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비빔밥

Gijuzzang Dream 2008. 8. 16. 11:53

  

 

 

 

 비빔밥 한 그릇의 종합건강식

 
곡물 · 고기류 산성과 나물류 알칼리성 영양소의 조화

지난해 7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마솥에 담긴

300인분의 오방찬을 비비고 있다. 

임상빈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교수(일본과정 주임교수)는 ‘일본의 알프스(알펜루프)’라고 불리는 다테야마(立山)의 시발점인 토야마(富山)시의 한 식당에서 일본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했다.

한 무리의 일본인 단체관광객이 한국의 돌솥비빔밥과 유사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 음식의 이름은 ‘아유미’라고 불린다.

 

돌솥비빔밥과 ‘아유미’는 먹는 법도 비슷하다.

시금치, 버섯, 당근을 비롯한 야채와 새우 등 해물을 얹어 지은 쇠솥밥을 대접에 옮겨 담은 뒤 흰 달걀을 깨 넣고 함께 비벼 먹는다.

전통 일본식 식단에 없는 숟가락도 이용한다.

 

다만 밥에 이미 간이 되어 있어서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 또 여러 가지 음식 재료를 밥과 함께 익힌다는 점에서 우리의 전통 비빔밥과 차이가 있다.



시의전서에 ‘부밥’ 조리방법 소개


일본에서 17년 동안 살면서 한국 유학생회장을 지낸 임상빈 교수는

“일본인들은 카레라이스나 덮밥을 먹을 때도 밥과 재료는

마치 다른 그릇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구획을 지어가며 먹는다”면서

“‘아유미’라는 음식을 처음 봤다”며 신기해했다.

일본에는 비벼먹는 음식 문화가 매우 생소하다는 얘기다.

일본 조지대학 출신인 김태영 강릉대 교수(사회학)는 “일본에서도 산악 지역 마을이나

산 속에 있는 절 같은 데서 비빔밥과 유사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면서

“그러나 매우 제한된 지역이나 계층에서 먹던 음식”이라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쇠솥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카마’다.

에도(江戶)시대의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저서 ‘토가(東牙)’에는 “솥을 카마라고 하는 것은,

조선어에서 온 것 같다. 지금도 조선에서는 솥을 가마라고 한다”고 적혀 있다.

카마의 어원이 가마솥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호칭과 어원이 같다는 건 문화 교류가 왕성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 못지않게 뛰어난 문화 흡수력과 창작적 재수용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 능력을 보여준 것 중 하나가 비빔밥이다.

비빔밥의 한자어는 ‘골동반(骨董飯)’이다.

중국 명나라의 동기창이 쓴 ‘골동십삼설(骨董十三說)’이란 책에서는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해 조리한 국을 ‘골동갱(骨董羹)’,

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익힌 음식을 ‘골동반(骨董飯)’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골동반은 한국의 비빔밥과 다르다.

골동반은 잘 지은 밥에 여러 가지 조리된 음식 재료를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여러 가지 재료와 곡물을 함께 넣어 섞은 다음에 밥을 안친 ‘차오판(炒飯)’이라는

중국 볶음밥에 가까운 음식이다.

골동반이란 음식 이름이 소개된 문헌으로 ‘시의전서(是議全書)’가 있다.

이 책에는 비빔밥을 한자로 ‘골동반’이라 쓰고, 한글로 ‘부밥’이라 적었다.

‘부밥’을 만드는 방법도 상세히 설명했다. 분명히 중국의 ‘차오판’과 다른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제사에 쓰는 소의 간이나 천엽 · 어육)은 부쳐 썬다.

각색 나물을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달걀을 부쳐서 골패 짝 크기로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 크기로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달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부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

통영의 전통 비빔밥 <박태원 기자>

비빔밥이 언제, 어떻게 개발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임금의 간식’이라는 얘기도 있다.

조선시대 임금은 1일 2식3참(아침참-식사-낮참-식사-밤참)을 했다.

낮참으로 가벼운 식사를 했는데 이때 비빔밥이 주로 밥상에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또 조선 선조가 임진왜란 때 몽진하면서 수라상 대신 비빔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왕의 궁궐생활과 관련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에는 비빔밥에 관한 기록이 없다. 이 때문에 비빔밥이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는 주장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대신 먹을거리가 부족한 시대에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비빔밥이 등장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에도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

동학군이 그릇이 충분하지 않아 그릇 하나에 있는 반찬을 모두 넣어 비벼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구색을 갖추기 어려운 농번기 음식이 아니었겠느냐는 추측도 있다.

 

전주대 송화섭 교수는 전주비빔밥의 발생설과 관련해

“전주 남문시장에서 시장 사람들이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던 음식에서 전주비빔밥이 시작됐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지방도 비슷한 이유로 비빔밥을 자주 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의 음식이든 서민 음식이든 오늘날 비빔밥은 한국의 대표 음식이 됐다.

한국 음식 중 지명 이름을 딴 음식으로 비빔밥만큼 많은 게 없다.

전주비빔밥, 평양비빔밥, 안동비빔밥(헛제사밥), 해주비빔밥, 진주비빔밥, 통영비빔밥,

함양육회비빔밥, 개성차례비빔밥, 함평육회비빔밥, 거제멍게젖갈비빔밥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역마다, 계절에 따라 재료도 다르고 맛도 달랐지만

비빔밥이 한국의 대중음식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증거’다.

특히 전주비빔밥은 평양냉면, 개성탕반과 함께 조선시대의 3대 음식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전주비빔밥이 으뜸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비빔밥 기내식 ‘세계 최고’ 선정

 

비빔밥은 무엇보다 영양학적으로 뛰어난 음식이다.

정해랑 한국식품위생연구원 연구위원(이학박사)은

“현대인의 건강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맛도 있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음식”이라면서

“비빔밥은 섬유소와 비타민이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이 적어 많이 움직이지 않는 현대인의 건강에

특히 좋다”고 강조했다. 사실 비빔밥 한 그릇을 먹으면 종합영양소를 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곡물과 고기류의 산성과 나물류의 알칼리성 영양소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 종합건강식이라는

얘기다. 이런 이유에서 지난해 농림부(현재 농림수산식품부)와 문화관광부는

 ‘한국 음식 베스트 12’를 선정했는데 비빔밥을 그 중 넘버원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고른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는 게 높은 점수를 얻었다.

건강 유지와 만성질환 예방이라는 점에서 야채 위주의 우리 식단의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김치 못지않게 비빔밥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비빔밥은 ‘메타볼릭 신드롬’(고기류의 음식을 많이 먹으면 장기에 기름이 끼어 장기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을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웰빙식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또 대한항공 기내식 비빔밥이 세계 최고의 기내식 대상인 머큐리상을 수상했다.

홍콩에어라인은 한국의 비빔밥을 기내식으로 도입했다.
- 2008 08/19   경향, 뉴스메이커 788호

-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