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지켜(연재자료)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특설강좌Ⅱ (1) 山寺의 미학

Gijuzzang Dream 2008. 4. 30. 23:36
 

 

 

 

‘문화유산을 보는 눈’   

깊은 산속 깊은 절 . . . '아늑한 佛心' 절로

 

1. 산사(山寺)의 미학  

 

 

  

지난해 말 문화일보를 통해 절찬리에 지상중계됐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특설강좌가

수강생들과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재개 요청에 따라

지난 21일부터 2차 특설강좌를 시작했습니다.

격주로 월요일 오후 5시 정부대전청사 후생동 대강당에서 열리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특설강좌Ⅱ-문화유산을 보는 눈’은

21일 첫 강좌 ‘산사(山寺)의 미학’을 시작으로 6월27일까지 3개월여 동안 진행됩니다.

문화일보는 유 청장의 두번째 특설강좌를 격주로 목요일자 지면에 지상중계합니다.


 

 

우리가 산사의 전통을 갖게 된 것은 9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황룡사 모형도에서 볼 수 있듯

초기 시내(왕도)에 조성된 절은 높은 탑을 중심으로 건물이 만들어지고 주변에 회랑을 두른 구조였지요.

 

의상대사가 화엄사나 부석사 등 국경선 가까운 곳에

국방의 목적으로 대찰인 화엄십찰을 짓는 것에서부터 기원한 산사(山寺)는

하대 신라인 9세기에 구산선문이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산사의 개념에 맞는 절은 장흥 보림사와 해주 심원사 같은 곳입니다.

이처럼 산속에 그윽하게 들어가 있는 절들은 당시 호족들의 발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산이 있는 곳에 절이 있으면 산사로, 이는 일본과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과 일본에선 산사의 의미가 우리와 완전히 달라요.

 

중국과 일본의 산사가 삼각형의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순천 선암사처럼 ‘높은 산’이 아닌 첩첩이 겹쳐져 있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깊은 산’에

아늑하게 자리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우리의 산사는 언제부터인가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을 들어가면

중앙에 정원을 놓고 ‘ㅁ’자 형태로 건물을 배치하는 ‘산지중정형(山地中庭形)’

가람구조를 특징으로 하고 있지요.

 

그런 다음 절의 사세에 따라 주변 환경에 맞게 전각들을 증축해 나갔습니다.

야외법당으로 사용되는 만세루란 2층 누각을 아래로 통과해 계단을 올라서면

탑이 서 있는 정원과 대웅전이 나타나고

좌우에 선방인 적묵당과 부엌인 심검당이 배치돼 있는 게 산지중정형이며

절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웅전, 적묵당, 만세루, 심검당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 산사의 기본구조예요.

 

그 다음에 목적에 따라 나한과 지장 · 관음보살을 모시는 응진전과 명부전, 관음전, 산신각 등이

조성됐습니다. 이처럼 사찰은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증축됐지만

창녕 관룡사의 예에서 보듯 증축된 건물들이 주변 환경과 잘 맞아떨어져

현대 건축가들의 찬사를 받는 곳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전통도 20세기 후반, 정확히 1980년대 들어

굴착기(포클레인)를 동원해 군대 연병장처럼 큰 마당을 만드는 풍조가 산사에 밀려오면서

우리 옛 사찰이 갖고 있었던 고즈넉한 맛은 다 사라져버렸어요.

주변의 동백나무 느티나무와 조화를 이룬 단아한 맞배지붕 집이었던 강진 무위사 극락전은

양 옆을 다 트고 앞마당을 넓히면서 집만 덩그러니 서 있는 느낌을 주며

예산 수덕사는 소림사 무대를 방불케 합니다.

그래도 학이 날갯짓하고 내려앉을 때 그 날개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덕사 대웅전 측면 지붕의 기울기는 일품입니다.

부안 내소사 주차장에서 보면 일주문만 눈에 들어오고 그 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절이나 그렇지요. 우리나라 절들은 속이 깊기 때문에 내소사의 경우

중간중간 단풍나무가 포진한 전나무 숲길로 1㎞를 들어가고 벚꽃나무 길을 지나서야

천왕문으로 이어집니다. 산사로 진입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동과 편안함은 바로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일주문을 지나 길을 꺾어 들어갈 때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사실 거기서부터가 하나의 건축입니다.

이처럼 건축적인 컨셉트를 가지고 조형된 길을 무시해버리고 자동차로 홱 들어가버리고 나면

출입하면서 속세와 성역이 갖고 있는 시간적 · 공간적 거리감을 느끼게 조형된 우리 사찰건축의 묘미를

이해할 수 없지요. 또 이렇게 해서 들어와도 대웅전을 바로 보여주는 일은 없습니다.

 

내소사의 경우 돌계단을 지나 봉래루(만세루) 밑 계단을 통해 올라서야지 준봉(峻峯)인 능가산의 기세에

지지 않게 높이 쌓은 축대 위에 팔작지붕의 날개를 활짝 뻗어올린 대웅보전이 보이지요.

이와 같은 산세 속에 무위사 극락보전 같이 단아한 집을 지어놓았으면

집이 산세에 눌려서 아마 기운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최치원이 쓴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문’에도 지증대사 생전의 6가지 잘한 일 중 하나로

“기와집을 짓고 사방으로 추녀를 드리워 (희양산의) 지세(地勢)를 눌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집이 화려한 만큼 공포장치나 창살문양도 예사롭지 않아요.

우리나라 사찰은 대개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중 첫째로 구례 화엄사 각황전처럼 궁궐에 준하는 위엄을 갖춘 사찰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궁궐과 같은 건물에서 왕과 같은 위상으로 모신 것입니다.

반면에 무위사는 아주 고즈넉한 산사로 선방과 함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있는 형상이며

부석사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경관을 전제로

호방한 기상을 보여주는 절이지요.

마지막으로 선암사는 옹기종기 건물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마치 경주 양동 민속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 같은 분위기예요.

돌계단과 시누대 숲을 지나는 서산 개심사의 옛 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경지(鏡池)예요.

영지(影池)와 함께 ‘거울 못’이란 뜻으로 상왕산의 그림자가 비치기 때문에 얻은 이름인데

청평사와 불국사 등 절에는 이런 이름의 연못이 많습니다.

통나무 외나무 다리를 건너 올라가면

큰 배롱나무와 함께 해강 김규진이 쓴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란 만세루의 현판이 나타나고

안쪽에 대웅보전과 심검당, 적묵당이 만세루와 함께 정사각형을 이루는 구조로 돼 있지요.

불국사와는 달리 앞마당에 꽃밭이 있는데, 아무 곳에나 꽃밭을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가 갖고 있는 친절성을 극대화할 것이냐,

아니면 절대자가 갖고 있는 존엄의 가치를 극대화할 것인가 하는,

절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에 따라 정원에 대한 계획 자체가 달라져버리는 거지요.

 

 

금강산 법기봉 낭떠러지 중턱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내금강 보덕굴은

 

화려한 자연에 화려하게 대응한 산사의 미학을 보여준다.


화려한 자연에 화려하게 대응했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구려 때 창건된 내금강 보덕굴입니다.

7.2m높이의 구리기둥 위에 건물을 세우고 쇠줄을 둘러 허리부분을 붙잡아 맨 보덕굴은

세 사람만 들어가도 흔들리지요.

멀리서 보면 3층 집처럼 보이지만

위에 있는 집들은 멀리서 볼 때 외롭게 보이지 않게 하거나

빗물이 내릴 때 물받이 역할을 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집은 눈썹지붕,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등 어떤 식으로 지어도

4가지 이상 나올 수 없는 한옥의 지붕유형이 모두 다 들어있는게 특징입니다.

은행잎이 깔린 박석길을 따라 들어가는 영주 부석사의 진입로는

산사가 가진 고즈넉한 멋을 대표합니다.

천왕문을 오르는 돌계단을 시작으로 9개의 석축 맨 마지막에 무량수전이 들어 앉아 있는

부석사의 건물배치는 9품 만다라의 전개를 구현한 것이지요.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부석사 무량수전은 학이 날갯짓하고 올라가는 형태를 보여주는 팔작지붕의 기울기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주심포 집의 간결미가 지켜주고 있는 엄숙성 등

건축적인 특징 외에도 무엇보다 그것이 위치한 자리가 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교토(京都)의 기요미즈데라(淸水寺)가

절 그 자체보다도 절에서 내려다보는 교토의 경관 때문에 유명한 것처럼 말이죠.

소백산맥이 펼쳐진 대자연을 정원으로 삼은 부석사 하나로

우리 산사가 갖고 있는 시원한 눈맛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 건축의 백미인 무량수전(오른쪽)과 소백산맥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안양루(왼쪽) 등으로

이뤄진 경북 영주 부석사는 대자연을 정원으로 삼아 관람객들에 시원한 눈맛을 느끼게 해주는 명소다.


사람들의 사용을 금지한 이후 오히려 보수공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승선교를 지나

순천 선암사 입구에 들어가면 삼인당(三印塘)이란 연못이 있는데,

이곳에는 토목공학적, 종교적, 미학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 다 들어가 있어요.

장마 때 물을 가둬두었다가 속도를 줄여서 밑으로 빼는 역할과 함께 종교적으로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란 의미를 가진 연못입니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은 장마때 물을 유도하는 회로 역할뿐 아니라

연못이 커보이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지요.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중국 육조시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절, 달마시대부터 내려오는 절이란 뜻으로

‘육조고사(六朝古寺)’라는 추사풍의 현판이 걸린 만세루가 있습니다.

선암사에는 현재 23채의 당우(건물)가 있지만 원래 50여 채가 있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대웅전과 만세루, 심검당, 적묵당 4채로 시작했다가

차차 명부전, 관음전, 응진전, 선방 등으로 한 채 한 채 절집을 지어 들어갔는데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어 유서 깊은 마을에 온 것 같은 그런 편안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겨울철 꽃이 피는 동백나무와 아열대성인 파초 등 사찰 경내에 80종의 나무가 있어

1년 365일 꽃이 지는 날이 없는 것도 자랑거리입니다.

‘대변소 뒷간’으로 쓰인 변소와 큰 석조로 교체하지 않고 당우가 늘어날 때마다

조그만 석조를 옆에 붙여 놓은 달마전의 4단 석조 등도 선암사의 미학을 대표합니다.

지난 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있을 당시
방한한 미국의 미술평론가 캐서린 할브라이시

(미니애폴리스 워크 아트센터 관장)와 함께 선암사에 간 일이 있어요.

자연과 어우러진 선암사를 본 그는 “피라미드는 네모뿔, 타지마할은 상자 위에 양파 하나 얹혀 있는

모양 등 세계의 모든 건축에는 고유 이미지란 것이 있는데,

선암사는 전후좌우로 건물이 계속 겹쳐서 나오면서 건축의 전모가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한국에선 이런 건축을 ‘깊은(deep)’ 건축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제게 해왔습니다.

‘깊은 산속에 깊은 절’,

아마 이것이 우리 산사의 미학이 갖고 있는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정리〓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 문화일보, 2005.03.25 

 

 

 

 

 

 

지난해 말 문화일보를 통해 절찬리에 지상중계됐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특설강좌가
수강생들과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재개 요청에 따라 지난 21일부터 2차 특설강좌를 시작했습니다.
격주로 월요일 오후 5시 정부대전청사 후생동 대강당에서 열리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특설강좌Ⅱ-문화유산을 보는 눈’은 21일 첫 강좌 ‘산사(山寺)의 미학’을 시작으로
6월27일까지 3개월여 동안 진행됩니다.
문화일보는 유 청장의 두번째 특설강좌를 격주로 목요일자 지면에 지상중계합니다.
 
 

 

(1) 山寺의 미학

 

 

 

깊은 산속 깊은 절…  ‘아늑한 佛心’ 절로
 
 
<문화유산을 보는 눈>
깊은 산속 깊은 절… ‘아늑한 佛心’ 절로
 
 
 
지난해 말 문화일보를 통해 절찬리에 지상중계됐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특설강좌가
수강생들과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재개 요청에 따라 지난 21일부터 2차 특설강좌를 시작했습니다.
격주로 월요일 오후 5시 정부대전청사 후생동 대강당에서 열리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특설강좌Ⅱ-문화유산을 보는 눈’은 21일 첫 강좌 ‘산사(山寺)의 미학’을 시작으로
6월27일까지 3개월여 동안 진행됩니다.
문화일보는 유 청장의 두번째 특설강좌를 격주로 목요일자 지면에 지상중계합니다.

우리가 산사의 전통을 갖게 된 것은 9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황룡사 모형도에서 볼 수 있듯 초기 시내(왕도)에 조성된 절은 높은 탑을 중심으로 건물이 만들어지고 주변에 회랑을 두른 구조였지요. 의상대사가 화엄사나 부석사 등 국경선 가까운 곳에 국방의 목적으로 대찰인 화엄십찰을 짓는 것에서부터 기원한 산사는 하대 신라인 9세기에 구산선문이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산사의 개념에 맞는 절은 장흥 보림사와 해주 심원사 같은 곳입니다. 이처럼 산속에 그윽하게 들어가 있는 절들은 당시 호족들의 발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산이 있는 곳에 절이 있으면 산사로, 이는 일본과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과 일본에선 산사의 의미가 우리와 완전히 달라요. 중국과 일본의 산사가 삼각형의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순천 선암사처럼 ‘높은 산’이 아닌 첩첩이 겹쳐져 있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깊은 산’에 아늑하게 자리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우리의 산사는 언제부터인가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을 들어가면 중앙에 정원을 놓고 ‘ㅁ’자 형태로 건물을 배치하는 ‘산지중정형(山地中庭形)’ 가람구조를 특징으로 하고 있지요. 그런 다음 절의 사세에 따라 주변 환경에 맞게 전각들을 증축해 나갔습니다. 야외법당으로 사용되는 만세루란 2층 누각을 아래로 통과해 계단을 올라서면 탑이 서 있는 정원과 대웅전이 나타나고 좌우에 선방인 적묵당과 부엌인 심검당이 배치돼 있는 게 산지중정형이며 절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웅전, 적묵당, 만세루, 심검당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 산사의 기본구조예요. 그 다음에 목적에 따라 나한과 지장·관음보살을 모시는 응진전과 명부전, 관음전, 산신각 등이 조성됐습니다. 이처럼 사찰은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증축됐지만 창녕 관룡사의 예에서 보듯 증축된 건물들이 주변 환경과 잘 맞아떨어져 현대 건축가들의 찬사를 받는 곳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전통도 20세기 후반, 정확히 1980년대 들어 굴착기(포클레인)를 동원해 군대 연병장처럼 큰 마당을 만드는 풍조가 산사에 밀려오면서 우리 옛 사찰이 갖고 있었던 고즈넉한 맛은 다 사라져버렸어요. 주변의 동백나무 느티나무와 조화를 이룬 단아한 맞배지붕 집이었던 강진 무위사 극락전은 양 옆을 다 트고 앞마당을 넓히면서 집만 덩그러니 서 있는 느낌을 주며 예산 수덕사는 소림사 무대를 방불케 합니다. 그래도 학이 날갯짓하고 내려앉을 때 그 날개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덕사 대웅전 측면 지붕의 기울기는 일품입니다.

부안 내소사 주차장에서 보면 일주문만 눈에 들어오고 그 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절이나 그렇지요. 우리나라 절들은 속이 깊기 때문에 내소사의 경우 중간중간 단풍나무가 포진한 전나무 숲길로 1㎞를 들어가고 벚꽃나무 길을 지나서야 천왕문으로 이어집니다. 산사로 진입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동과 편안함은 바로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일주문을 지나 길을 꺾어 들어갈 때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사실 거기서부터가 하나의 건축입니다. 이처럼 건축적인 컨셉트를 가지고 조형된 길을 무시해버리고 자동차로 홱 들어가버리고 나면 출입하면서 속세와 성역이 갖고 있는 시간적·공간적 거리감을 느끼게 조형된 우리 사찰건축의 묘미를 이해할 수 없지요. 또 이렇게 해서 들어와도 대웅전을 바로 보여주는 일은 없습니다. 내소사의 경우 돌계단을 지나 봉래루(만세루) 밑 계단을 통해 올라서야지 준봉(峻峯)인 능가산의 기세에 지지 않게 높이 쌓은 축대 위에 팔작지붕의 날개를 활짝 뻗어올린 대웅보전이 보이지요. 이와 같은 산세 속에 무위사 극락보전 같이 단아한 집을 지어놓았으면 집이 산세에 눌려서 아마 기운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최치원이 쓴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문’에도 지증대사 생전의 6가지 잘한 일 중 하나로 “기와집을 짓고 사방으로 추녀를 드리워 (희양산의) 지세(地勢)를 눌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집이 화려한 만큼 공포장치나 창살문양도 예사롭지 않아요.

우리나라 사찰은 대개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중 첫째로 구례 화엄사 각황전처럼 궁궐에 준하는 위엄을 갖춘 사찰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궁궐과 같은 건물에서 왕과 같은 위상으로 모신 것입니다. 반면에 무위사는 아주 고즈넉한 산사로 선방과 함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있는 형상이며 부석사는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경관을 전제로 호방한 기상을 보여주는 절이지요. 마지막으로 선암사는 옹기종기 건물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마치 경주 양동 민속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 같은 분위기예요.

돌계단과 시누대 숲을 지나는 서산 개심사의 옛 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경지(鏡池)예요. 영지(影池)와 함께 ‘거울 못’이란 뜻으로 상왕산의 그림자가 비치기 때문에 얻은 이름인데 청평사와 불국사 등 절에는 이런 이름의 연못이 많습니다. 통나무 외나무 다리를 건너 올라가면 큰 배롱나무와 함께 해강 김규진이 쓴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란 만세루의 현판이 나타나고 안쪽에 대웅보전과 심검당, 적묵당이 만세루와 함께 정사각형을 이루는 구조로 돼 있지요. 불국사와는 달리 앞마당에 꽃밭이 있는데, 아무 곳에나 꽃밭을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가 갖고 있는 친절성을 극대화할 것이냐, 아니면 절대자가 갖고 있는 존엄의 가치를 극대화할 것인가 하는, 절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에 따라 정원에 대한 계획 자체가 달라져버리는 거지요.

화려한 자연에 화려하게 대응했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구려 때 창건된 내금강 보덕굴입니다. 7.2m높이의 구리기둥 위에 건물을 세우고 쇠줄을 둘러 허리부분을 붙잡아 맨 보덕굴은 세 사람만 들어가도 흔들리지요. 멀리서 보면 3층 집처럼 보이지만 위에 있는 집들은 멀리서 볼 때 외롭게 보이지 않게 하거나 빗물이 내릴 때 물받이 역할을 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집은 눈썹지붕,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등 어떤 식으로 지어도 4가지 이상 나올 수 없는 한옥의 지붕유형이 모두 다 들어있는게 특징입니다.

은행잎이 깔린 박석길을 따라 들어가는 영주 부석사의 진입로는 산사가 가진 고즈넉한 멋을 대표합니다. 천왕문을 오르는 돌계단을 시작으로 9개의 석축 맨 마지막에 무량수전이 들어 앉아 있는 부석사의 건물배치는 9품 만다라의 전개를 구현한 것이지요.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의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부석사 무량수전은 학이 날갯짓하고 올라가는 형태를 보여주는 팔작지붕의 기울기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주심포 집의 간결미가 지켜주고 있는 엄숙성 등 건축적인 특징 외에도 무엇보다 그것이 위치한 자리가 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교토(京都)의 기요미즈데라(淸水寺)가 절 그 자체보다도 절에서 내려다보는 교토의 경관 때문에 유명한 것처럼 말이죠. 소백산맥이 펼쳐진 대자연을 정원으로 삼은 부석사 하나로 우리 산사가 갖고 있는 시원한 눈맛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사용을 금지한 이후 오히려 보수공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승선교를 지나 순천 선암사 입구에 들어가면 삼인당(三印塘)이란 연못이 있는데, 이곳에는 토목공학적, 종교적, 미학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 다 들어가 있어요. 장마 때 물을 가둬두었다가 속도를 줄여서 밑으로 빼는 역할과 함께 종교적으로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란 의미를 가진 연못입니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은 장마때 물을 유도하는 회로 역할뿐 아니라 연못이 커보이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지요.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중국 육조시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절, 달마시대부터 내려오는 절이란 뜻으로 ‘육조고사(六朝古寺)’라는 추사풍의 현판이 걸린 만세루가 있습니다. 선암사에는 현재 23채의 당우(건물)가 있지만 원래 50여채가 있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대웅전과 만세루, 심검당, 적묵당 4채로 시작했다가 차차 명부전, 관음전, 응진전, 선방 등으로 한 채 한 채 절집을 지어 들어갔는데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어 유서 깊은 마을에 온 것 같은 그런 편안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겨울철 꽃이 피는 동백나무와 아열대성인 파초 등 사찰 경내에 80종의 나무가 있어 1년 365일 꽃이 지는 날이 없는 것도 자랑거리입니다. ‘대변소 뒷간’으로 쓰인 변소와 큰 석조로 교체하지 않고 당우가 늘어날 때마다 조그만 석조를 옆에 붙여 놓은 달마전의 4단 석조 등도 선암사의 미학을 대표합니다.

지난 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있을 당시 방한한 미국의 미술평론가 캐서린 할브라이시(미니애폴리스 워크 아트센터 관장)와 함께 선암사에 간 일이 있어요. 자연과 어우러진 선암사를 본 그는 “피라미드는 네모뿔, 타지마할은 상자 위에 양파 하나 얹혀 있는 모양 등 세계의 모든 건축에는 고유 이미지란 것이 있는데, 선암사는 전후좌우로 건물이 계속 겹쳐서 나오면서 건축의 전모가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한국에선 이런 건축을 ‘깊은(deep)’ 건축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제게 해왔습니다. ‘깊은 산속에 깊은 절’, 아마 이것이 우리 산사의 미학이 갖고 있는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기사 게재 일자:  2005-03-24
- 정리〓 문화일보, 최영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