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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연재자료)

소수민족 신화기행 - 구이저우(貴州)이야기 (3)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

Gijuzzang Dream 2008. 6. 13. 16:06

 

 

 

 

 

[소수민족 신화기행] ‘구이저우(貴州) 이야기’

 

 ③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

역사도 삶도 모든 기억은 노래가 되고

노래는 원래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달이 뜬 밤에 들려오는 영혼을 흔드는 노랫소리, 그것은 본디 하늘에만 있는 것이었다.

그 하늘의 노래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퉁족(동族)이다.

젊은 여성들이 고루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퉁족의 공식적 발음은 똥족이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은 자신들을 똥(Dong)족이라 하지 않고 퉁(Tong)족이라 한다. 왜 그럴까.

그들은 깊은 산 물가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산 위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퉁족(동族)이라 불렸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들의 공식 명칭은 똥족(동族)이 되었다.

‘똥(동)’에는 키가 크다거나 참되다는 의미도 들어있지만

‘무지하고 미련하다’ ‘바보’라는 의미도 들어있다.

이왕 이름을 지어줄 것이라면 오래된 이름인 ‘퉁(동)’을 사용할 것이지 왜 굳이 ‘똥(동)’을 쓴 것일까.

 

하지만 공식 명칭이 어떻든 그들은 스스로를 퉁(Tong)이라 한다.

산 위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언제나 물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우물에 가 물을 긷는 사람은 잠든 물의 신을 깨우는 것이 미안해서

작은 풀매듭 하나를 던져 물의 신을 깨운 뒤에 물을 긷는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고루에는 친근한 동·식물, 사랑 노래를 부르는

연인들, 옷감을 짜는 연인 등

생활 속 이야기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구이저우성 동남부 충장현에서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산길을 작은 차를 타고 넘어간다.

비가 조금만 와도 미끄러워서 차가 올라가지 못하는 산길을 달려 다랑이논을 바라보며 가다보면 ‘노래의 고향’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그 지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우교(風雨橋)도 나타난다.

알록달록 고운 색으로 만들어진 친근한 삼나무다리,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다니며 비 맞지 말라고 지붕까지 씌워놓은 그 다리는 이 지역 사람들의 친절함을 보여준다.

다리에 씌워진 지붕의 처마에는 고운 꽃, 나비 등이 어린아이 그림처럼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화려한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 속엔 없다.

그저 동화처럼 따뜻한 세상이 화사한 빛깔로 밝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충장현 부근에 만들어진 어떤 풍우교에는 머나먼 광시(廣西)에서 이주해왔던 아득한 시절의 힘든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최근에 그려진 그림일 뿐,

그들은 그것조차 그냥 기억 속에 담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기억은 노래가 되어 대대손손 이어진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신화나 역사 등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를 노래 속에 담는다.

누가 그랬던가. 문자는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마음을 다 담지 못한다고.

 

말조차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남은 말은 무엇으로 표현할까.

그들은 노래에 그것을 담아낸다.

샤오황(小黃) 마을은 그렇게 좁은 산길 너머에 숨어있다.

그리고 “밥은 몸을 살찌게 하지만 노래는 마음을 살찌게 한다(飯養身, 歌養心)”고 믿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

샤오황 마을 입구의 풍우교.


아득한 옛날, 하늘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노래나무가 살고 있었다.

노래나무는 싸양(薩樣)이라는 신이 관리했고 비늘 달린 용의 정령이 그 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그 시절, 퉁족 사람들이 사는 세상엔 노래가 없어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처럼’ 심심했고 사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매가 알려줬다.

하늘에 노래나무가 있단다
그곳에선 언제나 노래 소리가 들리지

그리하여 퉁족 청년 쓰예(四也)와 먀오족 청년 판구마(班固瑪)가 노래나무 씨앗을 가지러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매와 화미조(畵眉鳥), 까치, 그리고 매미아가씨가 그들과 함께 갔다.

 

황홀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정말로 노래나무가 서 있었고

곁에서 나무를 지키는 용의 정령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틈을 타서 그들은 노래나무에 올라가 노래나무 씨앗을 훔쳐냈다.

그런데 매미아가씨가 그만 나무가 부르는 노래에 반해버렸다.

그 노래를 배워 자기 흥에 겨워서 계속 노래를 불러대는 바람에 그만 용의 정령이 깨어났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쓰예가 용의 정령에게 잡혔다.

매를 타고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고개를 넘던 판구마는 서두르다가 그만 매의 등에서 떨어져 죽었고

노래를 배운 화미조와 매미아가씨는 인간세상으로 돌아왔다.

노래나무를 관리하는 신 싸양이 화가 났다.

“네 이놈, 노래나무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노래나무 씨앗을 빼앗기다니,

네놈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가 되어라.”

결국 노래나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용의 정령은 인간세상으로 쫓겨와

강물 속의 물고기 뤄뤄(若洛)가 되었다.

 

그때 인간세상으로 돌아온 쓰예는 하늘에서 훔쳐온 노래나무 씨앗을 죽은 판구마의 무덤 앞에 심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높고 큰 나무가 자라났고 노래나무 잎들이 돋아났다.

잎에는 퉁족들이 지금 부르는 노래의 글자가 무늬처럼 새겨져 있었는데

퉁족 사람들 그 누구도 그것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주귀작(주歸雀) 한 마리가 나타나 노래나무 위에 올라가더니

잎 위에 찍힌 글자들을 보면서 온갖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통족 사람들은 새가 노래하는 대로 따라 불렀고 마침내 세상엔 노래가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매미아가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노래만 불렀다.

그 노랫소리가 하늘의 신 싸양을 감동시켰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어디에서 이렇게 고운 노래가 들려오는 걸까?”

고루 앞의 풍경.


하지만 노랫소리를 따라 지상으로 내려온 싸양은 깜짝 놀랐다.

감히 인간들이 노래를 하다니. 노래는 신들의 영역에만 있는 것인데.

 

화가 난 싸양은 노래나무를 잘라버리고 노래나무 잎과 사람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던 주귀작을

강물 속에 던져 넣었다. 이제 세상에선 노래가 사라졌다.
그러나 노랫소리는 물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속에 빠진 노래나무 잎과 주귀작은 노래를 그치지 않았고

물속의 모든 물고기들이 몰려와 그 매혹적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때 신에게 벌을 받아 물고기가 되어버린 용의 정령, 뤄뤄가 나타났다.

“저놈들 때문에 내가 지금 이 모양이 되었지.”

결국 뤄뤄는 노래나무 잎과 주귀작을 삼켜버렸고 마침내 물속에서도 노래는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래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긴 마를 엮어 낚싯줄을 만들고 그 끝에 송아지를 미끼로 매달아 강물 속에 던져 넣었다.

미끼를 덥석 문 뤄뤄는 물 위로 끌어올려졌고, 쓰예가 물고기 배를 갈랐다.

그 순간 물고기 뱃속에서 황홀한 노랫소리가 울려나왔다. 주귀작이었다. 주귀작이 말했다.

당신들이 날 살려줬는데 나는 보답할 것이 없네요
당신들이 노래를 좋아하니 노래를 가르쳐드릴게요
강 위에 떠오른 노래나무 잎을 모두 건져 올리세요
내가 그 위에 쓰인 노래를 불러 당신들에게 모두 가르쳐드릴게요

그리하여 주귀작은 퉁족 사람들에게 노래나무 잎에 쓰인 노래를 가르쳐주었고

퉁족은 그때부터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를 갖게 되었다.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퉁족 할머니.

퉁족 사람들은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을 가진 반짝이는 옷을 입는다.

우리는 그냥 남보라색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그 빛깔을 그렇게 표현한다.

 

얼핏 보면 검은 빛이 도는 보라색 같지만 푸른 빛이 감돌기도 하는 오묘한 그 빛깔,

그것은 퉁족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과 밤하늘을 닮았다.

 

옷감을 짜서 남정초(藍 靑定 草)에 열 번 이상 염색하고 바람에 말려 달걀 흰자를 입혀 돌 위에 놓고 두드린 다음 쪄내면 그렇게 신비로운 빛깔을 지닌 옷감이 된다.

 

옷 하나에 들어가는 퉁족 여인들의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생을 바느질로 보낸 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칠지만 그들의 표정은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하고 아름답다.

“밤하늘의 달처럼 세상의 등불이 되어라.”

노인들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달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환한 달이 떠오른 밤이면 마을 한가운데 서있는 고루(鼓樓)로 모여든다.

북을 모셔둔 북 집이 바로 고루다.

북은 조상들의 영혼이 깃드는 곳이다.

조상들의 영혼이 깃든 북을 모시는 고루는

마을의 모든 일이 결정되는 곳이기도 하고 젊은 남녀가 모여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곳이기도 하며,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고루가 있는 마당은 마을 사람 모두에게 열린 광장이다.

샤오황 사람들은 이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다섯 살 때부터 노래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민족의 신화와 역사, 마을의 규약 등을 노래를 통해 배운다. 아름다운 사랑 노래 또한 빠질 수 없다.

 

하늘에서 노래를 가져온 조상들 덕분에

그들은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기억들을 노래에 담아 오늘도 찬란한 하루를 보낸다.
- 경향, 2008년 01월 30일
-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