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초상화] 정몽주, 오자치

Gijuzzang Dream 2008. 2. 20. 01:45

 

 

 

 

 정몽주 초상 (仁祖 己巳年 模本) 보물 1110호
 
고려시대 충신 정몽주(1337∼1392)의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98㎝, 세로 169.5㎝이다.
 
정몽주의 호는 포은으로 고려말 혼란기에 정승에 올랐으며,
이성계 추대에 반대하다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단심가’는 고려에 대한 그의 충절이 담겨져 있다.
관리들이 쓰는 모자와 엷은 청색의 관복을 입고 오른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이다.
옷주름 표현은 청색선을 이용하여 묘사하였으며 돗자리나 배경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 초상화는 영천 임고서원(臨皐書院)에 있는 3점의 정몽주 초상화 가운데 하나로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숭정기사모본(崇禎己巳模本)’이라 쓰여 있는 이 초상화는
인조 7년(1629)에 김육이 비단 위에 새로 옮겨 그린 모본으로,
비단이 많이 헐어 훼손이 심한 상태이나 옛 그림화풍이 잘 나타나 있으며
3점의 포은 초상화 중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중요한 작품이다.
 
 

 

 

 

 傳 오자치 초상 (보물 1190호)

 

조선시대 무신인 오자치를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로 가로 105㎝, 세로 160㎝이다.
오자치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세조 13년(1467) 이시애의 난을 물리친 공을 인정받아 일등공신에 올랐다.

이 초상화는 오른쪽을 바라보고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머리에는 검은색의 사모를 쓰고 짙푸른색의 관복을 입었으며 두 손은 옷 속으로 마주 잡고 있다.
가슴에는 호랑이무늬를 수놓은 흉배가 있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의 직위가 무관 1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관복의 외곽선을 각이 지게 표현했고
옷자락의 옆트임 안쪽으로 보이는 안감도 풀을 먹인 것처럼 세차게 표현되었다.

이 그림은 그린 대상만 다를 뿐
장말손의 초상화나 손소의 초상화와 같은 형식과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성종 7년(1476) 모든 공신의 영정을 그리도록 했을 때 함께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 몇점 남지않은 귀중한 작품으로 공신그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물 제1190호로 지정되었으며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