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집을 그려주게 - 허균과 화가 이정
|
|
한번 빨라진 속도는 좀체로 다시 느려지는 법이 없다. 승용차를 타기 시작하면 그 편하던 지하철이 갑자기 견딜 수 없이 갑갑해진다. 승용차로 가면 길이 막혀 더 늦을게 뻔해도,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서 차 오기를 기다리다가 중간에 다시 갈아타고 할 생각을 하면 조급한 생각부터 앞서고 만다. 속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옛날 그때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겠다는 생각이다.
비록 지극히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속도로 삶이 진행되기는 했겠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삶의 속도감은 꼭 그렇지 만은 않았을 터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출세해야겠다는 생각, 저것을 꼭 내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집착, 이런저런 욕심들이 끼어들어 예나 지금이나 삶의 속도는 가파르게 고조되어만 간다.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언제나 자연을 꿈꾼다. 늘 곁에 둘 수 없기에 커진 꿈이다.
옛 글 속에도 이런 꿈의 조각들이 남아 있다. 바쁜 벼슬길에서 한가로운 귀거래를 꿈꾸는 것은 일종의 버릇과도 같다. 갈 수 없지만, 실상 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지만, 귀거래의 관념은 마음 속에서 자꾸만 공룡처럼 커져서 마침내 고황에 든 고질이 되고 만다. 집 종에게 함께 부쳐 서경으로 보내네. 모름지기 산을 뒤에 두르고 시내를 앞에 둔 집을 그려주시게. 온갖 꽃과 대나무 천 그루를 심어 두고, 가운데로는 남쪽으로 마루를 터 주게. 그 앞뜰을 넓게 하여 패랭이꽃과 금선화를 심어놓고, 괴석과 해묵은 화분을 늘어 놓아 주시게.
동편의 안방에는 휘장을 걷고 도서 천 권을 진열하여야 하네. 구리병에는 공작새의 꼬리 깃털을 꽂아 놓고, 비자나무 탁자 위에는 박산 향로를 얹어 놓아 주게.
서쪽 방에는 창을 내어 애첩이 나물국을 끓여 손수 동동주를 걸러 신선로에 따르는 모습을 그려주게. 나는 방 가운데에서 보료에 기대어 누어 책을 읽고 있고, 자네와 다른 한 벗은 양 옆에서 즐겁게 웃는데, 두건과 비단신을 갖춰 신고 도복을 입고 있되 허리띠는 두르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야 하네. 발 밖에서는 한 오라기 향연이 일어나야겠지. 그리고 학 두 마리는 바위의 이끼를 쪼고 있고, 산동은 빗자루를 들고 떨어진 꽃잎을 쓸고 있어야겠네.
이러면 인생의 일이 다 갖추어진 것일세. 그림이 다 되면 이수준 공이 돌아오는 편에 부쳐 주시게.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네.
허균이 1607년 정월에 평양에 가 있던 화가 이정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이정은 태어날 때 금신나한이 어머니의 품으로 뛰어들면서, "너희 집 삼대의 네 사람이 모두 부처님을 잘 그려서, 그 그림이 거의 수천 장이나 된다. 그래서 내가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너의 자식이 되어 보답하러 왔다"고 하는 꿈을 꾸고 낳았다는 뛰어난 화가였다.
한번은 세도가의 정승이 그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한 일이 있었다. 좋은 비단을 주고 술을 마음껏 마시게 하였다. 이정은 취한 채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거침없이 붓을 놀려 그림을 그렸다. 솟을대문 사이로 소 두 마리가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들어가는데 그 뒤로 두 사람이 소를 모는 형상을 그려 놓았다. 너 혼자 다 해 쳐먹어라. 이 자식아. 뭐 이런 뜻이었겠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정승이 그를 죽이려 들었으므로 그는 도망쳐 평양으로 가 해를 넘겨 머물고 있던 차였다.
부산스런 서울의 벼슬길에서 이따금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위안이 되어주던 벗이 한바탕 소동 끝에 장안에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던져 놓고 사라져 버리자, 허균은 그가 못내 그리웠다. 그래서 평양 가는 인편에 편지를 띄워 자신이 평소 꿈꾸던 상상 속의 공간을 그에게 그려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여보게! 뒤에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있고, 앞으로는 시냇물이 흘러가는 집, 온갖 꽃들이 피어 있고, 둘레에는 대나무 숲에서 스스스 대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집을 그려주게. 정면으로 마루를 터서 집안이 훤히 들여다 뵈게 하고, 넓은 마당엔 패랭이꽃과 금선화가 피어 있고, 또 울퉁불퉁한 괴석과 해묵은 화분이 열을 지어 서 있는 그런 집을 그려서 내게 보내 주게. 동편 서재에는 천 권의 책을 놓아두고, 공작 꼬리가 꽂힌 구리병으로 실내를 환하게 꾸며 주시게. 까짓것 그림인데, 호사를 더 부려야겠네. 그 귀한 박산 향로를 구하기 힘든 비자나무 탁자 위에 하나 쯤 떡 얹어주시게. 서편 부엌에선 애첩이 나물국에 동동주를 걸러 술상을 준비하는 모습을 그려주고, 나는 서재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고 있겠네. 자네와 다른 벗 하나가 양 옆에서 히히덕거리며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어야 내 마음이 좋겠군. 우리의 복장은 두건과 비단으로 만든 실내화를 신고, 도복을 입고 있는 복장으로 해주게. 그렇지만 허리띠는 풀러서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풀어진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좋겠네. 박산 향로에선 모락모락 한 줄기 향연이 피어 오르고 있어야겠지. 참 마당에는 학 두 마리를 그려주는 것을 잊지 말게. 녀석들은 심심함을 견디다 못해 애꿎은 돌 이끼를 쪼아대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 한 곁에서 하인 녀석이 마당에 떨어진 꽃잎을 쓸고 있는 모습을 그려주게.
세상 사는 일이 하도 팍팍하다 보니, 허균 그는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라도 하면서 한 시절의 스산함을 걷어내려 했던 모양이다. 이정이 그림을 그려주면 그것을 방 벽에 걸어 놓고, 생각만 해도 기분이 환해지고 웃음이 머금어지는 그런 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허균은 이 그림을 받지 못했다. 평양에 가 있던 이정이 이 편지가 도착하고 나서 며칠 안되어 갑자기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사망 원인은 술병이라고 했다. 죽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이었다. 정작 허균이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은 석 달 뒤인 5월이었다.
이때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서쪽에서 온 사람이 이정이 죽었다고 말하는데, 이 말이 참말입니까? 통곡하고 피눈물을 흘립니다. 하늘이여 아! 애통하도다. 내 누구와 더불어 물외에서 노닌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그 그림을 중히 여기지만 나는 그 사람을 중히 여겼다오. 그대 또한 이를 아시잖소? 풍류가 문득 다하고 말았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소?
나이는 허균이 그보다 아홉 살 위였고, 그는 화공의 낮은 신분이었다. 나이를 잊고 신분을 떠나 사귐을 나누었던 그가, 네가 못 오면 내 옆에서 웃고 떠드는 그림이라도 그려서 보내라고 했던 그가, 잘 먹고 잘 살라며 정승의 귀한 비단을 다 버려놓고 달아났던 그가, 이렇게 덧없이 훌쩍 가버리자 그는 참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그림을 중하게 여겼지만, 나는 그 사람을 중히 여겼다는 말, 그가 죽자 풍류가 문득 다 스러지고 말았다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석 달 뒤에 허균은 다시 한 통의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냈다.
간밤 꿈에 이정을 만나 보았소. 그가 하는 말이 죽음이 몹시 즐겁다고 하더군. 이것이야 말로 삶을 달관한 말이었네 그려. 깨어나 생각해 보니, 이 몸뚱아리 또한 나의 소유가 아닐진대, 뜬 인생에 온갖 일을 어찌 족히 마음에 두겠는가. 끝내 마땅히 인끈을 던져 버려 바다 위 흰 갈매기를 벗삼을 뿐이니, 애오라지 흰 강물을 가리켜 본다네.
이정이 세상을 뜬지 반년이 지나도록 허균은 자못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번엔 꿈에 그가 나타나 내게 말했다.
"막상 죽고 나니 너무 홀가분하고 즐겁습니다. 개운해요. 걱정도 없고, 눈치 보며 그림 그리지 않아도 되고, 같잖은 꼴 보지 않아도 되고."
"여보게, 자네! 날 들으라고 하는 말인게군. 그 사이 나도 참 일이 많았었네. 자네 세상을 뜨고 얼마 안되어 삼척부사로 부임했다가, 두 달 만에 향을 피워 놓고 예불을 올렸다는 비방을 받아 �겨나고 말았네. 이제 겨우 다시 복직되어 서울로 돌아왔네만은, 생각해 보면 내 사는 것도 내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네 그려. 벼슬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동해 바닷가 옛집으로 돌아가 바다 위 흰 갈매기를 벗삼아 시름 없이 늙다가 훌쩍 자네 있는 세상으로 건너가고 싶은 마음 뿐일세."
이정은 죽기 얼마 전에 평양에서 허균에게 편지를 보냈던 듯 하다. 허균은 이때 이정에게 앞서 읽은, 그림을 청한 편지와 함께 <지사산으로 돌아가는 이나옹을 보내며〉란 글을 지어 주었다.
여기에는 또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난리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서쪽 변방을 떠돈 것이 여러 해가 되었는데, 금년 봄에 장차 금강산으로 돌아가 그 스승을 다시 찾겠다고 한다. 비록 승려가 되지는 않더라도 불경을 다 읽어 저 유마힐 거사나 방거사처럼 마음을 닦아 성품을 보존코자 한다는 것이다. 와서 내게 가겠다고 고하기에 내가 말했다. "자네가 이를 하려는 것은 또한 어리석은 배움으로 이익을 �는 것보다 현명한 것일세 그려."
그가 와서 금강산에 가겠다고 고했다 했지만, 앞 뒤 정황으로 보아서는 직접 온 것 같지는 않고 편지로 그렇게 적어 보냈던 듯 하다.
정승 집 비단을 망쳐 버린 뒤 평양으로 달아났던 그는 거기에서 기생들과 어울려 풍류의 한 세월을 보냈고, 마침내 술병이 골수에 들자 그 옛날 차라리 머리 깎고 중이나 되자던 그 다짐을 떠올렸던 것이다. 설사 중이 되지 못한다 해도 산 높고 물 맑은 곳에서 불경을 읽으면서 마음밭을 깨끗이 닦고 본래의 한 마음을 되찾으리라 다짐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그가 금강산으로 발길을 채 떼기도 전에 갑작스레 죽고 말았다.
일찍이 이정은 허균의 부탁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미륵불과 관세음보살의 화상을 그려 준 일이 있었다. 이때 달마와 혜능, 유마힐 거사와 방거사의 화상도 함께 그렸다. 허균은 이 그림 위에 다시 찬을 얹어 방에다 걸어 놓고 선문법보라 이름 지어 아꼈다.
편지에서 머리 깎지 않고도 불문에 큰 이름을 남긴 유마힐 거사와 방거사를 거론했던 것은 이 일을 상기했던 까닭이다.
허균이 그를 위해 지어준 애사에 보면 그는 평양성 칠성문 밖 선연동에 묻혔다고 했다. 선연동은 평양 기생들이 죽어 묻히던 공동묘지다. 이 말은 그가 그간 평양에서 기생집에 얹혀 그림을 그려주며 살았다는 뜻이 된다.
부처님의 뜻으로 금신나한이 환생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나왔던 그는 허균이 애사에서 말한대로 "비록 가난하여 남에게 얻어먹고 지냈으나, 의리가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라도 취하지 않았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권력이 세상을 뒤흔드는 자라도 깨끗이 여기지 않고 훌쩍 떠나기를 마치 자기 몸을 더럽힐 것 같이 하였"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평양 기생에게 얹혀 술에 절은 청춘을 탕진하다가 마침내 그 치마폭에서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참 이런 것은 불공평하다. 그는 뒤늦게 술이 덜 깬 눈으로 어느날 문득 자신을 돌아 보았겠지. 그러다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겠다. 마음이 급해져서 얼른 몸을 추슬러서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경이나 읽다가 세상을 마칠 작정을 두었겠지. 아! 그러나 그는 그 작정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허망하게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허균 또한 공연히 메아리 없는 허망한 글만 두 편 남긴 꼴이 되고 만 셈이다. 그림을 청해 그 그림을 받지 못했으니 그 편지가 허망하고, 금강산에 들어가 마음을 깨끗이 씻으라고 축원해준 그 글이 또 허망하다.
하지만 세상에 허망한 일이 이런 것 뿐이겠는가. 뜻 높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진흙탕 길 속에 뒹굴고 있다.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찬 인간들은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서 늘 떵떵거리고 으스댄다. 참으로 아까운 재능을 지녔던 화가가 제 지닌 재주를 마음껏 피워 보지도 못하고, 술주정뱅이로 세상을 하직하게 만드는 세상. 멀쩡한 선비를 차라리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중이 되는게 났겠다고 내모는 세상. 허균은 이런 세상에 대해 할말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허균은 이정에게서 그가 꿈꾸었던 집 그림을 결국 받지 못했다.
대신〈누추한 나의 집〉이란 글을 남겨, 그 꿈을 달랬다.
방은 너비가 10홀쯤 되는데, 남쪽으로 문 두 개를 열어 놓았다. 한낮 해가 와서 내리 쪼이면 환하고 또 따뜻하다. 집은 비록 덜렁 벽만 세워 두었지만 책은 경사자집을 두루 갖추어 두었다. 그 나머지 짧은 잠방이 입은 사내 하나가 다만 탁문군을 짝하고서, 차를 반 사발쯤 따르고, 향 하나를 피워 놓았다.
천지고금을 굽어보고 우러르며 물러나 사노라니 사람들은 누추한 집이라고, 누추해 살 수가 없다고 말들 하지만, 내 보매는 신선 사는 땅이 따로 없다. 마음이 편안하고 몸도 편안하니 누가 이곳을 누추하다 말하리.
내가 정작 누추하게 여기는 것은 몸과 이름이 함께 썩는 것이다. 집이사 쑥대로 얽어 두었다지만, 도연명도 겨우 담만 둘러치고 살았다. 군자가 여기에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넓지는 않지만, 방문을 열면 한낮 해가 제 마음대로 들어와 놀다 가는 방. 환한 햇살이 물밀 듯 들어와서 삶의 그늘을 지워 주는 방. 별다른 장식은 없어도 내 읽고 싶은 책은 갖춰두고, 사랑하는 아내와 차를 마시며 독서에 열중할 수 있는 방. 향을 피워 정신을 맑게 하고, 세상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지만, 천지고금을 굽어보고 우러르며 아득한 옛 선인들과 만나고, 천고를 벗으로 삼아 마음껏 노닐 수 있는 방. 사람들아, 나의 거처가 누추하다고 말하지 말라. 정말 누추한 것은 더러운 명예를 쫓아 다니는 일, 이 한 몸이 죽고 나자 이름도 함께 썩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여 세상에 살다간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는 일, 평생을 아둥바둥 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손가락질만 받다가 죽는 것이다. 쑥대 지붕 아래에도 우주를 덮을 큰 자유가 있다. 도연명도 무릎을 겨우 들일만한 좁은 집에서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구차한 살림을 살았다. 그러나 보라. 그의 이름은 백대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고 뭇 사람의 추앙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대저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조선 후기 이용휴의〈구곡유거기〉란 글에도 자신이 꿈에 그렸던 동산의 모습이 나온다.
나는 일찍이 한가지 생각을 한 일이 있다. 굳이 깊은 산 인적이 끊긴 골짜기일 필요는 없겠고, 도성 가운데 한 곳 궁벽하고 조용한 곳을 골라 몇 칸 집을 엮어야지. 방안에는 거문고와 책, 술동이와 바둑판을 갖춰 두고, 석벽을 울타리로 삼겠다. 땅을 조금 개간해서 좋은 나무를 심어 예쁜 새들을 깃들게 해야지. 나머지 땅에는 남새밭을 일궈서 이것으로 술 안주를 만들겠다.
또 콩 시렁과 포도나무 시렁을 만들어 그늘을 지워야지. 처마 앞에는 꽃과 수석을 열 지어 놓겠다. 꽃은 얻기 어려운 것을 찾는 대신 사계절 새로운 꽃이 이어 필 수 있는 것을 구해 놓아야지. 바위는 가져오기 어려운 것 보단 작으면서도 비쩍 말라서 괴기한 것을 가져 오겠다. 마음 맞는 벗 한 사람을 이웃에 두고, 그 거처하는 집의 규모나 위치는 대략 서로 비슷하게 해서, 대나무를 엮어 문을 달아 서로 통하게 해 놓고 왕래해야지. 난간에 서서 부르면 소리가 마치기도 전에 신발이 이미 섬돌에 다다를 것이다. 비록 비바람이 심하다 해도 상관이 없으리니 이같이 즐기며 늙어 갔으면 좋겠다.
생각 속에서야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소박하다면 소박하기 그지 없고, 야무지다면 야무지기 짝이 없는 꿈이다. 그러나 이용휴 그도 이런 소망을 종내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정이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뜬 뒤, 허균은 더러운 세상을 뿌리째 뒤엎어 보겠다고 반역을 꿈꾸다 쉰 살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정에게 편지를 보낸 지 11년 뒤의 일이었다.
| |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 |
'나아가는(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예부터 소를 `생구`라 불렀던 까닭 (0) | 2008.05.25 |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소설가 박경리 (0) | 2008.05.24 |
그림자놀이 - 이덕무와 정약용의 산문 (0) | 2008.05.23 |
“현자(賢者)는 역사에서 배우고, 우자(愚者)는 경험에서 배운다” (0) | 2008.05.19 |
옷에 담긴 실학자들의 생각 읽기 (0) | 2008.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