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지켜(연재자료)

소수민족 신화기행 - 윈난이야기 (1) 나시족의 창세기

Gijuzzang Dream 2008. 6. 13. 15:02

 

 

 

 

 

[소수민족 신화기행] 윈난이야기

 

 ① 나시족의 창세기

神의 딸 아내 삼아, 인간세상 풍요롭게

일년 내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해발 5,596m의 위롱(玉龍) 설산이 있는 곳에

리장(麗江)이라는 오래된 도시가 있다.

 

1922년, 미국 국적의 오스트리아인 식물학자 조지프 로크(Joseph F. Rock, 1884~1962)가

식물채집을 위해 그곳을 방문했다.

지금은 너무 많이 알려져 고즈넉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곳은 ‘위대한 민족’ 나시족(納西族)의 땅이다. 로크는 그 땅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무려 27년 동안 그곳에 머물며 윈난의 오래된 나시왕국을 서방에 소개했다.

우리에게도 이젠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이름으로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곳,

그곳에 하얀 색을 숭배하는 나시족이 산다.

노인들이 우아하고 장중한 선율의 나시고악(古樂)을 연주하고 있다.


‘나시’의 ‘시’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나’는 ‘검다’는 뜻이다.

‘검다’는 것은 ‘크다’는 것과 통하는 의미이므로 ‘나시’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지금 나시족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하얀 알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원래 검은 색을 숭배하던 나시족 사람들이 하얀 색을 숭배하게 된 것은

티베트 불교가 나시족의 땅에 들어온 이후일 것이라고 한다.

하얀 알에서 나온 나시족의 조상 총런리언(崇仁利恩)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시족의 창세기,

 

‘총판투(崇盤圖)’(‘인류 이주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총런리언에게는 다섯 형제와 여섯 자매가 있었다. 그들이 서로 혼인을 하자 인륜을 어겼다며 노한

천신이 인간 세상에 홍수를 내려 인간을 모조리 없애버린다.

<이것은 ‘총판투’가 지식을 소유한 계층인 동빠(東巴), 즉 동빠교(東巴敎)의 제사장들에 의해

기록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때 자애로운 동신(董神: 미리동아푸)이 멧돼지를 보내 미리 소식을 알려준 덕분에

총런리언은 다행히 화를 면한다.

동신은 또 그를 도와 나무로 인간과 말을 아홉 개씩 만들어 땅에 묻어둔다.

“아흐레가 지난 뒤에 가서 보거라.”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한 인간 총런리언은 미리 가서 보았고,

결국 나무인간들은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 동신은 나무인간을 부숴 산과 숲, 냇물에 버렸고

그것들은 각각 메아리, 산귀신, 물귀신 등이 되어 인간세상을 어지럽혔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어떻게 할까.

자애로운 동신은 총런리언에게 짝을 찾아주기로 했다. 동신이 말했다.

“천성고암(天星高岩)에 가면 천녀 둘이 있다.

세로 눈을 가진 여인은 예쁘긴 하지만 마음씨가 곱지 못하니 아내로 삼으면 안 된다.

가로 눈을 가진 여인은 못생기긴 했지만 마음씨가 고우니 아내로 삼을 만하다. 알겠느냐,

가로 눈을 가진 여인을 선택하여라.”

과연 총런리언은 동신의 충고를 들었을까?

아니, 총런리언은 세로 눈을 가진 여인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선택했고,

결국 뱀, 호랑이 등의 동물을 낳게 된다.

그때서야 총런리언은 가로 눈을 가진 천녀 천홍바오바이(紅褒白)를 택해 비로소 인간을 낳는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시족의 심미의식을 보여준다고

말하지만 신계에서 태어난 총런리언이 결국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또한 아름다운 여인은 유혹자로서 남성을 망칠 수 있다는 후대의 관념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신이 세상 만물에게 수명을 주는 이야기를 보면 총런리언은 더욱 ‘인간’적이다.

천지 만물에게 수명을 주는 날, 동신은 역시 총런리언에게 미리 귀띔을 해준다.

“내일 수명을 나눠줄 거야. 그러니까 깊이 잠들지 마라.

가시나뭇가지를 이불로, 돌을 베개로 삼고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어.”

하지만 총런리언은 담요를 깔고 편안한 이부자리에서 푹 자느라 신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

결국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은 돌이 1억년을, 흐르는 물과 나무는 1000년의 수명을 받았고

늦게 도착한 총런리언은 120년의 수명을 받았다.

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인간에게 그래도 120년의 수명을 준 동신은 너그러운 천신이다.

 

동신의 아내 써신(塞神: 미리써아푸) 역시 인간을 돕는 착한 여신이다.

그들의 상징물은 하얀 돌이다. 나시 사람들이 대문 앞 양쪽에 놓아두는 하얀 돌 두 개는

언제나 인간을 돕는 동신과 써신의 상징물이다.

리장에서 따리로 넘어가는 길의 풍경.


호기심 많고 신의 말을 듣지 않는 총런리언이

천녀 천홍바오바이와 혼인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늘나라 천신 쩌라오아푸(遮勞阿普)는 자신의 딸이 인간세상의 남자와 혼인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게다가 천홍바오바이는 이미 천신 미루커시커뤄(米汝柯西柯洛, 인류와 천신들의 외삼촌)와

혼담이 오고가는 처지였다. 그래서 쩌라오아푸는 온갖 심술궂은 조건을 내걸며

그것을 다 해결해야 딸을 주겠다고 말했다.

하루 밤 사이에 아흔아홉 군데 숲의 나무를 다 베어오고 아흔아홉 군데의 땅에 씨앗을 다 뿌리라 하며,

호랑이 젖 세 방울을 구해오라고 한다.

천녀의 도움을 받은 총런리언은 그 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냈고,

결국 천홍바오바이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다.

쩌라오아푸는 남편을 따라 인간세상으로 가는 딸에게

좋은 말과 밭을 갈 소는 물론 호랑이 가죽옷과 갑옷, 보검, 금 바지와 은 치마,

세 명씩의 남자 하인과 여자 하인, 경을 잘 읽는 동빠, 가축과 오곡의 씨앗 등 많은 선물을 준다.

아이를 낳게 해주는 생육신의 문도 열어준다.

 

그러나 고양이와 순무 씨앗을 주지 않으니 둘이서 몰래 그것을 훔쳐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천신이 그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고양이에게 밤이면 울게 해 인간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고

순무는 삶으면 물이 되어버리게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다.

 

연인을 빼앗긴 미루커시커뤄는 그들이 인간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을 내내 방해했고

그들의 후손인 인간에게 병을 내리는 등 지금도 여전히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의식을 거행할 때

그를 제단의 가운데 앉혀놓고 제물을 바쳐 노여움을 풀라고 기도한다.

동빠 박물관 마당의 돌 무늬 장식.

총런리언은 또한 인간을 위해 하늘나라에서 장생불사약을 가져온다.

리상칸미껀(里爽堪米根)이라는 신비로운 동물의 달콤한 쓸개 세 개가 바로 장생불사약이다.

 

그 중 두 개가 너무나 무거워 총런리언은 그것을 들고 오지 못하고 하늘과 땅에 각각 놔두었다.

인간 대신 불사약을 갖게 된 하늘엔 찬란한 별들이 생겨났고 땅엔 초목이 가득 찼다.

 

겨우 들고 온 자그마한 쓸개 하나는 인간을 죽지 않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병을 치료할 수는 있었다.

총런리언은 그밖에도 많은 다른 것들을 갖고 왔다.

해 옆을 지날 때엔 따스한 햇살을

달 옆을 지날 때엔 달의 세 방울 유즙을

바위굴을 지날 때엔 메아리를

은하수를 지날 때엔 은하수 거품을

숲을 지날 때엔 꽃을

초원을 지날 때엔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을

동빠들이 사용하는 오폭관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리하여 인간세상은 좀더 풍요로워진다.

게다가 동신과 써신의 딸인 파종의 여신 헝구라러밍(亨古拉勒命)은 뭇 신들이 신들의 거주지인 쥐나스뤄(居那什羅) 산을 만들고 있을 때에 인간을 위해 그 산위에 은으로 만든 하늘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 하늘 밭에 별 한 줌을 뿌려 환한 하늘을 만들어준다.

 

대지에 씨앗을 뿌려 초원을,

산에 씨앗을 뿌려 숲을 만들고

물 한 줌을 골짜기에 뿌려 맑은 시냇물도 만들어준다. 세상은 이렇게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놓은 곳이다.

한편 인간 세상에 내려와 3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자 총런리언은 하얀 박쥐와 회색 개를 하늘로 보내 천신에게 아이 낳는 비방을 알아오도록 한다.

천신이 알려줄 리가 없는 비방을 박쥐와 회색개가 몰래 엿듣고 와서 총런리언에게 알려주었고,

둘은 마침내 세 아들을 낳는다.

말을 못하던 세 아들은 박쥐와 회색개의 도움으로 티베트, 나시, 바이白족의 말을 하게 되었으나

천기를 누설한 죄로 박쥐는 천신에게 벌을 받았다.

총런리언이 약을 구해오는 이야기가

동빠 문자로 기록돼 있다.

오늘날 박쥐의 코가 납작하고 발가락이 세 개 밖에 없는 것은 그때 천신이 발가락 두 개를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나시족에게 하얀 박쥐는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비방이 적힌 경서를 하늘나라의 착한 여신 판주사메이(盤祖薩美 · 치유의 힘을 가진 여신)에게서 얻어오기도 한 지혜의 상징이다.

똥신과 써신이 세상 만물을 배치할 때
세상엔

진(眞)과 실(實), 허(虛)와 가(假)가 존재했다.

 

진과 실이 합쳐져 태양이 되고

허과 가가 합쳐져 달이 되었다.

 

이것들에서 하얀 기운과 검은 기운이 생겨났고,

하얀 기운과 아름다운 소리와 합쳐져

이꺼와꺼(依格窩格)라는 선신이,

검은 기운과 시끄러운 소리가 합쳐져 이구띵나(依古丁那)라는 악신이 생겨났다.

 

여기에서 각각 하얀 알과 검은 알이 생겨나고 거기서 동족(董族)과 수족,

즉 선과 악을 대표하는 두 개의 집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피 튀기는 복수와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것이 바로 ‘흑백전쟁’이다.

- 경향, 2008년 02월 20일
-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