고양이에게 잡힌 병아리가 아니다.
오로지 마당으로 떨어지는 남편 걱정뿐이다.
따라서 이 그림에서 한 집안의 가장과 내조자의 역할을 확인할 수도 있다.
영감님은 몸을 날려서 재산인 병아리를 지키려고 위험을 감수한다.
반면에 내조자인 아낙은 마당에 떨어지는 남편이 다칠까봐 놀란 표정이다.
위험한 순간에 드러난 부부의 정이 아름답다.
고양이가 만든 최고의 순간
'파적도'의 매력은 갑작스런 소동이 주는 해학성과
부부간의 각별한 애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형적인 구성에도 있다.
그림의 초점은 고양이에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