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옛 태극기 15점 - 문화재 등록

Gijuzzang Dream 2008. 8. 13. 00:04

 

 

 

 

 옛 태극기 15점 문화재로 등록

 

제 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우리 한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역사적 가치가 큰 옛 태극기를

12일자로 문화재로 등록했다.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된 태극기는

독립기념관 소장 “김구 서명문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데니(O. N. Denny) 태극기”,

하남역사박물관 소장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A. W. Busbea) 기증 태극기”,

동덕여대박물관 소장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국회 헌정기념관 소장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등

5개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5점의 태극기이다.

등록문화재 태극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독립기념관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남상락 자수 태극기” 등

11점의 귀중한 태극기를 소장 · 전시하고 있다.

이 중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광복 의지가 생생히 담겨있는 것으로,

당시 광복운동을 돕던 벨기에인 매우사(梅雨絲, 미우스 오그)신부에게 전달한 것이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를 거쳐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다.

이 태극기 바탕에는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의 지원을 당부하는 친필이 인장과 함께 남겨져 있다.

“데니 태극기”는

조선 말기 고종이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태극기 실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데니는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정치외교 고문으로 활동하다 귀국할 때 이 태극기를 간직했고,

그의 후손이 기증한 유물로 구한말 외교 및 태극기 변천사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수복 시가전 중 우리 시민이 트럭을 몰던 미군에게 전달해 준 태극기로,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가 전쟁기간 내내 군용트럭에 꽂고 전투 현장을 누비다 귀국 시 갖고 돌아가

50여 년간 보관하던 것을 2005년 하남시에 기증하여 하남역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동덕여자의숙 태극기”는

1908년에 동덕여자의숙 개교와 함께 교정에 게양되고 일제 36년동안 장롱 속에 깊숙이 숨겨져

보관되어 오다 한국전쟁 때에는 조동식 교장이 태극기를 옷 속에 꿰매고 봇짐에 넣어 피난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소중히 간직되어 온 태극기로,

100년 역사를 지닌 사학 상징물로서 뿐 아니라 국가 상징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크다.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는

이승만 박사가 1942년 월도프 아스토리아(Waldorf Astoria) 호텔에서 한국독립 만찬회를 열 때

사용했다고 알려진 태극기이며, 재미동포 김동준씨가 1981년 9월 호텔에 방문했을 때

발견 · 입수하여 보관하다 대한민국 국회에 기증한 태극기로,

재미동포 사회의 태극기 제작·사용과 항일독립운동사 연구자료로 가치가 큰 유물이다.

위 태극기들은 구한말부터 한국전쟁기까지 제작·사용된 태극기이며,

기본적으로 4괘(卦)와 음(陰)·양(陽)의 태극문양이 있고

그 내력이 밝혀진 것들 중 문화재적 가치가 큰 것으로,

우선은 공신력 있는 기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 40점을 대상으로

관계전문가 현지조사(‘08.2~3월), 조사자 · 전문가 · 관계기관 합동검토회의(’08.5.2),

문화재위원회의 검토(‘08.6.5) 및 심의(’08.7.30)를 거쳐 엄선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제 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태극기의 문화재 등록을 계기로, 국권 상실 시기에 목숨을 걸고 가슴에 품은 태극기 한 장 한 장이

나라를 되찾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국가 상징으로서의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국운 융성과 사회통합에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태극기 현황 

1.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1호


2. 데니(O.N.Denny)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2호


3.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A.W.Busbea)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3호


4.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 등록문화재 제384호


5. 태극기목판 - 등록문화재 제385호



문화재 명칭

소재지(소장처)

제작년도

재질 ․ 규격

소유자

1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게양 태극기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로 (국회 헌정기념관)

1930년대

면직물, 바느질

144x85cm(중)

국회기록

보존소장

1942년 이승만 박사가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한국독립 만찬회를 열 때 사용했다고 알려진 태극기로, 1981년 9월 재미동포 김동준씨가 이 호텔에 방문하였다가 옛 태극기임을 알고 새 태극기와 교환 후 대한민국국회에 기증한 것임.

 

1930년대 워싱턴의 깃발 제작 회사에서 만든 것이며, 두꺼운 면직물에 태극문양과 4괘를 재봉틀로 정교하게 겹 박음질 하였고 태극은 가늘고 긴 형태로 맞물려 있는 태극기로, 미국에서의 태극기 제작 및 항일독립운동사의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큼.

2

데니(O.N.Denny)

태극기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5(국립중앙박물관)

1890년 추정

면직물, 바느질

262x182.5cm(대)

국립중앙

박물관장

구한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O. N. Denny, 1838~1900)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태극기 실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임.

데니가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정치외교 고문으로 활동하다 귀국 시 가져간 것을 그의 후손(William Ralston)이 1981년에 우리나라에 기증함.

 

ㅇ 광목 두 폭을 이어 박은 바탕의 테두리는 손바느질로 마감하였고 양방은 홍색, 음방과 4괘는 청색 옷감을 오려 1cm 너비로 두 줄 상침한 태극기로 재봉틀을 사용하여 제작한 대형 태극기임. 태극문양의 양방과 음방은 가늘고 긴 몸통으로 원 중앙을 향해 회오리처럼 머리를 휘어감은 형태이고 깃대선에는 위 아래로 달려있는 깃대끈을 단단히 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넣어 제작하였음.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서 태극기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임.

3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A.W.Busbea) 기증 태극기

경기 하남시 덕풍1동

426-10(하남역사박물관)

1950년

레이온, 손칠

86.3x69.3cm(중)

하남시장

ㅇ 미 해병대 출신 버스비어(A. W. Busbea)가 2005년 11월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시 맥아더공원에서 열린 한국전쟁기념광장 기공식에서 경기 하남시에 기증한 태극기로, 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을 위한 전투 중 우리시민이 버스비어에게 건네준 것을 전쟁기간 내내 군용트럭에 꽂고 다니다 귀국 때 갖고 돌아가 50여 년간 보관한 것임.

 

태극기 바탕에 괘의 밑그림을 그린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색을 칠한 것으로 원래는 일장기였던 것을 시민이 태극기로 개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다소 조잡해 보이기는 하나 한국전쟁 내내 전투현장을 누비고 소중히 간직된 태극기로 민중사적 ․ 사료적 가치가 큼.

4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서울 성북구 하월곡2동 23-1(동덕여대 박물관)

1908년

면직물, 바느질

144.5x129cm(대)

학교법인

동덕여학단

1908년 동덕여자의숙 개교와 함께 교정에 게양되었고 국권 피탈 이후 36년간 장롱 속 나무상자 및 땅속에 간직되다 1945년 광복 후에 동덕여자고등학교 교정에 다시 게양된 바 있음.

한국전쟁 때에는 조동식 교장이 태극기를 옷 속에 꿰매고 괴나리봇짐 속에 넣어 피난하는 등 소중하게 간직되어 온 태극기로, 이러한 내용은 종전 초등학교 5학년 도덕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음.

 

ㅇ 4괘는 검정, 태극문양의 양방은 홍색, 음방은 청색 옷감을 오려 표면에 덧대고 재봉틀로 박음질한 태극기로 태극문양은 상하로 껴안은 형태이며 바탕은 누렇게 바랬음.

옷감재료나 바느질법 등에서 시대성을 볼 수 있고 100년 동안 학교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한 상징성이 크며 사용내력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큼.

5

태극기 목판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19년

목재(소나무)

32x30x6.5cm(소)

독립기념관장

ㅇ 태극기를 찍어내기 위해 목재에 4괘와 태극문양을 새긴 목판임.

1985년 3월 남궁용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것으로 3․1운동 때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음.

가로 32cm, 세로 30cm의 정사각형 형태로 6.5cm의 두꺼운 원목에, 4괘가 네 모서리까지 꽉 차게 조각되어 있고 둘레는 약 1.8cm 너비의 테두리가 있음.

 

ㅇ 인쇄기술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일제강점기에 사용되던 목판으로 매우 희귀한 자료일 뿐 아니라 그 당시 제작기법과 상황을 헤아릴 수 있는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큼.

6

남상락(南相洛)

자수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19년

견직물, 자수

44x34cm(소)

독립기념관장

ㅇ 독립운동가 남상락(1892~1943)이 1919년 4월 4일 당시 독립만세 운동에 사용하기 위하여 부인과 같이 만든 것으로, 1986년 10월에 후손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함.

남상락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을 참관하기 위하여 서울에 상경하였다가 파고다공원의 독립만세 시위에 가담한 후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으로 내려와 동지들과 함께 장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인물임.

 

ㅇ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짠 견직물(명주)에 손바느질로 테두리를 마감하고 사괘를 검정실로 수놓았으며, 태극은 홍색실과 청색실로 수를 놓아 정성스레 만든 태극기임.

전체가 손바느질로 제작된 매우 희귀한 태극기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큼.

7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30-40년대 추정

모직물(펠트), 날염

71.1x27.8cm(소)

독립기념관장

ㅇ 1982년 9월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에 일괄 수집된 태극기로 청색과 홍색의 모직 펠트를 연결 제작한 가늘고 긴 삼각형 형태의 깃발 속에 제작된 것임.

청색 펠트에는 “大韓獨立萬歲” 글귀가 박음질 되어 있고 홍색 펠트에는 날염된 태극기가 부착되어 있음.

 

ㅇ 미국의 대학 깃발 같은 모양과 재질, 재봉틀 솜씨, 태극기의 괘 등으로 보아 미국에서 광복 전(1930~4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로서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관련 태극기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임.

8

김구(金九) 서명문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41년

견직물, 바느질

62x44.3cm(소)

독립기념관장

ㅇ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1876~1949) 주석이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梅雨絲, 미우스 오그) 신부에게 준 태극기로, 신부가 미국 뉴욕에서 약 1년 동안 활동하다 중국으로 돌아갈 때 안창호의 부인(이혜련)에게 전달한 것을 1985년 3월에 유족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함.

 

ㅇ 이 태극기는 옷감을 덧대 홍색의 양방과 청색의 음방, 흑색의 4괘를 재봉틀로 박음질 했고 태극문양은 세로방향으로 감싸 안는 형태이며, 바탕에는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 선생 친필 묵서가 쓰여져 있음.

조국의 독립과 자주 평화통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의 지도자이며 겨레의 큰 스승인 김구의 광복 의지가 생생히 담겨있는 태극기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큼.

9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45년

면직물, 바느질

87.8x61.8cm(중)

독립기념관장

ㅇ 광복군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일명 문수열)이 1945년 2월경 광복군 동료 이정수로부터 선물 받은 태극기로, 1946년 1월 문웅명이 타 부대로 이임하자 동료 대원들이 서명해 준 태극기임.

태극문양과 4괘는 옷감을 덧대고 재봉틀로 박음질하여 제작한 태극기로 1986년 8월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었음.

 

ㅇ 태극기 바탕에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염원하며 결의를 다지는 글귀와 서명이 빼곡히 적혀있고 70여 건의 서명 중 김국주는 제17대 광복회장, 김영일은 제18대 광복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음.

당시 태극기 제작기법 및 형태를 알 수 있는 유물로 글귀마다 나라사랑과 자유에 대한 굳건한 열망이 담겨있어 사료적 가치가 큼.

10

유관종(劉官鍾)부대원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50년

면직물, 손칠

66.3x49cm(소)

독립기념관장

ㅇ 유관종 소위가 1950년 10월 초 호남지구 진격 작전시 사용한 태극기로 1987년 1월 독립기념관에 기증함.

손으로 급히 만든 듯한 태극기로 태극문양은 물감으로, 4괘는 먹물로 그렸으며, 바탕에 청색 펜글씨로 백두산에 태극기를 휘날리겠다는 각오 등 무운장구를 염원하는 글귀와 서명이 적혀있고 지명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전투 경로 등을 연구할 수 있음.

 

ㅇ 태극기의 전체적인 모양은 조잡해 보이나 전쟁 중 긴박한 상황에서 그린 것으로 동족상잔의 뼈아픈 교훈을 주는 태극기로서 사료적 가치가 큼.

11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50년

면직물, 날염

90x60cm(중)

독립기념관장

ㅇ 한국전쟁 당시 경주에서 자원한 학병 19용사 등이 출정 전에 태극기에 각자 소감을 적고 서명 한 태극기로, 1987년 5월 최임준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함.

 

ㅇ 현재의 국기 규격을 갖춘 판매용 태극기로 “우리의 죽음은 역사의 꽃이 되라”, “17세 붉은 피 오직 조국에!” 등의 글귀와 서명은 한국전쟁 중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를 표현한 것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큼.

12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50년

견직물, 날염

74x59cm(소)

독립기념관장

1950년 9월 1일 제3차 학도병 자원 시 부산의 건국법정대학 법률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서명한 태극기로, 1976년 6월 국가보훈처에 기증되었고 이를 독립기념관이 1987년 6월에 입수함.

 

목판에 태극문양과 4괘를 새겨 찍어낸 것으로 무운장구를 염원하고 결의를 다지는 글귀와 서명이 있음.

학도병들이 조국을 위해 몸바칠 것을 맹세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도 고이 간직해 온 태극기로서 사료적 가치가 큼.

13

이철희(李鐵熙)

‘사변폭발(事變爆發)’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50년

면직물, 날염

87x56cm(중)

독립기념관장

ㅇ 한국전쟁 당시 특무상사였던 이철희의 유품으로 현재의 태극기 규격을 갖춘 날염된 태극기임. 태극기 네 모서리에 “事變爆發”, 맨 위에 “단기 4283.6.25日”이라는 글귀가 써 있으며, 태극문양 둘레에는 지명이 빼곡히 적혀 있는데 상부 우측의 의정부를 시작으로 대구로 끝나는 지명은 북한군의 남침경로, 좌측의 부산, 영천, 경주, 충주, 이천, 10.5 서울입성, 승호리, 10.21 평양 등으로 적힌 지명은 국군의 북진경로로 보임.

 

ㅇ 국군의 애국정신과 투철한 군인정신이 생생하게 표출되어 있고 치열했던 남․북의 진군경로 등 한국전쟁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임.

14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

(독립기념관)

1907년

면직물, 바느질(자수)

128x82cm(중)

고영준

(전남 담양)

조선 말 전남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1848~1907)이 사용한 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1986년 8월 고영준이 독립기념관에 관리 위탁함.

상단 중앙에 "不遠復" 글씨를 홍색으로 수 놓았고 태극문양과 괘는 천을 오려 2줄로 박음질 하였는데 태극문양의 양방은 홍색, 음방은 흑색이며, 마직물로 된 깃대 고정용 끈이 3개가 달려있음.

 

ㅇ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일제와 싸우면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라는 신념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의병활동의 정신적 지주로 삼은 것으로서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사료적 가치가 큰 태극기임.

15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 230(독립기념관)

1923년

 

 

마직물, 바느질

 

189x142cm(대)

 

이군옥

 

(경기 광명)

ㅇ 1923년 상해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 걸렸던 것으로 전해지는 태극기로,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이 부인과 함께 제작한 태극기이며 1983년 9월 후손이 독립기념관에 위탁하여 관리하고 있음.

임시의정원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존속한 입법기관임.

 

ㅇ 재봉틀로 두 폭의 천을 이어 박고 태극문양과 4괘는 천을 오려 박음질 하였으며 좌측과 중앙의 상․ 하단에 묶음줄이 부착되어 있으며, 1m 길이의 다회(여러 올의 실을 꼬거나 짜서 만든 끈)가 달려있음. 태극기 변천사 및 항일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임.

- 게시일 2008-08-12

- 문화재청 담당자 : 근대문화재과 강흔모, 김미성

 

 

 

 


 

 

 망국 아픔도, 건국 기쁨도 함께했던… 태극기, 문화재 된다  

 


대한민국의 상징물인 태극기가 1883년(고종 20년) 공식 국기로 채택된 이래
처음으로 국가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6일 “건국 60주년인 올해 광복절(8월 15일)을 즈음해

독립운동사와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태극기 중 역사적 가치가 높은 태극기를
근대문화재로 등록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를 위해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이화여대박물관, 하남역사박물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 33점을 조사 중이며 이달 중 매듭지을 예정이다.

이 중에서 이화여대박물관이 소장한 ‘임시정부 태극기’를 비롯해

‘김구 서명 태극기’(독립기념관 소장), 의병장 고광순의 ‘불원복 태극기’(독립기념관 소장) 등이

등록문화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시정부 태극기’(가로 257.5cm, 세로 128cm)는

윤봉길(1908∼1932) 의사가 1932년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지기 전

이 앞에서 맹세한 것으로 알려진 상하이임시정부의 공식 태극기다.

이 태극기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되기 이틀 전 장준하 선생에게 건넨 뒤

장 선생이 타계하기 이틀 전 이화여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진 역사적 유물이다.

 

‘김구 서명 태극기’(가로 60cm, 세로 45cm·사진 제공 송명호 씨)는

백범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보낸 것이다.

백범은 이 태극기에 서명과 함께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는 편지를 남겼다.

 

‘불원복 태극기’(가로 129cm, 세로 82cm·사진 제공 송명호 씨)는

일제강점기 전남 구례에서 활동한 의병장 고광순이

“불원복(· 국권 회복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이라고 쓰고 일본군과 싸울 때 사용한 것.

 

이 밖에 6·25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원이 한국 시민에게서 받았다가

55년여 만인 2005년 경기 하남시에 기증한 태극기(가로 85cm, 세로 67.5cm·하남역사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멕시코 이민 한인들이 사용한 태극기(가로 44cm, 세로 31cm·국사편찬위원회 소장) 등도 등록문화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만열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극기가 쓰였는지 시대 상황에 따라

태극기에 역사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2008-01-07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