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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존덕정 - 어느 화학자의 눈에 비친 존덕정

Gijuzzang Dream 2007. 11. 6. 12:01

  

 어느 화학자의 눈에 비친 존덕정 [최종덕]  l 문화유산 e-이야기

 

 

 

 

2007.10. 08 

어느 화학자의 눈에 비친 존덕정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요즘 이 말은 너무 유명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아는 만큼 느낀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얼마 전 나는 화학을 전공한 과학자 한 분을 모시고 창덕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창덕궁 후원의 깊숙한 곳에 있는 존덕정(尊德亭)에 이르렀을 때 동행하던 그 과학자는

존덕정의 특이한 모습을 보고 "벤젠 같아요" 라는 것이 아닌가.

 

벤젠? 존덕정이 벤젠과 닮았다니! 무슨 말이지?

그러다가 순간 나는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벤젠에 얽힌 인상 깊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물아물한 기억을 더듬으면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벤젠의 화학구조를 연구하던 한 화학자는

당시의 지식으로는 풀리지 않던 벤젠의 화학구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고양이 여러 마리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도는 희한한 꿈을 꾸게 된다.

잠에서 깬 화학자는 꿈 속에서 본 고양이 놀이에 영감을 얻어

탄소와 수소가 한 쌍이 되어 6개의 쌍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육각형 벤젠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은 인조 22년(1644)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정자의 특이한 모습 때문에 '육면정(六面亭)'이라 불리다가,

나중에 '존덕정'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스무 개가 넘는 정자들이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존덕정이 단연 눈길을 끈다.

'반월지(半月池)'란 이름을 가진 연못에 두 다리를 담그고 있는 존덕정은

육각형으로 된 특이한 평면을 가졌다.

또한, 기와 지붕을 이중으로 올리고 각각의 지붕에 기둥을 안과 밖으로 따로 세워 아기자기한 멋을 부렸다.

거기에다, 바깥 기둥은 기둥 한 개를 세울 자리에 세 개의 가는 기둥을 무리 지어 세워 운치를 더했다.





 

 

 

존덕정을 보고 어떤 사람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운다고도 한다.

공자의 말씀이 그곳에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좀 엉뚱하지 않은가?

존덕정은 두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어 마치 사람이 발을 씻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발을 씻는 것은 '탁족(濯足)'이라 하여 조선 선비들이 즐겨 하던 피서 방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옛날 중국에 '창랑(滄浪)'이라는 강이 있었다.

이 강을 지나는 여행객들은 강의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닦지만, 물이 흐릴 때는 발만 씻고 지나갔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이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淸斯濯纓], 흐리면 발을 씻는다[濁斯濯足]"라는 시를 지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창랑의 물은 자신의 맑고 흐림에 따라 갓끈을 씻는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 빌미를 제공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즉, "모든 일은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自取之也]"라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너무나 유명하여 조선의 선비들이 자주 인용하곤 했다.

따라서 이 공자의 가르침을 아는 사람이라면

연못에 두 다리를 담그고 있는 존덕정을 보면서 '모든 것은 내 탓이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존덕정에서는 또한 정조의 강인한 왕권을 느낄 수 있다.

존덕정에는 정조가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글이

나무 판에 새겨져 걸려있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은

정조 22년(1798)에 정조가 스스로 지은 자신의 호(號)로,

이를 설명하는 서문을 친히 짓고 쓴 후 이를 새겨 존덕정에 걸게 한 것이다.

 

정조는 그 뜻을 직제학 이만수(李晩秀)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으로 자호(自號: 스스로 지어 부르는 자신의 호)를 삼았는데,

그 뜻은 자서(自序: 지은이가 스스로 적은 서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서(序) 가운데 '달은 하나이나 물의 부류는 만 가지이다. 물은세상 사람이고 달은 태극(太極)이니,

태극이란 바로 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조정 신하 수십 명으로 하여금 각각 써서 올리게 한 다음에 새겨서

연침(燕寢: 임금의 침실)의 여러 곳에 걸어 두었는데,

점을 찍고 획을 그은 것을 보면 그 사람의 규모와 기상을 상상할 수 있으니,

이것이 실로 이른바 만천명월(萬川明月)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조가 자신에 찬 임금의 모습을 신하들에게 과시하는 것이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항상 반대파에 의해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며 왕위에 오른 정조는

문예부흥을 통해 새로운 이상정치를 실현하려 했다.

 

세손 시절에는 청나라의 선진문화를 연구하며 전혀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지 않던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정치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에 대한 복수를 단행하는 한편,

학문에 뛰어난 새로운 인물을 과감히 발탁하여 친위세력을 구축했다.

또한, 정조는 외척과 환관을 멀리하고

규장각을 세워 유능한 선비를 가까이 하며

그들과 함께 학문과 나랏일을 토론하며 유교적 이상국가를 지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오른 지 22년이 지난 다음,

정조는 비로소 자신의 의지대로 짠 새로운 질서의 틀을 완성하고

'만천명월주인옹자서'를 통해 이를 신하들에게 선언한 것이다.

 

존덕정을 보고 정조의 강한 왕권을 느낄 수도 있고,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느낄 수도 있다.

 

육면정인 존덕정의 모습을 보고

벤젠을 연상하는 것은 화학자에게는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벤젠을 모르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벤젠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존덕정 때문에

나는 까마득한 학창 시절의 화학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물며 그 건축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역사적, 문화적 사실이야!

이것이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 문화재청 국제교류과장 최종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