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규중칠우(閨中七友)

Gijuzzang Dream 2007. 11. 4. 22:10

 

책을 뒤적이다 문득,

여인네들의 <규중칠우(閨中七友)>를 보았네요.


예전 여학교의 고문(古文)시간에 그저 익히고 외우던 것이건만

참 많이도 새롭고 반갑더이다.

지금 그 뜻이 새록새록 느껴지고

그 글귀읽음에 情이 또록또록 묻어나는 것은

다~아 세월이 녹녹치 않게 흘렀음이겠지요.


바늘(세요각시)넣어 보관하던 바늘집은 궁궐갈 때 노리개로 내허리춤에,

아이손바닥 때리던 그때 눈에 띄면 반가웠던 자(尺부인)와의 친분도,

장식장의 한 부분 골무(감투할미) 떼거리도,

그보다도 늘 주부생활에서 함께하는 가위(교두각시)는

김치썰고 고기썰고... 바뀌어간 오늘날

 

우리샘들도 모처럼 오랜만에

한 번 입밖에 소리내어 읽어보시지요^^

 

 

 

 

규중칠우는

규방의 일곱가지 도구를 의인화하여

세상사를 풍자화한 내용의 소설《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에 등장하는 말이다.

 

   바늘로 세요각시(細腰閣氏)라 하고,

   척()을 척부인(尺夫人)이라 하고

   가위로 교두각시(交頭閣氏)라 하고,

   인도(인두)로 인화부인(引火夫人)이라 하고

   달 우리(다리미)로 울 낭자(慰娘子)라 하고,

   실로 청홍흑백각시(靑紅黑白閣氏)라 하며

   골무로 감토(감투)할미라 하여,

   칠우(七友)로 삼아 . . . . . 

 

 

 

◆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이른바 규중칠우(閨中七友)는 부인내 방 가운데 일곱 벗이니

글하는 선배는 필묵(筆墨)과 조회 벼루로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삼았나니

규중 녀잰들 홀로 어찌 벗이 없으리오.

 

이러므로 침선(針線) 돕는 유를 각각 명호를 정하여 벗을 삼을새,

바늘로 세요각시(細腰閣氏)라 하고, 척을 척부인(尺夫人)이라 하고,

가위로 교두각시(交頭閣氏)라 하고, 인도로 인화부인(引火夫人)이라 하고,

달우리로 울랑자(慰娘子)라 하고, 실로 청홍흑백각시(靑紅黑白閣氏)라 하며,

골모로 감토할미라 하여, 칠우를 삼아

규중 부인내 아츰 소세를 마치매

칠위 일제히 모혀 종시하기를 한가지로 의논하여 각각 소임을 일워 내는지라.

 

일일(一日)은 칠위 모혀 침선의 공을 의논하더니

척부인이 긴 허리를 자히며 이르되,

“제우(諸友)는 들으라.

나는 세명지 굵은 명지 백저포(白紵布) 세승포(細升布)와

청홍녹라(靑紅綠羅) 자라(紫羅) 홍단(紅緞)을 다 내여 펼처 놓고

남녀의(男女衣)를 마련할 새, 장단광협(長短廣狹)이며 수품제도(手品制度)를

나 곧 아니면 어찌 일으리오. 이러므로 의지공(衣之功)이 내 으뜸되리라.”

 

교두각시 양각(兩脚)을 빨리 놀려 내다라 이르되,

“척부인아. 그대 아모리 마련을 잘 한들 버혀 내지 아니하면 모양 제되 되겠느냐.

내 공과 내 덕이니 네 공만 자랑마라.”

 

세요각시 가는 허리 구붓기며 날랜 부리 두루혀 이르되,

“양우(兩友)의 말이 불가하다.

진주(眞珠) 열 그릇이나 깬 후에 구슬이라 할 것이니,

재단(裁斷)에 능소능대(能小能大)하다 하나 나 곧 아니면 작의(作衣)를 어찌 하리오.

세누비 미누비 저른 솔 긴 옷을 이루미

나의 날래고 빠름이 아니면 잘게 뜨며 굵게 박아 마음대로 하리오.

척부인의 자혀 내고 교두각시 버혀 내다 하나

내 아니면 공이 없으려든 두 벗이 무삼 공이라 자랑하나뇨.”

 

청홍각시 얼골이 붉으락 푸르락 하야 노와,

“세요야, 네 공이 내 공이라,

자랑마라. 네 아모리 착한 체하나 한 솔 반 솔인들 내 아니면 네 어찌 성공하리오.”

 

감토할미 웃고 이르되,

“각시님네, 위연만 자랑마소.

이 늙인이 수말 적기로 아가시내 손부리 아프지 아니하게 바느질 도와 드리나니

고어에 운(云),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 뒤는 되지 말라 하였으니,

청홍각시는 세요의 뒤를 따라다니며 무삼 말 하시나뇨.

실로 얼골이 아까왜라.

나는 매양 세요의 귀에 질리었으되 낯가족이 두꺼워 견댈 만하고 아모 말도 아니 하노라.”

 

인화낭재 이르되,

“그대네는 다토지 말라. 나도 잠간 공을 말하리라.

미누비 세누비 눌로 하여 저가락 같이 고으며,

혼솔이 나 곧 아니면 어찌 풀로 붙인 듯이 고으리요.

침재(針才) 용속한 재 들락날락 바르지 못한 것도 내의 손바닥을 한번 씻으면

잘못한 흔적이 감초여 세요의 공이 날로 하여 광채 나나니라.”

 

울 랑재 크나큰 입을 버리고 너털웃음으로 이르되,

“인화야, 너와 나는 소임 같다. 연이나 인화는 침선뿐이라.

나는 천만 가지 의복에 아니 참예하는 곳이 없고,

가증한 여자들은 하로 할 일도 열흘이나 구기여 살이 주역주역한 것을

내의 광둔(廣臀)으로 한번 쓰치면 굵은 살 낱낱이 펴이며 제도와 모양이 고하지고

더욱 하절을 만나면 소님이 다사하야 일일도 한가하지 못한지라.

의복이 나 곧 아니면 어찌 고오며

더욱 세답하는 년들이 게으러 풀먹여 널어두고 잠만 자면 브쳐 말린 것을

나의 광둔 아니면 어찌 고으며, 세상 남녀 어찌 반반한 것을 입으리오.

이러므로 작의 공이 내 제일이 되나니라.”

 

규중부인이 이르되,

“칠우의 공이 의복을 다스리나 그 공이 사람의 쓰기에 있나니

어찌 칠우의 공이라 하리오.”

하고 언필에 칠우를 밀치고 베개를 돋오고 잠을 깊이 드니

 

척부인이 탄식고 이르되,

“매야할사 사람이오 공 모르는 것은 녀재로다.

의복 마를 제는 몬저 찾고 일워내면 자기 공이라 하고,

게으른 종 잠 깨오는 막내는 나 곧 아니면 못칠 줄로 알고

내 허리 브러짐도 모르니 어찌 야속하고 노흡지 아니리오.”

 

교두각시 이어 가로대,

“그대 말이 가하다.

옷 말라 버힐 때는 나 아니면 못하려마는 드나니 아니 드나니 하고 내어 던지며

양각을 각각 잡아 흔들제는 토심적고 노흡기 어찌 측량하리오.

세요각시 잠간이나 쉬랴 하고 다라나면 매양 내 탓만 너겨 내게 집탈하니

마치 내가 감촌 듯이 문고리에 거꾸로 달아놓고 좌우로 고면하며 전후로 수험하야

얻어 내기 몇 번인 동 알리오. 그 공을 모르니 어찌 애원하지 아니리오.”

 

세요각시 한숨 지고 이르되,

“너는커니와 내 일즉 무삼 일 사람의 손에 보채이며 요악지성(妖惡之聲)을 듣는고.

각골통한(刻骨痛恨)하며, 더욱 나의 약한 허리 휘드르며 날랜 부리 두루혀

힘껏 침선을 돕는 줄은 모르고 마음 맞지 아니면 나의 허리를 브르질러 화로에 넣으니

어찌 통원하지아니리요. 사람과는 극히 원수라.

갚을 길 없어 이따감 손톱 밑을 질러 피를 내어 설한(雪恨)하면 조곰 시원하나,

간흉한 감토할미 밀어 만류하니 더욱 애닯고 못 견디리로다.”

 

인홰 눈물지어 이르되,

“그대는 데아라 아야라 하는도다.

나는 무삼 죄로 포락지형을 입어 붉은 볼 가온데 낯을 지지며 굳은 것 깨치기는

날을 다 시키니 섧고 괴롭기 칙량하지 못할레라.”

 

울 랑재 척연 왈,

“그대와 소임(所任)이 같고 욕되기 한가지라.

제 옷을 문지르고 멱을 잡아 들까부르며, 우겨 누르니 황천(皇天)이 덮치는 듯

심신이 아득하야 내의 목이 따로 날 적이 몇 번이나 한 동 알리오.”

 

칠우 이렇듯 담논하며 회포를 이르더니

자던 여재 믄득 깨쳐 칠우다려 왈,

“칠우는 내 허믈을 그대도록 하느냐.”

 

감토할미 고두사왈(叩頭謝曰),

“젊은 것들이 망녕도이 헴이 없는지라 족가지 못하리로다.

저희들이 재죄있이나 공이 많음을 자랑하야 원언(怨言)을 지으니

마땅 결곤(決棍)하암즉 하되,

평일 깊은 정과 저희 조고만 공을 생각하야 용서하심이 옳을가 하나이다.”

 

여재 답왈,

“할미 말을 좇아 물시(勿施)하리니, 내 손부리 성하미 할미 공이라.

께어 차고 다니며 은혜를 잊지 아니하리니

금낭(錦囊)을 지어 그 가온데 넣어 몸에 진혀 서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니 할미는 고두배사(叩頭拜謝)하고 제붕(諸朋)은 참안(慙顔)하야 물러나리라.

 

- 이 자료는 서울대학교 가람문고 소장 <망로각수기(望老却愁記)>에 실린 것으로

가람 이병기선생이 교주한 것이다.

 

 

 

 


 - - 이루마 (Yiruma) /  '내 창가에서 보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