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탄은 이정 - 풍죽도(風竹圖)

Gijuzzang Dream 2008. 2. 27. 01:57

 

 

 

 

 탄은 이정 - 풍죽(風竹)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군자의 굳건한 심지 정중동(靜中動)

 

 

선비의 꼿꼿한 지조와 절개의 상징, 대나무(竹)

 

대나무는 옛날부터 주로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자연물로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유교사회의 최고 인간형인 군자의 모습을 담았다고 하여

일컬어지는 사군자(四君子)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와 그림에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알려진 '시경(詩經)'에서

주나라 무왕의 높은 덕을 칭송하여 그의 인품을 대나무에 비유했다.

그 후 난세를 맞아 정치에 등을 돌리고 대나무 숲 속에 들어간 현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다.

 

사실 대나무는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어진 군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사람에 비유한다.

끊길 듯 끊이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

은 시절은 물론 어려울 때나 힘들 때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선비들이 좋아했나 보다.

 

그리고 뿌리가 강해 여간해서는 뽑히지 않는다.

또한 줄기가 곧아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도 않는다.

어진 사람들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거나 쉽사리 흔들리지않고 심지가 굳건하기에

대나무의 이런 모습을 군자에 비유했다.

 

또한 대나무는 속이 텅 비었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텅 빈 마음으로 자신을 수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대나무의 마디는 또 어떠한가.

반듯하고 절도가 있어 언제나 꼿꼿하고 절도 있는 행동거지를 보는 것 같다.

이렇게 대나무는 유교문화권에서

고난과 시련에 맞서는 강직성과 겸허함,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정, '풍죽도(風竹圖)', 17세기 초, 비단에 수묵, 127.8×71.4㎝, 간송미술관소장

 


조선시대 최고의 대나무 화가, 이정

 

이렇듯 군자를 닮은 대나무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 낸 작품이

우리나라 회화 사상 최고의 대나무 화가로 꼽히는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54~1626)의 ‘풍죽도(風竹圖)’다.

 

이정은 세종대왕의 현손(玄孫: 증손자의 아들, 곧 고손자)으로 왕족 출신 문인화가이다.

그는 특히 먹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은 사실적인 묘사와 더불어 격조 높은 정신성을

모두 겸비했다고 하여 조선은 물론 멀리 중국에까지 이름을 날렸다.

 

사실 이정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칼에 오른 팔을 다쳐 화가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듯했다.

전쟁 중에 신체적인 장애를 입었지만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왼손으로도 오른손으로 그린 그림만큼의 걸작을 남겼다.

 

그의 대나무 그림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는 것이 이 ‘풍죽도’이다.

정확한 제작 연도는 알 수는 없으나

임진왜란 이후로 그가 장애를 극복하고 왼손으로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사각거리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한 풍죽도

 

 

거센 바람에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대나무가 보인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심하게 흔들리고 휘어져있는 대나무 가지와 이파리들이

짙은 먹색과 흐린 먹색의 대비로 강한 인상을 보여준다.

마치 대나무 가지와 이파리들 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람에 사각 사각거리는 소리 말이다.

 

짙은 먹색과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뒤쪽의 아주 흐린 여린 대나무들까지 산만하지 않는

탁월한 화면 구성과 찔릴 것같이 날카로운 이파리들의 표현으로 인해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정중동(靜中動)’이라는 표현이 들어맞을 것 같다.

차분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꺾이지 않으려고 버티고 서있는

소리없는 강자와도 같은 모습의 강렬하면서도 순간적인 찰나의 인상을 주고 있다.

 

이정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적인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새롭게 찾아오는 부흥의 시기를

열어가는 과정에서 체절명의 위기가 주는 절박함과 비장함 등을 ‘풍죽도’ 속에 담아내었다.

- [명화로 보는 논술]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 · 경희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