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새 만원권> 천상열차분야지도, 혼천의, 보현산천체망원경...

Gijuzzang Dream 2007. 11. 4. 22:43

 

 새 만원권에 들어가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의 하늘 손에 잡힐 듯 생생…

고구려 시대 관측 별자리 조선 때 다시 제작한 천문도… 세계에서 두 번 째로 오래돼

천문시계 혼천의와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도 측면에 함께 그려 넣어

 

 

조선시대 뛰어난 과학기술의 상징으로 꼽히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 세종대왕과 함께 그 시대 사용된 물시계, 해시계 등을 떠올린다.

이러한 통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바로 현재 1만원권 지폐다.

1만원권 앞면에는 세종대왕과 물시계 자격루(국보 229호)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전통 과학기술의 대표물이 이제 바뀌게 되었다.

한국은행이 1월 22일 새로 발행하는 1만원권 새 지폐의 뒷면 바탕 그림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국보 228호)다.

그 위에는 천체 시계인 혼천의(渾天儀:국보 230호)와

한국에서 가장 큰 천체망원경인 지름 1.8m의 보현산 천문대 천체망원경이 그려진다.

  

소남(召南)천문학사연구소는 1월 19일(금) 홍릉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제1회 심포지엄을 연다.

주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전통 천문도'.

천문학자들이 모여 세계 최고(最古)의 희귀 천문도가 새 화폐에 들어간 일을 자축하고

이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자리다.

이 연구소는 고 소남(召南) 유경로 전 서울대 사범대 교수의 출연금으로 2005년 9월 설립됐다.

   

 

천문도 의미 

  

지폐 그림이 바뀌게 된 데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됐다. 

도대체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무엇인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왕조가 1394년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것을 기념해

그 이듬해(1395) 검은 돌의 일종인 흑요석에 새겨 만든 천문도이다. 

중국의 순우천문도(1247년 南宋 제작)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 된 천문도로 꼽힌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형상을 구역별로 나눠 순서대로 배열해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1467개의 별과 은하수가 새겨져 있다. 

별들의 위치는 고구려 시대인 서기 1세기께로 맞춰져 있고, 

또 적도원의 중심에 북극을 두고 그 아래에 북두칠성이 오게 했으며,

동방칠수를 좌측에, 북방칠수를 위쪽에,

서방칠수를 오른쪽에, 남방칠수는 북두칠성과 같은 방향인 북쪽에 오도록 별자리 판을 구성했다.

이는 정확히 고구려 고분 안에서 북벽을 마주하고 올려다본 사람이 보게되는 하늘의 모습이다.

곧 고구려인이 바라본 하늘의 별들이 그대로 천문도에 투영된 셈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고구려 고분에서 보게 되는 별자리보다 훨씬 별이 많지만

성도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좌표계와 방위 선택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고구려 고분 천문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비롯한 동양의 옛 천문도 전통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의 원본이 고구려 천문도라는 사실은

양촌 권근(1352~1409)이 쓴 천상열차분야지도 설명문에도 나와 있다. 

여기에는 "고구려 평양성에 석각(石刻) 천문도가 있었으나 전쟁으로 잃어버리고 

사본만 남아 이를 바탕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어느 시대의 하늘인가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밤하늘이 언제 관측된 것이냐는 것은 학계에 큰 논란거리였다. 

19일 심포지엄에서 이면우 춘천교대 교수가 시기 논쟁을 조명한다. 

조선시대에 제작됐지만 이보다 1,000년 더 앞선 밤하늘이라는 사실은

1980년대에 진지하게 논의됐다. 이은성, 박성환 등 일군의 천문학자들이 

천문도의 설명문에 나오는 춘·추분점의 위치 또는 춘·추분점 근처의 별자리 일부를 

분석해 관측연대를 2세기, 5세기 등으로 추정했다.

  

20세기 초 선교사 루퍼스도 

천상열차분야지도 설명문을 영역, 서구에 소개하면서 이 같은 주장을 폈지만

천문학적 연구가 병행된 것은 아니었다. 

  

1993년부터 옛 천문 기록 연구에 매진해 '우주 역사’를 전공한 박창범 고등과학원(당시 서울대) 교수는

1998년‘천상열차분야 지도와 별자리 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박 교수는 별자리를 일일이 옮겨 그리는 방법으로 거리, 밝기 등을 측정해 

375개의 별을 확인(동정)하고, 컴퓨터로 이 별자리들이 관측된 밤하늘의 시기를 계산해냈다. 

그 결과 천상열차분야지도 가운데 부분의 별자리는 조선 초기 관측 자료에 가깝지만 

바깥부분의 별자리는 고구려 초기에 관측된 것이었다. 

 

박 교수는 “천문도의 관측 지점은 1세기경 위도 39∼40도 근처로 실제 고구려 위치와 일치하고,

천문도에서 별자리가 그려진 배열 또한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의 배열과 같아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초기인 서기 1세기경 것으로,

하늘의 형상을 표현한 유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의 천문도는 중국과 다르며 고인돌 시대부터 자생해

고구려 - 조선왕조 천상열차분야지도로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천문학사가 이미 선사시대부터 시작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한국천문연구원 양홍진 박사와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남한 전역에 널리 분포한 고인돌의 덮개돌에서 발견된 구멍들이

주요 별자리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확인된 별자리는 북두칠성, 남두육성, 묘성(플레이아데스성단), 삼성(오리온자리) 등으로

중국에서 별자리가 전해지기 전부터 이미 조상들이 독자적으로 밤하늘을 관측했다는 것이다.

기원전 1000∼100년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의 덮개돌은

보통 산의 지세와 같은 방향을 향한다.

이는 천체의 방향(동남쪽)을 따르는 다른 나라 고인돌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그 대신 연구팀은 덮개돌에 뚫린 지름 4∼10cm의 구멍들이 동남쪽을 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일부 덮개돌에 있는 구멍들이

‘북두칠성’‘남두육성’‘삼성(오리온자리)' 등

하늘의 방향을 잡는 기준이 되는 별자리를 뜻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옛 천문 기술이 중국 한나라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또“선사시대의 고인돌, 고구려의 석각천문도, 조선시대‘천상열차분야지도’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천문학사가 최소 3000년의 역사를 갖는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중국에도 천문도가 있었지만

우리처럼 별자리를 한곳에 모아 기록한 것은 그 이전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자리 배열이 고구려 고분의 별자리 배열과 일치하고,

고구려고분의 별 그림은 고인돌에 새겨진 별 그림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수천년간 밤하늘을 관측해온 우리 전통의 총아라 할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별은 총 1,467개이고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그려져 있는데 특히 이 밝기는 현대 관측된 등급과 잘 일치한다.

   

  

일본에도 영향

  

심포지엄에서 이용복 서울교대 교수는 고구려의 천문관측전통이 일본에 끼친 영향을 고찰한다. 

1998년 발견된 나라현 아스카무라 기토라고분(7세기말~8세기초)의

천장에 그려진 별자리그림은 여러 모로 우리 학자들이 관심을 끈다. 

먼저 고분의 별자리그림이 북극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고, 

28수의 별자리를 그려 넣은 점이 고구려의 별자리 배열을 그대로 반영했다. 

또 대략적인 관측 위치와 시기가

북위 38~39도, 기원전 3세기~서기 3세기 정도인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관측된 별자리일 가능성도 있다. 

이 교수는 “기토라 고분의 별자리 그림이 중국의 것보다 고구려의 전통에 가까워 

고구려의 별자리 그림이 그대로 일본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한 일종의 천체 시계이다. 

엄밀히 따지면 천문 관측기구라기보다는

절기와 계절을 알려주는 '천문 자동표시 장치'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1만원권에 그려진 혼천의는 17세기 중엽 조선 현종 10년(1669년)

천문학 교수였던 송이영이 만든 국보 제230호인 혼천시계는(고려대 박물관 소장)

오른쪽 기계식 시계장치와 왼쪽에 절기와 계절을 표시하는 혼천의로 구성돼 있다.

새 1만원권에는 이 혼천시계의 오른쪽 부분인 혼천의 도안이 들어가 있다.


혼천의는 중심부에는 지구의가 자리 잡고 있으며

혼천의 오른쪽에 위치한 2개의 추가 서서히 내려오면서

톱니바퀴로 연결된 지구의가 하루에 한 바퀴씩 회전하고,

혼천의의 환이 돌면서 천구의 황도와 적도를 나타내는 두 개의 고리도 따라 돌아

계절과 절기를 표시한다.

혼천시계의 혼천의는

중심부에 서양 천문학에서 전래된 지구의가 자리를 잡고 있고

자명종의 원리를 이용한 점으로 볼 때

동서양의 천문학이 모두 결집된 첨단 과학문화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혼천의는 본래 중국에서 전래된 우주관인 '혼천설'에 따라 만들어진 천문관측기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1433년(세종 15) 처음으로 만들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혼천시계와 혼천의도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무너진 왕실의 체통을 살리고 옛 제도를 복구하기 위해

조선 정부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옛날의 천문학은 임금의 고유한 권한이자 의무였기 때문에

혼란에 빠진 사회를 안정시키자면 천문학을 정비해야 했던 것이다.

청나라에서 들어온 서양식 역법인 시헌력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천체 관측 기구도 정비하였다.

혼천시계는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된 과학 기술이었다.


조선 현종 1669년에 송이영은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의 기계식 추시계를 보고 그 원리를 터득해 혼천시계를 만들어냈다.

똑딱똑딱 추시계가 움직이면서 매 시간마다 시간판이 돌아가고 인형이 종을 치도록 고안됐다.

태엽과 건전지가 없던 시절이기에 시계의 동력은 무거운 추가 서서히 내려오는 힘을 이용하였다.

혼천시계의 놀라운 점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서양의 추시계가 발명된 지 겨우 십여 년 만에

머나먼 조선에서 정교한 장치를 구현해 냈다는 점이다.


그런데 혼천시계가 가지는 더 놀라운 사실은

당시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독특한 발상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시계의 작동에 맞물려 혼천의의 고리들이 회전하고,

지구의(즉 지구본)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시뮬레이터를 만들었다.

‘혼천의’라 부르는 바로 이 부분이

당시의 우주관을 상징한다고 보고

새 1만원권에 도안으로 채택된 것 같다.


혼천의에는 지구를 감싸고 있는 고리가 2개가 있는데,
각각 천구의 적도와 황도를 나타낸다.

원래 혼천의는 이 고리들을 회전시키면서

천체의 적도 좌표, 황도 좌표, 지평좌표계를

측정할 수 있는 관측 장비다.

하지만 혼천시계에서는 이를 단순화해

누구나 쉽게 대충이나마 우주의 모습을 알 수 있도록 제작됐다.


혼천시계에는 톱니바퀴로 동력을 전달하는 기술과

세계지도가 새겨진 지구의 동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보여주는 요소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계와 우주 모형의 작동을 연결시킨 발상은

세종시대의 자격루나 옥루라는 물시계들로부터

송나라와 원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동아시아 문명의 전통이 반영된 것이다.

즉 동서양 기술과 문화의 컨버전스로 태어난 우리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혼천시계가 만들어질 당시 정부는

혼천시계를 만들어낸 과학기술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 그들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열된 천문학자들이나 송이영과 같은 과학기술자들은 잊혀졌다.

사회의 천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회 질서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완수한

송이영과 같은 과학기술자들을 이제라도

새 1만원권 뒷면을 통해 역사가 제대로 평가해 주는 것은 다행이 아닌가 싶다.

 

 

새 1만원권 지폐 도안에 사용된 망원경의 모델은

1996년 설치된 경북 영천 보현산천문대의 보현산 천체망원경이다.

지름 1.8m 크기의 광학망원경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

국내의 대표적 천체망원경으로 꼽히는 이 망원경은

산개성단, 변광성탐사, 성간물질, 은하형성, 퀘이사탐사, 외계 행성계 탐색 등의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적외선카메라 시스템을 장착, 활용범위가 더 넓어졌다.

수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해발 1162m의 보현산 정상 보현산천문대의

1.8m 광학망원경동의 3-4층에 걸쳐 설치된 이 망원경은

1층 관측실에서 PC를 이용해 제어 프로그램(TPC)으로 작동한다.

망원경 제어PC는 다른 관측 기기와는 독립돼 있으며

현재 망원경 위치 및 시간 정보를 초당 1회 네트워크를 통해 관측기기로 전송한다.


망원경의 방위각은 남쪽이 360도이고 이곳을 기준으로 +-270도 회전할 수 있다.

고도 축은 0도에서 95도까지 움직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안정을 위해 16.4도에서 89.5도까지 사용한다.

외부에 설치된 방풍벽에 의해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정방형의 돔으로 보호를 받는다.

 

2006년 6월28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의 기고글 중에서
- 2007년 1월16일 한국일보, 중앙일보, 국민일보, 연합신문 등에서 기주짱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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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만원권 앞면은,

기존의 세종대왕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기존의 자격루와 용포 무늬 대신

일월오봉도용비어천가 2장에 창호무늬 바탕으로 변경됐다

 

새 만원권의 크기는 가로 148mm, 세로 68mm로 현재보다 가로는 13mm, 세로는 8mm 축소됐다.

새 5천원권과 비교하면 세로 길이는 같지만 가로는 6mm 더 크다.


위조와 변조 방지를 위해 새 1만원 지폐에는

땅 모양을 본뜬 정사각형 모양의 홀로그램이 부착됐다.

홀로그램은 보는 각도에 따라

우리나라 지도와 태극문양, 액면숫자(10000), 4괘의 3가지 무늬가 번갈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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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효율적인 농업 경영을 위해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움직임 등 천체의 변화를 관찰하여

일년 중의 절기와 하루 중의 시각을 정확히 알아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였다.

이 때문에 지배계층은 천문학에 대한 지식을 쌓고 절기와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통시대 천문학의 발달에는 이러한 객관적, 실용적인 목적과 함께

지배자의 권위 확보라는 정치적인 목적도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전통 천문학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제왕의 학문으로서 발달하였다.

고대인들에게 하늘은 인간사를 주재하는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고대 국가의 왕들은 하늘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정당화하고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즉 국왕은 하늘의 아들로서 하늘의 명을 받들어 왕위에 올랐음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천명(天命)사상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

특히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합리화하고 뒷받침하는 사상적 기반의 하나가 되었다.


하늘의 명을 잘 받들기 위해

왕들은 국가 체제를 정비하면서 천문학을 전담하는 기관을 설치하고

학자 관료들을 배치하여 일식, 월식, 태양 흑점의 변화, 혜성의 출현 등 하늘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도록 하였다.

이는 하늘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에 합치되도록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완성된 국보 제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刻石)>은

높이 약 2m, 너비 약 1.2m 크기의 장방형 돌판 양면에 천문도를 새겨 놓은 것으로,

천문학 발달과 정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태조는 특별히 명을 내려 이 천문도를 만들도록 했는데,

건국 초기라는 시기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할 때

천문도 제작은 조선 개국의 정당성과 새로운 군주로서 태조 자신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

권위를 세우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업에 참여한 11명중 한 사람인 권근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 천문도는 고구려의 천문도를 표본으로 하고 그 중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는

태조 4 년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과 함께

이를 다시 숙종 13 년(1687)에 복각(複刻)한 <복각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이 소장되어 있다.

이 복각본은 현재 보물 제 837 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구입하고자 하는 것은

선조 4년(1571)에 목판으로 찍어 낸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의 천문 담당 기관인 관상감(觀象監)에서

목판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120장 찍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 사실을 선조에게 보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목판본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각 부분을 여러 개의 목판에 나누어 새긴 후

이 목판을 천문도 원형대로 맞춘 다음 먹을 칠하여 종이에 찍어 내는 방법으로 제작된 것인데,

현재까지 일본 천리(天理)대학교 소장본 단 하나만이 알려져 있었다.

이번에 천운으로 또 한 점이 일본에서 입수되어 국내로 들어와 있으나,

현재 개인이 비장(秘藏)하고 있어 일반 국민이 전혀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목판본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구성과 내용은

국보 제 228 호 및 보물 제 837 호에 새겨진 것과 동일하다.

그 구성과 내용을 보면

윗부분에는 굵고 큰 글씨의 ‘天象列次分野之圖’라는 제자(題字)가 있다.

이것은 하늘의 모습을 차(次)와 분야(分野)에 따라 펼쳐 놓은 그림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

次는 목성의 운행을 기준으로 설정한 황도 부근의 12구역을 가리키며,

分野란 하늘의 별자리를 12구역으로 나누고 그것을 땅의 해당 지역과 대응시킨 것이다.

 


 

천문도의 중심 내용인 별자리들은

제자(題字) 아래 가운데의 커다란 원 안에 28 수(宿)로 구분되어 표시되어 있다.

 

 

이 별자리들은 북극권에 있는 것들이다.

원의 중심에는 북극이 있고,

그 북극을 중심으로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권, 그리고 적도권이 표시되어 있다.

원 안에 점으로 표시된 별의 숫자는 1,467 개에 이르며,

각 별자리의 중심별과 북극을 연결하는 선이 그어져 있다.

이 별자리 그림을 통해 해, 달, 5행성(수성, 금성, 토성, 화성, 목성)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그 위치에 따라 절기를 구분할 수도 있다.


원형의 별자리 그림 그 아래로는

하늘과 땅의 관계 및 하늘의 생김새에 대한 설명[論天]과

28 宿의 이름 및 별의 숫자,

그리고 천문도 제작 배경과 과정,

제작에 참여한 학자들의 관직과 이름, 제작 연월일 등이 2단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보다 훨씬 늦은 시기인 18세기에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만들어진 북극지역 별자리 그림과 비교하여,

<천상열차분야지도>에 표시된 별자리의 숫자가 훨씬 많은 점을 보아도

우리나라 역대 천문학의 발달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일찍부터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서도 주목을 받아

1930년대에 루퍼스(W.C. Rufus)가,

1950~60년대에는 조셉 니덤(J.Needham)의 논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1996년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완성 6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렸으며,

국내의 원로 천문학자에 의해 복원되어 세워지기도 하였다.

- 2006년 12월 19일, 연합뉴스 보도자료


 
 

 

- Michael Hoppe / 'Belo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