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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실학, 실학자들 5] 여성 실학자 - 빙허각 이씨, 정일당 강씨

Gijuzzang Dream 2008. 6. 15. 13:35

 

 

  

 

 

 

[경기실학, 실학자/ 여성 실학자들]

 

男 못지 않았던 실천력 男 모르는 곳 밝힌 등불

 

 

“인간의 성품은 모두 착한 것 그를 다하면 성인이 되리라.

인(仁)을 실천하고자 하면 바로 여기에 있으니 이치를 밝혀 몸을 성실히 하리라”

- 정일당 강씨/ 선한 성품

정일당 강씨의 ‘선한 성품’이란 제목의 시(詩)다.

착한 성품을 갖고 실천하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조선후기 사회는 혼돈의 사회였다. 과거제도는 이미 한성(서울)의 권문세가들이 독차지했고

새로운 문물을 거부한 집권세력들이 활개치던 때다.

여기다 유교적 윤리관에 입각한 남존여비는 여성차별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러나 역사의 물줄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실사구시를 앞세운 18세기 실학은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규방에 갇혀 지아비와 자식 걱정에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서 세상의 흐름에 눈뜨기 시작했고

어느 선비 못지 않은 강단과 실천력으로 눈길을 끌었던 여성 실학자들이 존재했다.

정일당 강씨는 30세 글공부를 시작, 높은 학문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고

빙허각 이씨는 생활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간행,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서를 펴냈다.

사주당 이씨는 태교에 대한 경험과 의학적 상식을 한데 모은 ‘태교신기’를 저술했다.

이들 모두 경기도에서 자랐거나 묘소가 위치해 있다.

자신의 삶을 개척한 이들 여성 실학자들은 남성 실학자들에 묻혀

그 의미와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비록 이름 석자가 아닌 당호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이 개척한 역사의 한 페이지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정일당 강씨 (靜一堂 姜氏 : 1753~1823)

 

詩文 자유자재 구사했던 늦깎이 문인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30세 학문에 입문했다.

당시 평균수명이 40세임을 감안하면 여간 늦깎이가 아니었다.

20세 때 14세인 윤광연과 혼인했다.

시댁 또한 선비였지만 가난한 삶은 끊임이 없었다.
길쌈과 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며 남편의 학업을 권유했다.

 

나이 어린 남편과 학문적 동지애를 발휘했다.

경서를 두루 통하고 자유자재로 시문을 구사했다.

특히 해서를 잘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말보다는 쪽지편지인 ‘척독’(尺牘)을 썼다.

남편은 아내의 사후 문집인 ‘정일당 유고’를 출간했다.

이 유고집을 통해 부인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이 유고집은 한시와 발문, 묘지명, 행장, 제문 등이 기록됐으며

상당수가 남편을 대신해 지은 점이 흥미롭다. 제목 밑에는 작은 글씨로 ‘대부자(代夫子)’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자식 복은 너무 없었다. 슬하에 5남 4녀를 뒀지만 채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정일당 자신의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오히려 남편을 위로한 글이다.
“일찍 죽고 오래 사는 것은 자기 분수에 정해져 있으니 근심할 바가 못 됩니다.

다만 근심되는 것은 자기 도리를 스스로 다할 수 없는 데 있으니 무엇을 원망하여 허물하겠습니까?”

현재 그의 무덤은 청계산 동쪽인 성남시 금토동 산 661에 위치해 있으며

부부 추모비와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성남문화원은 지난 91년부터 ‘강정일당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 사주당 이씨 (師朱堂 李氏 : 1739~1821)

조선시대 태아 교육서 ‘태교신기’

예나 지금이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사주당 이씨는 관심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도 태아때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태교신기’라는 책을 직접 발간했다.

 

우리말 역사의 한축을 그은 ‘언문지’(諺文志)의 저자 유희의 모친으로

1800년 ‘태교신기’를 통해 인간 교육은 태아 교육에서 출발한다고 역설했다.

미신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1남3녀를 키운 경험과 과학적 근거로 책을 서술했다.

인간이 잉태될 때 누구나 하늘로부터 똑같은 성품을 갖고 태어나며

다만 태내 10개월 동안 인간의 좋고 나쁜 품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출생후 교육보다 태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아이를 낳는 일에 아버지의 역할을 매우 강조했다.

 

“아버지가 낳고 어머니가 기르며 스승이 가르치는 것은 한가지이다.

그러므로 스승이 10년 가르치는 게 어머니가 10개월 기르는 것만 못하고

어머니가 10개월 기르는 게 아버지가 하루 낳는 것만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태교 방법과 주의점 등을 서술하면서 실용성을 강조했다.

임산부가 해도 좋을 노동과 주의할 음식물, 잠잘 때나 해산할 때의 주의사항 등을 담았다.

이런 태교시 주의사항은 다른 태교서와 중첩되기도 하지만,

거문고 등 음악소리를 듣고, 사술(미신)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은 ‘태교신기’에만 기록돼 있다.

미신을 경계하며

“요즘 자식을 가진 임산부 집에서 소경과 무당을 불러 부적이며 진언을 하고 빌며

푸닥거리하고 불사(佛事)를 열어 승려들에게 시주하니,

그릇된 생각이 나면 잘못된 기운이 이에 응하고

잘못된 기운이 형상을 이루면 길한 게 없게 되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83세까지 용인에 거주하며 실학의 융성기에 활동했던 성호학파 영향을 받은 점이

실천적 학문을 펼쳤던 배경이 됐다.

 

 

 

 

 

 

 

■ 빙허각 이씨 (憑虛閣 李氏 : 1759~1824)

한국 가정의 모든 것 ‘규합총서’ 저술

가족관계에서 실학적 학풍을 엿볼 수 있다.

사주당 이씨가 빙허각 이씨의 외숙모이고

사주당 이씨의 아들 유희는 빙허각 이씨와 외사촌간이다.

 

시댁은 시아버지 서호수와 시동생 서유구로 이어지는 실학적 가풍을 지녔다.

방대한 규모의 백과사전 ‘임원경제지’를 저술한 서유구를 가르치기도 했다.
개방적인 집안 분위기가 가정백과서 ‘규합총서’를 펴내는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규합총서’에는 요리법은 물론 한국 가정에서 전해지던 모든 지혜와 지식이 담겨 있으며

지금도 실제 음식으로 재현돼 널리 읽히고 있다.  

모두 5권으로 음식과 술 담그기, 길쌈과 염색, 바느질과 세탁법,

문방구와 그릇의 관리, 과일 따는 법, 가축 기르기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집안일에 대한 내용이지만

중국의 ‘본초강목’을 비롯 ‘지봉유설’, ‘산림경제’, ‘성호사설’ 등의 실학서들을 인용했다.

저서로는 ‘규합총서’만 전해지고 있다.

서유구의 묘지명에는 ‘빙허각시집’, ‘청규박물지’ 등이 더 있다고 소개돼 있다.

다행히 지난 2004년 2월 여성들을 위한 일반 백과사전 ‘청규박물지’가

서울대 국문과 권두환 교수팀에 의해 일본 동경대 문학부 도서관 ‘오쿠라 문고’에서 발견됐다.

 

 

 

 

 

■ 한춘섭 성남문화원장 · 시조시인

 

“꼿꼿한 기상으로 학문에 매진했죠”
지난 91년 최초로 정일당 강씨와 관련된 논문을 세상에 선보인 한춘섭 성남문화원장(66·시조시인).

조선후기 어려운 생활환경에서도 꼿꼿한 기상으로 학문에 매진했던 정일당 강씨의 매력에 심취했다.

“성남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문화원과 인연을 맺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유고집을 만났고,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논문을 쓴 것이 정일당 강씨와의 첫 만남입니다.”


그동안 성남문화원을 중심으로 정일당 강씨 현양사업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먼저 지난 2000년 기존의 콘크리트로 지어진 사당을 재건축했고

지난 2002년 ‘정일당 유고’ 국역판을 발간했다.
지난 91년부터 강정일당상을 제정, 모범이 될만한 여성들을 매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지난해는 이달의 문화인물로 지정돼 시낭송회, 강연회, 글짖기 등이 열렸다.


정일당 강씨의 묘소와 유고집 등을 성남향토유적 1호로 지정하는데 앞장섰던 한 원장은

“정일당 강씨는 한 시대 준거의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며

“연구할수록 깊이 있는 인물로 성남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 경기일보 200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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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복기자 bok@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