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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연재자료)

소수민족 신화기행 - 윈난이야기 (3) 바이족의 창세기

Gijuzzang Dream 2008. 6. 13. 13:38

 

 

 

 

[소수민족 신화기행] 윈난이야기

 

 ③ 바이족의 창세기

 

아득한 옛날의 하늘과 땅 지금도 존재하고
아득한 옛날의 해와 달 지금도 존재하며
아득한 옛날의 산과 강 지금도 존재하지만
아득한 옛날의 인간, 지금은 존재하지 않네

묵직한 잠언처럼, 바이족(白族)의 창세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낮게 깔리는 노래는 계속된다.

아득한 옛날, 나무는 길을 걸을 수 있었지/ 당신은 믿을까?
아득한 옛날, 나무는 길을 걸을 수 있었어/ 나는 믿지
돌도 길을 걸을 수 있었어/ 정말일까, 거짓일까?
돌은 길을 걸을 수 있었어/ 정말이야, 거짓이 아니지
소와 말도 말을 할 줄 알았어/ 정말일까, 거짓일까?
소와 말은 말을 할 줄 알았지/ 정말이야, 거짓이 아니지….

비가 내린 얼하이의 저녁.


천지의 시작에 관한 문답은 이렇게 계속 이어진다.

그 시절엔 농사도 잘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통통하게 살이 올랐으며 몇 백 년의 수명을 누렸다.

그런데 세상에 홍수가 일어났다. 홍수의 시작에는 판구(盤古)와 판성(盤生) 형제가 있다.

판구와 판성 형제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어머니를 받들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묘장왕(妙庄王)이 점을 쳐주며 말했다.

“진사강(金沙江) 강변에 가서 고기를 잡으렴. 세 마리 붉은 물고기가 잡힐 텐데,

앞의 두 마리는 놓아주고 세 번째 물고기를 잡아야해. 알았지, 그가 바로 용왕의 아들이야.

그걸 잡거든 시장에 가서 팔아. 그러면 용왕이 와서 비싼 값에 살 거야.”

아들을 잃은 용왕이 직접 와서 흥정을 해 아들을 살렸고,

용왕은 그가 보통 점쟁이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를 찾아가 점을 쳤다.

그리고 묘장왕의 점괘가 틀렸음을 보이기 위해 세상에 비를 내리게 했는데

그것이 그만 지나쳐 온 세상이 물에 잠겨버렸다. 세상엔 하늘도 땅도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판구와 판성이 나섰다. 그들은 각각 하늘과 땅으로 변했다.

 

문답은 계속 이어진다.

다리 산골 마을의 겨울 풍경.

하늘과 땅의 크기가 서로 같았나?

하늘과 땅의 크기가 달랐지

하늘과 땅은 어째서 크기가 달랐나?

땅이 하늘보다 넓었어

어렵네, 어려워, 지금은 어떤가?

걱정하지 말게, 땅을 좀 줄였으니

어렵네, 어려워, 땅에 주름이 잡혀 평평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게, 높은 곳은 산이 되었으니

어렵네, 어려워, 세상 천지에 아무 것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무스웨이(木十偉)를 찾아왔으니….

무스웨이는 판구와 판성의 화신이다.

눈이 그릇만 하고 입이 대야만큼 큰 무스웨이의 온 몸이 세상 만물로 변한다.

왼쪽 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고

배꼽은 다리(大理)에 있는 호수 얼하이(海)가 되며

왼쪽 발은 창산(蒼山)이 된다.

손톱은 집의 기왓장이 되고 심장은 샛별이 된다.

 

거대한 창산과 바다만큼이나 큰 호수인 얼하이가 있는 다리의 창세기는 이렇게 끝없는 문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태양과 달의 기원, 인간의 기원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판구와 판성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낯익은 거인화생형(巨人化生型) 신화라면,

라오타이(勞泰 · 시조 할머니)와 라오구(勞谷 · 시조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창세신화는

우주가 막 생겨날 때의 원초적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세상이 혼돈 상태였을 때 하늘과 땅 사이에 거대한 바다가 있었다.

끊임없이 몸을 뒤채며 펄펄 끓고 있던 바닷물이 치솟아 오르니 하늘에 구멍이 뚫렸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두 개의 태양이 나타났다.

 

두 개의 태양이 하늘에서 부딪치며 생겨난 불꽃들은 별이 되었다.

작은 태양의 껍데기가 깨지면서 달로 변했는데 그것이 바다로 떨어져 9만 리 파도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마침내 하늘과 땅이 갈라졌다.

바다에 떨어진 작은 태양 때문에 바닷물이 끓어오르니,

바다 속 깊은 곳에서 곤히 잠자던 황금용이 놀라 깨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잠을 깨운 그 고약한 작은 태양을 찾아 삼켜버렸다.

그러나 불덩이가 뱃속에서 마구 요동을 쳤고, 용은 견디지 못해 그것을 토해내려 했지만

오히려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마침내 뜨거운 태양은 큰 살덩이가 되어 용의 뺨을 뚫고 튀어나와

높다란 루어펑산(螺峰山)에 부딪혀 조각조각 부서졌다.

 

하늘로 튀어 오른 살덩이는 구름이 되었고, 공중으로 올라간 것은 새가,

산으로 들어간 것은 짐승이, 바다로 들어간 것은 물고기가 되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살덩이가 땅에 닿으니 왼쪽 반은 여자가, 오른쪽 반은 남자가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최초의 인간인 라오타이와 라오구이다.

태양의 정기를 받았으며 동시에 땅의 기운이 합쳐져 생겨난 것이 인간인 것이다.

신을 모시는 날

사람들은 붉은 꽃과 향을 신에게 바친다.

그들 둘이 혼인하여 열 쌍의 남매를 낳았는데

언제나 딸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아들이 나왔다.

 

말들이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고 벌이 꿀을 가져다주었으며 개똥지빠귀가 자장가를 불러주었고 나비가 춤을 추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났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작은 동굴은 너무 비좁게 느껴졌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 ‘행복’을 찾아 멀리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얀 학들이 그들을 보호해주며 같이 길을 떠났다.

라오타이와 라오구는 아이들의 출발을 말리지 않았다. 아버지인 라오구는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막 솟아오른 죽순과 같다.

아직 태양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르지.

하지만 작은 어려움이 있다고 돌아서면 안 된다.

행복을 찾게 되면 바로 돌아오너라.”

어머니인 라오타이는 딸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갓 태어난 작은 새와 같아. 아직 비바람을 견디기 힘들지.

고통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멀리 높은 산을 바라보고 나아가렴,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겠지.”

 

그러나 어머니는 한 마디 덧붙인다.

“만일 길을 잃게 되면 지나가는 새들에게 전해주렴, 우리가 찾으러 갈게.”

그렇게 든든한 부모님의 믿음과 격려에 힘입어 아직 어린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간다.

 

첫 남매인 ‘붉은 구름’(누이)과 ‘큰 산’(동생)은 가는 길에 원숭이들과 친구가 되어

화살을 쏘고 사냥하는 법을 배웠다.

둘째인 ‘싱싱한 꽃’과 ‘독수리’는 넝쿨에 감겨 죽기 직전에 있던 봉황을 구해주고 불씨를 얻었다.

셋째인 ‘샘물’과 ‘큰 바위’는 제비들이 집을 짓는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어 집짓는 법을 배웠다.

넷째인 ‘작은 별’과 ‘큰 바다’는 누에에게서 실을 뽑고 옷감 짜는 법을 익혔다.

다섯째인 ‘계수나무 꽃’과 ‘바람’은 개미가 나무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과

거미가 거미줄 짜는 것을 보고 배를 만들고 그물 만드는 법을 배웠으며,

여섯째인 ‘하얀 새’와 ‘검은 참새’는 딱따구리와 지렁이에게서 농사짓는 법을 배웠다.

일곱째인 ‘금계’와 ‘황룡’은 다람쥐의 도움으로 꽃과 나무를 기르는 법을,

여덟째인 ‘검은 호랑이’와 ‘밤나무’는 나비와 벌에게서 술 만들고 벌치는 법을,

아홉째인 ‘활’과 ‘천둥’은 온갖 독초를 먹어보고 인간을 위한 약초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막내들인 ‘번개’와 ‘귀염둥이’는 새와 나비들에게서 노래와 춤을 배웠다.

다리 시저우 마을에 있는 어느 주택의 대문


라오타이와 라오구의 아이들은

‘흐르는 물처럼 먼 곳까지 갔고 하늘을 나는 기러기처럼 높은 곳까지’ 가서

‘나뭇잎보다 더 많은 산을 오르내렸고 하늘의 구름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만났다.

그러나 길은 아이들을 키운다. 그들은 드디어 그 머나먼 길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가르쳐 준 것은 바로 자연이다.

 

바이족의 신화 속에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행복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파랑새를 쫓던 치치르와 미치르가 찾아낸 행복과

바이족 아이들이 찾아낸 행복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이족의 신화는 ‘모두를 이롭게 할 것’을 말한다. 그들은 욕심 부리지 않는다.

멀고 거친 길, 두려움으로 가득 한 낯선 길을 향해 용감하게 떠난 그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한 가지씩을 배워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이 배워온 것을 남들에게 알려줘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다.

 

‘널리 남을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은 또한 우리의 단군신화가 품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던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임을 바이족 조상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경향, 2008년 03월 06일
- 김선자, 중국신화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