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위도 띠뱃놀이

Gijuzzang Dream 2008. 3. 26. 17:05

 

 

 

 

 칠산 바다, 다시 부르는 풍어의 노래, 위도 띠뱃놀이


조기들의 고향이었던 칠산 바다

 

칠산 바다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앞바다에서 시작하여 법성포 앞바다를 지나

전라북도 부안의 위도, 곰소만, 고군산군도의 비안도에 이르는 해역을 일컫는다.

 

백수면 앞바다에는 모두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데

칠뫼, 즉 일곱 개의 산이 있다하여 칠산 바다라 불리었다.

 

칠산 바다는 조기들의 고향이었다. 3월에서 4월 무렵,

산란을 위해 회유하는 조기 떼들로 바다는 넘실거렸다.

이맘때는 전국의 어선들이 칠산 바다로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물반 고기반,

사흘 동안 조기를 잡아 평생을 먹고 산다는 ‘사흘칠산’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또 칠산바다의 연평 어업협동조합의 일일출납고가 한국은행의 출납보다 그 액수가 높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어부들은 칠산바다에 조기 잡으러 간다고 하지 않고 돈 실러 간다고 말했다.

 

“밤에 선주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믄 바다에 도깨비불이 보여. 도깨비불이 보인 자리에 담날 가보면 조기가 있지. 바다에다 대나무를 박고 가만히 소리를 들어보면 조기 우는 소리가 들려. 우웅우웅…. 꼭 바람소리 같지. 한창때는 한번 나가믄 30동까지 잡아오기도 했지.

일주일 나가 100동을 잡아온 적도 있었어.

한 동이 천 마리니까 100동이면 얼마여? 우리 애덜이 모두 일곱인디 모두 전주에서 학교 댕겼지.”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업을 이었던 일흔 여섯 백순기 씨가 당시를 회상한다.

 

칠산 바다에서 잡힌 조기는 대부분 영광군 법성포나 줄포로 들어가 굴비로 가공되었다.

영광굴비의 명성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칠산 바닷물을 먹어야 알을 낳는다는 조기 떼가 사라진지도 어느새 20여 년이 흘렀다.

지금 칠산 바다의 어민들은 멸치와 해태양식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조기철에는 9시간이나 걸리는 흑산도 인근까지 나가 조기를 잡아온다.


만선 풍어의 염원 - 위도 띠뱃놀이

 


풍어제의 준비

 

칠산어장의 중심이었던 위도 대리마을.

정월 초사흘 날 이곳에서는 띠뱃놀이라는 풍어제를 지낸다.

 

풍어제는

마을 뒷산인 당젯봉에서 지내는 원당제와

마을 선착장에서의 용왕제,

바다에 띠배를 띄워 보내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먼저 제를 준비하고 진행하기 위해 섣달 10일에 마을 정기총회가 열린다.

총회에서는 제의 규모와 비용을 정하고 제를 진행할 제관을 선정하는데

제관은 제만(화주) 1명, 원화장 1명, 부화장 2명을 정한다.

상가나 임산부가 있는 집안의 사람은 절대 제관이 될 수 없으며,

정월 초삼일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만은 총책임자로 제주가 되고 원화장은 제사에 쓰일 음식 준비를 맡는다.

부화장은 원화장을 도와 음식을 장만하고 여러 잔일들을 도맡는다.

제관이 선정되면 독축관도 1명 정하는데 독축관은 보통 한번 정해진 사람이 계속 맡게 된다.

 

원당제를 사제하는 사제무는 원래 무녀가 진행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무계세습이 끊긴 이후로 현재는 위도 띠뱃놀이 전수자인 전금례(82세) 할머니가 맡고 있다.

또 다른 전수자로 이영금(46)씨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원당제

 

초사흘 아침. 7시 반에 전수관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당젯봉 원당에 오른다.

마을과 칠산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원당은 맞배지붕의 2칸 기와집으로 되어있고

안에는 12서낭이 모셔져 있다. 원당제는 제관의 독축으로 시작되어 바로 당굿으로 들어간다.

당복을 입은 사제무는 긴 흰 천을 들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한 거리씩 굿을 해나간다.

 

굿거리는 성주굿으로부터 시작하여

산신굿, 손님굿, 지신굿, 서낭굿, 깃굿, 문지기굿과 뒤풀이로 이어진다.

깃굿은 각 어선의 선주들이 12서낭 중 일 년 동안 자신의 배에 모실 서낭을 내림받는 굿이다.

 

사제무는 선주의 손바닥에 쌀을 몇 알 집어놓아 주는데

쌀의 수가 짝수이면 선주가 원하는 서낭을 내림받게 되고

홀수가 되면 다시 짝수가 나올 때까지 다른 서낭을 내림받게 된다.

 

서낭이 내려지면 그 서낭의 이름을 한지에 적어주고 선주의 배에 걸릴 오색 뱃기 꼭대기에 묶는다. 이것을 ‘깃손받기’ 라고 한다.

 

굿이 열리는 동안 한쪽에서는 고기를 굽고 굿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당굿이 끝나면 다시 농악을 울리면서 뱃기를 들고 하산한다.

용왕제와 띠배 띄우기

 

용왕굿은 바닷가에 띠배와 용왕상을 차려놓고

장구와 징 반주로 시작한다.

원당제와 다른 점은 이때부터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마을 앞 바닷가가 떠들썩하게 흥을 돋우던 용왕제가 끝나면

차렸던 제물을 띠배에 싣고 퇴송밥(고수레용 허드렛밥)을 만들어 바다 곳곳에 뿌린다.

부녀자들은 퇴송밥을 뿌리고 마을사람들은 따라가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노래한다.

 

띠배는 원당제가 열리는 동안 마을에 남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모든 행사가 끝나면

띠배에 동서남북, 중앙에 짚으로 만든 허제비를 만들어 싣고 5방기도 꽂아 넣는다.

드디어 띠배가 뭍에서 바다로 띄워지고 모선에 연결되어 바다로 나가게 된다.

 

황혼 속으로 사라지는 띠배를 보며

사람들은 이 띠배가 마을의 모든 액운을 실어 갈 것이라고 믿고, 잊혀진 풍어의 꿈을 키운다.

에이야 술배야 술배로구나
이 술배가 누구 술배냐 / 홍동진이 술배로세 / 술배소리 맞아주소
먼데 사람 보기 좋고 / 가까운 사람 듣기 좋게 / 술배소리 맞아주소
미끄런 조기야 코코에 걸려라 / 에이야 술배야
껄끄런 박대야 코코에 걸려라 / 에이야 술배야
나오신다 나오신다 / 에이야 술배야
선주에 마누라 술동이 이고 / 발판 머리에 엉덩이춤 춘단다
에이야 술배야 술배로구나
걸렸구나 걸렸구나 / 우리 배 망자에 걸렸구나
이놈의 조기야 어디갔다가 이제왔냐 / 에이야 술배야 술배로구나

- 월간문화재사랑, 글, 사진: 남정우, 2008-02-28

 

 

 

 

 

 

 

  풍어 비는 위도 띠뱃놀이

 "조기떼 갈치떼 멸치떼 코코마다 걸렸구나"

 

 

"돈벌러 가세 돈벌러가세 칠산바다로 돈 벌러가세
칠산바다 들어오는 조기 우리 배 마장에 다 떠 실었단다
우리네 사공님 신수 좋아 오만칠천 냥 단물에 벌었네
뱀제네 마누라 술동이 이고 발판머리서 춤을 춘다네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정든 님 생각이 절로나 나네
노자노자 젊어 노자 늙고 병들면 못노나니"

 

황금조기떼가 칠산바다를 뒤덮던 시절,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며 기우뚱거리는 배 갑판 위에서

어부들이 신명나게 부르던 '배치기 소리'이다.

칠산바다의 중심어장인 위도는

변산반도 서쪽 끝에 있는 격포항에서 여객선으로 4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섬으로

일개 면(面)을 이루고 있다. 고려 때에는 이규보의 유배지였고,

심청이 빠져 죽은 '인당수'가 바로 이곳 위도의 '임수도'라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 곳이다.

또 최근에는 '서해 훼리호' 침몰사건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위도가 황금어장을 이루어 흥청거리던 시절,
위도 곳곳에서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풍어제와 지신밟기, 줄다리기 등의 마을 공동제(公同祭)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조기가 자취를 감추자,

이제는 예전의 그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멸치잡이와 김양식 등을 주업으로 하는

한적한 어촌으로 변해 있다. 따라서 성대하게 치러졌던 풍어제도 그 맥이 끊기거나 간략해졌는데,

대리(大里)마을의 '띠뱃굿'만은 유일하게 원형을 잘 간직한 채 그 맥을 잇고 이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원당제를 지내기 위해 원당에 오르는 모습.

 

대리 마을의 띠뱃굿은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제의로

매해 정월 초사흘날 열리는데 육지의 당산제와 성격이 같다.
동제는 원당제, 주산돌기, 용왕제와 띠배에 액을 띄워보내기의 순서로

이른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진행되며,

시종 에해용 노래, 가래질 소리, 술배 소리 등 어부들의 삶 속에서 녹아 있는 소리와 풍물,

신명난 춤을 추며 축제분위기로 이어진다.

 

이 제를 올리기 위해 대리 사람들은 섣달 20일경이 되면

동네 어귀에 왼새끼에 백지 조각을 낀 금줄을 치고 동네에 잡인의 출입을 금하고 부정을 막는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는 산막으로 옮겨가도록 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화주(제주), 원화장(제물 준비), 부화장(제물 나르는 사람)을 뽑는다.

뽑힌 화주나 화장은 일체의 부정한 것을 멀리 하고,

찬물로 목욕재계 한 후 제물을 정성껏 준비한다.

제물을 나르는 일을 맡은 '원당'.

원당제를 지내는 동안 무섭게 분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액을 막아내기 위함이다.


정월 초사흘날, 날이 밝으면 영기를 든 기잡이를 선두로 무녀, 화주, 화장, 선주, 농악 등이

신명나게 굿을 치며 뒤따르고, 오방기와 뱃기를 든 기수와 마을사람들이

농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마을 바닷가 산 절벽 위에 있는 원당에 올라 원당제(元堂祭)를 지낸다.

원당에는 마을과 바다를 수호하는 신으로 받들고 있는 산신상, 원당마누라상, 본당마누라상,

옥저부인상, 아가씨상, 문수장군상, 장군서낭상 등 7위의 신상이 모셔져 있다.
 
화장이 지게에 지고 온 제물을 내려 진설을 끝내면

원당제는 화주의 독축을 시작으로 '성주굿' '산신굿' '지신굿' '서낭굿 '손님굿' 깃굿 순으로

오전 내내 이어지는데 무녀의 사설이 계속되는 동안 마을사람들은 차례로

저마다의 소원을 축원하고, 굿 한 판이 끝날 때마다 농악을 치며 신명나게 춤을 춘다.

 

원당굿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선주들이 1년 동안 자기 배에 모실 서낭을 받는 깃굿으로

무녀가 "원당 서낭님이 가실랑가" 하면서 당집 마루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선주에게

쌀을 집어주어 산점(算占)을 치는데, 이때 쌀알이 짝수가 되면 서낭을 받는 것으로,

그해 무병하며 고기도 많이 잡힌다 하여 흐뭇해하고,

반면에 홀수가 되면 "애기씨 서낭님이 가실랑가"하면서 다른 서낭을 부르는 식으로 계속하여

각각 서낭을 받는데, 이럴 경우 선주는 의기소침해진다.

 

깃굿이 끝나면 무녀는 선주의 깃폭을 잡고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흥겹게 춤을 추며

또 한바탕 신명난 굿판을 벌인다.

이렇게 해서 당제가 끝나면 영기를 선두로 농악을 치며 산에서 내려와 주산돌기를 한다.

 

원당에서 내려온 마을사람들은 당산 옆에 정원대보름날 줄다리기를 하기 위하여 서려놓은

암·수의 굵은 용줄을 어깨에 메고 두 편으로 갈라 '에해용 소리'에 맞추어 반타원형으로 돌며

주산(主山)돌기를 한 후,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일종의 지신밟기이다.

그러나 요즘은 마을 사람들 수가 적어 용줄은 생략하고,

영기와 오방기를 앞세우고 농악을 치며 마을을 돈다.

 

주산돌기가 끝날 시각이면 바닷가 선창에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만든

폭 2미터, 길이 3미터 정도의 띠배가 먼 바다로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라고 쓰여진 마을 기가 꽂혀있는 띠배에는

돛대, 닻, 그물, 뱃기,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선장과 선원 등이 실려 있는데,

허수아비의 남근을 과장되게 크게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풍요, 다산의 성신앙을 담은 것이다.

 

용왕제는 이 띠배 앞에서 지낸다.

무녀가 여러 사람들 바다를 향해 재배! 하면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바다를 향하여 절을 한 후,

농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띠배 주위를 빙빙 돌고, 무녀는 사설과 춤을 추며 제를 올린다.


선창에서 대기하고 있는 띠배 앞에서 지내는 용왕제

 

"...용왕님전이여서 수수만금 티를 내고 억수만금 티를 내고 개 밖에 소문나고

개 안에 장원하여 주시려고 이 정성을 드립네다.

황금같은 조기떼 갈치떼 삼치떼 병치떼 멸치떼 코코마다 걸렸구나

어기여루 술배로다 술배 술로 날을 새고 술배 술로 해를 지니 어찌 아니 좋을 소냐

이물 가득 삼 가득 명지 가득 가득가득 실었으니

고물 안에 하장아가 어서 바삐 일어나서 이물에다 호기해라..."

용왕제를 지낸 후에는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띠배 띄워 보내기를 한다. 
 

"어낭창 가래질이야 어낭창 가래질이야"
가래질 소리를 흥겹게 부르며 띠배에 용왕님이 먹을 회식밥을 퍼 담은 후,

띠배를 모선에 연결시키고, 농악과 선주기가 모선에 올라

"돈 벌러 가세 돈 벌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 벌러 가세"를 우렁차게 부르며

띠배를 끌고 먼바다로 떠나간다.

 

 

마을의 재액을 모두 싣고, 풍어의 꿈도 가득 싣고 떠나가는 띠배를 향해

마을사람들은 우리 마을 사고 없이, 우리 배도 사고 없이, 만선일세 만선일세,

조기 실어 만선일세..., 잘 가고, 다시는 오지 마! 하며 풍어를 기원한다.

 

위도가는 길 : 격포-(여객선/40분 소요)-위도 파장금항-(시내버스)-대리
- 허철희(kreego6153@hanmail.net) ⓒ 전라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