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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업 - 호취도(豪鷲圖)

Gijuzzang Dream 2008. 2. 27. 02:25
 
 
 
 
 장승업 - 호취도(豪鷲圖)
 
 

• 두 마리의 매, 19세기 조선을 말하다

고목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매를 한번 보자.
살기등등한 매의 매서운 눈매와 날카로운 발톱 등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여
마치 살아 있는 매를 보는 듯하다.
장승업의 천재적인 재능을 느낄 수 있는 대표작품이다.
심하게 뒤틀린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두마리 매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장승업 <호취도(豪鷲圖)>, 조선시대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135.5×55.0cm, 리움미술관 소장

 
 
화면 위의 매는 살기등등한 눈매와 날카로운 부리의 살아 있는 듯한 묘사로
금방이라도 먹이를 향해 달려들 것처럼 보인다.
화면 아래의 매는 막 사냥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지 조용한 모습이다.
이 그림은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작품으로
당시의 상황과 결부시켜보면 위태로워 보이는 나뭇가지에서 조선의 기울어져 가는 국운이 암시되며
매의 모습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오는 제국주의 열강세력들에 저항하고자 하는
왕조의 저력과 기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모습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원래 매 그림은 전통적으로 물, 불, 바람으로 인한 세 가지 재앙(삼재, 三災)을
물리치고자 하는 벽사의 의미로 여겨져 왔다.
장승업도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감지하고 외세를 물리치고자 이런 매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선배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와 혜원(蕙園) 신윤복과 비교해
자기가 그들 보다 못하지 않다는 자신감에서
“나 자신도 원(園)”이라고 한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은
조선시대 말기에 근대회화로의 전통을 이어간 장본인이다.
 
조선왕조의 쇠락기인 19세기 중반, 중인가문으로 생각되는 장(張)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당시 중국 청나라를 왕래하던 통역관인 이응헌(李應憲)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장승업은 이응헌의 집에서 어깨 너머로
중국의 유명화가와 수장가들의 그림들을 감상할 기회가 많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붓으로 어깨너머로 본 그림을 그려보았더니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장승업의 그림에 대한 재능은 이후 장승업의 후원자가 된 이응헌의 눈에 띄었고,
그로부터 장승업은 서울 장안에 권세가의 집에 그의 병풍하나가 없어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그의 화실 문턱이 주문자들로 인해 닳아 없어질 형편이 되었다.

장안에 명성이 자자해지자 급기야는 왕실까지 알려져
고종의 명을 받아 화원감찰이라는 벼슬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벼슬살이가 답답해 임금의 명을 거역하고는 물감을 사러 나간다며
술집 갔다 잡히기를 두세 번하였지만 그 재주가 비상해 용서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호탕하고 어느 것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사십이 넘어 장가를 들었으나 하룻밤 만에 도망쳤다고도 한다.
 
그는 일체의 세속적인 관습, 돈, 명예 등에 구속받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일생을 뜬 구름 마냥 그의 그림을 구하는 후원자들의 사랑방이나 술집을 전전하며 보냈다.
 
그가 살았던 당시 조선 왕조는 내부적으로는 11세에 등극한 순조의 외척들의 세도정치와
관리들의 부패와 착취, 그리고 계속되는 흉년과 괴질 등으로 민란이 끊이지 않는 혼란이 계속되고
외부적으로는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러시아의 열강의 침략 속에서
조선 왕조가 500년의 긴 역사를 마감해가는 암운이 드리운 비극적인 시기였다.
이렇게 기울어져 가는 국운과 함께 그의 예술혼도 한껏 불꽃을 사르고 떠나간 장승업은
예술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을 실천한 또 한명의 천재화가였다.

생각해보기

평생을 떠돌이로 집과 가족, 후손도 없이 떠돌이로 살다간 장승업의 생애는
세속적인 부와 권세, 일상의 행복에 있어서는 실패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 1세기가 된 지금
오히려 그는 그의 작품들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은 아닐까 반문해 본다.
여기서 일체의 세속적인 것을 거부했던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이
일반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의 행복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또 과연 인간의 삶에서 행복의 잣대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최혜원 /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 · 경희대 강사
- 조선일보 2007-03-15  [명화로 보는 논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