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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달력의 음력, 그 숨겨진 과학성

Gijuzzang Dream 2008. 3. 1. 01:13

 

 

 

 

 

 전통 달력, 그 숨겨진 과학성에 대해

 

 

우리가 쓰는 달력에는 음력과 양력이 있다.

전통적인 역법인 음력(陰曆)이란 달의 운동을 기준삼아 날짜 가는 것이 정해지고,

양력(陽曆)은 달의 운동은 무시한 채 해(太陽)의 운동만으로 날짜를 계산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성을 따지자면, 양력보다는 우리의 음력이 보다 월등하다.

전통 달력에 쓰여졌던 음력에 숨겨진 과학성을 들여다본다.

세상에는 음력과 양력 두 가지 달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음력이라 부르는 우리의 전통 달력도

엄격히 말하자면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이다.

 

날짜 가는 것은 음력, 즉 달의 운동을 기준으로 하지만

계절을 맞추기 위해 태양 운동 성분인 24절기(節氣)를 넣어 1년의 길이를 조절하고 있으니,

우리의 음력이란 사실은 음력+양력의 혼합력인 셈이다.

엄밀히 따져 말하자면 달의 운동만으로 날짜를 따져가는 순음력도 있다.


천문학의 발달로 이루어진 달력


달력 만드는 기술은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당연히 과학(특히 천문학)이 발달하지 않으면 달력 만들기가 어렵다.

6세기 신라에서는

독자적으로 달력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천문학 수준이 발달하지 못했었지만,

신라 중기에 한 때 독자적 연호(年號)를 쓰며 달력도 독립적으로 만든 때가 있었다.

하지만 650년(진덕 4) 중국 역법을 받아오기 시작하면서,

신라 고유 연호의 사용을 중단했다.

해마다 중국에서 달력을 얻어 오는 편이 편리하고도 정확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진덕여왕 2년(648) 한질허(邯帙許)를 당에 보내 조공하였다.

[당] 태종이 어사(御史)를 시켜 물었다.

“신라는 대국(大國)을 섬긴다면서 어찌 따로 연호를 쓰고 있는가?”

질허가 대답하였다.

“중국에서 정삭(正朔)을 반포하지 않기 때문에, 법흥왕 이래 따로 연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일 대국에서 명이 있다면 작은 나라가 어찌 그리 하겠습니까?”

태종이 그렇겠다고 대답했다.

이 기록을 보고 주목할 일은

우리 고유 연호의 사용이 반드시 ‘독립정신’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라 사람들은 정확한 역법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보다 정교한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중국 역법을 얻어오기를 원했다.

 

삼국 시대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날짜 계산에 무지했었는가는

삼국사기 통일 이전 기사가 거의 모두 계절만 밝혀 만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교류가 완전 단절된 일본에서는 중국 달력을 수입해 올 수 없었고,

자연히 조금 틀리지만 나름대로의 역법을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스스로 만든 달력을 쓰니까, 연호도 스스로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본은 지금 까지도 그들 고유의 연호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양력보다 과학적인 음력의 계산법

흔히 우리가 써온 음력을 미신적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잘 따져 보면 오히려 정반대다.

 

음력에서는 달 운동을 기준으로 날짜를 따지다 보니 계절에는 잘 맞지 않을 수가 있다.

그걸 대충이나마 맞춰가기 위해 음력에는 24절기를 넣어 두었다.

 

24절기는 음력에 들어간 양력 성분이다.

즉 태양이 15도 이동할 때마다 한 절기를 두어 그것으로 농사짓는 데 쓰도록 해 놓은 것이다.

음력이 아닌 24절기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셈이다.

 

지금 24절기의 날짜를 보면

해마다 양력으로 같은 날에 입춘, 우수, 경칩 등 그 절기가 해당함을 발견하게 된다.


음력에서는 한 달의 날짜 수가 29일이나 30일인데

이는 달 모양을 가장 잘 나타내도록 계산해 나온 것이지,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이 아니다.

 

양력에서는 2월이 28일이고, 7, 8월은 계속해 31일 씩이 되는데,

이것은 7월이 율리우스 시저의 생월이고,

8월이 아우구스투스의 탄생일로 길게 만들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양력은 로마의 황제들을 기념하기 위한 인위적 조작으로

이름도 July, August가 되고, 날자 수가 들쭉날쭉한 것이 특징이다.


음력이야 말로 달의 운동을 기준으로 하되

태양 운동도 반영한 자연현상을 잘 나타내주는 ‘과학적’ 역법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조선 세종 당시

혼천의(중요민속자료 제22-13호), 혼상, 간의 등 다양한 천문기구들의 사용으로

천문학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보다 과학적인 역법을 설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보다 과학적인 음력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세상 사람들은 지배자의 달력으로 통일해 갈 수 밖에 없었고,

그 통일된 달력은 서양 것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이 1877년 그랬던 것처럼,

1896년부터 서양의 양력을 공식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 글, 박성래 문화재위원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

- 월간문화재사랑, 2008-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