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약장(藥欌)
- ▲조용헌
우리나라 목가구(木家具)는 소박하고 작아서 정감이 간다.
한약재를 넣어 놓는 약장(藥欌)도 정감 가는 목가구 가운데 하나이다. 적게는 6~8개의 네모진 서랍이 달린 가정용 약장에서부터 많게는 100개가 넘는 의원용 약장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가 다양하다. 약장을 만드는 내부 서랍의 재료는 오동나무를 많이 사용한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좀이 먹지 않기 때문이다. 약장의 바깥 재료는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사용한다.
약장은 우리나라 중산층 이상의 선비 집안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동네마다 의원이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갑자기 환자가 생기면 글을 읽은 집안의 어른이 한약을 지어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면 평소에 집안에 한약재를 상비할 필요가 있었고, 약장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17세기 초반에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출판되어 나오면서 양반 선비들은 집안에다가 이 ‘동의보감’을 비치해놓고 틈만 나면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공부한 선비라고 하면 동의보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반 집안에서는 권속(眷屬)들 가운데 중병이 아니고 간단한 병의 경우에는 의원에 가지 않고 평소에 ‘동의보감’을 숙독한 가장이 직접 처방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한약재(韓藥材)였다. 약재가 있어야 처방을 할 것 아닌가. 우리나라는 삼천리가 금수강산이고 삼천리가 산이다. 전국 어디든지 동네 밖의 산에만 올라가면 약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환경이었다. 동의보감이 대중화된 이후로 약장은 선비 집안의 필수 목가구가 되었다. 선비들이 당쟁에 걸려 유배를 떠날 때에도 반드시 지참하고 갔던 물건이 바로 약장이었다. 유배지에서 몸이라도 건강해야 할 것 아닌가. 중국의 주택들을 돌아다녀 보면 한국처럼 집안에 약장이 많지 않았다. 집에서 치료하지 않고 의원으로 갔다는 이야기이다.
약장 중에서도 고급스러운 약장이 ‘각게수리 약장’이다. 약장 전면에 여닫이 문이 달린 약장이다. 귀한 약재를 보관하였다. 목가구 전문가인 김삼대자(65)씨에 의하면 일본과 가까운 경남 통영 쪽에서 각게수리 약장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약장을 비롯한 목가구들이 현재 전시 중이다.
- 조선일보 / 입력 : 200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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