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건국 60주년, 정부수반의 사저(私邸)

Gijuzzang Dream 2008. 8. 12. 22:43

 

 

 

 

 

 


200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회갑을 맞이한다.

정부를 수립한 후 짧은 기간 안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어 낸 대한민국의 발전,

그 뒤에는 정부수반들의 사저(私邸)가 있었다.

잠시 우리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그러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뒤돌아봐야 하는

정부수반 유적들의 역사적 의미를 반추해 본다.


잊혀진 정부수반 유적들

조각본부(組閣本部)이화장은 연일 정계요인의 내왕이

접종하고 있는 한편 조각에 부심중. 4일 오후 1시 20분에는

별항과 같이 제삼차로 4장관 2처장을 발표하였다.

오전 9시 반에는 안호상 문교장관, 동 9시 40분에는

전진한 사회장관이 인사차 방문하였고...(후략)

1948년 8월 5일 조선일보 1면 기사의 일부이다.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1948년 8월 각계의 시선이 온통

초대정부의 조각(組閣)본부가 구성된 대통령의 사저

이화장(梨花莊)에 집중되어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국가권력의 정점에 선 정부수반의 사저(私邸)들은 당대 역사의

흐름을 형성해가는 변화와 발전의 진원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들 또한 권력의 이동과 정부수반의 정치적 부침에

따라 급격히 대중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곤 했다.

 

특히, 이념을 달리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갈등과 충돌에 의한 정치적 격변을 경험한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정부수반의 유적들이 수반 개인의 정치적 침몰과 함께

대중들의 기억 저편으로 더욱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이렇게 쉽게 잊혀지고 외면 받아 마땅한 곳인가.

 

 

그들을 뒤돌아보아야 하는 이유


2008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으로부터 풀려난 지 63년이 되는 날이자,

스스로를 통치할 국가와 정부를 수립하여 주권을 행사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시점에 이르러 대한민국 미래의 방향타를 바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난 현대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 국가의 집단적 기억으로, 과거 60년 역사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는

정부수반 유적을 빼놓을 수 없다. 때문에 이 유적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보존조치가 되어야 하며,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계획이 필요하다.
이에 서울시는 정부수립 60년을 기념하여 역대 정부수반 유적 6곳,

즉 경교장, 이화장, 장면 총리가옥, 윤보선 대통령가옥, 박정희 대통령가옥, 최규하 대통령 가옥 등에

대한 종합적인 보존·관리계획을 수립, 발표하게 되었다.


정부수반 유적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그렇다면 역대 정부수반 유적들은

각기 역사적으로 어떤 중요성을 갖는 곳들일까.

 

경교장(京橋莊)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 주석(1876~1949)이

광복을 맞이해 1945년 11월 23일 중국으로부터 돌아와

1949년 6월 26일 서거하기까지 머문 곳이다.

이곳은 김구의 거소인 동시에 대한민국이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기도 했다.

또한 임시정부가 해방 정국에서 소외되어 가면서부터는

이승만의 이화장, 김규식의 삼청장(三淸莊)등 당시 정국을 이끌어가던

세 구심점 가운데 하나로서 반탁운동, 남한 단독선거 반대운동,

남북협상운동 등이 전개되는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임시정부 청사 유적인 경교장은

김구 암살 이후 원소유자에게 반환되면서 지금까지

외국대사관, 미군 주둔지, 병원 등 그 위상에 걸맞지 않은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1968년 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유적의 내외부는 문화재 지정에 걸림돌이 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2005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는 하나,

김구 주석 집무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강북삼성병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국가적 유적을 홀대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적의 역사성이 제대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보존과 함께

소유자인 삼성생명의 거시적 측면에서의 결단이 요구된다.

 

 
경교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로 복원
 
2011년까지 복원, 근ㆍ현대사 조망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

 

임시 폐쇄 기간 중, ‘백범기념실’은 매주 토요일 제한적 개방

 

대한민국 근ㆍ현대사의 뜻 깊은 현장임에도 그 가치만큼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었던 '경교장'이 드디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로 복원된다.

 

서울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서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수차례 개최되었으며 '신탁통치 반대운동', '남북 정치지도자 회담'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경교장'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복원공사는 오는 2011년 11월 완료될 예정이며,

강북삼성병원의 일부로 사용됐던 시설들은  지난 7월 1일부터 임시 폐쇄에 들어갔다. 다만, 2005년 부분 복원 및 공개되었던 경교장 내 2층 서쪽 ‘백범 김구기념실’은 매주 토요일마다 세 차례에 걸쳐 제한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오후 1시, 2시, 3시부터 각각 20분간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관람하는 것이 가능하다. 단체 관람을 원하는 경우는 미리 서울시 문화재과로 예약하는 것이 좋다.

기타 관람과 관련된 사항은 서울시 문화재과(전화 02) 2171-2594, 2584)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임시정부 국무회의 열렸던 귀빈 응접실 및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와 서재 복원

 

이번 '경교장' 복원 사업을 위해 서울시는 2008년~2009년에 걸쳐

경교장의 소유자인 삼성생명 및 강북삼성병원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해 왔으며,

문화재청으로부터 예산도 지원받기로 했다.

현재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경교장 복원자문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복원 설계를 진행 중에 있다.

 

앞으로 <복원자문위원회>의 자문과 문화재청의 현상 변경 허가를 거쳐

2011년 11월이면 경교장이 우리나라 법통을 계승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복원되어 전 국민 앞에 우뚝 서게 될 예정이다.

강북삼성병원의 원무실로 쓰였던 1층 서쪽의 방은

임시정부 환국 후 국무회의가 열렸던 귀빈 응접실로 복원되며,

약품창고로 사용되었던 2층 중간방과 동쪽 방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와 서재로 복원된다.

 

그간 병원시설로 활용되면서 변형되었던 내부 벽체나 사라진 창호 역시

모두 1945~1946년 당시의 임시정부 청사의 모습으로 되살려낼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교장이 복원을 통해, 1949년 김구 주석 서거 이후

각국 대사관ㆍ의료시설로 사용되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이 바로 서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며,

“이곳이 근ㆍ현대사의 발전을 조망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2010-07-02/ Hi 서울 뉴스

 

 

 
 
경교장 내부, 오는 광복절에 시민에게 공개
 

 

 

경교장 원형복원 설계 중 각 층 지붕부 및 서재 원형 살아있음을 확인

 

지금까지 완전히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왔던 경교장의 내부가 원형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강북삼성병원과의 협의를 거쳐 병원시설을 완전히 이전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의 모습으로 원형복원중인 사적 제465호 경교장이 정밀조사과정에서 각 층 천정의 지붕부와 2층 동쪽 서재의 내부 벽체 등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경교장의 외벽은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되었으나, 내부는 김구 주석 서거 이후 각국 대사관 및 병원시설 등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완전히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복원을 통해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위상을 바로 세우고, 근ㆍ현대사의 발전을 조망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광복절인 오는 8월 15일(일) 오후 1시에 그 역사적인 내부를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공개는 '역사학자와 함께하는 정부수반유적' 답사의 일환으로 진행되며 평소에 듣기 힘든 전문가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교장 내부 탐방이 가능하다.

 

 

건축지 ‘조선과 건축’에 실린 평면도와 ‘LIFE'지에 실린 경교장 사진 참고해 원형대로 복원할 것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및 김구 주석의 사저로 사용됐던 시기(1945~1949)의 경교장은 1층에 임정 국무회의가 개최되었던 귀빈응접실과 외국의 귀빈들을 접대했던 식당, 응접실로 사용했던 썬룸(Sun Room), 기사대기실, 비서실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주로 국내ㆍ외 귀빈들을 위한 공식적인 시설이 주를 이루었다.

 

1층의 전체적인 평면이나 실의 용도는 현재는 변형이 되었지만, 천정의 텍스 반자를 걷어내면 원래 평면의 형태 및 마감재료(몰딩) 등이 건립당시의 모습대로 잘 남아 있어 원형그대로 복원이 가능한 상황이다.

 

 

2층은 전형적인 중복도식의 평면으로서, 임시정부의 서재와 김구 주석의 집무실과 침실, 그리고 임정요인들의 숙소 등 1층에 비해 사적인 공간으로 이루어졌는데, 1층과 마찬가지로 현재 건립당시와는 많은 부분에서 변형이 이루어졌지만, 동쪽의 서재만큼은 아직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서재는 나무로 된 마감벽체와 1930년대 근대건축물에서 유행했던 장식용 벽난로, 그리고 지붕부 천정의 몰딩 및 마감장식 등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복원 공사 시 이들 원형이 남아있는 천정과 벽체 등을 최대한 살리고, 건축지『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 1938년 발행)』에 실린 평면도와『LIFE』지 등에 실린 경교장 사진 등을 참고로 하여 2011년 11월 복원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문의: 문화재담당관 ☎ 02)3708-2626

2010-08-11, 하이서울뉴스/박혜숙

 

 

 

 

 

낙산자락에 자리한 이화장

이승만 초대대통령(1875~1965)이 돈암장과 마포장에 이어 거주한 곳이다.

이승만은 마포장에서 이사한 1947년 10월 18일부터 경무대에 입주하는 1948년 8월 12일까지,

그리고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1960년 4월 28일부터

같은 해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하기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그는 이곳을 무대로 남한 단독정부수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한독당·사회주의 세력이 불참한 5·10 총선거에서 승리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에는

이화장에 ‘조각본부(組閣本部)'를 두고 초대정부를 이끌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처럼 이화장은 초대대통령의 정치적 흥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또 국가적으로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초대정부의 내각이 구성된 역사적 현장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서울시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 위상과 가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을 축출하고 집권한

장면 총리(1899~1966)와 윤보선 대통령(1897~1990)의 가옥은

얄궂게도 이화장과 가까운 명륜동과 안국동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명륜동 장면의 사저

1937년 그가 직접 건립해 196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거주하던 가옥.

2공화국 집권세력인 민주당 출범의 막후장소이자, 1960년 4·19 혁명 시 학생, 시민들의 집결지였다.

2007년 멸실 위기에 처해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문화재로 등록하고 매입 및 보존했다.

장면은 이승만 정권에서 국무총리지냈으나,

1952년 부산정치파동 이후 자유당 정권과 결별하였다.

이후 신익희, 조병옥 등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집권해 의원내각제를 표방한 2공화국의 총리가 되었다.

 

 

안국동 윤보선 대통령의 가옥

대지 4,667㎡에 건물만도 안채, 사랑채, 안사랑채 등 11동이나 있는 대저택으로

윤보선 대통령이 1918년 이후 1990년 7월 18일 서거하기까지 거의 평생을 보낸 곳이다.

장면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신파와 대비되는 민주당 구파의 중심지로서

장면 총리 가옥과 함께 제2공화국 탄생의 막후 장소가 되었다.

한편,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과 서교동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민주주의 발전과 산업화에 있어서 큰 도전과 변혁을 가져왔던 군부의 정치개입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들이다.

 

 

신당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가옥

박정희 대통령 가족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까지 거주한 곳이다.

육군 소장이던 박정희는 이곳에서 육사 5·8기생, 해병대 출신 군인들을 규합,

2공화국을 전복하는 5·16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고, 이를 진두지휘했다.

혁명공약, 각계에 보내는 호소문, 포고령 등이 이곳에서 작성되었는데

지금도 거실 벽면에 박정희 소장이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군사정변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친필서한이 걸려 있어 지나간 역사의 흔적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신흥 주거지로 개발된

서교동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 최규하 대통령 가옥

최규하 대통령이 1972년 직접 건립한 곳이다.

1976년 제12대 국무총리로 임명돼 삼청동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신군부의 쿠데타로 1980년 8월 16일 사임한 후 돌아와

침묵의 세월을 보낸 끝에 2006년 영면하기까지 거주한 곳이다.

신군부 등장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일시 후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대통령 일가가 사용한 1950년대 이후의 다양한 생활용품이 내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살아있는 생활사박물관으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복원되어 특성화된 교육공간으로 거듭나다

 

앞으로 이러한 정부수반 유적들은

2013년까지 각 정부수반들이 대표하는 시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사교육 공간으로

차례로 원형 복원, 정비될 예정이다. 물론 이를 추진함에 있어서는

소유자, 유족 및 다양한 이해집단들 간의 이해를 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이들 유적들을 더 이상 보존도, 복원도 할 수 없게 된다.

 

지난 60년 동안의 우리 역사와 우리네 삶의 모습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지지하여 준다면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 절대 뒤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정부수반 유적들을

국민적 자산으로 가지게 될 것이다.

- 김수정 서울시 문화재과 학예연구사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8-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