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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류사금당 화재(1949) 이후 복원(1954) - 수장고 관람기

Gijuzzang Dream 2008. 2. 20. 15:09

 

 

 

 日 호류사 금당 수장고 관람기

 


“불에 탄 기둥에도 정성… 魂은 불타지 않았다”
기둥 - 벽체 강화작업후 5년만에 재조립
화재 흔적까지 국보로… 출입 엄격 통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소방호스에서 힘차게 뻗어나간 물줄기가 허공을 가르며
금당 건물 지붕 위로 쏟아져 내렸다. 금당과 5층목탑의 처마 끝에서,
기와에 쌓인 먼지를 말끔히 씻어 내린 물줄기가 금방 낙숫물이 돼 떨어졌다.
지붕 위 마루에서는 하얗게 안개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스프링클러에서 분무된 물보라였다.
목조문화재에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한 소방훈련이었다.
2000년 7월 27일 불교 교류단 일행과 함께 일본 호류(法隆)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주지승의 안내로 대보장원(호류사 내에 국보급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곳) 구역의 수장고에 들어섰다.
1949년 불탔다가 1954년 복원된
일본 호류사 금당의 숯덩어리 부재(部材 ·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재료)와 벽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이곳에는 ‘특별한 허락’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었다.
숯덩어리 부재와 흔적은 복원된 금당과 함께 1959년 국보로 지정됐다.

수장고 문을 열자 검은 기둥의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탄화된 목재를 짜 맞춘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건물이
화재 전 금당 1층과 같은 스케일로 세워져 있었다.
건축물 둘레에 있던 차양칸은 제외하고 본채 부분만 재구성한 것이다.

원래 불상을 받쳤던 수미단(불상을 모셔 두는 단)이 놓여 있어야 할 중심부에는
전돌을 깔아 사람이 다니게 하고, 안기둥과 바깥기둥
그리고 하방(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아래쪽의 부재) 둘레에는 나지막한 단을 만들어
통로인 바닥과 구별해 놓았다. 전시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둥의 밑동은 불에 그을리지 않은 부분도 있으나,
기둥머리와 공포(처마를 받쳐주기 위해 처마와 기둥 사이에 부재를 겹쳐 놓은 것)로 올라갈수록
훼손 상태가 심했다. 그래서인지 천장에 철제 빔을 설치해 부재들이 무너지지 않게 해 놓았다.

관련 기록을 봤다.
불을 끈 뒤 “벽체는 (금당) 건물의 붕괴에 대비해 탈락을 방지하기 위해 목재로 보강했다.
불에 탄 기둥과 벽체에는 요소(尿素)계 수지를 주입해 경화시킨 다음
1949년 3월 6일부터 벽체를 떼어내 금당 뒤에 세워진 작업소로 운반했다.
작업소에서 벽체를 눕혀 수지를 주입하고 벽체의 탈락부를 보수하는 작업을 거쳤다.
1952년 12월 12일에 낙성된 현 수장고 안에서 1954년 10월 3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
기둥, 벽체를 함께 조립했다”고 한다.

화재 이후 그을린 금당벽화
신앙의 대상이어서 원위치에 놓아야 한다는 호류사의 강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단단하게 굳은 벽체를 건축의 일부로 삼았다가 지진 같은 재해가 일어났을 때
크게 파괴될 우려가 있어, 오랜 논의 끝에
건축 부재와 함께 수장고를 새로 건설해 그 안에 보관하기로 했다.

7세기 말∼8세기 초 아스까시대
에 건립된 호류사는
일본 건축의 민족양식을 완성하고 후세로 전파한 건축이라는 찬사를 받아 왔다.
제2차세계대전의 패배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일본 정부는
호류사 화재라는 또 하나의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금당 재건(再建)에 총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일본을 찾은 관광객들이 보는 금당 건물과 내부 벽화는
불타기 전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再現)한 것이다.

건축은 장소성을 확보한 탓에 상징성을 띠기 마련이다.
호류사 금당이 일본의 찬란한 고대문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숭례문은 단아하며 소박하지만 건실했던 조선 문화의 상징이다.
숭례문 앞에서 온 국민이 가슴 아파하는 것도 숭례문이 우리에게 보여 주었던 정신성 때문이다.
우리 뇌리에 각인된 숭례문의 역사성과 정신성을 회복하는 일이
빠른 복구에 달려 있는 것만은 아님을 호류사 복원의 사례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지.

호류사 수장고 안 검은 기둥들은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 속에 눈부시게 빛나던 파르테논 신전과 대비돼
지금도 내 뇌리에 각인돼 있다.
- 이강근, 경주대 교수 · 문화재학부
- 2008년 2월 18일동아일보 &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