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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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 김득신 - 파적도(병아리 훔치기)

Gijuzzang Dream 2008. 8. 16. 14:01

 

 

 

 

 

 

김득신, '파적도'의 고양이


 

약을 올리려는 듯 고개돌린 고양이가 '결정적 순간' 만들어
절묘한 상황포착이 풍속화가 긍재의 진면목 드러내

 

김득신의 '파적도'. 종이에 담채, 22.4×27.0㎝, 18세기, 간송미술관

 

 

 

 

 

 

 

한적한 봄날 오후, 노부부가 마루에 앉아서
틀을 놓고 돗자리를 짜는 중이다.
마당에는 암탉이 병아리와 함께 모이를 쪼고 있다. 평화롭다.
 
그런데 뜻밖의 소동이 벌어진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란 영감님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다.
손에는 담뱃대가 들려 있다.
머리에 쓴 탕건이 날아간다.
짜고 있던 틀이 마당으로 넘어진다.
마루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다.
아낙도 놀라서 벌떡 일어선다.
마당에서는 겁에 질린 병아리들이 달아나기에 바쁘다.
암탉도 표독스레 날개를 펼치며 고양이를 쫓아간다.


급박한 상황에서 핀 부부애

긍재 김득신(1754~1822)의 '파적도'는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가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용이 투명하다.

긍재에게 그림은 삶 그 자체였다.
그림을 그리는 집안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다가 생을 마쳤다.
아버지도, 아들도, 심지어 사위까지도 도화서의 화원이었다.
그는 신선이나 부처, 고승 등을 그린 도석인물화를 비롯하여
새와 동물을 그린 영모화 산수화 등도 잘 그렸다. 하지만 '주특기'는 역시 풍속화였다.
생활 속에서 찾아낸 소재에 지기와 해학을 가미하여,
스승인 단원 김홍도 못지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파적도'는 극적인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대표작이다.
생활 속에서 이런 광경을 접하고, 그것을 토대로 그린 것 같다.
일상에서 포착한 급박한 상황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기겁한 아낙의 표정이 재미있다. 지금 그녀의 관심사는 고양이에게 잡힌 병아리가 아니다.
오로지 마당으로 떨어지는 남편 걱정뿐이다.

따라서 이 그림에서 한 집안의 가장과 내조자의 역할을 확인할 수도 있다.
영감님은 몸을 날려서 재산인 병아리를 지키려고 위험을 감수한다.
반면에 내조자인 아낙은 마당에 떨어지는 남편이 다칠까봐 놀란 표정이다.
위험한 순간에 드러난 부부의 정이 아름답다.


고양이가 만든 최고의 순간

'파적도'의 매력은 갑작스런 소동이 주는 해학성과
부부간의 각별한 애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형적인 구성에도 있다.
 

 

 
그림의 초점은 고양이에 모아진다.

 

마루 위에서 고양이를 향해 몸을 날린 영감님과 그런 영감님을 붙잡으려는 아낙,

그리고 마당에서 달려드는 암탉의 방향이 달아나는 고양이를 향하고 있다.
이 절묘한 구도와 동세 속에 급박한 상황은 고조된다.

이때 주목할 것은 고양이 대가리의 방향이다.
병아리를 입에 문 고양이의 몸은 왼쪽으로 달아나고 있지만
대가리는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다. 달려드는 영감님과 닭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달아나는 방향과 시선의 방향이 서로 어긋난다. 여기서 그림의 재미는 배가 된다.

만약 고양이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달아난다면 어땠을까.
내용의 긴장감이 뚝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마치 약을 올리려는 듯이 달려드는 사람과 닭 쪽으로 보고 있다.
즉, 고양이는 자신에게 집중되던 관람자의 시선을
다시 오른쪽의 인물과 닭 쪽으로 돌려놓는다.
이처럼 고개만 살짝 돌려놓았을 뿐인데, 내용이 아주 드라마틱해진다.

그러면서도 긍재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마당의 호들갑스런 상황과 달리 집 뒤편에 슬쩍 살구나무를 배치한다.

 

마치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고개를 내민듯한 나뭇가지의 표정이 여유롭기 그지없다.


작은 차이가 빚은 명품

이 그림에서 고양이는 악역을 담당한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고양이 한 마리가 고요한 분위기를 헤친다.
문제의 고양이만 아니었다면, 이 그림은 농가의 정겨운 모습을 그린 평범한 그림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런데 고양이가 투입되어 분위기를 바꾼다.
그것도 얄미운 포즈로 그림의 격을 드높인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했다.
뒤로 돌린 대가리가 걸작의 씨앗이 되었다.

'파적도'는 봄날의 한적함을 깨버린 작은 소동을 해학이 넘치게 그린 득의의 작품이다.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이 포착한 동적인 상황이 절묘하다.
사진이라면 '대상'감이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풍속화가로서 긍재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다.
- (주)아트북스 대표 정민영의 그림 속 작은 탐닉

 

- 2008.06.25 ⓒ 국제신문(www.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