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가장 멋진 대보름 잔치: 선구마을 줄끗기놀이
** 대보름이 코앞이고, 이번 주말에는 여러 지역에서 대보름 행사를 앞당겨 여는 곳도 많다. 그러나 신문에서도 포탈에서도 대보름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이다. 과거 설날보다 더 큰 명절로 여겨졌던 대보름이지만, 지자체나 관이 주도하는 대보름 행사가 아닌 자발적 마을 단위의 당산제나 풍어제는 그렇게 언론의 무관심과 대중의 외면 속에 사라져버렸고, 지금도 사라져가고 있다. 숭례문이 불탄 뒤, 문화재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휘발성에 가깝다. 이슈가 사라지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외면해버린다. 그러고는 문제가 터지면 왜 그랬느냐고, 이래서는 안된다고 다들 지 잘났다고 떠들어대며 애국자가 된다. 평소엔 코딱지만큼의 관심도 없었으면서 일이 터지면 가장 관심있는 척한다. 언론도 그렇고 포털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위도 띠뱃놀이는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알아주겠는가. 유럽에서 아시아 최고의 풍어제라고 해도 그것을 외면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그냥 방치해버리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둘러보고 기록한 당산제와 풍어제는 연평도 풍어제, 위도 띠뱃놀이, 제주 칠머리당굿을 비롯해 부안 우동리 당산제, 돌모산 당산제, 고창 무림리 당산제, 남해 화계 배선대놀이, 선구마을 줄끗기 놀이까지 모두 8곳이다. 해마다 대보름이면 길을 떠나 당산제와 풍어제를 만난 셈이다. 아래의 기사는 남해 선구 줄끗기놀이를 보러 간 아주 간략한 여행의 기록이다. **
선구마을 인근의 구미포구의 저녁 풍경. 포구의 방풍림이 멋진 실루엣을 그려내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 열리는 남해 선구 줄끗기놀이를 보자고 하루 전에 남해에 도착했다. 선구마을 인근의 구미포구에는 일몰이 끝나 황홀했던 하늘이 파란 어둠 속으로 잠기고 있다. 구불구불 아무렇게나 뻗어 올라간 팽나무와 느티나무(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모두 365그루란다)가 막다른 바닷가에 그려내는 비정형의 실루엣을 보며 나는 오래오래 바닷가에 서 있었다. 마치 한 그루 사내처럼. 외로운 민박집에 짐을 풀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꺼내든다. 나는 이 책을 세 번째 읽고 있지만, 세 번 다 다른 느낌이다. 책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선구마을 줄끗기놀이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이 당산제에 앞서 당산나무 앞 마늘밭에 옹기종기 모여 잠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보이는 것, 냄새, 감촉, 맛, 듣는 것, 지성---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해는 졌고 언덕들은 희미하다. 내 마음의 산맥에는 아직 산꼭대기에 빛이 조금 남았지만, 성스러운 밤이 감돌고 있으니, 밤은 대지로부터 솟아 나오고,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책에서 그는 인간의 일생을 ‘짤막한 섬광이지만,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카잔차키스는 죽음을 앞에 두고 아내 헬렌에게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못다한 말들을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가 연필로 쓴 것이 아니라 목소리로 쓴 것이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15분씩만 구걸해서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러나 죽음의 신은 그 약간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애당초 시간이란 인간의 몫이 아니며, 우리에겐 언제나 시간이 없다.
선구마을 제주들이 당산제를 지내고 나서 밥무덤 덮개돌을 열어 밥을 묻고 있다.
이른 아침에 1024번 해안도로를 달려 화계리에 먼저 도착했다. 선구 줄끗기놀이에 앞서 화계 배선대놀이를 보기 위함이었다. 둘 다 오랜 동안 전해져 온 자발적인 대보름 축제다. 화계 배선대놀이는 배선대 비석 앞에서 제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높이 솟은 솟대 위에 세 마리의 오리가 앉아 있고, 솟대만큼 높이 솟은 깃대에는 오방기가 펄럭인다. 풍물놀이패가 한바퀴 제단 앞을 돌고 나면 한복을 차려 입은 제주들이 절을 올리고, 이어 항구에서 뱃고사를 지낸 뒤, 달집을 태운다. 배선대놀이의 절정은 뱃기를 꽂은 배들의 해상 행렬이지만, 이날은 파도가 높아 취소가 되었다. 날은 춥고 간간 눈발이 뿌렸으며, 바람은 점점 거세게 돌진해오는 날이었다.
제례용 밥을 묻어두는 밥무덤. 이 속에 든 밥은 세상을 떠도는 모든 굶주린 영혼을 위한 밥이다.
화계를 떠나 도착한 남면 선구마을에서는 이제 막 선구 줄끗기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줄끗기놀이에 앞서 한복을 입은 아낙들과 어르신들은 마늘밭 양지에 쪼그려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줄끗기놀이는 선구마을 뒷산 당산나무에서 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산제가 끝나면 밥무덤에 제례 음식을 묻고, 고싸움에 나설 숫줄(북쪽)을 매고 마을로 내려간다. 이 모습이 실로 장관이다. 마을에 도착하면 이미 다른 당산에서 고사를 지낸 뒤 대기하고 있던 암줄(남쪽)이 포구앞 해변에서 숫줄과 만나 어우러진다. 그리고는 해변 자갈밭에서 한바탕 고싸움을 한다. 고싸움이 끝나면 줄다리기를 하는데, 이 때 고와 고 사이에 비녀목을 끼워 남북(암수)이 서로 자리를 옮겨가며 줄을 당긴다. 여기서 북쪽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남쪽이 이기면 풍어가 든다고 하는데, 선구마을이 어촌이다보니 남쪽이 이겨야 하는 건 기정사실이다.
선구마을 포구 옆 바닷가에서 북쪽 마을과 남쪽 마을이 서로 편을 갈라 고싸움을 한 뒤,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 선구마을 줄끗기(줄다리기의 의미)에 참여하는 마을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줄을 매고 당기는 사람만도 양쪽이 모두 100여 명이 넘고, 마을의 참여자와 외지의 구경꾼까지 합하면 수백여 명에 이른다. 이웃의 여러 마을에서도 함께 참여하기 때문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곧바로 달집 태우기에 들어간다. 풍물패는 달집이 다 사그라들때까지 달집 주위를 돌며 풍물을 친다. 사람들도 너나없이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래한다. 이제껏 나는 이토록 신명나고 자발적인 마을 축제를 본 적이 없다. 축제가 모두 끝나자 해변에는 작은 잔치상이 차려진다. 삼삼오오 그냥 자갈밭에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다. 나도 술 한잔에 떡과 고기와 생선으로 배를 채웠다.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백명이 다함께 둘러앉아 보름 음식을 먹는 풍경은 줄끗기놀이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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