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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이로다, 넋이로세 - 故 박병천 씻김굿

Gijuzzang Dream 2008. 3. 24. 17:49

 

 
 
 
 

  중요무형문화재 박병천 씨 별세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기예능 보유자 박병천씨가 2007년 11월2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무속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77년 ‘진도 다시래기’ 1978년 ‘진도 씻김굿’을 공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1980년 진도씻김굿 무악(巫樂) 부문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진도씻김굿은 망자(亡者)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恨)을 풀어주고 편안한 세계로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진도지역의 굿이다. 故 박병천 보유자는 진도의 민속예술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셨으며, 무악연주와 특유의 구음(口音)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살아생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극찬을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장남 박환영 부산대 국악과 교수 등 3남 7녀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3일 오전 3시 서울아산병원.

24일 오전 10시 진도 철마광장에서 다시래기와 씻김굿을 벌인 뒤 25일 장지로 향한다. - 2007-11-20, 문화재청.

 

 

 

 

 

 故 박병천 씻김굿, 넋이로다 넋이로세


진도 씻김굿으로 씻겨지고,

진도 만가 자락에 실려서 저승으로 가는 죽음은 쓰라린 단절만은 아닌 듯싶다.

그 죽음은 단절이라기보다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온당한 자리매김인 것으로 보인다.

 

삶과 죽음의 본래 모습은 한없이 깨끗하고 순결한 것이라야 옳다는 믿음이

아마도 씻김굿의 소망일 것이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원한과 슬픔과 죄업을 씻어줌으로써 죽은 자를 죽음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죽은 자에게 죽은 자로서의 위엄과 신성과 평정을 회복하게 한다. - 김훈 ‘원형의 섬 진도’ 중에서

박병천(1932.11.18-2007.11.20)

 

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바로 곁에서 지켜본 것은 지난 4월 26일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5·18씻김굿’ 때였다. 몇 차례 씻김굿을 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먼발치에서였다.

굿이라면 지레 오금이 저리며 슬그머니 외면하기 십상인 나로서는 바로 옆에서 굿판을 지켜본다는 것이 여간 신경 저린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것이 죽은 자의 넋을 씻기는 씻김굿이고, 거기 불려나온 넋이 5·18 영령이었음에야.

 

‘나오서사 넋이야 나오서사 혼백아…’

이 천하의 ‘무(巫)쟁이’는 그런 나의 섬약에는 아랑곳없이 잘도 구음(口音)을 다스려갔다.

누구는 그의 소리의 기승(技勝)을 타박하지만 어차피 나로서는 그를 가려 들을 귀도 없었고,

그 전에 이미 노련한 무기(巫氣)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의 소리는 그렇게 밀고 당기며 아득하게 굴러만 가는데,

징을 두드리는 그의 얼굴에는 여직 넉넉한 생기가 넘쳐흘렀다.

그것이 불과 6개월 전인데 이렇게 불현듯 세상을 버리다니. 인간문화재 고(故) 박병천(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 씻김굿’ 예능보유자). 

 

그는 죽음을 앞두고 한 지인에게 보낸 글에서

‘오호라, 천명이 여기까지던가’라고 되뇌었다고 한다.

 

그의 천명은 무(巫)였고, 그것은 내림이었다.

 

그는 진도 신청의 당장 박범준(24세 때 작고)과 진도 최고 무당 김소심의 차남으로 지산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은할아버지 박종기(1879~1941)는 대금산조를 창시한 신화적인 대금 연주가였고, 지금은 그의 장남 환영(50·부산대 교수)과 손자 명규(국악고 1년)에게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조카가 중앙대 김성녀 교수고, 그 모친이 그의 사촌 박옥진이고, 또 그 이모가 박보화다.

그의 가계는 ‘쟁혈(징의 혈)’을 타고 났으니 무업(巫業)은 돌고 돌아 무려 24대에 이른다.

그의 마지막 씻김굿판은 지난 11월 24일 진도군청 앞 철마광장에서

그의 딸이자 단골(무당)인 미옥(45)이 주재했고,

그는 소리로서라도 씻기는 자가 아니라 그냥 망자였다.

 

그의 오랜 친구 강준섭의 ‘다시래기(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가 길을 열었고,

진도의 큰무당 채정례가 그 길에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단골 미옥이 본격적으로 씻김을 행하기 전에 그의 막내딸 윤정(28)이 살풀이춤을 추었다.

나이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는 막내는 마치 바리데기와도 같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심지어 소리조차 없이 흐느꼈다.

 

그래도 고인의 단골딸은 의젓했다. 그녀는 남은 가족들에게서 고인의 넋을 끌어올리며 울고 웃었다.

그녀는 기구한 가족사를 풀어내고 씻김으로써 망자의 넋을 달랬다.

영돗말이가 섞이고 길닦음으로 이어지는 동안 능수능란하기만 한 그녀였지만,

그 많은 씻김판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리고도 아직 남은 눈물이 있었는지 연신 눈물을 쏟고 쏟았다.

그 눈물이 보는 이의 마음을 외려 따뜻하게 했다.

박미옥은 한때 그 지긋지긋한 세습 무계(巫系)의 업에서 벗어나고자 어지간히 몸부림쳤다.

다니던 국악고를 1년 만에 때려치우고, 광주로 내려가 양품점 종업원을 하기도 했고

옷 장사에 나서기도 했다. 세속 남자를 만나 결혼한 후에는 진도로 내려와 소주방을 차렸다.

남편과 함께 술판을 바라지하면서 굿판을 지워내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안에는 무업에 대한 세상의 천대와,

버림받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아버지에 대한 깊고 깊은 애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다시 무업으로 돌아갔다. 그런 것이 업이었다.

 

그녀는 동생들과 함께 굿판에 나가기를 거듭하면서 차츰 단골로서 단련되어 갔다.

처음에는 어머니 정숙자(그녀는 4년 전 세상을 떴다)의 도움 없이는 굿판을 끝까지 이끌어나갈

역량이 되지 못했으나, 이제는 망자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까지도 곧잘 위무하는 정도는 되었다.

 

이 날 그녀는 종천에 이르기 전 잠시 짬을 내어

아까부터 술김에 공연이 딴지를 붙던 문상객 하나와 맞붙었다.

그러다가 아는 얼굴이 비치니 반갑게 얼싸안기도 했다. 그토록 끈질긴 삶과 그토록 끈질긴 죽음 중

그 어느 것이 그녀를 그토록 억세고도 다감하게 만들었을까.

다음날 상여길은 생각보다 소슬했다.

간밤에 다들 취했는지 발인이 늦어졌다.

오전 9시가 넘어서야 영결식장을 출발한 상여는 아침햇살에 눈이 시린 듯 멈칫거리다가 이내 얼마 가지 않아 진도화물 소속 트럭에 올라탔고, 뒤를 따르는 이들은 카바레에서 내준 승합차거나 관광버스 등에 나누어 탔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에 진도경찰서 소속 한 경찰관은 장례행렬이 길을 막는다고 짜증을 부렸다.

 

상여는 ‘세계적인 별’이거나 ‘국보급 인간문화재’는커녕 보통 장례 대접조차 받지 못했다.

나 역시 어젯밤의 취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으므로 애써 따져 묻지는 않았다.

차가 고향마을에 이르는 동안 상여는 그나마 고향의 배웅을 받았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진도의 낮은 구릉들과 깊은 고랑들이,

속정 많은 진도사람들이 잠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향마을에서 노제를 지낸 후, 이제부터는 영락없이 북망길이었다.

 

상두꾼들이 아무리 핑계를 대어도 이미 북망이 지척이었다.

잠시잠깐인 듯 상여는 장지에 이르렀고,

그곳은 산기슭이 아니라 남도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신작로 가였다.

 

어디선가 아련히 들려오는 남도의 들노래가 귓가를 적셨다.

상사소리는 어디를 갔다가/ 때를 찾아서 다시 온데
우리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를 못하나니

앞산은 점점 멀어지고/ 뒷산은 점점 가까워 온다

생전에 고인은 마음으로 가난하게 살고자 했다.

스스로 죄 없고 여유 있어야 남을 위해 빌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이제 죽은 자로서의 위엄과 신성과 평정을 되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생전에 하 많고 많은 넋들을 씻겼고 이제 스스로도 씻김을 받았으니

그의 넋이야 깨끗하고도 순결할 터였다.

한 시대는 가고 한 시대는 오되 넋은 영원하니 죽음이 결코 끝은 아니었다.

늙어 늙어 만년 주야 /다시 젊지 못하리라/

하늘이 멀다 해도/ 초경에 이슬 오고/

북경이 멀다 해도/ 세월 따라 백발이요/

저승길이 멀다 해도/ 아차 한번 죽어지면/ 대문 밖이 저승일세/

신이로~나아냐 장성고나라도고나/

에~에~에이야 나니냐실어헤이야

- 진도 씻김굿 중 ‘초가망석’


- 2007 12/11   뉴스메이커 753호
글,사진 / 유성문<객원기자>
rotack@lycos.co.kr

 

 

 

 

 
 
 - 2007년 11월23-24일, 원광디지털대학교 김동원교수 촬영
 
 
 
- 출상 전날의 영상

                     

 

 

 

 

 

 

 
 
 
 진도 씻김굿
 
- 지정여부 :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 보유자 : 박병천(朴秉千, 무악)
               김대례(金大禮, 무가)
               박병원(朴秉元, 악사)
- 지정일 : 1980년 11월 17일     
- 전승지역 : 진도전역         
     
 

* 음악 : 박병천, <진도씻김굿> 가운데 '길닦음'
박병천이 안숙선과 함께 부르는 진도씻김굿의 마지막 대목 '길닦음'이다.

 

 

중요무형문화대 제72호 진도씻김굿은

죽은 이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어 극락으로 보내는 전라남도 지방의 굿으로

죽은 자의 넋을 씻김받아 좋은 세상으로 천도하는 의식이다.

 

진도씻김굿은 이 지역 특유의 음악성이 아주 높아 시나위(신앙호)성음으로 짜임새가 아주 높으며

독특한 장단과 춤이 있다.

경상도 지방의 오구굿, 경기 지방의 지노귀굿, 함경도 지방의 망묵이굿 등과 같은 성격의 굿이다.

학술적으로는 이를 통틀어 사령제(死靈祭)라고 한다.

그러나 같은 사령제라 하여도 실제로 하는 방법은 다르다.

 

씻김은 사령의 신체(神體)의 모형을 만들어 무녀가 씻기는 것이다.

즉 죽은 사람의 옷을 돗자리 등으로 말아서 동체(胴體)를 만들어 세우고,

그 위에 넋[魂]을 넣은 식기(食器)를 얹음으로써 죽은 사람의 머리를 상징한다.

다시 그 식기 위에 솥뚜껑을 얹어 모자로 하고 무녀는 무가를 부르며 빗자루로 신체를 씻긴다.

 

 

1. 흐름

 

진도씻김굿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 있는 망자의 원한을 풀어주어

망자가 극락왕생(極樂往生)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진도 지역의 굿을 말한다.

이런 류의 망자의례는 한반도 전 지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고,

그 역사는 한민족 형성의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씻김굿에 시왕(十王)신앙, 제석굿 등 불교적인 요소가 강력하게 자리하여 있는 것을 보아

씻김굿은 고려시대에 형성되고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 확립된 듯하다.

 

 

2. 내용

 

- 진도 씻김굿의 종류

 

씻김굿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하는 여러 종류가 있다.

먼저 초상이 나서 시체 옆에서 직접 행하는 ‘곽머리 씻김굿’을 든다.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방에서 굿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관 위에 질베를 걸쳐 뜰까지 늘어뜨려 놓고 그 옆에서 한다.

시체 옆에서 직접 하는 것이어서 ‘진씻김’이라고도 부른다.

 

다음으로 초상 때 씻김굿을 하지 않고 소상(小祥)날 밤에 하는 '소상 씻김굿'이 있다.

이 굿은 상청(喪廳) 앞이나 뜰에 차일을 치고 논다.

'대상 씻김'은 '탈상 씻김'이라고도 하는데 대상날 밤에 하는 굿이다.

 

이상의 씻김굿을 제때 못했거나 집안에 우환이 심할 경우에는 '날받이 씻김굿'을 한다.

점쟁이가 날을 받아 주어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초분을 했다가 이장하여 묘를 쓸 때에도 묘를 쓴 날 밤에 뜰에다 차일을 치고 씻김굿을 한다.

 

집안의 경사에 대해 조상의 은덕을 기려 벌이는 것은 '영화 씻김굿'이라고 하며,

조상의 비(碑)를 세울 경우에도 이 굿을 한다. 이것을 '경사굿'이라고도 한다.

 

'넋건지기 굿'은 '용굿', '혼건지기 굿'이라고도 부르는데

익사자(溺死者)의 넋을 건져 한을 풀어주기 위한 굿이다.

익사의 현장에서 하거나 또는 수중에서 넋을 건져내어 집안으로 모시고 가서 한다.

 

마지막으로 총각이나 처녀로 죽은 이들끼리 결혼시키는 '저승혼사굿'이 있다.

이 경우 먼저 처녀망자의 묘를 총각망자 묘 옆으로 이장하든가 합장을 한 뒤

그날 밤 총각망자의 집에서 행한다. 뜰에다 차일을 두 곳에 치고 각각 넋을 씻긴다.

진도에서 행하여지는 이상 여러 종류의 씻김굿 가운데 '날받이 씻김굿'이 제일 많이 행해진다.

 

 

- 진도씻김굿의 내용과 순서

 

씻김굿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굿의 내용과 순서가 약간씩 다를 수밖에 없지만, 가장 일반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조왕반 2)안당 3)혼맞이 4)초가망석 5)쳐올리기 6)손님굿 7)제석굿 8)고풀이

9)영돈말이 10)이슬털기 11)왕풀이 12)넋풀이 13)동갑풀이 14)약풀이 15)넋올리기

16)손대잡이 17)희설 18)길닦음 19)종천

 

 

조왕반은 굿날이 조왕의 하강일(下降日)을 지나 조왕 도회(都會)일때만 행한다.

그러기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당은 조상들에게 누구를 위한 굿인지 고하는 굿이며,

 

혼맞이는 객사한 망자의 씻김굿을 할 때라야 놀아진다.

색사자의 혼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므로 그 집의 대문 밖 길이나 마을 앞에서 이 굿을 한다.

 

초가망석에서는 주인공인 망자와 조상 및 망자의 생전 친구였던 이의 혼을 불러들인다.

 

쳐올리기를 하여 그 불러들인 영혼들을 즐겁게 해주고 흠향하게 한다.

 

손님굿은 두 가지 복합적인 뜻을 갖는데 하나는 천연두신(神)인 마마신을 불러 대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망자의 생전 친구들의 영혼을 불러들여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를 위한 손님굿을 하지 않는 곳이 많다.

 

제석굿은 진도지방 굿의 중심적인 굿으로 어느 유형의 굿에서나 반드시 행한다.

제석굿 속에는 여러 대목이 있는데, 제석 근본을 찾는 대목,

제석맞이, 제석이 하강하여 팔도강산을 유람하는 대목,

시주받기, 명당처 잡기, 성주터 잡기, 지경 다지기, 집짓기, 입춘 붙이기, 성주경, 벼슬궁, 축원,

노적청, 업청, 군웅, 조상굿, 액막음 등이 그것이다.

 

고풀이에서는 한과 원한을 상징하는 고를 차일의 기둥에 묶어 놓았다가

하나씩 풀어가며 영혼을 달래 준다.

 

영돈은 시신을 상징한다. 망자의 옷을 만들어 돗자리나 가마니 위에 펼쳐놓고

이 영돈을 똘똘 말아 일곱 매듭을 묶어 세우고 영돈말이를 논다.

 

이슬털기는 '씻김'이라고도 하는데 씻김굿의 중심대목이다.

영돈을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왕풀이는 영돈 위에 있었던 넋을 끄집어 내어 손에 들고 시왕풀이를 하는 것이며,

 

넋풀이에서는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모두 풀어 준다.

 

동갑네들은 아직 살아있는데 혼자서만 죽은 억울한 한의 넋두리를 풀어 주는 대목이 동갑풀이이다.

 

다음은 망자가 약을 구해 먹지 못하여 죽었을 경우 그 한을 풀어주는 약풀이가 놀아진다.

 

넋올리기는 망자의 한의 풀어졌는지를 보는 대목이다.

굿을 하는 가주의 머리에 넋을 올려놓고 당골이 들고 있는 지전에 따라 그 넋이 올라오면

해원이 된 것으로 여긴다.

 

손대잡이에서는 소쿠리에 쌀을 담아 놓고 그 위에 대[竹]를 세워 놓은 것을 '손대'라 한다.

망자의 가족이나 친척이 손대를 잡고 있으면 망자의 혼이 내려 이승에 맺혔던 원한을 모두 이야기한다.

 

희설은 저승의 육갑(六甲)을 풀어 주는 대목이며,

 

다음으로 질베(무명베) 삼삼척(三三尺)을 큰방 문에서부터 대문쪽으로 펴놓고

그 위에 넋을 넣은 놋주발인 행기로 길을 닦듯 문지르면서 하직을 고하는 길닦음이 있다.

 

끝으로 태워야 할 물건을 대문 밖 길로 가지고 나와 불사르면서

당골 혼자 징을 두들기며 망자의 혼을 배송한다. 이것이 씻김굿의 마지막 대목인 종천이다.

 

 

- 진도씻김굿의 무악과 무복

 

진도씻김굿의 음악은 육자배기목(시나위목)을 주로 하고

악기로는 피리, 대금, 해금, 장고, 징으로 편성된 삼현육각을 쓴다.

80년대 이래 가야금, 아쟁, 북이 더해지기도 하고 때로 정주나 바라가 보조악기로 사용된다.

 

무가(巫歌)의 형식은 홀로 불러가는 통절(通節) 형식과

선소리로 메기고 뒷소리로 받는 장절(章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선율의 부침새와 여러 세련된 목 구성을 구사하여 음악이 매우 흥겹고 아름답다.

 

한편 무복은 흰 고깔에 흰 버선, 흰색 치마저고리 위에 흰 장삼을 입고

다홍띠를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로 빗겨 걸치는 것이어서 타 지역의 것에 비해 소박하다.

 

춤은 망자의 한을 풀어 주는 '지전(紙錢)춤'을 위주로 하는데,

다른 지역의 무당춤과는 달리 발을 올리거나 뛰는 동작이 없다.

제자리에 거의 정지한 동작으로 감정을 맺고 그것을 적절히 얼었다가 우아하게 풀어 낸다.

 

굿의 재차가 많고 다양한 연극적 요소가 있고 보니 진도씻김굿의 소도구 또한 다양하다.

굿청 차림에 병풍이 쳐지고 액그릇, 지숙, 혼배, 절베, 쑥물과 향물, 빗자루, 제석거리, 누룩, 동백떡,

청계수, 매듭띠, 행기, 명주천 등과 정주, 신칼, 손대, 넋지전, 넋당석 등의 무구가 소용된다.

 

쑥물, 향물, 청계수는 빗자루와 함께 이슬털기에서 쓰인다.

옛날에는 길닦음에서 '반야용선'이라는 배를 만들어 그 속에 넋을 넣고 문지르면서 놀았다고 한다.

 

 

3. 전승자

 

진도씻김굿은 1980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으며,

핵심적인 예능보유자인 박병천(朴秉千)은

수대로 이어져온 무가(巫家)에서 태어나 부모에게서 굿에 대한 모든 기술을 배웠다.

그 외에 채계만(蔡桂萬, 아쟁)과 김대례(金大禮, 무가)가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