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이야기] 아그놀로 브론티노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우의’ | ||
‘비너스와 큐피드의 우의’ Allegory of time and love(시간과 사랑의 寓意) 1549∼1550년경, 목판에 유채, 146×116,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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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지간 보다는 근친상간 연상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못생긴 남편을 두고 자유분방하게 사랑을 하는 비너스는 여인의 성적 매력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사랑하는 일에 열중하는 비너스는 화가들에게 신화적 의미를 뛰어 넘어 에로틱한 꿈의 세계를 창출했다. 아그놀로 브론티노(Agnolo Bronzino, 1503~1572)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우의’다.
이 작품에서 큐피드는 비너스와 관능적인 키스를 나누면서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비너스의 젖꼭지를 잡고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비둘기를 밟고 서 있다. 다정한 모자지간이라기보다 근친상간을 떠올리게 한다.
또 큐피드가 깔고 앉은 붉은 방석이 암시하는 것은 성적 쾌락이다.
붉은 방석을 통해 이 작품의 주제가 에로티즘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지만 화가이면서 시인으로 명망이 높던 브론티노는 사랑의 기쁨 외에 고통과 파멸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그녀가 쥐고 있는 사과는 비너스를 상징하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의 목동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고 새긴 사과를 비너스에게 선물한 것에서 유래한다.
비너스가 들고 있는 에로스의 화살은 정렬의 헛됨을 암시하며, 웃으면서 비너스에게 장미 꽃잎을 뿌리고 있는 소년은 사랑의 행복한 순간과 어리석은 순간을 상징한다. 소년이 뿌리고 있는 장미꽃 역시 비너스를 상징하며 장미의 가시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랑의 고통을 암시한다. 한 손에는 꿀이 가득 찬 벌집이 다른 한 손에는 작은 동물이 들여 있다.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가 바뀐 소녀는 행복의 또 다른 얼굴을 상징한다. 젊은 사랑의 가장 큰 적인 늙음을 암시한다. 비너스 발밑의 가면은 사랑의 속임수를, 에로스 발밑에 있는 비둘기는 비너스의 사랑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큐피드 옆에 얼굴을 감싸 안은 여인이다. 그녀는 사랑에 항상 동반되는 절망 혹은 질투를 상징한다. 사랑에 절망한 그녀는 울부짖고 있다. 그 위에 있는 여인이 진실의 상징이다. 그녀와 크로노스로는 부도덕한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청색의 커튼을 걷고 있다. 청색의 커튼은 정렬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메디치가의 코시모가 에로틱한 그림을 선호한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바치는 선물로 제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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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시간과 사랑의 우의(寓意)>라고 되어 있다. Allegory of time and love 즉 '시간과 사랑, 그 둘 사이에 숨은 뜻을 숨긴 그림'이라는 말이다. 매우 철학적이고 멋있는 제목이지만, 이치에 맞지않는 이 그림에 어떻게 해서 이런 거창한 제목이 붙었을까? 이 그림이 소개된 어떤 화첩의 설명문을 보자.
"갈고 닦은 듯한 화면에 보석의 기질과 아름다움이 있고, 그 우미하고 정밀한 묘사 속에 관능의 떠들석함이 잠겨 있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여기 나타난 일종의 시장은 초현실주의로 발전하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 그림은 코시모 1세가 제작을 의뢰, 완성품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에게 헌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 중엽부터는 영궁에 있다가 다시 프랑스에 건너갔으며, 1860년에 다시 영국에서 파리의 화상으로부터 수입하여 지금까지 보존해 온 작품이다."
화집의 설명문을 읽어가지고는 도저히 이 그림에 대하여 가졌던 의문을 풀 수가 없다.
브론치노의 대표작도 모르니, 다른 것은 더욱 모를 일인데다가 450여년 전의 이 그림이 1900년대에 나온 초현실주의와 통한다면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이 그림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는 말인지, 관능의 떠들석함에 잠겨 있다면 관능에 잠긴 것이 좋다는 말인지 나쁘다는 말인지, 주문에 의하여 그렸다면 그 주문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한 일이 많은데 도저히 알 수 가 없다.
그림을 보는 것은 우리의 눈이다. 그림을 본다는 말은 그림을 그저 바라본다는 말이 아니다. 그림은 그저 경치처럼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는 대상이다. 그 그림에 대하여 이모저모 생각하며 따져보는 일이다. 이런 일을 우리는 감상(鑑賞)이라고 말한다.
브론치노의 이 그림이 감상되지 않는다는 말은 그림에 무엇이 그려졌는지 식별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 그 그림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해득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우리의 뇌이다. 뇌 속에서 일어나는 고등한 정보 처리작용이기 때문이다. 뇌는 이미 입력된 지식으로 사고한다. 그러므로 지식이 없으면 감상이 되지 않는다. 이 그림이 감상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의 뇌가 정보처리를 할 수 없다는 말이고, 뇌가 정보처리를 할 수 없다는 말은 처리할 만한 단위의 지식이 없다는 말이다. 지식이 적으면 감각적, 감상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느낌만으로 우리는 만족하지 않는다.
브론치노의 그림에서 '시간'은 그림의 맨 위에서 팔을 뻗어 젊은 여자의 장막을 빼앗으려는 날개돋은 노인이다. 편의상 '시간의 신'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시간'이라는 추상명사를 의인화하여 이렇게 그린 것이다. '시간의 의인상 크로노스'는 큰 낫을 든 노인, 혹은 모래시계를 가진 노인, 혹은 폐허에 있는 노인으로 등장한다. 시간은 위력을 가진 존재이며,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이 없는 채 감상하게 되면, 혹시 날개가 돋힌 노인이 큐피드가 늙었을 때의 모습이 아닌가 하고 여길 수도 있다.
<시간과 사랑의 우의>에서는 '시간'이 웬 젊은 여인이 쓰고있는 장막을 빼앗아 벗기고 있고, 이 젊은 여인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마주 당기고 있다. 천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젊은 여인은 '진리' 혹은 '진실'을 나타낸다. 천을 뒤집어썼다는 것은 '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본시 '진리'의 속성은 자기를 감추고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막을 덮어 몸을 가린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시간은 이 장막을 벗겨서 진리를 드러내 보이려 한다. 그래서 시간과 진리는 항상 싸운다. 그러나 결국은 시간이 이긴다. 시간이 지나면 대개의 진실은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도 진리는 시간에게 장막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마주 당기고 있다.
진리는 항상 젊은 여자로 나타낸다. 젊은 여자로 그리는 이유는 진리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나오는 딸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를 나타낼 때는 얼굴이 오른쪽만 보이도록 그린다. 진리는 오른쪽에만 얼굴이 있다. 그러므로 오른쪽에 있어야만 진리를 볼 수 있다. 왼쪽에서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오직 오른쪽, Right. 즉 정의 쪽에서 보아야만 진리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진리는 오른쪽만 얼굴이 있는 젊은 여자로 나타낸다.
그러면 '사랑'은 누구인가? 그거야 다 알 수 있는 큐피드일 것이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소재인 날개돋히고 화살통을 메고 있는 어린아이이니까. 이 화살통에는 예리한 금화살과 뭉툭한 납화살이 있어서, 금화살에 맞으면 사랑을 하게 된다는 그 큐피드일 것이다. 큐피드는 정신적, 육체적 두 가지 사랑 중에서 육체적 사랑인 '에로스'를 나타낸다.
화면의 중앙에는 그림의 제목에도 나오지 못하는 여자가 중앙에 버티고 있다. 이것도 이치에 맞지않는 일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물이 화면의 중심부에 나오도록 그려야 할 텐데, 제목에 나오는 시간과 사랑은 화면의 변두리에 있고, 그렇지못한 여인이 화면의 중앙에 있는 것은 구도상 이치에 맞지 않는다. 중요한 것이 화면의 중앙에 놓여야 할 것이다. 그때라고 변두리에 중요한 것을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여인은 미의 여신 '비너스'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름다움'이라는 추상명사의 의인상이다. 비너스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뜻한다.
잘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와는 얼굴도 몸매도 다른데, 어떻게 비너스라는 것을 알 수 있느냐. 비너스로 알아보는 것은 간단하다. 여인이 금사과를 들고 있으면 비너스이다. 비너스는 비둘기를 좋아하고, 장미꽃을 좋아한다.
그리고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여신임을 인정받은 증표로서 금사과를 받았다는 내용의 그리스신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신화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절구통 허리에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금사과나 비둘기를 데리고 있으면 저절로 비너스로 알아보도록 약속이 되어 있다.
<시간과 사랑의 우의>에서는 금사과와 비둘기, 둘 다 있으므로 오갈 데 없는 비너스다. 비너스를 나타낼 때마다 얼굴 모양을 똑같이 해야한다면, 화가나 조각가들에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지물(持物)로 나타내도록 약속이 되어 있었다. 지물로 그 인물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것은 동서양이 모두 지키고 있는 방법이다. 따라서 그 지물이 누구의 것인가만 알면, 쉽게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비너스의 승리의 증표로서의 사과는 파리스의 사과이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 잔치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초대를 받지못했다. 이에 화가 난 그녀는 연회석에 금사과 하나를 던졌는데, 그 금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그 금사과의 주인을 정하기 위해서는 심판을 해야했는데, 결선에는 제우스의 부인 헤라, 지혜의 신 아테나, 미의 여신 비너스 이렇게 셋이 남게 되었다.
심판은 당연히 제우스가 해야 한다. 신들의 왕이니까. 그러나 제우스는 난처했다. 아테나(아테네는 아테나이, 곧 도시이름)나 비너스에게 금사과를 주었다가는 자기 부인인 헤라에게 평생동안 바가지 긁히게 생겼고, 그렇다고 헤라에게 주었다가는 다른 신들로부터 정실 심판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생각끝에 이 세 여신들을 전령 페르세우스와 함께 이데산으로 보내서, 양치기로 있는 트로이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받도록 했다. 그러자 여신들은 각각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게하기 위해서 파리스에게 뇌물공세를 펴게 되었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권력과 부를, 아테나는 지혜와 전승(戰勝)을, 그러나 비너스는 비너스답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파리스는 당시에는 강국이었던 트로이의 왕자였기 때문에 권력, 부, 지혜, 전승보다는 비너스의 제의에 혹하여 그녀에게 금사과를 주게 되었고, 이로 인해 비너스는 아름다움을 주관하는 미의 여신으로 육체 또한 가장 아름다운 여신임을 공인받은 셈이 되었다. 그런 연유로 금사과는 비너스의 상징이 된다.
그후, 헤라와 아테나는 파리스를 미워하게 되고, 파리스는 불행에 빠지게 된다. 비너스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데려다 준 여인이 스파르타의 메넬라우스 왕비인 헬레네였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그만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연합군을 조직하여 트로이를 공격하게 되고, 이로써 '트로이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파리스는 다른 것은 몰라도 여신들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원한을 샀으니 크게 잘못을 저질렀다.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도 이 일만은 지성적으로 처리할 수 없었던 가 보다. 지혜의 신으로서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어 평화가 오게하지 않고, 수세에 몰린 그리스군의 편을 들어 트로이전쟁은 더 깊어지게 된다. 전쟁은 결정적인 승패 없이 9년이나 끌게 되고 파리스는 한때 그리스의 명장 아킬레우스까지 물리치지만 결국 독화살을 맞고 앓다가 죽게 된다.
파리스에게는 젊었을 때에 결혼하였던 오이노네라는 약초에 해박한 님프가 있었으나, 배신에 앙심을 품은 그녀는 끝내 파리스의 치료를 도와주지 않았다. 비너스가 데려온 헬레네는 전쟁중 은근히 본남편 메넬라우스의 나라인 스파르타의 편을 들었고, 트로이 함락 이후 다시 메넬라우스에게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일로 파리스는 끼어들지 않아도 될 싸움에 말려들어 색욕에 눈이 어두워 첫사랑을 배반하고 자신과 나라를 망친 어리석음을 후세에 남기게 되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남자로서, 더욱이 왕자라면 모름지기 지혜와 전승과 부와 권력을 추구해야되는데, 일개 여인의 아름다움을 탐하다가 자기는 물론 나라까지 망치고 부끄러운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당시에 그림은 왕,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으므로 이런 그림이 그들을 위한 것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여색을 경계하라는 교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덕목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파리스의 사과에 나타난 교훈의 의미는 당시 그림의 주문자인 귀족이나 감상자들의 취미에 잘 부합하는 것으로서 자주 다루어지는 화제였다. 예술품의 수요자는 귀족이었고, 귀족은 지식층이었으며, 지식층들은 의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이런 의미 있는 그림들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양화 읽는 법>, 조용진, 사계절,1997, pp 21-29
아그놀로 브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우화>
화가는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줄 때도 있지만 우의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성적 쾌락을 동반한 부도덕한 행위를 우의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아그놀로 브론치노(1503~1572)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우화>이다.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그의 의도를 그림을 통해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교묘하게 숨겨 놓고 있는 인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게끔 만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비너스의 젖꼭지를 잡고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비둘기를 밟고 서 있다. 다정한 모자지간이라기보다는 근친상간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큐피드가 깔고 앉은 붉은 방석이 암시하는 것은 성적 쾌락이다. 브론티노는 사랑의 기쁨 외에 고통과 파멸을 상징하는 것을 숨겨 놓았다. 그녀가 왼손에 잡고 있는 사과는 비너스를 상징하고 있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의 목동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라고 새겨져 있는 사과를 비너스에게 선물한 것에서 따른다. 비너스의 우유빛 살결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미인상이다. 또한 에로스의 강력한 무기이자 비너스의 무기 사랑을 상징한다. 사랑의 행복했던 순간과 어리석은 순간을 상징하고 있다. 소년이 뿌리고 있는 장미꽃 역시 비너스를 상징하고 있으며 장미의 가시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랑의 고통을 암시한다. 한 손에는 꿀이 가득 차 있는 벌집이 다른 한 손에는 작은 동물이 들려 있다.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가 바뀐 소녀는 행복의 또 다른 얼굴, 기만을 상징하고 있다. 수염 난 남자는 젊은 사랑의 가장 큰 적인 늙음을 암시하고 있다. 에로스 발밑에 있는 비둘기는 비너스의 사랑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큐피드 옆에 얼굴을 감싸 안고 있는 여인이다. 그녀는 사랑에 항상 동반되는 절망 혹은 질투를 상징한다. 사랑에 절망한 그녀는 울부짖고 있다. 그 위에 있는 여인이 진실의 상징이다. 그녀와 크로노스로는 부도덕한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청색의 커튼을 걷고 있다. 청색의 커튼은 정열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비너스와 큐피드가 의미하는 에로티시즘은 분명하지만 그 외에 파악하기 힘든 이미지는 매너리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후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미술사조다.) 종교화보다는 우아한 자세의 인물화로 명성이 높았다. 이 작품은 브론치노의 최고의 작품으로서 메디치가의 코시모가 에로틱한 그림을 선호했던 프랑스 국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에게 바치는 선물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동시대에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 2008년 11월 19일, ⓒ ScienceTimes [명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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