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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오딧세이]

[간도 오딧세이] 25. 녹둔도 지키기 - 조선시대 병력 파견

Gijuzzang Dream 2008. 8. 1. 20:20

 

 

 

 

 [간도오딧세이] 조선시대 병력 파견 ‘녹둔도 지키기’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녹둔도.


 

조선 선조 20년(1587) 10월 10일의 일이다. 선조실록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북병사(北兵使)가 치계하였다.
“적호(賊胡)가 녹둔도의 목책(木柵)을 포위했을 때

경흥부사(慶興府使) 이경록(李慶祿)과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이 군기를 그르쳐

전사(戰士) 10여 명이 피살되고 106명의 인명과 15필의 말이 잡혀 갔습니다.

국가에 욕을 끼쳤으므로 이경록 등을 수금(囚禁)하였습니다.”

적호란 여진족을 말한다. 이때의 사건을 ‘녹둔도 야인사건’이라 일컫는다.

외교사를 전공한 노계현 전 창원대 총장은

‘조선의 영토’(한국방송통신대출판부)라는 책에서 이 사건을 알기 쉽게 서술해놓았다.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 몰아내

 

이해 가을 경흥부사 이경록이 군사를 이끌고 녹둔도에 가서 우리 백성이 추수할 때

초도(椒島)에 있던 여진인이 쳐들어왔다. 이에 장군 오형과 임경번은 전사하고

납치당한 농민이 100여 명이나 되고 전사한 군인이 10명, 빼앗긴 말이 15마리나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녹둔도의 농사·인구·방위 정도를 대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경흥부사 이경록과 조산만호 이순신이 겨우 적을 몰아내었다.

북병사 이선은 이경록과 이순신이 사전에 막아내지 못하였다 하여 처벌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하였으나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뒤 이감은 초도를 정벌하고 여진인 32명의 머리를 베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때 첫 백의종군을 한다.

이로부터 5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서 대승리를 거뒀다.

우리나라 해양전투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이순신 장군은

이에 앞서 두만강에 있는 녹둔도에서 활약한 장수였다.

녹둔도는 이처럼 우리에게 매우 의미가 있는 곳이다. 녹둔도는 지금 러시아의 땅이다.

19세기에 물줄기가 크게 바뀌면서 러시아 쪽으로 흐르던 두만강 줄기가 한국 쪽으로 넘어왔다.

자연스럽게 녹둔도는 러시아 땅과 붙게 되었다.

청과 러시아는 1860년 흥개호조약, 1861년 훈춘조약을 맺고 두만강 인근의 국경을 정했다.

녹둔도는 이때 러시아의 땅이 돼버렸다.

훈춘조약을 체결할 때 우리나라는 참여 의사를 밝혔음에도 통고를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모르는 사이에 청과 러시아가 녹둔도를 러시아 땅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북한은 1990년 러시아(옛 소련)와 국경조약을 맺었다.

여기에도 녹둔도는 러시아 땅이었다. 국력이 쇠해진 사이 우리의 땅은 하나둘 남의 나라로 넘어갔다.

1883년 10월 어윤중은 녹둔도를 순시하고 돌아와서 고종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녹둔도는 본래 우리 땅입니다.

신이 조산에 도착하여 지형을 살펴보니 섬 동쪽에 모래가 쌓여 저쪽 땅과 연결되어 있고,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국민이고 다른 나라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 2008 08/26, 경향 뉴스메이커 789호
- 윤호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