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그림자놀이 - 이덕무와 정약용의 산문

Gijuzzang Dream 2008. 5. 23. 16:42

 

 

 

 

 

 

 그림자 놀이 - 이덕무와 정약용의 산문

 

 

 

 

가물대는 등불이 반대편 벽 위에다 내 얼굴을 그려 놓고,

달밤에는 엄청난 거인같은 그림자가 길게 앞서 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림자가 생활 속에 늘 같이 있었다. 그림자는 삶의 그늘이다.

그림자는 허상일 뿐이지만, 실체가 드리우는 그늘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동파의〈傳神記〉란 글이 있다.
어느날 벗들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문득 벽에 비친 제 옆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을 시켜 벽으로 가서 그 그림자의 윤곽을 그리게 하였다.
눈썹과 눈을 미처 그리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대번에 자신의 모습인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해서 그는 초상화를 그리는 큰 원리를 깨달았다.
이처럼 옛글 속에는 그림자 놀이를 소재로 한 글이 적지 않다. 
 
바야흐로 이경인지 삼경인가 싶은데
대문을 마주한 이웃집에서 떠들썩 웃는 소리가 멀리서 이따금씩 들려왔다.
매운 바람에 눈가루가 날려 창틈에서 곧바로 등불 그림자까지 이르고, 펄럭이며 벼루 위로도 떨어졌다.
나는 이때 옛날을 감상(感傷)하는 마음이 너무도 구슬프고 절실하였기에 다만 손가락 끝으로
뜻 가는 대로 화로의 재에다 글씨를 썼다. 모나고 반듯한 것은 전서(篆書)나 주서( 書)와 비슷했고,
얽히고 설킨 것은 행서나 초서에 가까웠다.
나는 넋놓고 바라보며 마침내 그것이 무슨 글자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 눈썹 언저리가 돌같이 무거워져 왔다. 혼자서 불빛에 비친 얼굴 그림자를 보니
무너질 듯 기우숙하였다. 이에 다시금 엄숙하게 옷깃을 바로 하고 똑바로 앉아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한동안 붙박힌 듯 집의 들보를 우러러 보았다.
그러자 옛 사람의 고결한 행실과 바른 절개가 역력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개연히 말하였다. "명절(名節)을 세울 수만 있다면 비록 바람 서리가 휘몰아치고
거센 파도에 휩쓸려 죽게 된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또 인간 세상의 쌀과 소금 따위 자질구레하게 사람을 얽어매는 것들은
훌훌 벗어 던져 깨끗이 마음에 두지 않겠다."
어린 동생은 아무 것도 모르고 이불에 누웠는데, 자는 소리가 쌔근쌔근하여 매우 편안하니 상쾌하였다.
내가 이에 번연히 평(平)과 불평(不平)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를 깨달았다.
그제서야 눈썹을 내리깔고 손을 모으고 《논어》 서너 장을 읽었다.
그 소리가 처음에는 막혀 껄끄럽다가 나중에는 화평하게 되었다.
가슴속에 가득 차오르던 것이 그 소리에 점점 가라앉더니,
답답하던 기운이 비로소 내려앉고, 정신이 맑고도 시원해졌다.
공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온화하고 화평한 말 기운으로 나로 하여금 거친 마음을 떨쳐내어
말끔히 없어지게 하고, 평정한 마음에 이르게 한단 말인가?
공자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거의 발광하여 뛰쳐나갈뻔 하였다.
앞서 한 일을 생각해보니 아마득하기 마치 꿈 속만 같다. 을유년(1765년, 25세) 12월 7일에 쓴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덕무(1741-1793)가 쓴 일기의 한 토막이다.
 
깊은 밤중인데 이웃에선 무슨 즐거운 일이 있는지 연신 떠들썩한 웃음 소리가 건너온다.
성근 창틈으로는 눈가루가 펄럭이며 들어와 책상 위로 떨어진다.
눈가루가 날아들 지경이라면 그 방안의 추위가 어땠을까?
싸늘하게 식은 화로의 재 위에 뜻모를 낙서를 하다가, 왁자한 웃음소리에 고개를 든다.
벽 쪽을 보니 웬 수척한 사내의 금세라도 무너질 듯 무거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너무도 절절한 물음에 고개를 들어 천장을 우러르다가 화들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는다.
올바른 이름과 곧은 절개를 세울 수만 있다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나는 꺾이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고 《논어》를 꺼내 읽는다.
꺽꺽 막히던 소리가 점차  맑아지더니 마침내 마음 속에도 평화가 왔다. 
 
그는 미쳐 발광할 뻔 했다고 적었다.
좁은 방안에서 호롱불을 밝혀가며 책을 읽던 가난한 선비는 문득 고개를 돌려보다
비쩍 마른 제 얼굴의 그림자를 보았다. 쓰러져 가던 그림자를 곧추 세우고 마음을 다잡아,
방안에 물그릇이 꽝꽝 어는 추위 속에서 그는 《논어》를 읽었다.
이때 그림자는 바로 자신의 내면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가을날 오건(烏巾)을 쓰고 흰 겹옷을 입고 녹침필(綠沈筆)을 흔들면서 해어도(海魚圖)를 평하고 있었다.
문종이를 바른 창이 환해지더니, 흰 국화의 기우숙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묽은 먹을 묻혀 즐겁게 모사하는데, 한 쌍의 큰 나비가 향기를 쫓아와서는 꽃 가운데 앉는다.
더듬이가 마치 구리줄같이 또렷하여 헤일 수가 있었으므로, 꽃 그림에 보태어 그렸다.
또 참새 한 마리가 가지를 잡고 매달리니 더욱 기이하였다.
참새가 놀라 달아날까봐 급히 베끼고는 쟁그렁 붓을 던지며 말하였다.
"일을 잘 마쳤다. 나비를 얻었는데 참새를 또 얻었구나!"
  
역시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나오는 글이다.
 
바다에 물고기가 뛰노는 그림 한폭을 펼쳐 놓고 붓방아를 찧으며
그 옆 여백에 그림에 대한 평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구름이 걷힌 모양이다.
가을 햇살 한자락이 갑자기 창호지 위로 쏟아진다. 환해지는 빛살을 따라 눈길을 주니,
웬걸 창밖 국화꽃이 창호지 위에 또렷한 그림자를 남긴다.
그림 보던 흥을 못이겨, 얼른 묽은 먹으로 창호지 위에 비친 국화꽃을 그렸다.
어렵쇼. 국화꽃을 다 그려가는데, 이번엔 나비 한 쌍이 꽃잎 위에 앉는다. 더듬이 모양까지 또렷하다.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속으로 열 두 번도 더 되뇌이면서
붓질이 다급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이번엔 참새란 녀석이 나도 그려달라고 가지에 덜렁 매달린다. 
 
숨가쁘게 붓을 놓으니, 그 사이에 나비도 날아가고, 참새도 날아가 버렸다.
잠시 후엔 국화꽃 그림자도 옮겨가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창호지 위에는 엷은 먹 자욱만 또렷이 남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 가도록 문종이 위에 머문 국화의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국화꽃 그림자를 가지고 쓴 글이 한편 남아 있다.
 
국화는 여러 꽃 가운데 특히 빼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야 꽃을 피우는 것이 한가지이고, 오래도록 견디는 것이 한가지이며, 향기로운 것이 한가지이고,
어여쁘지만 요염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이 한가지이다.
세상에서 국화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국화의 운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 네 가지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이 네 가지 외에 또 다만 등불 앞의 그림자를 꼽는다.
매일 밤 이를 위해 방의 벽면을 치우고 등잔 받침과 등잔을 차려 놓고 가만히 그 가운데 앉아서
혼자 즐기곤 했다. 하루는 남고(南皐) 윤이서(尹彛敍)에게 들렀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 자네가 우리 집에 자면서 나와 함께 국화를 보는 것이 어떻겠나?"
윤이서는, "국화가 비록 아름답다고는 하나 어찌 밤중에 볼 수가 있겠는가?"
라고 하며 아프다고 사양하였다. 내가,  "어쨌든 가보기나 하세."
하며 억지로 청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었다. 짐짓 동자를 시켜 등잔을 잡고 꽃 한 송이에 바싹 갖다 대게 하고는
윤이서를 당겨서 이를 보게 하며 말했다. "기이하지 않은가?"
윤이서가 한참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자네의 말이 더 이상하군. 나는 아무리 봐도 기이한 줄 모르겠는걸." 내가 말했다.
"자네 말이 옳아."
 
조금 있다가 동자를 시켜 법대로 하게 하였다.
이번에는 옷걸이와 책상 등 여러 가지 방안에 있던 산만한 물건들을 치우고,
국화의 위치를 정돈하여 벽에서 약간 떨어지게 하였다.
그리고 등잔도 꼭 알맞은 위치에 놓아두고서 불을 밝혔다. 

그러자 기이한 무늬와 희한한 형상이 갑자기 벽에 가득차 오는 것이었다.
가까운 것은 꽃과 잎이 엇갈려 있고 가지와 줄기가 또렷하고 가지런한 것이
마치 수묵화를 그려놓은 것만 같았다. 그 다음 조금 떨어진 것은 너울대고 어른대는 그림자가 춤추듯
하늘거리는 것이 마치 동산에 달이 떠올라 뜨락의 나뭇가지가 서쪽 담장에 일렁이는 듯 하였다.
먼 것은 흐릿하고 모호해서 마치 구름 노을이 엷게 깔린 것만 같고, 사라질 듯 여울지는 것은
파도가 넘쳐흐르는 듯 해서, 황홀하고도 비슷한 것을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이에 윤이서가 즐거워 크게 소리 지르며 뛸 듯이 기뻐하다가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며 말했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천하의 뛰어난 광경일세 그려."
한참을 그러다 흥분이 가라앉자 술을 내오게 하였다. 술이 거나해지자 서로 시를 지으면서 즐겼다.
이때 주신(舟臣) 이유수(李儒修), 혜보( 父) 한치응(韓致應), 무구(无咎) 윤지눌(尹持訥) 등도
또한 같이 모였다. 
 
사람들은 서리를 아랑곳 않고 꽃을 피우는 국화의 매운 마음과 향기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 말고 국화의 그림자를 사랑한다.
국화 그림자를 보는데도 갖추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아닌 밤중에 웬 국화 타령이냐며 타박하는 벗을 억지로 끌고 내 집으로 왔다.
어쩌나 보려고 되는대로 꽃 한송이를 등잔 앞에 갖다대고 그 그림자를 보라고 했다.
고작 이깟것 보라고 나를 청했더란 말인가?
그림자가 기이한게 아니라 자네 하는 짓이 기이할세 그려. 벗의 말꼬리가 올라간다. 
 
문장으로 치자면 억양법이다. 한번 수긋이 눌러주는 것은 그 다음에 띄울 속셈이 있는 까닭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를 한다. 방안에 너저분한 세간들을 말끔히 치운다.
그 빈 공간에 국화 화분을 세운다. 그리고 약간 거리를 두고 등잔불을 밝힌다.
어둡던 방에 등잔불이 들어오고,
저 자가 지금 무슨 해괴한 일을 벌이려나 싶어 궁금한 눈길이 일제히 벽면으로 가 꽂힌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벽에는 갑자기 요지경(瑤池鏡)의 세상이 어리 비치는 것이다.
가까운 그림자는 또렷히 국화의 꽃술과 가지와 잎새를 마치 먹으로 그린 것처럼 박아 놓았다.
조금 먼 그림자는 어른어른 너울너울 불꽃을 따라 흔들리며, 달빛에 일렁이는 나무의 그림자를 만든다.
먼 그림자는 아예 노을인지 구름인지 아스라한 것이 어느새 넘치는 파도가 되어 덮치기도 하여
아마득히 보는 이의 정신을 앗아가 버리는 것이다. 
 
투덜대던 벗은 저도 몰래 무릎을 치면서 놀라 뛴다.
주인은 이만하면 어떠냐는 듯이 만면에 흐믓한 미소를 흘렸겠지.
그제서야 술을 내오고, 국화 그림자로 시도 지으면서 벗들은 그렇게 밤을 새우며 놀았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처음부터 바로 제대로 된 그림자를 보여주었더라면 감동은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술부터 내와서 자리가 소란스러웠어도 안될 말이다.
처음에 짐짓 허튼 수를 한번 두어 상대의 김을 뺀 뒤,
아예 기대를 하지 않게 해놓고서 느닷없이 정면 공격으로 일격에 무찔러 버린다.
허를 찔러 아얏 소리도 못하게 만든다. 
 
가을밤, 국화 화분 하나 앉혀 놓고 깜깜한 방안에서 등잔에 불을 붙일 때,
그리하여 일순간 쏟아져 나온 빛의 무리들이 만화경같은 세상을 벽 위에 펼쳐 보일 때,
건조하고 답답하던 삶은 문득 생기를 얻는다.
사는 일이 팍팍하기야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무에 있겠는가?
다만 그때 그네들이 지녔던 여유를 우리가 지니지 못했을 뿐이다.  
  
어느날 오후, 나는 로댕의 아뜰리에로 그를 찾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어느새 밤이 되었다.
 
"당신은 여태까지 램프 불빛으로 고대의 조각상을 본 적이 있습니까?"
갑자기 주인이 내게 물었다.
"아뇨, 전혀 없습니다."
나는 약간 당황하여 대답했다.
 
"뜻밖인 모양이군요. 낮도 아닌 밤에 조각을 본다는 생각이 유별난 호기심으로 여겨지시는가 보죠.
하기야 자연의 빛은 아름다운 작품을 그 전체로서 가장 감탄하게 만들지요.
그렇지만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내가 틀림없이 당신에게 매우 유익한 실험을 한 가지 보여 드릴테니."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그는 램프에 불을 켰다. 그것을 들더니,
그는 아뜰리에 한 구석의 받침대 위에 서 있는 대리석 토르소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것은 `메디티의 비너스`의 작은 모조품이었는데 몹시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로댕은 그것을 제작 도중에 자신의 영감을 자극하기 위해 거기에 놓아 두었던 것이다.
"이리 가까이 오시오." 로댕이 말했다.
램프를 조각의 옆쪽에 바싹 가까이 가져가면서 그는 그 복부를 일렁이는 불꽃으로 비추었다.
"무엇을 보았나요?" 그가 물었다.
 
그 짧은 순간에 갑자기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몹시 놀랐다.
이렇게 비춰진 불빛은 내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작은 요철(凹凸)을
대리석 위에 보여주었던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로댕에게 말했다.
"좋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시오!"
이렇게 말하고 나더니 그는 아주 조용히 그 비너스 상을 세워 놓은 회전반을 돌렸다.
그것이 돌고 있는 동안 나는 복부의 전체적인 형태 속에 있는 수많은 미세한 기복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언뜻 볼 때는 단순하게만 보이던 것들이 사실은 비할 데 없이 복잡하였다. 
 
나는 이 위대한 조각가에게 내가 관찰한 바를 고백하였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상하지요?"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렇게까지 세부를 관찰하게 될 줄은 뜻밖이었다고 인정하시오.
자! 허벅지와 복부를 잇는 골짜기 부분의 이 무수한 기복을,
자, 보시오. 골반의 육감적인 요부(凹部)를 모조리 맛보시오. 그리고 다음에는, 이쪽....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이 요부를."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넘치는 열정을 담아 이야기 했다.
그리고 황홀하다는 듯이 그 대리석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육체요!"
이렇게 말한 그는 활기있게 덧붙였다.
"키스와 애무 아래서 만들어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지요."
갑자기 조각의 허리에 손바닥을 대고는 말했다.
"이 동체에 닿으면 체온이 느껴질 정도예요."
  
폴 그셀이 엮은 《로댕어록》 가운데 한 토막이다.
 
고수(高手)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그들의 눈은 남들이 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단번에 읽어낸다. 핵심을 찌른다.
국화 그림자를 연출하며 벗들과 가을밤을 보내던 다산의 그림자 놀이와,
비너스 상 둘레로 램프를 돌리면서 햇볕 아래서는 볼 수 없었던 조각상 위의 수많은 요철(凹凸)을
음미하던 로댕의 그림자 놀이는 참 무던히 닮아 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는 양(洋)의 동서도 없고 때의 고금(古今)도 없다. 
 
그저 주는 눈길에 사물은 결코 제 비밀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볼 줄 아는 눈, 들을 줄 아는 귀가 없이는 나는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다.
워낙에 환한 조명 속에 살다보니 이제 우리는 좀체로 제 그림자조차 보기가 어렵다.
도시의 밝은 불빛 속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는 삶이 빚어내는 그늘이다.
그림자가 없는 삶에는 그늘이 없다. 녹슬줄 모르는 스텐레스처럼, 언제나 웃고 있는 마네킹처럼,
0과 1 사이를 끊임없이 깜빡거리는 디지털처럼 그늘이 없다.
덧없는 시간 속에 덧없는 인생들이 덧없는 생각을 하다가 덧없이 스러져 간다.
도처에 바빠 죽겠다는 아우성 뿐이다.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

 

옛사람 내면풍경

 

 

 

 

- Reflections Of Love / Hilary Stag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